교육 불가능의 시대
오늘의 교육 편집위원회 기획, 엮음 / 교육공동체벗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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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먼 길을 가는첫걸음.

 

   이 리뷰는 약간 길어질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든다. 잘 쓴다고 누가 칭찬해 주는 글도 아닌데 싶어 아무렇게나 쓰고 말지 싶다가도, 이런 글쓰기를 내 생각의 조각들을 이어붙이고 쟁여두는 기회로 삼으려는 욕심에 이왕 쓰는 글, 좀 다듬어 생각을 정리하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읽은 책도 좋다. 교사인 내 가슴을 한동안 먹먹하게 만든 책, 교육공동체 벗에서 나온 <교육 불가능의 시대>라는 책이다.


1. 외면해 온 교육에 관한 책

 

   때때로 부침이 있긴 했지만, 나름 틈나는 대로 지난 20년 동안 책읽기를 완전히 끊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뭐 취미 삼아, 놀기 삼아 해 온 책읽기라 처음부터 발전이라는 개념이  있을 리 없다. 별로 분야를 한정하지도 않았고, 책 읽는 수준도 대체로 교양 입문서 수준에서만 수년 째 제자리를 맴돌고 있다.(그래도 별로 아쉬움이 없으니 천상, 영혼이 게으른 탓이다.) 다만, 직업이 직업인지라 내 책읽기의 큰 졸가리는 시, 소설 같은 문학책, 사회과학 입문서나 인문학 교양서, 그리고 교육에 관한 책으로 묶어 볼 수는 있겠다. 내 직업(고등학교 국어교사)과 전혀 관련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문학책을 읽을 때면 갈래 자체에 재미가 있을 뿐더러 무엇보다 마음의 힘을 덜 들이고 읽을 수 있어 한결 편하다. 인문 사회과학 도서는 말 그대로 취미로 읽는 것이라 쉽게 읽히면 좋고, 어려우면 밀쳐두고 다른 책으로 건너뛰고, 이도저도 아니면 안 읽어도 그만일 때가 많으니 문학책보다도 더 마음이 편하다.


   그런데 교육학 책을 고르고, 또 읽을 때는 마음이 좀 다르다. 이런 종류의 책들이 주로 비판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부정적 교육 현실에 내 책임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학교 현장에서 몸으로 때우는 나 같은 사람이 볼 때 저자들의 현실 인식이 정확하지 못하다는 느낌을 받을 때는 이건 아닌데, 싶은 생각이 들 때도 좀 있었다. 아마도 교육에 관한 책을 읽는 내 태도는, 책의 내용을 ‘나와 관련된 문제’로 받아들이고 이해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읽는 동안 긴장감도 높아지고, 마음이 답답하기도 하고, 머릿속으로는 계속 저자의 허점만 찾으려고 든다. 그러니 책을 읽어도 마음이 불편한 거야 당연하다. 그래도, 초임 교사 시절에는 이런 교육학 관련 책을 부러 찾아 읽기도 했지만,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면서부터 교육학 관련 책은 더 이상 찾아 읽지는 않게 되었다. 사실, 이 글을 쓰기 전까지는 왜 그럴까, 에 대한 생각을 별로 해 본 적도 없는데, 글을 쓰면서 찬찬히 생각을 해 보니, 한마디로 교육학 책은, 재미가 없다,로 답할 수 있겠다.


   내가 생각할 때 교육학 책이 재미가 없는 이유는 두 가지인데, 대체로 저자가 누구냐에 따라 나누어 말할 수 있다. 먼저, 저자가 교육 현장에 있는 경우에는 다음의 두 가지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첫째, 자신의 교육활동을 실천한 사례를 소개하는 경우이거나, 둘째, 자신이 본 학교(교육) 현실의 어느 한 면만을 부각시켜 비판적으로 서술하는 경우이다. 첫 번째 내용의 책은 나 같은 게으른 사람에겐 몹시 부담스럽다. 선생님의 넘치는 열정이야 훌륭하지만, 이미 제 분수를 잘 알게 된 뱁새가 황새를 따라갈 수는 없는 일이다. 두 번째 내용의 책을 읽을 땐 마음이 몹시 답답하다. 어느 곳이나 그렇듯이 학교도 부정적인 면이 많이 있긴 하지만, 결국 그 책에서 말하고 있는 내용이 학교의 전부는 아니다. 그러니 나는 눈으로는 책을 읽으면서 머릿속에서는 적당한 핑계거리와 반론 찾기에 더 주력한다.


