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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동물이야, 비스코비츠! 민음사 모던 클래식 29
알레산드로 보파 지음, 이승수 옮김 / 민음사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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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음사의 모던 클래식 시리즈들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이 책은 참 호기심이 일었던 제목이다.  <넌 동물이야, 비스코비츠!>  이 책의 표제는 책의 내용을 한꺼번에 집약하고 있는 듯 하다.  동물들의 이야기, 수많은 비스코비츠들의 이야기이니 말이다. 

  알레산드로 보파의 소설은 처음이다.  그건 당연하다.  이 소설이 그의 발표된 첫 작품이기 때문이다.  생물학을 공부하고 동물유전학 연구소에서 일한 자답게 이 소설은 모두 동물들이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20개의 짧은 이야기들의 모음집인데 이 이야기들의 주인공은 모두 비스코비츠다.  그러나 모든 비스코비츠들이 다르다는 것이 이 책의 매력이 아닐까 싶다.  동물이라고 해서 코끼리, 사자, 호랑이처럼 우리가 1분 안에 떠올릴 수 있는 동물들이 아니다.  그 동물들은 겨울잠쥐, 사마귀, 사슴, 개, 달팽이, 되새, 엘크, 쇠똥구리, 돼지, 쥐, 앵무새, 전갈, 개미, 카멜레온, 늑대, 기생충, 상어, 벌, 해면동물, 세포다.  역시 생물학을 전공한 자답게 참 다양한 동물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런 동물들에 관해 이야기를 쓰려면 최소한 그들의 생태에 관해 아주 잘 알고 있어야 할 것이다.  그 점에서도 이 책은 놀랍다. 

  그리고 동물들이 등장하는 이야기지만 이 책은 브레멘의 음악대 같은 책이 아니다.  철학적이기도 하고 유머러스하기도 하고 섬뜩하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하다.  동물들이 등장하지만 인간의 삶과 다르지 않은 모습으로 묘사하고 있는데 새삼 인간 역시 동물이며 이들과 다르지 않은 삶을 살고 있으며 이들 역시 정말 이야기처럼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단지 그들의 삶과 우리의 삶이 서로 깊이 있게 소통하지 못하는 이유는 종과 종 사이의 언어의 장벽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만약 동물들과도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게 된다면(단순히 교감의 차원을 넘어 완벽한 소통을 하게 된다면) 더욱 다양한 세상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동양에 머물렀던 적이 있어서 그런지 동양적인 사상에 대해서도 많이 엿볼 수 있었다.  이를테면 환생같은(환생을 직접적인 소재로 삼지는 않았지만 '다시 태어난다' 등의 대화들을 나누었다.)  그리고 家(집 가)에 대한 해석도 정말 놀라운 발견이었다.  宀(집 면) 아래 豕(돼지 시)들이 모여 사는 것이 집이라는 해석은 정말 신선했다.  한자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의미들이 기가 막힐 때가 있다.  이 역시 서양인인 저자가 발견했다는 것이 참 재미있었다. 

  비유, 풍자도 잘 살아 있는 작품이었다.  비유는 이 작품 그 자체다.  인간의 삶을 동물을 빌려 비유하고 있다.  풍자 역시 인간 삶에서의 배신과 생존 방법들을 교묘히 묘사하고 있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짧은 이야기들은 인간의 인생사를 함축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이 이야기는 동물이 주인이지만 분명 인간의 이야기다.  그의 재기 발랄함이 이야기 속에 멋지게 녹아들어 읽기 쉽고 의미 있고 재미있는 이야기들의 모음이 만들어진 것 같다.  앞으로도 그의 이야기들을 더 볼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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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녀귀신>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처녀귀신 - 조선시대 여인의 한과 복수 키워드 한국문화 6
최기숙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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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녀귀신을 통한 여성의 사회적 지위와 시대상에 관한 고찰.  이것이 이 책의 주제다.  귀신에 대한 인문학적 접근이라.  아마 이런 종류의 책으로는 이 책이 유일무이하지 않나 싶다.  이 책의 흥미롭고 남다른 접근에 호기심이 갔다.   

