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선물 상수리 그림책방 4
김윤정 글.그림 / 상수리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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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직장 동료가 서점에서 몇 권의 책을 사왔다며 꺼내어놓은 책들 중 이 책이 있었다. 내가 '엄마' 라 그런가? '엄마' 라는 단어를 보면 반사적으로 끌린다. 게다가 꽤 두껍다. 뭐지? 
 
  "그 책 좀 봐도 되요?" 어머! 책을 펴고 깜짝 놀랐다. 그리고 놀람이 가시기도 전에 감동이 밀어닥쳤다. 황급히(내가 그 자리에서 이 책의 감동을 죄다 맛보는 것은 너무나도 아쉬운 일이라 그 감동의 쓰나미는 내것이 된 책 앞에서 맞겠노라!) 내려놓으며 생각했다. '사야 돼!!' 퇴근하고 바로 주문했다.  
 
  도착했다. 그림책을 읽고 서평을 쓰는 건 어찌보면 맘이 참 편치 않다. 하루에도 수 권의 그림책을 읽는데 걔네들을 다 독후감을 쓸 수 없을 뿐더러(제대로 안할 거면 아예 안함. 성격이 좀....^^;;;) 이상하게 글밥이 적은 책의 경우는 노력없이 읽은 것 같아 읽은 책으로 카운트하는게 썩 내키지 않는다. 독서가 고행도 아닌데 왜 이러실까 ㅋ 글밥 적은 그림책은 책 아닌가? 기타 등등 여러 생각이 들었고 나는 지금 이렇게 이 책의 감상을 끼적이고 있다. 
 
  이 책이 도착하자마자 H를 무릎에 앉히고 소리내어 읽어주었다. 눈물이 줄줄. 덩달아 H도 내 목을 안고 운다. H는 내가 울어서 울었는지 모르겠지만 난 너무 감동해서 울었다. 책의 스토리는 일반적이나 구성과 디자인과 편집이.... 글의 감동을 배가시킨다. 이 책은 이제 막 엄마의 삶을 시작한 이에게 선물하기 딱 좋은 책이다. 지금 당장 선물할 이도 없는데 주변에 누구 줘야할 사람이 없나를 억지로 떠올려보려 했다.  
 
  비닐포장이 되어있는 책인데 꼭 비닐포장 해야되는 책이다. 아닌가? 안을 펼쳐봐야 구매률이 높아지는 책일까? 여하튼 이 책은 책장이 승부를 거는 디자인이라 비닐 봉인에 동의한다. 전연령 좋은 책이다. 한 6~7세부터 성인까지. 
 
  남편이 퇴근해 와서 옷을 벗기도 전에 쫄랑쫄랑 그 앞을 맴돈다. "내가 그림책 읽어줄게." 이 책은 간직하고 싶은 책이다. 모서리라도 찍힐새라 아이들 손 닿지 않는 곳에 올려놓는 책이다. 그리고 내 아이들이 입학을 할 때나, 졸업을 할 때나, 취업을 할 때나, 결혼을 할 때나, 출산을 할 때. 그때 내주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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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탄생 - 대한민국에서 엄마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대한민국을 생각한다 20
안미선.김보성.김향수 지음 / 오월의봄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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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이리 고민없이 쉽게 사보기는 흔치 않은 일인 것 같다. 그리고 이렇게 단시간에 읽기는 최근들어 또 처음인 것 같다. 또 울면서 산 책은 이 책이 처음이다. 이건 또 뭔소리? 

이 책은 육아스트레스로 뚜껑이 이미 열렸고 스팀이 막 뿜어나오던 어느날 읽었다. 그러다 애들을 재우고 혼자 울면서 육아스트레스에 관련되는 몇 개의 키워드를 포털사이트 검색창에 입력했고 그러다 이 책에 관한 홍보글을 접하게 됐다. (근데 나는 무슨 일로 그토록 격앙되었던지 도무지 기억이 안난다. 지나고보면 중요치 않을 그런 사건이었는 듯. 에고. 참을성이 없는지고) 그리고 온라인 서점을 열고 이 책을 바로 샀다.