   반대로 저자가 (중등) 교육 현장에 있지 않은 경우는 문제점의 진단이나 대안 제시 등에서 아무래도 현장 감각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까 항상 그들의 주장은 옳지만-그건 나도 안다-, 그 쪽으로 가기 위한 실천의 내용은 빈약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하나마나한 소리, 너무나 이상적인 결론, 누구도 이르는 길을 모르는 ‘신세계’를 읽고 나면, 오히려 읽기 전보다 더 마음이 힘들다. 물론 현장 밖의 관찰자는 교육 현장을 객관적으로 들여다 볼 수도 있으면서도 현장 전체의 상황을 점검하면서 문제를 파악해 갈 수도 있는 입체적 시각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분명한 장점이 있지만, 안타깝게도 내가 읽은 교육 관련 책들은 대체로 그런 장점보다는 앞서 지적한 단점이 더 도드라져 보이는 경우가 더 많았다.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어쩌면 내가 억세게 운이 나빴거나, 책을 고르는 안목이 아직도 형편없는  탓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면서 나는 시나브로 조금씩 교육에 관한 책에서 멀어져갔다.


2. 그런데, 교육 불가능의 시대는 왜?


   거의 1년쯤 전이었나 싶은데, 오늘의 교육이라는 독특한 형태의 교육공동체 운동의 출발을 알리는(함께 하자는) 메일이 나에게도 왔었다. 아이들에게 온전히 전해지기에도 턱없이 부족한 내 열정과 수년 째 학교 현장에서 무기력한 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던 내가, 제 무능력은 보지 못하고, 한동안 참여할까를 두고 제법 고민을 했었더랬다. 무엇보다도 이름을 올린 선생님들의 면면을 보고 지푸라기라도 붙잡아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대로 계속 살면 나는 행복할까? 아, 명단에 올라온 저런 선생님들과 함께 배우고 공부할 수 있다면, 나도 지금보다 조금은 더 나은 교사가 될 수 있겠구나’ 싶었다. 거기에서도 교육 운동의 취지를 알리는 이계삼 선생님의 글을 얼핏 보았던 것 같다.


   며칠을 고민 끝에 결국 답장을 보내지 않았다. 내가 답장을 보내지 않아야 할 이유를 만들자면 셀 수 없이 많겠지만, 한마디로 요약하면, ‘결국은 이대로 현실에 안주하고 싶다’로 귀결될 수 있겠다.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된다는 것이, 낯선 사람들과 새로운 관계를 맺는다는 것이, 그래서 지금의 내가 ‘감당할 수 없는 나’로 바뀔 수도 있다는 것이 가장 두려웠다. 지금의 이 안온한 일상이 깨어지는 것도 불안했다. 다시 불편한 마음으로, 새로 시작하는 교사로 살아갈 수도 있다는 가능성은 내 마음 한편으로는 강렬한 유혹이 되어 나를 기웃거리게 하고, 또 한편으로는 강력한 장벽이 되어 나를 되돌아서게 하기도 했다. 어쩌면 나는 다시 한 번 운이 나쁜 결정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한동안 잊고 살았다. 그러다 알라딘에서 ‘교육 불가능 시대의 교육’이라는 제목의 책을 보게 됐다. 책 한 권 읽는 것쯤으로 안온한 일상이 흔들릴 여지가 적다고 판단했기 때문일까? 이번에는 주저 없이 책을 사서 읽었다. 첫 번째 글부터 읽는다. 제목이 ‘오늘날 학교 현장의 ‘교육 불가능에 대한 사유’다. 이계삼 선생님의 글이다. 이 선생님의 책은 작년에도 읽어 본 적이 있다. 녹색평론사에서 나왔던 ‘영혼 없는 사회의 교육’을 읽으면서 이런 생각으로 교사로 살아간다면, 좀 불행하게 사는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작년에 주변 선생님들 중에 이계삼 선생님과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는 분이 계셔서 이런 얘기를 했더니, 이계삼 선생님도 교실에서 아이들을 만나는 것은 좋아한다고 하셨단다.)