  초등학교 시절, 나도 꽤 '무서운 이야기'를 즐겼던 것 같다.  '오싹 오싹 공포체험' 이라는 책과 3D 안경으로 귀신을 볼 수 있는 책들까지.  귀신이라는 미지의 것 그리고 그것이 주는 막연한 공포를 이야기라는 매체를 통해 안전하게(?) 짜릿함을 누렸던 기억이 있다.  그건 오늘날의 아이들 역시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만 5세(7세) 정도가 되면 재미있는 이야기보다 무서운 이야기를 더 선호하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예로부터 귀신의 존재에 관해서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관심의 대상이 되어왔다. 

  책을 한 번 살펴보자.  이 책은 우리나라의 귀신에 대해 다루고 있는데 기문총화, 동패락송, 청구야담, 천예록, 양은천미 등의 고전에서 기담들을 가져와 소개하고 저자의 해석을 덧붙인 책이다.  그런데 이 책에 나오는 귀신 중에는 처녀귀신이 많고 그것도 자살귀가 많았다.  저자는 이것이 여자들의 낮은 신분과 말하지 못하는 억눌린 감정으로 인해서라고 본다.  그리고 오래전 귀신 이야기는 억울하게 죽은 여인이 사또나 마을 관리를 찾아가 누명을 풀어줄 것을 하소연하고 그것을 해결하게 되는 과정을 담은 이야기가 많단다.  이 역시 기문총화나 동패락송, 청구야담, 양은천미등을 보는 자들이 대다수 사대부고 이들에게 자긍심을 주기 위해(다시 말해, 이들의 입맛에 맞는) 귀신을 등장시키고 귀신의 억울함을 풀어줌으로 인해 그들의 영민함을 뽐냈다는 해석을 하고 있다.  이처럼 새로운 시각에서 귀신 이야기를 들여다봤고 해석했다는 점이 아주 놀랍다. 

  뿐만 아니라 옛날에는 여자들의 자살을 부추겼다는 해석도 하고 있다.  남편을 위해 대신 죽거나 남편이 죽으면 따라 죽는 등, 이러한 여자의 희생(?)에 열녀문을 내리고 가문의 영광으로 기리는 모습을 꼬집고 있다.  여자는 남자에 속한 하나의 종속물로 여겨지고 이런 여자들의 죽음은 당연하다고 생각해왔다는 것이다.  한 번도 생각한 적 없었지만 그럴듯한 해석이라고 생각한다. 

  또 여성이 자살로 죽으려 할 때 그녀들을 구원해주기 위해 등장하는 인물들의 비율을 분석해 놓았는데 초월적 존재가 33%, 배우자나 정혼자 21%, 기타(노인, 불확실) 23%, 양부모 및 유모 등 비혈연 가족 14%, 친족 6%, 시아버지 3%라고 한다.  이 역시 여성에게 낯선 남자로부터의 구원이 철저히 차단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초월적 존재나 배우자, 노인 등 불확실한 존재로부터 구해지게 되는 것이 다른 남성과의 에로틱한 이성적 관계로의 진행을 완전히 배제하고자 했다는 분석이다.  정말 놀라운 분석이다. 

  또 이상하게 옛날의 귀신이야기는 하나같이 무섭지가 않았다.  지금의 공포영화나 TV에서 상영되는 납량특집과는 새삼 달랐다.  그리고 대다수 이야기의 주된 골자는 권선징악이다.  악행을 한 자는 죽은 영으로부터건 누군가로부터건 징계를 받는다는 것이다.  이 귀신 이야기는 어찌 보면 사람들을 계몽하고자 만들어낸 이야기일 수도 있을 것 같다.   