그런데 단연 올해들어 읽은 책 중 최고다! 아니 내 평생을 통틀어서도 아주 인상적인 책이다. 아까워하며 읽었다. 이 책의 통찰력에, 문제제기에 책 장이 넘어가는 것을 아까워하면서. 마리오네뜨같이 줄에 몸을 맡긴채 육아중인 의식 잃은 엄마들의 모습에 나를 돌아보았다. 꽤 소신있게 육아한다고 믿는 나 역시 현시대의 모성 이데올로기에 젖어있었다. 

이 책의 통찰력 뿐 아니라 그 진솔함은 단연 으뜸이다. 어쩜 이리 가식을 벗었어. 어쩜 이리 발가벗고 앉았는지. 이 책 자체가 한 편의 논문이다. 방법으로 보자면 질적연구고 어떤 집단을 장악하고 있는 신념이나 인식 따위를 발견하기 위해 인터뷰라는 형식을 채용한 하나의 연구로 보아도 부족함이 없다. 그리고 그 내용을 분석하고, 해석하여 사족을 단. (내 석사학위 논문과 같은 형식이라서 좀 안다요~ 히힛) 참여자들의 육아를 그대로 엿볼 수 있는 면담자료들은 진짜였다. 소위 '전투육아' 라고 부를 수 밖에 없는 그 처절함과 피냄새가 너무나도 익숙했다. 큰 위로가 되었다. 나만 이렇지 않다는 것, 그 평범함의 대열 속에 내가 있다는 안도감은 정말이지 한 바가지의 눈물만한 위로가 되었다.

우리는 누구나 자신의 모성없음을 들키고 싶어하지 않는다. '난 어린애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얘들때문에 내 인생이 망가진 것 같아요', '육아가 지긋지긋해요' 하는 식의 고백은 절대 금기다. 그는 고로 '나는 모성 없는 에미랍니다' 하는 고백으로 치부되기 때문이다. 결국은 본인을 다 털어놓고 내보일 빈틈을 육아에서는 주지 않는다는 거다. 그래야 내가 남들에게 좋은 엄마로 보여질테니까. 그라나 애들을 키우는 엄마라면 누구나 '내가 이 정도밖에 안되는 인간이었구나' 하는 생각을 한 번쯤 해보았을 거고 자신의 육아 무능력과 조용히 독대하며 '참 육아 이거 내 체질에 안맞네' 해 본 일이 있을게다. 난 있다!

이렇게 모성을 강조하는 사회, 좋은 엄마를 기대하는 패러다임은 엄마들에게 죄책감 한 보따리 싸매놓은 짐이 되고있다. 모유를 못먹여서 죄인이 되고, 이유식을 사먹였으니 게을러 빠졌고, 직장을 다니는 엄마라 '무한미안' 이고, 전업주부 집꼬라지가 이 지경이니 무능력자고, 집에 있으면서 어린이집 보냈으니 이기적인 인간이고, 세 살까지 못키웠으니 결핍이 있지 싶어 불안하고. 이 밖에도 육아는, 엄마는 늘 최고, 최상, 완전, 온전해야만 한다고 말한다. 심지어는 아군인 엄마들의 입으로부터.

이 책은 이런 육아의 노동과 모성 이데올로기 또 좋은 엄마 컴플렉스를 벗어던질 그 어떤 뾰족한 대안을 제시하고 있지는 않다. 단지, 그 누구도 말하지 않는 현실을 내보임으로 위로와 공감을 안겨준다. (아고~ 포근하여라.) 또 나를 마리오네뜨처럼 움직이게 하는 줄을 발견하게 한다. 이 줄을 자를 것이냐의 선택은 개개인 독자의 몫이겠지.니 애, 내 애 애들이 다 다르고 각자 상황이 각기 다르니.

진짜 할 말이 무지하게 많다. 이렇게 훌륭한 책이 그저 잠잠히 숨어있음이 안타깝다. 이 책의 독자는 대부분 엄마와 소수의 가정학자, 사회학자, 여성학자정도일 것이다. 일단 엄마노릇에 대한 사회적 패러다임은 간절히 알고싶은 주제가 아니다. 또 예상되는 독자집단이 제한적이고 비전문가를 확률이 높다. 그렇다보니 사회적으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키기는 역부족이다. 경제학 서적이라면 경제학 교수라던가 이 분야의 전문지식층이 읽을 것이고 학생들에게 권하거나 세미나 등 공식석상에서 언급할 기회들이 있겠지. 그러나 엄마에 관한 이 책은 읽고 입소문 낼 엄마도 드물 것이고, 그중에서 나처럼 서평을 쓸 독자는 더 드물 것이고, 게다가 육아 실전에 도움이 되는 '육아법' 이 아닌지라 똘똘한 엄마들에게도 외면당하기 쉬운 위치에 있어 파급력이 낮으리라 본다. 그리고 표제가 너무 재미없다. 심심해. 아쉬운 일이다.

