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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관령의 눈과 선자령의 바람, 오대천의 얼음 낚시를 만나러 가는 길  

   “길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대라고 부를 사람에게/ 그 길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어느 누구도 혼자서는 갈 수 없는/ 끝없는 길을”(안도현 ‘길’)

   2007년 마지막 날. 길은 얼어 있었다. 오대산에서 상원사로 가는 흙길 8km. 300여 명의 그들은 길 위에 엎드리고 또 엎드렸다. 삼보일배. 어쭙잖게 흉내를 내다 이내 포기했다. 언 땅의 잔인한 기운에 맞서기에 나는 유약했다. 장갑을 뚫고 살을 뚫고 뼛속으로 파고드는 한기를 견뎌야 할 만한 그 무엇이 내게는 없었다.

   엎드리고 또 엎드려 가는 그 길의 끝에 무엇이 있을까? “잘못을 참회하는 것이죠. 본래 참회라는 것이 잘못을 반성하는 것조차 반복하지 않기 위해 하는 것인데 내일은 또 다른 죄를 짓겠죠.” 아직 밤색 행자 옷을 벗지 못한 초보 스님의 목소리에는 작은 흥분이 감돈다. 이마에 달라붙은 흙에 엉킨 빨간 피에 소름이 돋고 눈물이 맺힌다. 도대체 무엇이 저토록 절실한 것인가.

   그대에게 보여주고 싶은 길은 그 절실함이 담겨 있는 길이다. 육신의 고통을 참아내게 하는 그 길에서 우리는 무엇을 만날 것인가. 겨울이다. 추운 것이 당연하다. 움츠려야 한다. 어딘가 따뜻한 곳으로 숨어야 하는 것이 겨울의 익숙함이다. 그 익숙함을 벗어던지면 새로움을 만날 수 있다. 길에서 돌아와 또 길을 찾는 이들은 그 새로움의 오르가슴을 안다. 그 오르가슴을 찾으러 가자. 겨울의 익숙함을 벗어던질 수 있는 가장 추운 곳으로. 

즐기기로 작정한 자, 대관령 오솔길로      

   길은 네트워크다. 이곳과 저곳을 잇는 역할을 다하면 잊혀진다. 왕래가 빈번해지면 길은 생김새부터 바뀌고 역할도 달라진다. 영동과 영서를 잇는 대관령이 그렇다. 오솔길로 남아 있는 대관령 옛길과 이제는 국도로 전락한 아흔아홉 굽이 옛 고속도로, 그리고 새로 뚫린 4차선 고속도로가 나란히 고개를 넘는다. 오솔길은 즐기기로 작정한 산사람들이나 찾는다. 옛 고속도로는 고속도로 통행료라도 아끼려는 화물자동차나 기왕이면 즐기며 가자는 관광버스나 넘는다. 혹은 둘만이 있을 공간을 찾는 연인들의 길이 되었다. 지난해 겨울 보름달이 뜨는 날 옛 영동고속도로에서 만난 아름다움은 처연함이라는 말 말고는 달리 설명할 수가 없다. 

   달빛의 애무에 넋을 놓아버린 백두대간 그림자는 강릉의 네온사인에 희롱당하고 있었다. 그 뒤로 한 걸음 물러선 바다는 짙은 빛을 발하고 있었다. 그 빛나는 블루를 밝히는 어선들의 집어등 불빛은 하늘의 별을 모두 모은 듯 밝았다. 처음 알았다. 아름다움이 강하면 슬프다는 것을. 고개를 오르는 시리던 눈은 이내 차를 세우게 했다.

   카오디오가 들려주는 러시아 붉은 군대 합창단의 <볼가강의 뱃노래>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희망은 절망 속에서 길어올릴 수 있는 샘물이다. 귀족들의 유람선을 끌기 위해 힘을 모으는 볼가강 어부들의 후렴은 느리게 가라앉았다가 천천히 소리를 키우며 희망의 손을 잡는다. 절망은 끝이 아니다. 희망이 끝이다. 그들의 노래는 그렇게 이야기한다.

   밥벌이가 비루하다는 한 작가의 말은 언제나 유효한 것은 아니다. 고속도로의 운명을 다함으로써 얼어붙은, 그래서 조용함을 얻은 대관령 옛 고속도로 아스팔트 위에서 가물거리는 강릉의 불빛을 바라보라. 그 불빛 아래 저마다 이유를 갖고 이 밤을 노동으로 보내는 이들을 생각하자. 비루한 삶은 작가의 글 속에서나, 군가에서처럼 “보람찬 하루를 끝마치고서” 술독에 빠진 이들에게나 해당되는 말이다. 붉은 군대 합창단의 <애니 로리>가 흐른다. 진실한 사랑은 과연 존재하는가. 부처는 모든 변화가 진실이라고 했다는데…. 문득 그대가 그립다. 

‘명주군왕릉’ 위로 울고 지나가는 바람

   선자령으로 간다. 바람의 땅이다. 일찌감치 대관령의 그늘에 가려 잊혀진 고개 선자령은 대관령에서 백두대간을 따라 북쪽으로 2시간가량 걸어야 한다. 이제 겨우 아이 키만큼 자란 나무들이 바람막이 울타리에 기대어 키를 키우는 곳을 지나 이러저러한 국가 시설물이 모여 있는 능선을 지나면 바람은 제 영역을 침범하는 적을 만난 양 분노를 터뜨린다. 서쪽으로는 완만하지만 동쪽 바다로는 수직에 가까운 벼랑이다. 바람은 태평양 어디쯤에서 시작해 벼랑을 오르며 극악해진다. 절벽에 매달린 키 작은 관목들은 바람을 막아내지 못한다. 다만 견딜 뿐이다. 견딤으로 나무들의 생명은 이어진다.