   교육 불가능의 시대,에서 세 분의 글을 특히, 집중해서 읽었다. 이계삼(오늘날 학교 현장의 ‘교육 불가능에 대한 사유), 이미연(아이들은 실패할 권리가 있다), 안준철(이계삼 선생님께) 선생님의 글이다. 세 편의 글을 읽는 동안 가르친다는 것의 본질적 의미를 회의하는 선생님의 글에 내 가슴을 먹먹해지거나, 그래도 순정했던 지난날의 내 모습을 되돌아보거나나, 무려 30년 동안 아이들과 사랑에 빠져 있는 노(老?) 선생님의 편지글에 따뜻함을 느끼면서, 앞으로 나도 어떤 교육 철학을 만들어 갈 것인가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됐다. 아마도 교육 불가능성을 말씀하시는 한 선생님과 교육 희망론을 실천하는 다른 두 선생님의 생각, 그 어디쯤에서 여전히 서성대고 있을 것이겠지.


3. 오늘날 학교 현장의 ‘교육 불가능에 대한 사유,를 읽고


   글은 잘 읽히는데 책갈피를 넘기는 것은 쉽지 않았다. 읽은 곳을 곱씹어 다시 읽기 때문이다. 쉽게 다음 페이지로 넘어갈 수가 없는 글이다. 오늘날 학교 교육의 불가능성을 이렇게 전면적으로 단언하는 주장을 내가 읽은 적이 있었나 싶다. 아마 내 기억에는 처음인 것 같다. 물론 여기저기 기웃거리던 모임이나 강연에서 귀동냥으로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긴 하다. 그렇지만, 그것은 교사들의 습관 같은 상투적인 푸념 같은 것이기도 했고, 속내를 터놓은 친구끼리 술김에 할 수 있는 말이지-그래 놓고는 또  내일 수업해야 한다면서 일찍 들어가려고 한다-, 이렇게 단도직입으로 정색하며 교육의 절망감에 대해, 또 교육의 불가능성을 주장하는 글을 읽으며 마음이 답답하지 않을 독자는 별로 없을 것 같다.


   이제 그저 껍데기뿐인 학교만이 남아 있을 것이다. 어쨌든 국가는 학교에 교육비를 내려 보낼 것이고, 교사들은 월급을 받아야 하고, 부모는 아이들 맡겨야 하며, 아이들은 그래도 졸업장은 받아 두어야 하니깐. (27쪽)


   이 부분은 날마다 자신이 체험하고 있는 학교의 모습을 정리하면서, 학교가 왜 이렇게 살풍경한 모습으로 바뀌었는지를 짚어본 후에 저자가 오늘날 학교의 미래에 대해 내린 결론이다. 저자가 보기에 이런 현실을 두고도 이 현실을 직시하지 못한 어설픈 희망가는 오히려 이런 절망적 현실이 유지되는데 도움만 줄 뿐이다.


   적당히 썩은 상태면 그 제도는 적당히 썩은 상태로 완전히 썩기 전까지 유지된다. 썩은 상태를 개선하려는 대부분의 시도는 썩은 상황을 지연시킬 수는 있으나 상황을 개선하기에는 난망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오히려 이런 시도 때문에 썩은 상태는 썩은 채로 더 오래 계속될 가능성이 더 크다. 그렇기에 현실을 외면하는 희망가의 당위론은 썩은 구조의 유지에 봉사하는 것일 뿐이다. 


   그러니, 오히려 우리는 절망에 대해서 이야기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야 더디지만, 새로운 패러다임의 ‘학교’라는 존재가 만들어질 수 있다. 저자가 만들고 싶은 새로운 학교는 인문학과 농업이 중심이 되는 곳이다. 저자는 이런 자신의 생각과 비슷한 학교로 홍성의 풀무학교나 덴마크의 ‘국민고등학교’를 염두에 두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덴마크의 사회 경제적 구조 속에 자리 잡고 있는 국민고등학교의 모델을 우리나라의 현실에 적용할 수 있도록 공부해 나가고 싶다고 했다. 결국 그는 자신의 말처럼, 교육의 불가능에 대해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교육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을 읽고 난 다음날, 우울한 상태로 고등학교 2학년 교실에 들어갔더니 학생들이 모두 엎드린 채로 나를 맞이한다.(?) 하긴 이번만 특별히 그런 것이 아니다. 해가 갈수록 수업을 시작할 때마다 잠든 아이들을 깨우는 것이 수업의 첫 번째 일이다. 이 책에서 말했던, 오늘날 고등학교는 ‘여관’이라는 말을 온몸으로 실감한다. 기말시험이 끝났기 때문일까, 라는 생각이 잠깐 들었으나, 생각해 보니 시험을 치기 전에도 아이들은 여전히 이랬다. 단지, 늦게까지 공부를 하고 왔을 것이라는 짐작만 바뀌었을 뿐! 책을 읽고 나니 앞으로 더욱 더 내가 교실에서 슬퍼할 일이 많아질 것 같다는 우울한 생각이 든다.