나에게는 그 어떤 육아서들보다 앞으로의 육아의 강을 건너는데 더 큰 부력이 되어줄 것 같다. 나를 힘들게 하는 것들은 나의 못남에서 기인하기도 하지만 이 사회가 짐지워둔 잘못된 현상으로인해서이기도 하다고 생각하니 조금이나마 가벼웠다. 그리고 우리에게 사회가 강요하는 어머니상과 좋은 엄마상은 우리에게 걸맞지 않거나 무리할 수도 있는 것이기에 그에 도달하기 위한 번뇌는 전과 같이 맹렬하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도 들었고 말이다. 엄마를 늘 죄인되게 하는 모성 이데올로기와 모성신화, 좋은 엄마 컴플렉스 현상들에 힘겨운 싸움을 하고 기어코 승리도 이끌지 않아도 되겠다는 해방감을 느꼈다.

정말이지 수준있고 독창성이고 유니크한 시각으로 접근한 책이었다. 세 저자의 논리과 저술의 유창함 또한 즐거웠다. 우연히 검색해서 급하게 선택하고 읽게 된 책에게서 받은 것치고는 아주 강한 인상을 받았다. 재미있는 책이었다. 어떤 책을 읽고 '강추' 를 붙이는 서평은 매력없지만, 이 책은 강추다. 적어도 나에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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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이 아이에게 말을 걸다 - 스스로 성장하는 아이로 키우는 음악 속 숨은 감성 찾기
김대진 지음, 국지연 엮음 / 웅진리빙하우스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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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수원시향 상임지휘자이신 김대진씨의 저서다. 큰 아이를 가지고 얼마되지 않아 수원시향 정기음악회에 갔었고 그때 그분을 뵀다. 그냥 음악서적이라면 지나쳤을텐데 아이에게 음악을 어떻게 들려줄 것인지, 내 아이의 음악 감성을 발현하는 법, 일상에서 음악을 대하는 법을 담고 있는 책이라 읽기로 했다.

  내가 클래식을 제대로(?) 들은건 중학교 2학년때다. 그 여름 방학 숙제 중 하나는 클래식 몇 십곡을 듣고 음악감상문을 적는 것이었다. 베토벤은 귀가 안들렸고, 브람스는 수염이 덥수룩하고, 비발디 하면 사계고, 슈베르트는 어쩐지 달팽이를 닮았다는 것이 내가 느끼는 클래식의 전부였다. 그래도 나는 성실한 학생이었기에 숙제를 하기로 했다. 제대로 된 클래식 음반이 없었기에 라디오 클래식 음악방송을 듣고 감상문을 쓰기로 했다. 근데 DJ가 부르는 곡의 제목 조차 받아적기 힘들었다. 뭐라는 거야? 뭔 메이저 몇 번 몇 악장이라고? 그냥 손 놨다.

  개학이 다가오고 초조해졌다. 결국 레코드점에 가서 클래식 소품 제목을 작곡가와 함께 죽 베껴오기로. 그리고 제목에 맞춰 작문(?)을 시작했다. 'G선상의 아리아를 들으니 이 곡을 배 위에서 들어보고 싶다는 생각과 물결이 찰랑이는 느낌, 수면 위에 반사되는 빛으로 인해 어지러운 느낌이었고 뒤로 갈수록....' 엉터리 글짓기를 했고 숙제를 마쳤다.