   바람이 극악한 이유를 전설은 말한다. 벼랑 아래 바다로 가는 길목 골짜기에 한 사내가 누워 있다. 신라의 왕을 꿈꾸던 사내는 결국 꿈을 이루지 못한 채 누워 있다. 언제부터인지 알 길이 없지만 ‘명주군왕릉’이란 팻말이 세워졌다. ‘능’이라는 칭호는 왕의 무덤에만 붙인다. 역사가 기록하지 않는 왕에게 능이란 칭호는 호사다. 살아서는 왕이 꿈이었고 죽어서 왕이 되었다. 명주군왕이란 팻말을 세운 이는 왕을 그리워했을까, 두려워했을까? 그 사내가 왕을 꿈꾸던 이유를 알 길이 없다. 다만 전설은 그가 불어난 물 때문에 북천을 넘어 경주로 가지 못해 왕이 되지 못했다고 전한다. 선자령의 바람은 죽은 왕을 위해 능을 지키는 군사들의 한이라 전한다. 그 사내가 왕이 되었다면 달라졌을 또 하나의 세상, 그 세상의 천년 뒤를 나는 산다. 그리고 여전히 다른 세상을 꿈꾼다. 이념을 지키는 것이 가난을 상징하고 가난이 부끄러움이 되는 세상이다. 그래서 작가는 삶이 비루하다고 썼는지 모를 일이다.

   전설대로 바람이 그의 병사들이라면 그들은 전사가 아니라 예술가들이지 않았을까? 눈이 내린 겨울 선자령은 그 어떤 조각가도 이룰 수 없는 아름다운 눈 조각들이 넘쳐난다. 1m 넘게 쌓인 눈을 쓸어 길을 내고 제아무리 못생긴 나뭇가지일지라도 아름다운 조각으로 장식한다. 얼어붙은 대지를 붙잡은 메마른 풀의 뿌리는 얼지 않았다. 살아 있음으로 감사해야 하는 것은 고통조차 살아 있는 이유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죽어서 왕이 된 사내와 죽어서도 바람이 되어 벼랑에 제 몸을 부딪혀야 하는 병사들의 전설은 슬프다. 잊혀지기 때문이다.

   이 겨을 선자령에 가야 하는 이유는 이국적인 목장의 풍경과 아름다운 설경 때문만은 아니다. 홀로 설 수 없는 이유를 알 수 있고 바람의 울음을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휘몰아치는 바람 앞에 휘청거려야 하는 낯섦이 누군가의 어깨가, 가슴이 필요하다는 것을 일러주기 때문이다. 선자령은 많이 변했다. 소나무 숲에서 목장으로, 다시 풍력발전지대로…. 그래서 선자령에 이르는 길은 이국적이다. 거대한 풍력발전기 앞에 서보라. 마치 단두대의 칼날처럼 내려꽂히는 풍력발전기의 날개에 잘리는 바람이 운다. 그러니 너무 오래 머물지는 말기를…. 문득문득 돈키호테가 되고 싶어진다.

송어와 씨름하는 원초적인 즐거움도

   완만한 서쪽과 가파른 동쪽 사이에 난 가르마 같은 길 선자령에서 모든 것은 교차한다. 죽음과 삶의 경계, 비겁과 용기의 경계, 기억과 망각의 경계, 역사와 신화의 경계, 혼자 있음과 함께 있음의 경계…. 선자령은 모든 것이 경계가 되는 그런 곳이다. 그래서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알게 하는 곳이다.

   축제는 즐거움을 나누는 자리다. 과연 그런가…. 모두가 움츠러들고 따뜻한 온돌을 찾는 겨울. 대한민국에서 가장 춥다는 대관령 주변은 겨울에 기대어 산다. 그들에겐 겨울이 먹을거리이기 때문이다. 스키장과 황태 덕장, 그리고 겨울 설경이 밑천인 그곳에서 먹고살기 위해 준비하는 축제인 대관령 눈꽃축제가 올해로 16년째다. 오대산에 기대어 사는 진부도 한강의 시원인 오대천에서 평창 송어축제를 처음 연다. 도시의 놀이공원이 주는 세련됨과 박제화된 즐거움이 아닌, 때로는 불편할지도 모를 원초적인 즐거움이 있는 곳이다. 그곳 사람들에게 축제는 삶이 걸어온 전쟁과 싸우는 수단이다. 그들이 사는 땅은 추워야 살 수 있는 곳이다. ‘대한민국 진짜 겨울’ 오대천에서 송어랑 씨름 한판 벌여보고 ‘눈의 고향 대관령’에서 눈사람에게 수작도 붙여보자. 내 떠남이 그들에게는 응원이고 나에게는 배움이다. 

대관령 일대에서 알차게 놀기

2박3일도 당일치기도 괜찮은 오대산-대관령-동해 코스

   오대산과 대관령, 동해를 잇는 길은 겨울여행의 고전이다. 대관령 일대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춥기 때문에 그곳 아니면 느끼고 즐길 수 없는 것들이 즐비하다. 스키를 겸한 2박3일, 혹은 겨울의 풍경을 만끽하는 1박2일, 혹은 오대산 중심의 당일치기 여행 모두가 적합하다.

   2박3일의 경우 ‘진부 톨게이트 평창송어축제 → 오대산(1박) → 스키장, 눈꽃축제 → 대관령 구길 → 강릉(2박) → 일출 → 양떼목장, 선자령’ 코스를 추천한다. 1박2일 경우 ‘동해 → 대관령 구도로 → 선자령 → 대관령 눈꽃축제, 용평스키장 → 오대산(1박) → 오대산 전나무 숲길 → 평창송어축제’ 순으로 여행 스케줄을 잡으면 즐거운 겨울 추억을 만들 수 있다. 겨울바다 여행을 겸한다면 ‘강릉행 야간열차 → 일출 → 강릉 해수사우나 → 횡계(강릉시외버스터미널) → 선자령(횡계택시) → 진부(횡계에서 이용) → 송어축제 → 오대산’ 순으로 일정을 잡을 수 있다.

   근대화 과정에서 외지인 유입이 많았던 터라 음식도 전라도 음식 뺨칠 정도로 훌륭하다. 산채요리는 비교적 비싼 편인데 자연산만을 가려 쓰기 때문이라고 한다. 진부면 시내의 부일식당, 오대산국립공원 입구의 식당가 등이 유명하다. 진부는 특히 돼지고기가 훌륭하다. 시내 어느 집에 들어가도 후회 없는 선택이 될 수 있다. 대관령 한우를 기본으로 한 쇠고기 요리는 비싼 만큼 제값을 한다. 진부 톨게이트 바로 옆의 대산식당은 한옥이 주는 자연미와 함께 고급 쇠고기 요리를 즐길 수 있다.