4. 벌써 10년도 훨씬 더 지난 옛날이야기


   이미연 선생님의 글을 읽고, 오랜만에 옛날 생각이 났다. 내 첫사랑들! 야생의 본능적인 에너지로 자신을 순치시키려던 세상에 맞서 싸운 친구들. 지금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고 있을까? 요컨대, 이건 내 첫사랑에 대한 안타까운 사연이라고 할 수 있겠다.


   1999년의 3월, 나는 어느 공업계 고교로 발령이 났다. 과별 정원을 채우기 위해 1월말까지 입학생을 추가로 모집했던-한 반에 복학생이 무려 12명이나 되었던- 그 반이 나의 첫 ‘우리 반’이었다.(기존에 그 학교에 있던 교사들은 감히 엄두가 나지 않는 상황이었고, 신규 교사 중에 군필한 남자교사가 온다는 정보를 듣고 학교는 덜컥 나에게 담임을 맡겼다.) 나는 새내기교사였다. 의욕은 넘쳤으나 멈출 줄을 몰랐고, 사랑도 넘쳤으나 사랑하는 방법을 몰랐다. 결국 나는 아무 것도 할 줄 아는 게 없는 교사였던 셈이다. (지금도 별로 나아졌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어쩌면 아직 교사가 아니었던 교사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래도 나는 그 녀석들을 따라 2학년, 3학년 담임을 맡았다.(학교에서는 내가 예상 외로 2학년, 3학년 담임을 연거푸 신청하자 웬 횡재냐! 싶었을 것 같다.) 내가 녀석들을 사랑하는 만큼, 우리는 그 3년 동안 치열하게 싸웠다(고 믿는다). 나는 아이들을 길들이려고 했고, 아이들을 내가 만든 울타리 안에 가두려고 했다. 그게 그 때 당시 내가 그들을 사랑하는 방식이었다. 녀석들은 한 번도 길들여지지 않은 ‘야성(野性)’ 그대로였다. 그것으로 세상과 맞서 온전히 자신을 지켜온 녀석들이라 순치시키려는 나에게 저항했고, 갇힌 울타리를 뛰어넘으려고 했다. 나는 그들을 사랑했다. 그래서 나는 더 철저한 교사가 되어갔고, 그들은 나를 애증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래서 그들을 어정쩡한 학생이 되어갔다.[글이 좀 이상한가?]


   내가 그들을 달리 보게 된 것 그들이 3학년이 되어서였다. 해마다 학기 초가 되면 여느 때처럼 반복되는 운동장 아침 전체 조례를 하다말고 나는 짜증이 확 치밀어 올랐다. 조례 준비를 위해 어정쩡하게 기다리는 아이들을 줄 세우기 위해 마이크를 통해 흘러나오는 그 소리는 ‘교사’의 말이 아니었다. 마치 사람의 말을 못 알아듣는 짐승을 다루는 듯 한 말투와 습관적으로 내뱉는 ‘이 XX', '저 XX', 'XX' 등이 아이들을 향해 던지는 말이 아니라, 그들을 가르치는 나에게 던지는 말 같았다. 나는 그 길로 교무실로 올라와 버렸다.(이 때부터 전체 조례에는 잘 안 나간다.)


   그러고 나서 생각해 보니 이상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아니, 내가 고등학교를 다니던 때와 달라진 게 아무 것도 없다는 게 정말 이상한 일이었다. 다른 것에도 할 말이 많지만, 일단 전체 조례에 대해서만 해도 그랬다. 정기적으로 전체 조례가 있는 것에도 문제의식이 없었다. 부임 첫해에는 질서의식이라곤 없고, 단체행동에 대한 개념도 없는 우리 반 애들이 정말 답답하고 한심해 보였다. 부임 둘째 해에는 대충 줄만 잘 서고, 죽은 듯이 입만 다물고 있으면 15분이면 끝날 전체 조례를 45분으로 만드는 녀석들도 한심하지만 학교도 저런 애들 데리고 뭘 어떻게 하자는 것인가 싶어서 의아하고 이상했다.