  개학을 하고 음악선생님이 잔뜩 실망한 표정으로 교실에 들어오셨다. 요지는 '숙제를 제대로 한 놈이 없다. 손민정! 나와서 니 공책 찾아. 읽어' 벌벌 떨렸다. '읽어라' 는 표정없는 말씀에 겨우 읽었다. 그런데, '정말 음악을 듣고 쓴 애는 민정이 뿐이었다. 음악감상이란 이런거야' 라는게 아닌가? 베스트 오브 뜬금없음? 이런거. 나는 종일 양심에 찔려서 점심시간에도 밥이 안넘어갔다. 그런 일이 벌어졌다는 사실을 견딜 수 없었기에 진짜 그 곡들을 다 듣기로 했다.

  그게 내가 클래식을 접한 처음이다. 이상하게 음악은 나를 위로해줬고 내 양심의 잔털들을 뽑아주었고 마침내 내 마음은 뽀송뽀송해졌다. 음악을 들으며 읽어본 내 감상문은 정말이지 훌륭했다. 울었던 것 같기도 하다. 풉;;; 그때부터 일부러 찾아 들었던 것 같다. 급기야 그해 겨울, 예술의 전당을 처음 가봤고 눈 앞에서 움직이는 악기를 보며 연주를 들었다.

  지금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악의 장르는 클래식이다. 클래식은 내 영리한(?) 학창시절을 위한 면죄부였다. 나를 진정 해방시켰던 경험과 기억이 나를 계속 붙들어 맸다. 클래식은 자유로왔다. 내 마음대로 느끼면 되고 결코 정형화된 감성을 주지 않았다. 그리고 성인이 되면서부터는 마리아칼라스의 아리아를 우연히 듣게된 것을 계기로 지금은 오페라를 가장 좋아한다. 노래와 연주와 시와 연기가 어우러진 종합 예술은 바로 오페라라고 나는 생각한다.

  쓰잘데기 없는 얘기를 진지하고 길게 하는 고약한 버릇이 있다. 이 글도 그렇네만, 내가 하고픈 말은 클래식은 어떤 기회건 먼저 접선을 하고 은밀한 악수를 나누고나면 그걸로 벗이 되는 묘한 친구다. 그러니 그냥 다가가면 아무나 만나주는 소위말해, '쫌 쉬운 애'다. 이 책도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다. 많은 이야기가 있지만 요약해보자면 이렇다. 음악이 아이에게 친숙해지게, 아이가 좋아하게, 강요하지 않고 기다려주며 들려주기. 자발성이 동반된 감상이 이루어지면 게임 끝!

  나는 아이에게 일부러 음악을 가르치고 싶지는 않다. 음악을 전공하길 원치도 않는다. 단 하나 바라는 것이 있다면 시대를 흘러온 고전 음악이 주는 풍요롭고 입체적인 감동을 즐기며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 정말이지 맛있어서 혼자 먹기 아까워서 네 입에 한 입 떠넣어 주고 싶은. 그리고 이왕이면 나와 함께 먹어주며 자라줬으면 싶은. ^^ 음악은 삶에서 공기처럼 존재해야 한다. 틔지않게, 넌즈시. 곁에 두다 보면 언젠가 내 아이의 어깨를 톡톡 치며 말을 걸겠지. "얘, 나랑 이야기 좀 할래?" 그 대화를 즐거워하며 사는 삶. 그런 축복이 내 아이들에게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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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사랑하는 데 남은 시간 - 긴 여행을 떠날 준비를 하는 엄마가 딸에게 전하는 편지
테레닌 아키코 지음, 한성례 옮김 / 이덴슬리벨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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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테레닌 아키코의 <너를 사랑하는 데 남은 시간(2011, 이덴슬리벨)> 읽었다. 임신 중 암을 발견하고 태아와 치료의 기로에 서서 임신을 좀 더 유지하다 제왕절개로 조산 후 투병을 한 일본인 여자의 에세이다. 그러나 암은 더 진행되고 시한부 인생을 살다 저자는 결국 세상을 떠났다.

  그녀의 투병일지와 자신의 숨이 다해감을 느끼고 딸 아이에게 전하는 메세지들이 담겼다. 러시아인 아빠와의 만남과 결혼, 임신. 그리고 딸 유리치카를 위해 해주고 싶은 말들을 한 번에 쏟아놓은 책이다. ‘실수를 두려워하지 말라’, ‘신경쓸 가치가 없는 일은 철저히 무시하라’, ‘돈을 쓰는 것에 대해’, '친구', ‘멋 부리기’, ‘다이어트와 식습관’, ‘생리와 몸의 변화’, ‘사랑’, ‘섹스’ 등에 대해 어린 딸에게 글로 남겼다.