   ‘대한민국 진짜 겨울’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축제행사를 할 정도로 추운 곳인 만큼 옷차림을 단단히 해야 한다. 선자령은 해발 1400m가 넘는 곳이지만 대관령에서부터 오르기 때문에 아이들도 쉽게 오를 수 있다. 다만, 바람막이 옷과 아이젠은 꼭 준비 한다. 1천원짜리 우비도 바람막이 대용품으로 쓸 만하다. 비료 부대를 준비하면 하산길이 즐겁다.

   평창송어축제는 송어잡이 체험과 썰매, 썰매기차, 스노래프팅 등의 놀이도 즐길 수 있다. 대관령눈꽃축제는 체험과 놀이 이외에 눈조각 작품들이 볼거리다. 두 곳 모두 여행길 인근이니 한번 들러볼 만하다. 오대산은 매표소 입구에서부터 걸어야 전나무 숲길을 지날 수 있다. 특히 월정사에서 500m가량 더 올라간 부도밭 인근의 전나무 설경이 아름답다. 산사의 하룻밤을 기대한다면 월정사나 상원사 중대 사자암에서 신세를 질 수 있다. 월정사에서 상원사 가는 길 중간쯤에 오대산장이 있다. 다소 불편하지만 이른 아침 새들의 합창과 깜작 놀랄 만한 겨울 아침 풍경이 색다른 즐거움을 주는 곳이다. 강릉 경포대 인근의 24시 해수사우나를 이용하는 것도 경비를 줄이는 방법이다.

  [2008.12.18 제69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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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이 무르익을 무렵이면 떠오르는 길이 있다. 월정사 전나무숲이다. 일주문에서 절까지 이어진 이 숲길은 절로 가는 길 가운데 가장 아름답다. 전나무의 곧추선 기상은 상념을 통렬히 깨트리는 죽비처럼 장쾌하다. 그러나 이 길이 끝이 아니다. 월정사에서 다시 길이 시작된다. 몇 해 전 계곡을 따라 상원사로 가는 옛길이 다시 열렸다. 오대산에 석가모니의 사리를 모신 후 스님들이 부처의 향기를 쫒아 오르던 길이다. 이 길의 이름이 천년의 길이다.   

 

적멸보궁과 그곳을 감싼 네 봉우리를 합해 ‘오대’ 

   오대산 옛길은 부처를 찾아가는 길이다. 석가모니의 몸에서 나온 진신사리는 양산 통도사, 오대산 상원사, 설악산 봉정암, 사자산 법흥사. 태백산 정암사 등 모두 다섯 곳에 모셔졌다. 이를 ‘오대 적멸보궁’이라 불린다. 이 가운데 오대산의 적멸보궁은 중대라 불리는 곳이다. 이는 오대산의 중심을 뜻한다. 중대와 중대를 감싸고 돈 4개의 봉우리를 합쳐 ‘오대’라 부르고, 이것이 오대산이란 이름이 됐다. 중대를 찾아가던 길은 한 때 잊혀졌다. 모든 길은 편리함의 상징이 된 자동차에게 내줬다. 그러나 숲과 길, 자연에 대한 성찰이 깊어지면서 잊혔던 길이 살아났다. 월정사~상원사를 잇는 옛길도 천년의 길로 부활했다. 
  

   부도밭이 잣나무 숲 가운데 정갈하게 둥지를 틀었다. 월정사에 주석했던 고승대덕들이 한 점 흙으로 돌아가고 남은 표상이다. 오대산에 석가모니의 진신사리가 모셔진 후 이 산은 속세를 떠나려는 불자들의 사상의 거처가 됐다. 


찻길에 묻혔다 다시 복원된 옛길 

   산사의 새벽. 월정사 일주문부터 길을 잡는다. 전나무숲길에는 차분한 아침 공기가 흐른다. 불자 몇이 산책을 왔다가 소리도 없이 돌아간다. 계곡은 아직 신새벽인데, 월정사에만 아침 햇발이 쏟아진다. 명당이란 이런 것을 두고 이르는 것일 게다. 어디 이뿐인가. 오대산의 오대 암자 모두 천하의 명당에 자리한다. 

   월정사를 뒤로 하고 옛길을 찾아간다. 전나무숲에 들어앉은 부도밭에도 눈길을 준다. 부도밭 곁에 ‘오대산장 4km'라 적힌 작은 안내판이 있다. 안내판에는 ‘봄이 오면 이 길을 맨발로 걸으리라’는 글귀도 있다. 비포장도로만 따라 간다면 맨발로 걸어도 좋으리라는 생각을 해본다.  

   길 앞으로 한 무리의 사람들이 보인다. 월정사 템플스테이 참가자들이다. 아침을 맞아 천년의 길 산책에 나선 모양이다. 일행 가운데는 벽안의 이방인이 있다. 그들은 동산교를 건너자 오른쪽으로 사라졌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옛길로 접어드는 것이다. 
 

섶다리와 징검다리 건너며 옛길 가는 즐거움 

   길은 계곡 오른편으로 나 있다. 계곡에서 바라본 오대산은 이제야 봄빛이 돌기 시작했다. 남도에는 꽃소식이 끊기고, 초록이 지천이지만 오대산은 5월 중순이 지나야 산이 봄빛으로 물든다. 그 전까지는 그저 전나무와 금강송만이 독야청청 푸르다. 1km쯤 갔을까. 징검다리를 건넌다. 장정 둘이 마주 건너도 남을 만큼 널따란 바위들이 놓여 있다. 큰비가 와도 끄떡없을 것처럼 보인다. 천년의 길을 따라 가면 징검다리를 몇 번 건너게 된다. 이 징검다리는 모두 천년의 길을 복원하면서 새로 놓은 것들이다. 길은 계곡을 건너기 무섭게 다시 계곡을 건너간다. 이번에는 나무를 엮어 만든 다리를 넘는다. 다리가 걸린 계곡의 풍광이 아름답다. 이처럼 아름다운 계곡을 눈길도 안 주고 차를 타고 휑하니 상원사로 가는 이들이 안타깝다. 길은 계속 계곡 오른쪽으로 이어진다. 아늑한 오솔길이 얼마간 이어지다 이번에는 섶다리가 마중을 나온다. 아침 산책을 나온 탬플스테이 참가자들은 이 다리를 건너 돌아갔다. 섶다리를 지나서도 여전히 걷기 좋은 오솔길이 이어진다. 
 