  이 책은 이처럼 귀신(그중에서도 처녀귀신)을 통해 당대의 시대상과 여성의 사회적 입지와 문화 색을 발견하여 보여주고 있다.  자칫 잘못하면 귀신이라는 비현실적인 존재로 그저 한담거리가 될 수도 있을 소재를 저자는 새로운 접근과 분석과 해석으로 한 권의 책이 되었다.  자살귀. 소복. 피 등....  밤에 읽을 때는 왠지 오싹한 기분이 들기도 했으나 참 유익한 책이었다.  그리고 저자의 필력도 돋보였다.  이 책을 보며 다시 한 번 깨닫는 것이 역시 새로운 발견과 진지한 분석은 독창적인 결과를 낳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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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권의 책으로 노무현을 말하다>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10권의 책으로 노무현을 말하다
김병준 외 지음 / 오마이북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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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년 5월 23일.  온 국민에게 잊지 못할 슬픔을 안긴 날이다.  고 노무현 대통령 서거일이다.  온 국민이 그를 추모하고 애도했다.  그리고 뒤늦게 우리에게 필요한 한 인물이 죽음으로 사라진 것을 통탄했다.  나 역시 고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에 큰 충격을 받았고 안타까운 죽음에 비탄을 감출 수 없었다.  그러나 나는 그에게 여느 대통령과 다른 각별한 감정을 가진 적은 없었다.  그의 영결식을 보며 국민의 한 사람으로 눈물을 쏟기는 했지만 한 나라의 원수이던 당신이 그렇게 생을 마감한 것에 대해서는 아쉬움과 불편한 마음이 컸다.   

  이후 그의 자서전 <운명이다>를 포함해 그의 정신을 기리는 많은 책이 잇달아 출간되었다.  이 책은 내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읽는 고 노무현 대통령을 추모하는 책이 아닐까 싶다.  그의 끔찍한 비보 후에서야 온 국이 사죄하듯 봇물처럼 쏟는 애정과 추모의 물결에 솔직히 합류하고 싶지 않았다.  진정으로 당신의 정신과 사상을 온전히 찬양하던 이는 몇이나 될까?  현 정부를 비난하고 헐뜯는 것이 곧 당신에 대한 애정의 증거가 된다고 여기는 몽매한 자들을 많이 보았다.  뒤이어 출간된 책들 역시 이런 성격이 짙어 보였다.  당신을 감성적으로 추모하고 국민으로 하여금 현 정부를 불신하도록 하는 것이 진정 당신이 원하는 일일까?  어쩌면 당신의 죽음은 그들에게 정치적으로 이용되고 있다는 생각조차 지울 수 없었다.   

  그런데 이 책 <10권의 책으로 노무현을 말하다>는 조금 달라 보였다.  이 책은 생전 고 노무현 대통령이 읽었던 책 중 10권을 선정하여 그 책의 의미를 이해하고 당신이 고민하고 꿈꾸었던 국가를 엿보게 하는 책이었다.  그 10권의 책들은 다음과 같다.  장하준의 <국가의 역할(2006)>, 폴 크루그먼의 <폴 크루그먼 미래를 말하다(2008)>, 로버트 라이시의 <슈퍼자본주의(2008)>, 람 이매뉴얼*브루스 리드의 <더 플랜(2008)>, 제프리 D.삭스의 <빈곤의 종말(2006)>, 제러미 리프킨의 <유러피언 드림(2005)>, 앤서니 기든스의 <이제 당신 차례요, Mr. 브라운(2007)>, 제임스 맥그리거 번스의 <역사를 바꾸는 리더십(2006)>, 요시다 타로의 <생태도시 아바나의 탄생(2004)>, 토머스 키다의 <생각의 오류(2007)> 

  솔직히 나는 놀랐다.  대통령이 책을 읽으리라곤 생각지 않았었다.  그의 곁에는 모든 분야의 전문지식인들이 즐비하고 그들의 조언과 대통령의 판단에 따라 국가를 위한 결정을 하는 것이라고만 생각했었다.  그런데 생전에도 고 노무현 대통령은 책 읽기를 즐겼다고 한다.  한 철학교수의 강연회에 참석했을 때 그가(실명을 거론하는 것은 의미가 없기에 생략한다.) 한 말이 기억난다.  "저는 정치인, 판검사 등 어리어리한 사람들에게 책로비를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제 성의라 생각하고 받아주세요 라면서 사과 궤짝을 실어주면 이건 도로 가져가고 자네가 내게 성의를 보이고 싶다면 조만간 메일을 보내겠네. 그 메일을 열어보고 내용대로 준비해주게. 하는거죠.  그리고 메일 안에는 읽을 책 목록을 쫙 수백 권 적어 보내는거예요.  캬~ 기가 막히지 않아요?  저는 책 로비 받는 정치인이라면 무조건 지지할 것 같아요.  이런 사람? 아무도 무시 못합니다.  술접대, 골프접대?  솔직히 해주고도 누구나 비웃어요" 라고 한 말이 정말 인상적이었다.  그런데 노무현 대통령이 임기를 마치고도 국가를 위한 건설적인 계획을 꾸준히 해오며 공부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놀라웠다. 