  효린이를 가졌을때 진짜 죽고 싶을만치, 정말 실신할 지경에 이를 정도의 고통이 십여차례 왔는데 그때 생각이 났다. 분만 후 알아보니, 임신으로 인해 난소에 혹이 생겼는데 그게 수십번 터지고 아물고를 계속 반복했었고 쇼크가 올 수도 있었을 정도의 극심한 통증이라고. 뱃속 효린이 때문에 초음파로는 관찰되지 않았었다. 급기야, 분만 하루 전에는 복강내로 피가 고이기까지. 가만 생각하니, 그 고통 겪고 예린이를 또 가졌다니 ㅋ 그때 생각이 나서 힘들었다. 근데 그게 아키코처럼 분만으로 종결되는 고통이 아니었다면.

  내 아이를 낳고 세상을 떠날 준비를 하는 엄마, 그 엄마가 그토록 살고 싶어하는 것을 보면서 정말 가슴이 아팠다. 그리고 여느 엄마들은 살아가며 가르치고 이야기 할 것들을 한꺼번에 쏟아놓을 수 밖에 없는 젊은 엄마의 마음은 어땠을까. 휴우.

  내가 남편과 내 아이들을 놓고 먼저 떠나야 한다면. 남은 시간을 제 정신으로 살 수 있을까? 얼마나 살고 싶을까? 내 아이들이 크는 모습을 보고 싶고 함께 하고 싶어서. 그리 생각하니 지금 이 한 시간이 귀하고 오늘 하루가 보석이다. 살고 죽는건 사람의 영역이 아닌것 같다. 나에게 남편과 효린이와 예린이를 사랑하는데 남은 시간을 얼마일까? 더 사랑하며 더 아끼며 더 포옹하며 살아야지.

  슬픈 책! 저자의 삶에 대한 애착과 몸부름 앞에 할 수 있는게 없어 초조해지는 책이었다. 유리치카, 네 엄마는 널 죽기까지 사랑하셨더구나! 니가 있는 그 곳에서 엄마처럼 강한 정신력을 가진 여자로 자라가고 있기를, 그리고 아빠 레니에게도 축복이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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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작은 인생은 어린이집에서 시작된다 - 전직 어린이집 교사가 작정하고 털어놓은 아이들의 숨겨진 사생활
최경애 지음 / 포북(for book)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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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년 7월 4일은 우리 아이의 27개월째 인생이 막 시작되던 때, 처음으로 어린이집에 간 날이다. 사실 그간 나는 어린이집에 대한 불신이 컸다. 또 36개월 미만의 영아의 경우, 어린이집은 불가피한 사유가 있는 아이들만 이용해야 할 최후의 보루였다. 이를테면, 맞벌이 부부라거나 아이를 종일 돌볼 수 없는 건강상의 문제가 생긴 경우라거나. 난 오래전부터 '절대 36개월 이전에는 어린이집을 보내지 않겠노라' 했었다. 그런데 내 아이가 지금 어린이집을 다니고 있다. 어떻게 된 일일까?

 