   스님과 탬플스테이 참가자들이 나무다리를 건너가고 있다. 봄이 깊어지는 숲과 계곡에서 세상사의 상념은 잠시 접어두고 자신과 마주하는 일은 뜻 깊다. 길을 걷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다가가는 것이다. 


오대산장~상원사는 차량과 사람이 함께 가는 길

   다시 징검다리를 건너갔을 때다. 길이 사라졌다. 차들이 연신 오가는 비포장도로만 기다리고 있다. 하릴없이 그 도로를 따라 걸었다. 300m쯤 걸었을까. 다시 계곡을 건너는 다리가 나온다. 차도 오갈 수 있는 시멘트 다리다. 그 다리를 건너자 텃밭이 있고, 정겨운 산막도 있다. 길은 산막을 지나서 키 낮은 잣나무 사이로 이어진다. 그 길의 끝에 다시 징검다리가 나온다. 그 다리를 건너자 오대산장이다. 오대산장부터는 상원사로 가는 비포장길을 따른다. 주말에는 차량이 제법 많다. 이 때문에 자연미를 추구하는 이들은 오대산장에서 발길을 맺음하기도 한다. 그러나 내친걸음이다. 숲에 초록이 드는 기운을 느끼며 천 년 전 깨달음을 찾아 길을 나선 불자를 떠올려본다. 오르막도 아니고, 평지도 아닌 딱 걷기 좋은 길은 하염없이 계곡을 따라 가다 상원사와 만난다. 절 입구에 조선 세조가 목욕을 할 때 의관을 걸어놨다는 조그만 비석이 서 있다. 그때 문수보살이 등창으로 고생하던 세조의 등을 닦아주어 씻은 듯이 낫게 했다고 했던가. 그런 기적이 아니라도 숲길을 걷는 동안, 마음에 깃든 녹진한 마음의 때는 벌써 씻겨 내렸을 것이다.
 

가는 길
   상원사까지는 시내버스가 1시간 간격으로 운행된다. 월정사 주차장에 차를 두고 천년의 길을 걸은 뒤 돌아내려올 때는 시내버스를 이용한다. 월정사 입구나 진부면소재지는 산채정식이 소문났다. 
 

여행하기 좋은 시기 : 신록으로 물드는 5, 6월, 단풍 물드는 가을

주소 :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 동산리 63(월정사), (
지도보기)

총 소요시간 : 2시간 30분

총거리 : 8.5km(월정사 일주문~상원사)

   이야기를 나누며 편안하게 걷는 길. 연인이 걷기에도 부담 없다. 숲과 역사, 계곡 등이 어울려 자녀와 함께 하는 체험학습지로도 좋다. 단, 장마철이나 큰 비가 내리면 위험해 걷기 금지다. 

네이버캐스트/아름다운 한국/20100708/글∙사진 김산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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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점봉산은 한계령을 사이에 두고 설악산과 마주하고 있는 산이다. 설악산이 화려한 산세로 이름을 날리는 반면, 점봉산은 수수하다. 만삭의 여인처럼 불룩하게 솟은 정상부가 그렇다. 그러나 이 산의 품은 한없이 깊고 깊다. 그 깊은 품에서 나무가 자라 숲이 되고, 다시 다른 나무에게 자리를 내주는 천이가 이뤄진다. 이 때문에 점봉산은 ‘활엽수가 이룬 극상의 원시림’이라는 찬사를 받는다. 이 원시림 끝에 점봉산을 넘는 부드러운 고개가 있다. 곰배령이다. 이 고개에서 봄부터 여름까지 들꽃이 어울려 한바탕 축제를 벌인다. 극상의 원시림을 거닐어 만나는 꽃대궐, 여름날의 행복한 추억으로 부족함이 없다.  

 

 눈 많이 오는 점봉산 아래 오지마을 설피밭  

   점봉산 품으로 드는 곳은 진동리 설피밭. 예전만 해도 설피밭은 이 땅 최고의 오지 가운데 하나였다. 양양 양수발전댐 상부댐이 조성되기 전에는 이곳에 마을이 있는지조차 몰랐다. 현리부터 비포장 길로 40리를 가야 닿을 수 있었던 마을이다. ‘설피밭’이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이곳은 겨울에 눈 많이 오기로 소문났다. 특히, 영동산간에 큰 눈이 내리는 2월 말에는 처마 밑까지 눈이 쌓일 정도다. 

   그러나 이제 더 이상 설피밭에 오지란 수식어는 어울리지 않는다. 조침령을 넘어가는 길이 포장되면서 찾아오기가 쉬어졌다. 대신 ‘생태의 보고’라는 새로운 타이틀을 달았다. 산림청은 점봉산이 활엽수로 이루어진 극상의 원시림으로 인정하고 산림유전자원보호림으로 지정했다. 이 때문에 함부로 점봉산에 드나들 수가 없다. 인터넷으로 예약을 한 자만이 강선골과 곰배령을 찾아갈 수 있다. 일반인에게는 다소 불편한 일이지만 이 숲을 지킬 수만 있다면, 그래서 후대에도 점봉산의 숲을 볼 수 있다면 그 정도 수고는 감수해야 한다.  

  

‘천상의 화원’으로 불리는 곰배령 정상에 들꽃이 가득 하다.  

고개 너머로는 운해가 자욱하게 피어나 신비감을 준다.  

활엽수 그늘 아래 나란히 놓인 계곡과 길 

   산길은 설피밭 삼거리에서 시작된다. 왼쪽은 강선골, 오른쪽은 백두대간 단목령으로 간다. 왼쪽 강선골로 방향을 잡는다. 생태체험 프로그램 참가자에게는 노란조끼가 주어진다. 보호림 관리소를 지나면 곧장 활엽수의 깊은 터널 속으로 든다.  