   그런데 그 어느 조례 시간에 나는 깨달아 버렸다. 수 십 년이 지나도 학교가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을!(이 말은 앞으로 수십 년이 지나도 학교는 안 변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학교가 자기 학교의 학생들을 먼저 사람으로, 인격체로 대접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아이들은 이미 본능적으로 그것을 간파하고 저항하고 있다는 사실을! 학생들은 말하지 않아도 서로 다 아는 사실을 교사들은 저들의 행동을 직접 보고서도 모른다는 사실을!


   아무튼 우리가 같이 3학년이 되자 서로의 관계는 조금 더 발전하기 시작했다. 그 사이에 우여곡절이야 많았지만, 결국 함께 보낸 3년의 시간이 쌓인 덕에 서로를 조금은 더 알게 됐고, 그래서 나는 그들의 언어에서 악의(惡意)를 지울 줄도 알았고, 그들은 나의 말에서 진심을 엿보기도 했다(고 나는 믿는다.).


   3학년 1학기가 끝났다. 드디어 녀석들이 그토록 기다리던 현장실습 기간이었다. 이때부터는 취직하면 학교는 졸업식 때까지 안 나와도 된다. 녀석들은 지긋지긋하던 학교에서 해방될 수 있고, 저희들은 꽤 크게 느낄 법한 돈도 벌수 있는 지라 실습을 많이 기다린다. 처음엔 별 마음이 없더라도 교실에 하나둘 자리가 비기 시작하면 덩달아 들뜨기 시작해서 대부분 현장실습(취업)을 나가버린다.


   3학년 2학기는 취업을 나가지 않는 소수의 학생만 데리고 수업을 하고, 실습 나간 학생들이 현장에서 제대로 일하고 있는지(격려와 부탁, 그리고 허위 취업이 아닌지 감시(?))를 알아보기 위해 현장방문만 1-2번만 하면 된다. 우리 반은 상대적으로 실습생이 적어서 다닐 곳이 많지는 않았기에 아이들에게 2-3번 다녀오기로 마음먹었다.


   대체로 실습생을 받아주는 기업은 영세 중소기업이 많았다. 주로 대도시 공단지역에서 밀려나 임대료가 더 싼 반촌반도 지역의 중소 공단에 자리를 잡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주소를 보고 찾아가면, 녀석들이 이런 곳에서 일을 하는구나, 하는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이 시골 논밭 주변의 덩그런 공장에서 청춘들이 땀 흘리기엔 동네가 너무 심심하고 따분하게 느껴진다. 나도 이런 분위기가 무척 낯선데, 녀석들이야 오죽할까 싶었다.


   내가 공장 마당 한 쪽에 차를 대고 허름한 사무실을 찾아가면 대체로 낯선 사람들을 몹시 경계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학교에서 왔다고, 실습생들 현장 점검 나왔다고 하면 그제야 얼굴이 조금 풀리면서 보통은 일하러 나온 학생들을 칭찬한다. 그리고, 조금 있다가 녀석(들)이 나온다. 내 눈에는 녀석이 입고 있는 작업복이 영 낯설었다. 녀석이 수줍게, 그러나, 공손하게 인사를 한다. 이후 잠깐 우리끼리만 있을 수 있는 시간공이 허락된다. 녀석은 학교에서 볼 때와는 완전히 다르다. 더 어른스러워야 하는데, 담임에게 시시콜콜 일러바치는 고자질쟁이가 돼 버렸다. 한편으로는 놀라면서 한편으로는 반신반의하면서 녀석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녀석들은 다른 친구들이 어떻게 지내는지가 가장 궁금한 모양이다. 안부를 묻는 친구들의 소식은 전해줬다. 한참 이야기를 나눈 끝에 녀석들이 차를 타러 나오는 나를 배웅한다. 나는 그들과는 전혀 다른 부류의 사람인 것만 같아서 좀 죄스럽다. 