 첫째가 18개월이 되던 때, 나는 둘째를 가졌다. 그때까지만 해도 임신초기라 좀 피곤하기는 했지만 나의 육체적 고단함으로 인해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거나 내 손을 벗어난 곳에 잠시라도 둘 생각 따위는 하지 못했다. 그런데 첫째가 두돌이 지나고 나는 드디어 위기에 봉착했다. 임신으로 인한 신체의 변화 뿐만 아니라 그 시기 아이의 발달 과정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받아주기에 힘겨워지기 시작했고 그 모든 욕구를 즉각 채워주기에 몹시 힘에 부쳤다. "혼자 좀 하면 안될까?", "엄마, 누워서 보고 있을게. 그래도 되지?", "잠깐만 기다려줘", "밖에를 또 나가자고?", "놀고나서는 바로 바로 치우면 안되니?", "이것만 다하고 놀아줄게", "조금만 쉴게" 이렇듯, 아이의 욕구는 보류되고 우리는 같은 공간에서 머물고 있을 뿐, 아이는 즐겁고 신나지 않았다. 나 역시 가사를 하고 그림책을 읽어주고 아이와 놀아주었지만 즐겁고 신나지 않았다. 그저 쉬고 싶었다. 졸음이 올 때 자고 싶고, 집안이 더러운 꼴을 못보겠으며 입덧은 오래토록 나를 괴롭혔다. 나는 아이가 두 돌전까지는 '육아는 내 취미'라 할 만큼 아이를 양육하는 일이 즐거웠던데 둘째를 갖고나서 부터는 내 몸 힘든데 장사가 없었다. 점점 아이에게 짜증이 늘어갔고 아이도 울거나 떼를 쓰는 일이 많아졌다. 그래도 내 고집은 완강했다. '그래도 절대 36개월 이전에는 어린이집을 보내지 않을테야. 부모만한 타인은 절대 있을 수가 없어. 이 고행의 시간이 보람이 될 날이 올거야, 참자' 하루 하루 참으며 도를 닦는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김수연 박사의 글을 읽었다. '생후 36개월 이전엔 엄마가 양육하라는 말은 체력적으로 건강하고 정서적으로 안정적이어서 아이의 욕구에 예민하고 감정적인 변화를 많이 보이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이 주 양육자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야 한다' '아니, 이건 무슨 소리지? 내가 알던 모든 육아 상식에서는 36개월 이전까지는 무조건 엄마가 키우라던데?' 그러면서 체력적으로 아이의 욕구에 기민하게 받아들여 줄 수 없고 감정기복이 심해진 임신이라는 기간에 나와 아이가 한 공간에서 지지고 볶고 하며 36개월을 채운들 이 기간이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이건 서로에게 좋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라리 어린이집을 가는 것이 아이에게 나을까?'

 

  오랜 고민 끝에 결정이 섰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기로. '그래, 활동적이고 충분히 놀고 싶어하는 아이에게 어린이집은 맘껏 놀 수 있기도 할 것이고 친구들과 선생님과의 새로운 관계는 나바라기인 아이에게 좀 더 여유를 갖게 할 거야. 또 나도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있는 동안 반찬도 만들고 집안 정리도 하고 그러고나서 잘 놀다온 아이를 몸과 마음으로 환영해주면 이게 더 좋을지도 몰라. 둘째가 태어나고 보내느니 보내려고 한다면 지금 보내는 것이 더 좋을거야' 몇 군데 어린이집을 방문해 보았는데 나는 줄곧 '사람'만 보겠노라 했다. 교사, 원장님. '나도 내 아이 돌보기가 힘겨워 어린이집에 도움을 받기로 한건데 피 한방울 안 섞인 교사들은 어떨까? 혹여 아이를 미워하면 어쩌지?' 하는 생각이 늘 머릿속에 가득했다. 매스컴에서 연일 보도되는 내용만 봐도 아이들을 무자비 하게 대하는 교사의 모습만이 보였다(물론 그는 일부겠지만). 그런데 세 번째 방문한 원에서 원장님과 선생님을 뵙는 순간, '아, 여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상담을 갔던 첫 날 아이는 교실에서 선생님과 짧은 시간을 지내며 즐거워 했다. 다른 곳은 가지 않겠다고 했지만 그 곳은 간다는 것이었다. 그길로 등록을 하고 그 다음날부터 아이를 보냈다.

 

  '울고 야단이 나겠지?', '다들 적응기간에는 눈물콧물 흘린다는데.... 마음 강하게 먹자' 그런데 아이는 생각보다 잘 갔고 등원길에 우는 일은 없었다. 물론 활동을 하며 중간중간 엄마 생각이 나서 우는 일이 있다고. 그러나 사람이 참 그런 것이 내 눈 앞에서 우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니 의외로 견딜만했다. 그리고 아이는 곧 어린이집을 즐거워 했고 사흘째 되던 날부터는 점심식사를 하고 귀가를 했고 그 다음주부터는 낮잠을 자고 하원을 했다. 선생님께서도 아이가 잘 적응중이라고 하였고 내가 보았을 때도 그랬다.