  이 책은 노무현 대통령의 측근에 있거나 그의 정치적 입장과 사상이 같은 자들이 한 권의 책을 선정하여 발표한 내용을 담은 책이다.  10권의 책 모두 쉽게 읽을 만큼 호락호락한 책은 아닌데 발표자들이 요점 정리를 잘 해두어 마치 한 권의 책을 읽은 듯 하다.  그리고 고 노무현 대통령과 뜻을 같이하는 자들의 해석을 통해 고 노무현 대통령이 당시 고민하고 지향하던 것들을 엿볼 수 있었다.  그러나 역시 정치라는 것은 좌파, 우파가 존재하며 이들은 서로 양립할 수 없는 것일까?  정치인들의 세력 싸움과 타 정당 헐뜯기에 신물이 나는 나로서는 이명박 정권을 질타하는 구석구석 내용이 거슬리기도 했다.  어찌보면 내가 현 정권에 호의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있으나 그런 오해는 없길 바란다.  지지하는 정당은 차치하고 온전히 한 개인의 칭송받을만한 태도와 견해, 사상 따위를 설파하는데 그칠 수는 없었던 것인지.  판단은 국민, 유권자에게 맡겨둘 수 없는지.  정당은 나라를 위해 일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정당이 정당을 심판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니지 않을까?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그저 '심판' 하겠다는 것은 전혀 설득력이 없다.  그리고 6.2 지방자치선거에서 유독 많이 등장한 이 '심판' 이라는 단어, 개인적으로 정말 마음에 안든다. 

  이 책은 훌륭했다.  그러나 위와 같은 부분이 내게는 결코 즐겁지 않았다.  그리고 참으로 아쉽다.  이렇게 나라를 위해 고민하던 이가 왜 그리 빨리 가셨는지.  살아서 조금씩 바꾸어 보려고 노력했다면 하는 아쉬움이 든다.  또 이처럼 위정자들이 스스로 삶을 마감하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  진
정 고 노무현 대통령이 꿈꾸는 나라, 국민을 위해 존재하는 국가가 도래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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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보고 놀라지 마시라
케빈 마이클 코널리 지음, 황경신 옮김 / 달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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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토다케 히로타다,  닉 부이치치.  이 책의 저자 케빈 마이클 코널리 역시 그들과 같은 장애인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오토다케와 닉은 사지 모두 없는 반면 케빈은 양팔이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큰 장애가 있지만, 긍정적이며 일반인들과 다르지 않게 살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이 책 <나를 보고 놀라지 마시라>는 표제처럼 장애인인 케빈을 보며 놀라는 세계인들의 모습이 담겨있다.  처음엔 책 속 곳곳에 사진이 무엇인가 했는데 케빈이 자신을 쳐다보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의 발인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가며 그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찍은 사진이란다.  사진 속 인물들의 표정은 비슷하다.  그 누구도 웃지 않으며 약간 놀란 듯한 혹은 힐끔거리는 또 혐오감을 느끼는 표정들.  하루에도 몇 십 번 누군가로 하여금 그런 시선을 받는 케빈은 어떨까?  또한 그의 높이에서 바라본 모습들은 일찍이 내가 보지 못한 세상이었다.  땅과 가깝고 수많은 무릎들에 둘러싸인 세상.  