   차를 타고 돌아오면서 ‘분노’에 치를 떨었다. 아이들의 입을 통해 들었던 이야기를 듣고 내 머릿속에 떠오른 첫 번째 단어는 “착취”였다. 차마 입 밖으로 내뱉진 못했지만, 머릿속은 ‘착취’라는 단어만 둥둥 떠다녔다. 다시 한 번, 녀석들의 때에 절은 헐렁한 작업복과 낡은 작업화와 땀투성이 얼굴이 떠올라서 먹먹했다. 실습생이라고 부르고, ‘현대판 노예’라고 생각하는 것이겠지? 알고 보니 ‘신참’이라는 이유로 온갖 허드렛일은 다 시키면서도, 실습생이니까, 어리니까, 일을 잘 못하니까, 몇 달 안 있을 거니까, 최저임금도 지급하지 않는 기업이 태반이었다. 이런 환경 속에서 몇 달을 버티지 못하고 나가면 다른 학교의 실습생을 받고, 시간이 지나면 또 다음 해 실습생을 받아서 메꾸면 된다는 생각했을 것이다. 기업 입장에서는 최저임금을 안 주고도 잡역부를 합법적으로 쓸 수 있는 좋은 제도가 바로 ‘현장실습’ 제도였다.


   그 때 나는 어떤 역할을 하고 있었던 것일까? 나는 처음으로 내 아이들과 온전히 한 편이 되었다고 믿었는데, 학교로 돌아와서는 별로 달라진 것이 없었다. 똑같은 일상을 살아갔다. 물론 내가 일했던 학교는 더욱 더 달라진 것이 없었다. 여전히 실습생을 요청하는 회사의 팩스가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학생들이 일하러 나간 현장에서 학교로 돌아올 경우 학교는 이유를 불문하고 ‘징계’를 했다. 이런 경우를 처벌하지 않으면 현장에서 무단이탈 사례가 속출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면 다음해 그 기업으로 후배들이 일하러 가기 힘들다는 것이 중요한 이유였다. 그러나, 학생들이 못 버티고 뛰쳐나올 공장이라면 사실 관계를 먼저 파악해 보고, 다음 해에는 안 보내는 것이 더 옳은 것이 아닐까? 한 번쯤은 심각하게 고민해 봐야할 문제였는데, 학교란 존재는 도대체 머리가 없는 괴물인지 지난해에 썼던 공문을 꺼내 와서 날짜만 바꾸고 다음 해에도 바보 같은 짓을 그대로 하고 있다. 작년에도 그랬으니까 올해도……이럴 것이다. (학교 현장에서 법보다 무서운 게 관례라는 건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그랬거나 말았거나 시간은 또 어김없이 흘렀고, 아이들은 졸업을 했다. 눈물이 나올 수도 있겠다, 싶었으나 녀석들이 졸업하는 날, 난 의외로 담담했다. 준비했던 영상편지를 보여주기 위해 텔레비전을 켰을 땐, 살짝 부끄럽기도 했다. 아이들이 떠난 오후, 교실에 앉아 스스로에게 물었다. 우리는 사랑했던 것일까? 아니, 나는 녀석들을 사랑했던 것일까? 그 때는 희미하게나마 그렇다, 라고 믿었던 것 같다. 그렇게 조금씩 내 사랑에 대한 생각도 잊었던  어느 날, 나는 문득 책상에 앉아 이런 글을 쓰기도 했다.


   방학입니다.

   날도 무척 찌는데, 오늘은 학교에 일찍 출근했습니다. 8시 30분쯤에 학교에 와서 컴퓨터를 켜고, 교무실 곳곳을 돌아다니며 창문을 열었습니다. 오늘은 에어컨 없이 하루를 지내 볼 생각입니다.

 

   좀 지나니까 아이들이 까불락거리며 올라왔습니다. 모두 다 까맣게 탄 얼굴인 거 있죠! 저도 그렇고, 아이들도 그렇고 서로 생글거리면서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를 물어봤습니다. 역시 저나 아이들 모두 학교-물리적인 공간이 아니라-를 벗어나고 보니 한결 여유도 있고, 얼굴에 생기가 도는 것 같습니다. 학교가 저나 우리 아이들에게 꿈을 주고 있는지 정말 의심스럽다는 생각이 새삼 듭니다.

 

   모처럼 만난 얼굴들과 반가운 인사를 하고, 청소를 시작합니다. 사람들이 주로 사용하는 공간만 나눠서 청소를 하는데, 여학생이 한 명이라 여직원화장실 청소가 쉽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도 조금 툴툴거리더니만 곧잘 하고 내려갑니다.

 

   아이들이 청소할 때 저도 자동판매기를 청소하기 시작했습니다. 학기 중에는 매일 운영을 해야 하니까 그냥 재료를 넣고, 물을 받아서 채우고, 겉이나 컵이 나오는 입구를 중점적으로 청소하는데, 방학이기 때문에 전원을 끄고 자판기 속을 치우기 시작했습니다.