   삼거리에서 강선골까지는 30분 거리.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숲길을 꼽으라면 당연히 첫손에 꼽힐 만큼 아름다운 길이다. 이 길은 차는 오갈 수 없다. 사람들만 다니는 널따란 길이 활엽수림 속으로 나 있다. 길은 초입부터 마을과 만날 때까지 계곡과 나란히 이어진다. 계곡은 제 아무리 깊은 가뭄이 들어도 마르는 법이 없다. 한여름 뙤약볕에서도 계곡 물소리를 들으며 걸으면 서늘한 기운에 사로잡힌다. 강선마을까지는 오르막이 거의 느껴지지 않을 만큼 완만하다.  

   강선마을은 예전에는 제법 규모가 큰 화전민 마을이었다. 한때는 강선리라는 별도의 행정조직을 갖추기도 했다. 그러나 화전을 일구고, 산나물이나 약초로 연명하는 삶에 지친 이들이  하나둘씩 떠나면서 마을은 작아졌고, 지금은 몇 가구 남지 않았다. 그러나 상전벽해다. 강선마을이 산림유전자원보호림 안에 들어가면서 이제는 함부로 집을 지을 수도, 들어가 살 수도 없는 곳이 됐다. 오직 끝까지 그 마을을 지키며 살던 이들만 이 숲을 온전히 소유하는 즐거움을 누리고 있다.  

하늘도 땅도 온통 푸른 초록의 세상

   강선마을을 지나면 길은 오솔길로 변한다. 강선마을에서 징검다리를 건너가면 이제 곰배령을 향해 가는 길이다. 숲은 점점 더 깊어진다. 계곡은 계속 동행을 자처하고 나선다. 가끔은 폭포가 되어 숲을 물소리로 물들인다. 완만한 오르막이 계곡을 따라 나 있다. 호흡이 가빠질 이유가 없을 만큼 부드러운 오르막이다.  

   활엽수 그늘 아래는 양치식물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고사리류의 식물들은 마음껏 잎을 펼치며 산비탈을 점령했다. 활엽수의 짙은 숲 그늘, 그리고 바닥을 차지한 양치식물로 인해 세상은 온통 초록바다다. 녹음이 우거진 여름에 이 길을 걸으면 푸른 비에 젖는 착각이 들 정도로 숲이 깊다. 안개라도 자욱한 이른 아침나절에는 한결 더 신비롭다. 저 홀로 깊어지며 원시의 자연으로 돌아가고 있는 점봉산의 깊이가 느껴진다. 

   강선마을에서 30분. 한껏 수량이 줄어든 계곡을 건너는 곳에 ‘강선마을 입구 3.7km, 곰배령 1.3km’라 적힌 이정표가 있다. 이제 1.3km만 다리품을 팔면 곰배령 정상이라는 생각에 힘이 난다. 길은 조금씩 경사를 더한다. 그렇다고 가쁜 숨을 토할 만큼 가파르지는 않다. 그저, 오르막이구나라는 것을 느낄 정도다. 여전히 길 곁의 숲은 깊고, 먼 곳에서 들려오는 계곡물소리는 싱그럽다. 
   

강선마을에서 곰배령 가는 길에 있는 싱그러운 폭포.   

깊은 숲에서 쏟아져내려오는 폭포를 보고 있으면 한여름에도 등짝이 서늘해진다.

 

 

곰배령에 펼쳐진 야생화 꽃물결

   이정표에서 30분만 다리품을 팔면 하늘이 열린다. 곰배령에 다 온 것이다. 그 깊고 짙은 활엽수림이 사라지고 곰배령 정상은 드넓은 초지다. 뒤를 돌아보면 백두대간 너머로 웅장하게 치솟은 설악산 대청봉과 중청봉이 보인다. 곰배령을 향해 오르면 초원은 점점 넓어져 축구장만큼 커진다. 그 초원에 기대했던 것처럼 여름 들꽃이 만발했다. 미나리아재비, 쥐오줌풀, 눈개승마, 산수국, 매발톱, 전호 등 형형색색의 꽃들이 ‘꽃바다’를 이뤘다. 마치 식물도감을 펼쳐놓은 것처럼 화려한 꽃물결이 먼 길을 걸어온 탐방객을 반긴다. 곰배령의 들꽃은 여름이 깊어갈수록 더욱 더 만개할 것이다.  

   곰배령에서 시원한 산바람을 즐기며 휴식을 하고 나면 이제 하산할 시간. 하산은 왔던 길을 되짚어 내려간다. 곰배령~강선마을을 제외한 다른 길은 모두 출입금지다. 강선마을로 내려가는 길도 편안하다. 가파른 오르막이 없었기에, 내려가는 길도 부드럽다. 곰배령만 벗어나면 다시 원시림의 짙은 숲 그늘이라 걷는 게 휴식처럼 느껴진다.  

가는 길
   서울~춘천 고속도로를 이용 동홍천IC로 나온다. 인제로 가는 44번 국도를 따라 가다 철정 삼거리에서 우회전 451번 지방도를 따라 가면 홍천~상남을 잇는 31번 국도와 만난다. 상남을 지나 현리에서 우회전, 418번 지방도를 따라가면 조침령 터널 입구. 이곳에서 좌회전해서 4km 가면 설피밭이다. 강선마을~곰배령은 사전에 탐방신청을 하지 않으면 입장할 수 없다. 탐방신청은 산림청 인제국유림관리소(033-463-8166)과 진동리 민박협회에서 할 수 있다.  

여행하기 좋은 시기 : 봄~가을

주소 : 강원도 인제군 상남면 진동리 (지도보기

총 소요시간 : 4시간(왕복)

문의 : 인제군청 문화관광과(033-460-2080)

   설피밭~강선마을~곰배령은 초등학교 저학년도 갈 수 있을 만큼 길이 좋다. 곰배령 정상부를 제외하면 오르막이라 부를 수 없을 만큼 완만하다. 곰배령 정상이 부담스럽다면 강선마을까지만 갔다 와도 숲은 제대로 보게 된다. 단, 사전에 탐방예약을 해야 하고, 개장하는 요일과 시기 등의 변화가 많은 점에 유의한다. 