  케빈은 자신의 출생 당시의 상황부터 차분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아이를 갖고 그 과정에서 어떤 장애의 가능성도 발견하지 못한 채 출산한 아이었는데 두 다리가 없다는 사실은 너무나도 끔찍한 현실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장애를 극복하고 누구보다 삶을 긍정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면 그들에게는 부러우리만치 좋은 가족들이 있다.  지독하게 개성있는 생김새로 태어났다고 말해주는 사람들.  남들과 다를 뿐 틀린 것은 아니라는 격려.  케빈에게도 그랬다.   

  이 책과 오토다케 히로타다의 <오체 불만족>을 읽으면서도 느낀 일인데 각 나라의 장애인을 위한 복지 상태를 알 수는 없지만 최소한 우리나라보다는 낫다는 생각을 매번 하게 된다.  오토다케 히로타다 역시 사지가 없지만, 수영을 할 수도 있다.  만약 우리나라의 수영장 어느 곳에 사지가 없는 장애인이 입장하려 한다면 모든 과정이 일반인의 그것과 같이 순조로울까?  모르긴 몰라도 방송국의 카메라를 대동하지 않고라면 힘들지 않을까 싶다.  마찬가지로 케빈은 스키 대회에서도 수상한 적이 있는데 다리가 없는 자가 우리나라 스키장에 가서 스키를 타겠다고 한다면 쉽게 허락할까?  모두 같은 뜻으로 거절할 것이다.  '위험할 수 있어요'  또 한 마디는 속으로 삼킬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거부감을 느낄 수 있어요'  그러나 이들에게는 이런 스포츠를 지원해주고 지도해주는 코치들이 있었다.  나는 이것이 몹시 부러웠다.  비록 내가 장애인은 아니지만, 만약 내가 장애인이라면 이런 것은 엄두도 내지 못함은 물론 누가 볼세라 칩거하며 지냈을 것이다.  

  그들은 모든 것을 스스로 판단하기 전인 아기 때부터 부모로 부터 '넌 할 수 있어' 라는 메시지를 받으며 성장했을 것이다.  실제로 이 책에서는 폭우로 부엌이 물에 잠겼다는 말에 케빈의 엄마는 "괜찮아.  집이 몽땅 잠긴 것도 아닌데 뭐"(p.12) 라고 말했다고 한다.  케빈의 어머니의 이런 낙관적인 성향이 양육과정에도 분명 중요하게 작용을 했을 것이다.  그렇기에 망설임과 주저함이 없는 것이다.  그리고 케빈의 삶은 비장애인과 다를 것이 하나도 없었다.  그는 사랑을 하기도 하고 여행을 할 수도 있었다.  그들이 할 수 없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어느 누구도 할 수 없는 것일 것이다.  케빈의 가슴 아프고 애틋한 사랑의 이야기에는 내 마음마저 아련해왔다.  그리고 그의 스케이트보드 아래에는 '다리가 없는 사람의 스케이트보드입니다.  훔쳐가지 마세요" 라고 적어두었단다.  이 역시 그동안 그가 얼마나 많은 스케이트보드를 도둑맞았으며 그로 인해 난감한 상황들을 많이 만났음을 뜻한다.

  케빈이 가장 분노했던 대목은 자신에게 적선하는 자들에게 있었다는 것은 주목해야 할 점이다.  비장애인은 장애인을 보면 안타깝고 측은한 마음을 갖게 된다.  그리고 금전적으로 도움을 주거나 그들에게는 비장애인에게 보다 더 편하고 수월한 과정을 제공한다.  그런데 케빈은 그들에게 화를 내고 있었다.  그는 장애를 가진 것이 동정받아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신체가 다를 뿐인데 건강한 신체를 갖지 않은 이들을 무조건 동정하고 특별한 시선을 보내는 일이 그들에게는 무관심만큼이나 상처가 되는 것을 똑똑히 보았다.  그들에게 선행한답시고 그들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불손한 행동은 조심해야 할 것 같다.  