 

  사실 어린이집을 보내고 나는 천국이 열리는 것 같았다. 아이를 내게서 떼놓고 혼자 있는 시간이 즐거워 천국이라는 것이 아니라 귀가 후 아이와 나의 생활이 천국이었다. 나는 아이에게 '기다려 달라'거나 '혼자 놀라'거나 '좀 쉬자'는 말은 하지 않게 되었다. 반찬을 정성껏 만들 시간도 있었고 집안을 깨끗이 정리정돈할 시간도 주어졌다. 아이가 어린이집에 간 동안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었기에 나는 아이의 기다림과 인내와 포기를 요구하지 않아도 되게 되었다. 그리고 어린이집 하원 후에는 오로지 이 아이에게만 집중할 수 있었다. '아, 어린이집이 그렇게 못 보낼 곳은 아니구나' 물론 아이를 학대하는 곳이나 원아를 돈으로만 여기는 기관은 절대 필요악이겠지만 '아이가 즐거워하고 온정적인 교사가 있는 곳이라면 엄마와의 24시간보다 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나는 초보 학부모의 생활이 시작된 찰나, 이 책을 발견했다. (오늘은 서두가 굉장히 길었다. 그래도 뭐 너무 뭐라하지 말기를. 책을 읽고 그에 얽힌 내 이야기나 떠오르는 것들을 구구절절 끼적이는 것이, 이런 난잡한 서평이 내 스타일이니까. 후훗) 정말 꼭 읽고 싶은 책이었다. 간혹 아이의 식사 모습이나 활동사진을 볼 수 있었지만, 뭘 하며 지내는지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했고, 전직 어린이집 교사라는 저자가 들려줄 이야기가 몹시 궁금했다. 전직 어린이집 교사가 '작정하고 털어놓는' 아이의 숨겨진 사생활, 아이 몸에 몰래카메라 한 대 숨겨서 보내고 싶은 심정이예요, 지금 어린이집에서 일어나는 놀라운 일들.... 책 표지에는 내 호기심을 자극하는 문구들이 그득했다. 그래, 이 책이야. 이 책을 봐야겠어.

 

  그렇게 이 책을 펼쳤다. 그런데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조금 실망했다. 나는 어린이집에 대한 적나라한 이야기가 담겨있길 기대했고 책의 표지에서처럼 도발적이거나 은밀한 어떤 내용이 있기를 원했다. 이를테면, 어린이집 교사가 들려주는 아이의 등원 거부나 부적응에 대한 부모의 조력에 대한 팁들, 월령 및 연령별 영아들에게 적합한 어린이집의 형태 안내, 또래관계에서 갈등이 생길 경우 부모의 처신, 어린이집 교사들이 좋아하는 간식, 견학이나 나들이시 아이들에게 좋은 간식과 포장 방법 등등. 아무도 알려주지 않는 그런 부분에 대한 코칭이 담겨있길 기대했다. 

 

  그런데 이 책은 아이들의 순수함과 아이다움 그리고 그것을 지켜주고 살려주며 즐겁게 생활하고 있는 한 교사의 리포트일 뿐이었다. 또 대상 유아들의 연령이 어린이집 뿐 아니라 유치원에 다닐 수도 있는 연령의 큰 아이들이라 아이를 처음 어린이집에 막 보내며 불안해하고 염려가 가득한 엄마들을 겨냥한 책은 아니었다. 그냥 '우리 아이들이 어린이집에서 이렇게 지내고 있구나' 하고 이해가 필요하거나 '즐겁게 지내는구나', '이 분 좋은 선생님이시네' 정도를 느끼게 할 내용들이었다. 엄마를 떨어져 낮잠을 자야하고 어린이집 생활을 조리있게 부모에게 전달하고 의사를 표현할 수 없는 시기의 그런 어린 영아들의 모습이 담겨있질 않아 아쉬웠다. 이 책의 표제인 '어린이집'에 설사 '유치원'을 넣는다 하더라도 들어맞는다. 이건 어쩌면 어린이집이라는 기관의 특수성(유치원과 수용 연령의 교집합 공간이 없는 어린 영아를 보육하는 국가수준의 유아교육기관이라는) 을 잘 살리지 못한 내용이라는 다른 의미도 된다.