네이버캐스트/아름다운 한국/20100708/글∙사진 김산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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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암골이 세간의 관심을 받기 시작한 것은 2009년 가을. MBC 예능프로 ‘오마이 텐트’에 소개되면서부터다. ‘오마이 텐트’는 김제동이 MC로 나서 게스트와 함께 캠핑을 하며 진솔한 이야기를 주고받는 프로그램이었다. 이 프로그램은 진지한 접근으로 인해 ‘다큐적 예능’이라는 평을 받았다. 그러나 아쉽게도 ‘오마이 텐트’는 단 1회만 방송되고 종결됐다. 이 프로그램의 처음이자 마지막 촬영지가 살둔마을과 문암골이다. 문암골에는 당시 세운 ‘오마이 텐트가 찾은 걷고 싶은 길’이라는 이정표가 있어 지금도 오지마을을 찾아 나선 이들의 길잡이가 되고 있다.  

  

 

세상의 끝 오지마을에서 다시 시작되는 길 

   10여 년 전만 해도 살둔마을은 오지의 대명사였다. 이곳에서 길이 끝났다. 내린천 물길은 이어졌지만 찻길은 없었다. 여행자들은 이 외진 오지마을을 찾아 세상 끝까지 온 듯한 여행의 기쁨을 맞보곤 했다. 그 중심에 살둔산장이 있었다. 내린천 곁에 귀틀집으로 지은 이 산장은 감성이 충만한 여행자의 안식처였다. 그러나 살둔마을이 끝이 아니었다. 길은 끝에서 다시 시작됐다. 그곳이 문암마을로 가는 문암골이다. 살둔산장에서 내린천 건너에 빤히 보이는 계곡. 그 계곡을 따라 오지로 가는 아름다운 길이 있다.  

    

문암골 초입에 세워진 목장승 2기.

이곳에서 내려가면 내린천을 가운데 두고 살둔산장과 마주하게 된다. 

   문암골로 가는 길은 살둔마을이 빤히 내려다보이는 언덕에서 시작된다. 이곳에서 내린천을 오른쪽에 끼고 산비탈을 따라 길이 나 있다. 초입에 ‘자전거 트레킹 코스’라 적힌 이정표가 있다. 문암마을까지는 걷는 것도, MTB를 타고 가는 것도 좋다. 자전거는 생둔분교 오토캠핑장에서 대여해준다.  

   내리막길은 잠시 야트막한 언덕을 지나 부드럽게 이어진다. 언덕을 지나면 남녀형상의 거대한 목장승 두기가 있다. 호랑소라는 비석도 있다. 이곳을 지나면 드문드문 민가가 나타난다. 첫 번째 다리를 건너면서 시멘트포장도로가 끝이 난다. 이곳부터 문암마을 삼거리까지 4km는 아늑한 흙길이 이어진다.  

   다리를 건너 500m쯤 가면 ‘오마이 텐트에서 찾은 걷고 싶은 길’ 이정표가 있다. 이곳부터 민가도 보이지 않는다. 문암마을까지는 이제 둘이 나란히 걷기 좋은 길과 깊은 숲, 소리만으로도 청량감을 물씬 풍기는 계곡만이 있다. 길과 나란히 이어진 계곡은 문암골이 깊어질수록 풍광이 아름다워진다. 바위와 암반이 어울린 협곡이 짙은 녹음 사이로 언뜻언뜻 비친다. 도보여행에 나선 이들은 그 계곡에 발을 담그고 싶어 안달이 나지만 쉽지 않다. 워낙 계곡이 험하기 때문에 내려서는 길이 많지 않다.  

문암골 청량한 물소리는 탁족의 즐거움을 부르고  

 
   이정표가 서 있는 자리에서 10분쯤 가면 첫 번째 삼거리다. 오른쪽으로 가면 운리동으로 간다. 문암마을로 가는 길은 왼쪽이다. 갈림길을 지나면 길은 더욱 아늑해진다. 계곡미도 더욱 빼어나다. 하얗게 포말을 그리며 쏟아지는 물살이 여행자의 마음을 훔친다. 그러나 안타까워할 필요는 없다. 갈림길에서 1km즘 올라가면 자연스럽게 계곡과 마주할 수 있는 곳이 있다. 작은 채마밭이 있는 이곳은 물살이 층층이 떨어지며 흘러가는 곳. 계곡물은 발가락이 얼얼할 정도로 차다. 걷기는 그만하고, 탁족을 하며 그저 쉬고 싶게 만든다. 이곳에 오마이 텐트가 세운 ‘여기까지 2,500걸음’이라는 이정표가 있다. 여행자를 배려하는 그 이정표가 정겹다. 

   이정표를 지나서도 계곡의 풍광은 변하지 않는다. 오히려 더 깊은 협곡으로 변해 신비감을 준다. 과연 이 길 끝에 마을이 있을까 싶을 정도다. 그러나 끝은 있었다. 다시 ‘여기까지 5,000걸음‘이란 이정표를 만나고 나서 300m만 더 걸으면 잘 포장된 시멘트 도로와 만난다. 지금까지 걸어왔던 길과 달리 말끔하게 포장된 도로여서 당황스럽기까지 하다.   

   시멘트 포장도로와 만나는 지점이 삼거리다. 직진하면 고개를 넘어가 홍천과 상남을 잇는 31번 국도와 만난다. 문암마을 사람들은 고개를 넘어 율전리로 장을 보러 간다. 즉, 이 길이 문암마을과 세상을 연결하는 끈이다. 따라서 주민들의 편리를 위해 시멘트 포장도로를 만든 것이다. 반면, 문암골에서 살둔마을로 가는 길은 활용도가 떨어져 점점 아늑한 오솔길로 변하고 있다. 

   삼거리에서 문암마을로 가는 길은 왼쪽이다. '문암마을 감리교회 2km'라 적힌 이정표가 있는 다리를 건너간다. 삼거리에서 문암마을로 이어진 길은 특별하지 않다. 짙은 숲 그늘도 없고, 경치도 특별날 게 없다. 무엇보다도 포장된 도로가 마음에 거슬린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계곡이 한결 가까워졌다는 것. 이제는 틈만 나면 계곡에 발을 담글 수 있다. 
   

빗물로 불어난 문암골의 계곡물이 세차가 흘러가는 가운데 바위 하나가 우뚝 솟아 있다.
이곳에서 조금만 더 가면 첫 번째 삼거리가 나온다.