 

   자판기엔 커피와 프림, 그리고 설탕이 각각의 통에서 한 곳으로 모이는 깔때기 같은 곳이 있고, 거기에서 섞여 다시 물과 만나게 되는 통이 있습니다. 그리고, 열기와 불순물을 빨아들이는 흡입관도 있더군요.

 

   각각을 떼어 내어 교무실 세면대에 담가서 엉겨 붙어서 굳어있는 커피 가루를 씻어냈습니다. 그러나 워낙 딱딱하게 굳어져 있던 것이라 잘 풀리지 않더군요. 처음에는 딱딱한 물건의 모서리에 탁탁 쳐서 그 충격으로 딱지들이 떨어지도록 했습니다. 어떤 것은 쉽게 떨어지지만 그래도 효과는 적었습니다. 그래서 건조기에 굴러다니는 젓가락을 이용해서 커피가루가 굳어진 딱지를 떼기도 했는데 쉽지가 않았습니다.

 

   ‘그냥 물에 담가두었다가 나중에 보면 자연스럽게 녹겠구나’는 생각이 든 건 한참 후였습니다. 그 물이 따뜻하면 더 잘 딱지를 떼 낼 수 있겠다는 생각도 함께 들었습니다. 딱지가 떼 지는 게 아니라 어쩌면 흔적도 없이 자연스럽게 녹아버릴 수 있겠죠. 정수기의 물을 받아 세면대에 부속품을 놓고 돌아서는 순간, 다시 한 번 깨달았습니다.

 

   우리 아이들의 상처도 따뜻한 물과 시간이 필요한 것이구나! 하는 평범한 사실을 말입니다. 제가, 오랜 세월동안 상처받은 우리 아이들의 상처 딱지를 강제로 떼어 깨끗하게 만들려고 모서리를 치고 젓가락을 휘둘렀던 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판기 부품들이 충분히 담길 수 있는 물처럼 저나 어른들이 자연스럽게 아이들 주변의 삶과 생활에 관심을 가진다면, 충분히 그 아이들이 바람직하게 행동할 좋은 환경을 만들어 준다면 아이들의 상처도 스스로 녹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물에 자연스럽게 풀려버리는 커피가루처럼, 넉넉하고 지속적인 그런 관심과 애정이 아이들의 응어리진 상처들을 흔적을 남기지 않고 고칠 수 있는 방법이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물이 차갑지 않고 따뜻하면 더욱 좋은 것처럼, 우리가 쏟는 관심이나 애정이 따뜻하면서도 아이들에게 적당한 눈높이라면 더욱 좋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평범하지만-누구나 다 머릿속으로 알고 있지만- 결코 쉽지 않은-실천하기 정말 어려운- 사실을 오늘 또 한 번 깨우친 날입니다. 이렇게 날마다 깨우치고 마음을 다잡아 가면 언젠가는 나아지겠지요.

 

   정도가 없는 여행길에 오른 느낌입니다. 날마다 깨우치는 보람으로 아이들과 함께 이 길을 가고 싶습니다.                             

 

2002년 8월 첫날에 / 느티나무가

 

   생뚱맞은 말이겠지만, 나와 아주 질기고도 찐한 ‘사랑’을 나누었던 그 녀석들이 졸업하고 나서야 문득 저런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이 글을 썼던 2002년 8월은 녀석들이 졸업하고 6개월이 지났을 때다. 글을 쓸 당시에는 아직 한참 어려서 잘 몰랐지만, 가끔 읽게 되는 지금은 자꾸 그 때 아이들이 생각나서 미안해진다. 그 때 젊은 선생이었던 나는 아이들을 이해할 수 있었던가? 이건 분명하게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럼, 지금의 내가 다시 그 아이들을 만난다면 이해할 수 있을까? 이것도 정직하게 말한다면, 아닐 수도 있다, 고 말해야 할 것 같다. 그러니 나는 아직 갈 길이 먼데, 항상 일상에만 안주하려는, 게으름뱅이다.


5. 길은 두 선생님의 사이에 존재한다.


   어떤 존재를 30년 동안 사랑할 수 있을까? 그것도 어쩌다 가끔 보는 존재들이 아니라 하루에 잠든 시간을 뺀 대부분의 시간을 함께 보내는 사람을 늘 같은 마음으로 사랑할 수 있을까? 내가 사랑한 만큼 오롯이 그 사랑을 나에게 되돌려 주는 존재들도 아니고 자꾸 내 품을 벗어나 딴 곳으로 한눈을 파고드는 사람을 그렇게 오래도록 사랑할 수 있을까?