 

  아니, 표지에서 말하던 다소 도발적인 당돌함은 어디 간거지? 아이와 행복하고 교사와 즐겁고 그 안에서 사랑을 나누는 어린이집이라는 공간의 모습은 너무 포근하게 그려졌지만, 이 곳은 내 아이가 다니는 어린이집이 아니고, 이 교사는 내 아이의 교사가 아니다. 그냥 어깨너머 바라보는 한 어린이집 교사의 즐거운 수기와 같았다. 그리고 'Worst 엄마 & Best 엄마', 'Worst 교사 & Best 교사' 의 순위에 나열된 대상들의 특성은 진부하고 식상했다. 굳이 어린이집 교사의 말을 빌어 듣지 않아도 누구나가 다 짐작할 수 있을만한 특성들이었다. 그럴 것이라면 좀 더 객관적으로 몇 백명 정도의 교사와 엄마들에게 설문조사를 통해 Worst와 Best를 각각 뽑아보고 항목별 %를 명시했다면? 그렇지 않다면 좀 더 은밀하고 좀 더 녹록한 관찰이 녹아 있고 '어머', '아' 하는 감탄이나 놀람을 연발할 수 있는 참신한 내용일 수는 없었을까? 예를 들면, Worst 엄마는 아이는 늘 이도 닦지 않고 눈꼽 낀 얼굴로 등원하는데 모델 뺨치는 엄마, 항상 공주처럼 드레스에 치마에 요란한 장신구를 채워 보내는 엄마, 내 아이 외출때 발라달라며 선크림을 챙겨 보내는 엄마, 도시락통이나 수저 씻는 걸 자주 잊는 엄마.... Worst 교사는 생활기록수첩에 획일적인 내용만을 적는 교사, 아이가 다친 것을 모르는 교사, 늘 미니스커트만 입는 교사 등. Best는 뭐 요기까지만 하도록 하고. 

 

  간혹 내 서평은 책을 다시 쓰거나 컨셉을 다시 잡아보는 등 무례한 짓을 저자에게 하기도 한다. 어쩌면 이것은 나만의 사고의 확장의 방법이기도 하고 또 어찌보면 나의 삐딱함과 집요함이기도 하다. 책을 읽고 마냥 '좋다' 라는 생각만 들 수는 없는 것이고 '엄지를 치켜세우는 독자도 있고 엄지를 내리까는 독자도 있다. 그저 저자와 출판관계자 분들은 실망스런 독자의 반응에는 '이런 독자도 있고 저런 독자도 있지. 세상은 참으로 다양해. 난 그 다양한 인간들을 모두 만족시킬 수는 없어. 그러고 싶지도 않고~' 하며 다소 방관적이고 거만한 자세로 내 서평을 대해주면 참 좋겠다. 물론 이 책에 관심을 갖는 또다른 예비독자들 역시 마찬가지. '아, 이 책 별로인가봐? 그럼 난 안 볼래' 가 아니라 '넌 그렇게 생각했어? 그럼 나도 한 번 보지. 보고나서 니 생각에 동의할 수 있는지 없는지 내가 판단해보지 뭐. 내가 니 말만 듣겠니?' 하는 자세가 꼭 필요하다고 본다. (오늘 서평은 참 쓰잘데기 없는 이야기들을 하고 있다. 그건 나도 안다구.)

 

  어찌되었건, 이 책에 녹아있는 아이의 순수함과 예쁜 미소, 그 아이들을 바라보는 교사의 따뜻한 시선과 행복함이 물씬 묻어나서 읽는 동안 흐뭇했다. 내가 기대(아, 나는 소위 말하는 기자 고발, 시사 르포. 이런 도발적이고 충격적인걸 기대했나봐;; 강한 자극에 찌들어 있는 내 피곤한 영혼의 반증이지 뭐. 쩝)한 책의 의도와는 다른 듯 했지만 즐겁게 읽었다. 또 디자인을 전공한 교사답게 책에 수록된 사진들은 감성적이고 저자의 감각이 느껴졌다. 끝으로, 그저 바라는 것이 있다면 우리 아이도 앞으로 이런 교사를 만나게 되어 맘껏 행복한 어린이집 생활을 할 수 있기를. 지금도 꽃잎반 교실에서 친구들과 선생님과 사랑나누고 있을 미소가득한 내 아이를 기대하며 난잡한 서평은 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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