 

종교적 경건함이 흐르는 소박한 문암교회 

   삼거리에서 문암마을까지는 20분이면 족하다. 이 계곡 끝에 무엇이 있을까 싶던 의구심은 마을 입구에 닿으면 풀린다. 마을이 터 잡은 계곡은 생각보다 넓다. 부드럽게 흘러내린 산자락 마다 밭이 만들어져 있다. 10가구쯤 되는 집들도 띄엄띄엄 있다. 과거에는 꽤나 큰 마을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마을에 있는 문암교회는 10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들고나는 길도 험하기 짝이 없던 그 시절에 이곳에 교회가 있었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최근에 새롭게 단장한 문암교회는 종교가 추구해야할 진정성과 가치를 조용히 말해준다. 통나무로 뼈대를 세우고, 황토로 벽을 발라 지은 교회는 아담하다. 하늘을 찌르는 첨탑도 없이 수수하다. 교회 내부도 소박하기 그지없다. 예배당 정면에 세워 놓은, 나무를 켜서 만든 선이 자연스러운 십자가도 마음을 편하게 해준다. 창문 너머로는 문암마을의 전경이 펼쳐진다. 무신론자에게도 종교적 감동을 줄 정도로 경건함이 흐르는 검박한 모습이다. 

   문암마을에서 땀을 식히고 나면 이제 돌아갈 일만 남는다. 왔던 길을 되짚어가는 길이라 조금 싱거울 수는 있다. 하지만, 언제든지 내장까지 시원하게 훑어줄 계곡이 기다리고 있어 발길이 가볍다. 혹여, 밭일 나가는 농부의 트럭이라도 얻어 탈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다. 

가는 길
   살둔마을이 들머리다. 서울~춘천고속도로 동홍천IC로 나와 56번국도 양양 방면을 따라 가면 내면 지나 광원리에 이른다. 광원리에서 우회전, 446번 지방도를 따라 8km 가면 살둔마을이다. 영동고속도로 진부IC에서 31번 국도를 따라 운두령을 넘어가 내면 창촌에서 56번 국도를 갈아타도 된다. 대중교통은 상봉이나 동서울터미널에서 고속버스와 직행버스를 이용해 홍천읍까지 간다. 홍천읍에서 내면 율전리행 버스가 약 1시간 단위로 운행된다. 2시간 소요.  

숙박
   살둔마을 주변에 펜션과 민박이 많다. 살둔산장(033-435-5928)은 주말에는 서둘러야 예약할 수 있다. 생둔분교 오토캠핑장(033-434-3798)을 이용하는 것도 방법이다. 삼봉자연휴양림의 산막이나 캠핑장을 이용할 수 있다.
 

 

여행하기 좋은 시기 : 여름~가을

주소 : 강원도 홍천군 내면 율전2리(지도보기

총 소요시간 : 3시간30분

문의 : 홍천군청 경제관광과(033-430-2546) 

차량 통행도 가능한 편안한 길이다. 아이들과 함께 걸으면서 쉴 수 있다. 자전거를 타고 가도 나쁘지 않다. 여름에는 편안한 샌들을 신고 가도 무방하다. 생둔분교에서 자전거를 빌려서 MTB체험을 할 수도 있다. 계곡의 시원한 그늘에서 탁족을 즐기면 삼복더위도 모르고 지나간다.
  

 네이버캐스트/아름다운 한국/20100805/글∙사진 김산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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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피천은 맑은 물의 대명사다. 이 땅의 이름난 물줄기들이 개발바람에 휩싸이고 하나둘씩 오염되어갈 때 저 혼자 독야청청 맑은 물을 흘려보낸다. 경북 영양에서 시작하는 이 물줄기는 낙동정맥을 굽이굽이 돌아 울진을 거쳐 동해에 물을 부린다. 물줄기가 시작된 곳도, 이 산 저 산, 이 골짜기 저 골짜기의 물을 보태 몸이 제법 튼실해질 때도 강물은 산 속으로만 숨어서 돈다. 이 때문에 이 은밀한 강은 유리알처럼 투명하다. 강이 흘러가는 대부분이 사람의 마을과는 거리를 두고 있다. 길도 없다. 강물이 길이다. 강물을 거닐어 저벅저벅 걸어갈 수밖에 없는 곳이 널려 있다. 사람의 발길이 원천적으로 차단된다. 이는 왕피천이 계속 청정하게 흐를 수 있게 하는 큰 힘이다.  


 

 

우리나라 최고의 오지이자 청정지역

   왕피천은 경북 영양군 수비면에서 발원해 동해에 닿을 때까지 60.95km를 흘러간다. 이 가운데 울진의 일부 구간을 제외하면 대부분이 오지로 남아 있다. 서울 같은 대도시에서 찾아가기도 어렵거니와 왕피천의 속살로 들어가는 길도 아예 없거나 있어도 아주 불편하다. 왕피천으로 드는 길은 울진 성류굴에서 거슬러 가거나 울진 서면 삼근리에서 고개를 넘어가야 한다. 다른 하나는 영양 수비면 수하리에서 물길을 따라 내려가는 것이다. 이 가운데 어느 것 하나도 편한 것이 없다. 산을 넘거나 물을 건너다니면서 찾아가는 수밖에 없다. 

 

왕피천 위로 뭉게구름이 피어났다.  

강물은 오른쪽으로 굽이졌다가 산자락 사이를 굽이치며 흐른다.


   왕피천은 최근 환경경관보전지역으로 지정됐다. 보호구역 안에서는 어로나 야영, 취사 등의 행위가 일체 금지됐다. 이것은 왕피천의 자연생태적인 가치가 그만큼 크다는 증거다.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왕피천의 하류는 은어와 연어가 회귀하는 곳이다. 꺽지와 버들치, 쉬리 등 민물고기도 다양하다. 이처럼 먹이사슬이 풍부하자 수달과 산양 같은 멸종위기의 동물들이 이곳을 무대로 살아간다. 왕피천의 상류는 청정지역의 보증수표인 반딧불이 서식지로 유명하다. 이곳은 반딧불이 애벌레 유충의 먹이인 다슬기가 지천으로 널려 있다. 그러나 함부로 채취할 수 없다. 반딧불이 먹이를 위해 환경감시원들이 눈에 불을 켜고 지키고 있다.  