   예전에-벌써 7,8년 전이로구나- 안준철 선생님을 직접 뵙기 전에는 선생님의 책을 읽을 때 ‘아무리 교사는 이렇게 생각해도 그 반 아이들의 생각은 좀 다를 거야’ 라는 생각을 했었다. 외람되지만 아이들에게 잔잔히 스며들어 있는 선생님의 일상을 보면서 좀 ‘가식적’인 거 아냐? 이런 생각도 들었다. 그만큼 선생님이 책으로 펼쳐 놓으신 “교사와 학생의 관계”는 모든 교사들이 꿈꾸는 유토피아 같았으니까. 너무나 이상적이었기에 척박한 우리 교육의 현실에서는 결코 생겨날 수 없는 세계 말이다.


   그 때 우리 동네 전교조지회에서 강연을 부탁드렸더니 순천에서 달려 오셨더랬다. 늦은 시간 뒤풀이 자리까지 여전하시던 소박한 웃음, 따뜻하게 건네는 이야기…… 겸손하게, 어떤 질문에도 조곤조곤히 말씀하시던 모습을 보면서, 아마 학교의 아이들에게도 이 모습 그대로 대하시는구나,하는 생각을 했다. 비로소 혼자 했던 오해(?)가 풀렸다. 만나는 아이들을 제가 가진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피어나게 하는 미다스의 손을 가진 선생님이 진정으로 부러웠다. 지금 교육 불가능을 말하는 학교 교육에서 선생님은 소중한 ‘희망의 증거’라고 말하고 싶다.


   정년이 5년 밖에 안 남은 늙은(?) 남교사가 여전히 열일곱 여덟, 여학생들과 연애(?)을 한다. 그것도 그냥 해 보는 장난 같은 게 아니라, 자기의 전 생애를 건, 순정을 다 바치는 연애다. 연애를 할 때 사람이 변한다. 부족한 자기 자신을 조금이라고 더 나은 사람으로 바꾸어보려고 노력한다. 이것은 둘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물리적 환경을 뛰어넘을 수 있는 에너지이다. 어쩌면, 교사도 학생도 그럴지 모른다. 학교가, 교사가, 공부가, 취업이, 세상이…… 어떠니 저떠니 떠들어도 제 갈 길을 묵묵히 가는 선생과 먹머루빛 눈망울의 아이들이 교실에서 만나고 있는 한 쉽게 절망을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섣불리 희망을 말할 수도 없다.


   한 교사는 교육 불가능성을 말하고, 다른 교사는 교실 희망론을 몸으로 ‘증거’한다. 그러면서 두 사람은 서로를 존중하고 아낀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사실은, 두 사람이 가리키는 방향이 같기 때문이다. 다만, 같은 방향에 대해 말하는 방식만 다를 뿐이다. 그러니, 그것이 절망이라고 말하든 희망이라고 말하든, 나는 여러 사람들과 함께 지금과는 다른 학교를 상상해야 하고, 그런 학교를 현실에서 짓기 위해 모색하고 실천하고 연대하는 노력도 필요할 뿐 아니라, 오늘 내가 만나는 아이들의 더 나은 삶을 위해 교사인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되물어야 한다.


   이게 내가 걸어가고 싶은 길이다. 길은 여기 있다. 게으름을 떨치고, 한 걸음 앞으로 내딛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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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아이들 2011-12-26 1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안준철입니다. 그간 평안하셨는지요? 선생님의 글을 누군가 교육공동체 벗 카페에 옮겨놓아 덕분에 반가운 선생님 글 접하게 됬네요. 고맙습니다. 늘 따듯한 눈길로 바라봐주셔서요. 선생님 계신곳이 어디신지요? 이번에 낸 신간 <넌 아름다워, 누구 뭐라말하든>을 샘께 보내드리고 싶네요. 제 연락처 알려드릴게요. 010-4641-8772 좋은 글 감사했습니다. 언제 한 번 만나게요.

2011-12-26 22: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2-28 17: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느티나무 2011-12-31 17:09   좋아요 0 | URL
네 최은정 기자님, 부끄럽지만, 어줍잖은 글 쓰시겠다면 말리지는 않겠습니다. 추가적인 내용은 메일로 보내드렸습니다. 고맙습니다.

2011-12-31 12: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2-31 22:59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