  케빈은 장애인이 아니다.  도리어 사지가 멀쩡하지만 스스로 아무것도 못한다고 최면을 거는 자가 진짜 장애인 아닐까.  케빈에게 메일을 보냈다. '나는 당신을 동정하지 않아요. 왜냐하면 당신과 우리는 같기 때문이예요.  누구도 완벽하게 행복한 사람은 없어요.  그러나 우리는 지금 행복하잖아요.  당신은 여행 마니아 같은데 기회가 되면 한국에도 놀러오세요' 라고.  그 어디선가 책에서 만난 모습 그대로 스케이트보드에 몸을 얹고 자유롭고 거리를 활보하고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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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신의 머리일까?
차무진 지음 / 끌레마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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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뭐니 뭐니해도 여름에는 추리소설 하나쯤은 읽어줄 필요가 있다.  추리소설의 매력은 바로 강한 흡입력이 아닐까?  더위도 못느낄 흡입력 때문에 여름이면 추리소설이 활개를 치는 듯 하다.  <김유신의 머리일까?> 역시 추리소설인데 처음 본 순간 음산한 표지가 왠지 마음에 들었다. (표지는 사실 내용과는 관계가 없는 듯하다)  그리고 '김유신'이라는 역사적 인물을 추리소설의 소재로 썼다는 것이 신선하게 느껴졌다. 

   이야기의 첫 머리에 등장하는 김교수.  왠지 평범한 여자같지 않았던 김교수.  나는 당연히 김교수를 이야기의 핵심 인물로 짐작했다.  그러나 이야기는 다른 곳에서 풀리게 되었다.  김법민과 겐지, 후즈키 등 꽤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이 많은 등장인물이 처음에는 다소 혼란스러웠다.  많은 등장인물이 있는만큼 사건의 열쇠를 쥐고 있는 자를 짐작하기가 힘들었다.  좀 더 자세히 말하면, 어떤 자에게 둔 혐의가 곧 또 다른 자에게 넘어갔고 또 다른 자에게 둔 혐의는 또 새로운 인물에게 넘어가곤 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우리나라 최고 문화유적지인 경주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한 봉문에서 아직 비누화가 되지 않은 참수된 머리뿐인 미라를 발견하게 되고 사건이 펼쳐진다.  '과연 이 머리가 누구의 것인가?' 하는 것이 이 소설의 시작이다.  그런데 이 소설은 그 이상의 흥미를 자아내기 위해 기괴한 사건이 일어나는 김법민의 집을 등장시켰다.  이들의 가문에 일어나는 끔찍한 사건들.  개인적으로는 이 부분에 가장 몰입했던 것 같다.  그러면서 끝을 향해 달려가는 반전에 반전들.  정말 흥미진진했다. 

  추리소설이이라는 특성상 많은 이야기를 하는 것은 다른 독자를 위해서 좋을 것 같지 않기에 긴 얘기는 하지 않으련다.  이 소설은 차무진씨의 데뷔소설이란다.  게임 제작자이던 저자가 일을 관두고 집필한 소설이다.  그런만큼 역사적 사실을 차치하고라도 굉장히 많은 공부 끝에 쓴 소설이라는 점과 공을 들여 썼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많은 등장인물을 약간 간소화했다면 더욱 깔끔하게 몰입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개인적인 아쉬움이 남는다.   

  이 책에는 '삼국유사'가 등장하고 현실의 공간과 역사적인 인물이 등장한다.  그렇기에 독자는 사실과 허구를 혼동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이에 저자는 작가의 말에서 '존재하는 김인문 장군과 김유신 장군의 후손들, 그리고 그들의 행적은 이 소설 속의 내용과는 전혀 무관함을 밝힌다(p.451)' 라고 밝혔다.  혹시 있을 유족들의 반발이나 독자들의 이야기 속 진위여부에 대한 논란을 미연에 방지하고자 한 게 아닐까 싶다.  이런 소설을 만날때면 모두 허구라고 치부해버리는 편이 낫다.  이것이 오해를 차단하기에 가장 확실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단순히 미치광이 살인마로 인해 이어지는 살인사건들과 범인 추격하는 추리소설이 아니다.  우리나라의 역사적인 인물들이 등장하고 '삼국유사'등 그러한 배경을 펼치고 또한 이것들을 연구하는 역사학자들로 인해 더욱 지적인 이야기가 탄생된 것 같다.  앞으로 이 작가의 소설들이 줄이어 탄생되기를 고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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