 우무마을 벗어나면 인적 끊긴 천혜의 외딴 곳 펼쳐져 

   왕피천에서도 가장 외진 곳을 꼽으라면 영양 수하리에서 울진 왕피리 사이를 들 수 있다. 이곳은 군의 경계가 되는 곳으로 길이 전혀 없다. 수하리 끝마을 오무에서 왕피리의 첫 마을 한천까지 6.5km는 오직 강물만이 흘러가는 무인지경이다. 오무마을을 벗어나는 순간, 인간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 오직 태고의 자연만이 반긴다. 처음부터 끝까지 강물과 벗하며 걷는 특별한 체험을 할 수 있다. 

   오무마을에 닿으면 ‘도로끝’이란 도로표지판이 서 있다. 이곳이 차로 갈 수 있는 마지막 지점이다. 왼편의 언덕에 왕피천 탐방안내소가 있다. 우선 탐방안내소에 들려 실물과 똑같은 모형으로 제작한 지도를 보면서 왕피천을 입체적으로 살펴본다. 또 왕피천의 생태적 가치와 이곳을 무대로 살아가는 동식물도 알아본다. 특히, 한천마을까지 오가는 길의 상태나 강물의 수위에 대해서도 타진한다. 왕피천 트레킹에서 강물의 수위는 아주 중요한 고려사항이다. 왜냐하면 한천마을까지는 수도 없이 강물을 건너다녀야 하기 때문이다. 

 

한천마을까지는 강이 길이고, 동행이다

   오두마을에서 강을 건넌다. 강 건너에는 외벽을 근사한 꽃그림으로 장식한 귀틀집이 있다. 이곳을 지나서 강변을 따라 가는 길은 좋다. 그러나 200m쯤 가면 다시 강을 건너게 되고, 마지막 민가를 지나면서는 길이 슬그머니 사라진다. 당황스럽다. 어디로 가란 말인가. 정답은 강이다. 강만 따라가면 된다. 강을 따라가는 방법은 각자의 몫이다. 강물을 텀벙거리며 걸어도 되고, 강기슭에 토끼길을 만들며 가도 된다. 분명한 것은 길의 존재 여부를 묻지 말라는 것이다. 지금 걷는 길이 길일 뿐이다. 그것이 왕피천의 법칙이다. 그렇다고 험하거나 못 갈 길은 아니다. 바위와 암반이 끊임없이 나타나지만 위협적이지 않다. 강물의 수량만 만치 않다면 요리조리 피해갈 곳이 있다.

   우무마을에서 시작하는 왕피천의 이름은 장수보천이다. 이 물줄기가 산자락을 크게 한바퀴 돌아나가면서 인적이 끊긴다. 혼자 출발했다면 끝까지 혼자일 확률이 99%다. 산이 장막을 친 깊은 강물 위에 혼자 있다는 상상을 해보라. 호젓하기도 하지만 적적하기도 하다. 길동무를 해줄 대상은 강물 밖에 없다. 반면 누군가 동행이 있다면 두런두런 이야기 나누며 걷기에 그만이다. 걷다 지치면 강물에 몸을 던져 시원하게 물놀이를 할 수도 있다. 
 

산이 막으면 이리 뒤틀고, 또 산이 막으면 저리 뒤틀고

   왕피천은 한천마을에 닿을 때까지 특색 있는 구간이 별로 없다. 강물이 지나는 계곡의 표정이 거의 비슷하다. 잔돌이 깔린 개울처럼 흘러가다 바위를 만나면 깊은 소를 이룬다. 가끔 급류를 이루며 물살이 거센 곳도 있지만 폭포라 부를 만큼 거창하지는 않다. 그러니 어느 곳도 이름이 없다. 딱히 부를 만한 지명도 없고, 길이 분명치 않으니 딱히 설명할 방법도 없다. 그저 물을 따라 걸어가라는 수밖에 일러줄 것이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걸어볼 만큼 충분히 아름답다는 것이다.  

낙조에 붉게 물든 왕피천.

왕피천은 우리나라 최고의 오지이자 청정한 자연을 자랑하는 생태계의 보고다. 


   오무마을에서 멀어질수록 달라지는 것이 있다. 강물의 굽이치는 각도가 점점 심해진다는 것이다. 초반은 강물이 곧장 흘러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중반을 지날 때면 점점 곡류가 심해진다. 강은 고작 200m를 가지 못해서 다시 휘어진다. 강물은 산이 막으면 이리 뒤틀고, 또 산이 막으면 저리 뒤튼다. 첩첩산중이다. 그렇게 산이 쉼 없이 막아서 강물이 잠시 숨을 고르는 곳에는 꺽지, 피라미, 버들치가 활보한다. 인적을 느껴도 별로 무서워하는 모양이 아니다. 왕피천은 예나지금이나 물고기가 주인 노릇을 하고 있다. 

   굽이치며 흘러가는 강물을 따라 걷기도 지칠 때쯤, 강을 막아선 산등성이에 인간의 흔적이 나타난다. 산비탈을 따라 밭을 만든 모습이 역력하다. 한천마을에 닿은 것이다. 강물을 따라 크게 한 바퀴 돌아가면 산중턱에 자리한 마을에 닿는다. 여기가 반환점이다. 이쯤에서 돌아서야 오무마을로 되돌아갈 수 있다. 그러나 왕피천은 여기가 끝이 아니다. 오히려 더 깊은 협곡을 이루며 동해로, 동해로 향해 간다.

여행하기 좋은 시기 : 여름~가을

주소 : 경북 영양군 수비면 수하리 오무마을(지도보기)   

총 소요시간 : 4시간30분

문의 : 영양군청 문화관광과(054-680-6062) 

   오무~한천 구간은 돌아오는 교통편이 없다. 다시 계곡을 따라 원점 회귀해야 한다. 산악회의 안내산행을 따라 가면 왕피천의 주요구간을 편도로 주파할 수 있다. 간식과 도시락, 물은 필수다. 긴 바지와 긴소매 옷을 입는다. 아쿠아 슈즈보다 물에 젖을 각오를 하고 등산화를 신고 가는 게 발이 편하다. 스틱이 있으면 강물을 건널 때 유용하다. 강물의 수위와 날씨는 반드시 체크한다. 중급 이상의 트레킹 경력자에게 추천한다.  

네이버캐스트/아름다운 한국/20100819/글∙사진 김산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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