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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출산
미셀 오당 지음, 장은주 옮김 / 명진출판사 / 2001년 8월
평점 :
절판
출산이 다가온다. 얼마나 남아야 비로소 다가온다고 할 수 있을까? 그렇다. 나는 두 달이나(?) 남았다. 그러나 분명 내게는 그날이 다가오고 있는 기분이고 틀림없이 다가오고 있다. 그런데 사실 기다려진다. 겁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이상하리만치 '잘해낼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에야 이렇게 말하지만 나 역시 출산이라는 것이 정말 무서웠고 두려웠고 내가 생각해낼 수 있는 가장 자연에 가까운 극한의 고통일 것으로 여겨졌던게 사실이다. 결혼 전, 임신 전까지만 해도 막연히 '나는 출산을 하다 죽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으니 말이다. 그런데 결혼을 하고 또 사랑하는 사람의 아이를 갖고, 그 아이의 존재를 느끼면서 참 많이 용감해진 것 같다.
아기를 갖고 이 아기가 내 사랑으로 느껴지니 한없이 신기하고 보고 싶고 어서 빨리(그렇지만 반드시 '때가 차서' 품에 안고 싶다. 여자에게 임신기간 10개월은 모성을 기르는 기간인가보다. 이 아이에 대한 사랑이 그토록 끔찍할 것이라고 생각되는 출산의 순간마저 내심 기다리게 하니 말이다.
임신을 하고 처음으로 산부인과라는 곳엘 갔다. 드라마에서처럼 "임신입니다. 축하합니다" 하는 등의 낭만적인 말은 하지 않았다. 산부인과에서 임신을 확인하고도 여전히 임신이 실감이 나지 않았다. 그러기에 내 배는 너무나도 납작했고 나는 지극히 전과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살이 좀 붙는가 싶기가 무섭게 속이 울렁대고 결국은 변기통을 부여잡고 토하지 않고는 안되는 구토가 잦아졌다. 병원 검진때의 아가의 심장소리, 움직임을 초음파로 보고 들을 수도 있었다. '아, 정말 내가 임신했구나' 내 몸에서 나의 것이 아닌 또 다른 하나의 심장이 뛰던 그 경이로움은 아마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임신을 하고 자연히 태아와 임신, 출산에 관한 책들을 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르봐이예 라는 사람을 알게 되었고 우리가 말하는 '르봐이예 분만(인권분만)'의 창시자가 바로 '프레드릭 르봐이예' 라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한 산부인과 의사의 블로그를 통해 이 책 미셸 오당의 <세상에서 가장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출산>을 알게 되었다. 2001년 출간된 책으로 내가 이 책을 찾기 시작한 때에는 이미 어느 곳이든 품절이었다. 다행히 운이 좋게도 헌책방에서 구할 수 있었다. 이 책을 어렵사리 구하고 내가 다니는 병원의 출산준비교실에서도 이 책을 추천하셨다.
'세상에서 가장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출산'은 뭘까? 그렇다. 자연분만이다. 그리고 이 책을 통해 자연분만의 참 의미를 알게 되었다. 나는 그간 자연분만이라는 것은 수술을 통하지 않고 산모가 산통을 겪으며 아기를 출산하는 행위는 모두 자연분만인 줄 알았다. 물론 일반적으로 크게 자연분만, 제왕절개로 나뉘어 부르고 있으며 그런 의미로 '자연분만' 이라는 용어에 대한 오해가 없이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촉진제나 무통주사 등 의료진의 약물적 개입이 있을때는 이를 '질분만'이라고 하지 자연분만은 아니라고 한다. 지금 그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나 굳이 이렇게 자연분만의 참 뜻을 이야기 하는 이유는 이 책의 가장 핵심은 바로 그것이기 때문이다. 의료진의 개입을 최대한 줄이고 산모가 주도하고 아기로부터 시작되는 출산 말이다.
통상적으로 38주(37주라고 보기도 함)부터의 분만은 정상 기간의 분만으로 간주한다. 그래서 많은 산모들은 38주에 출산할 수 있기를 원한다. 조금이라도 아기가 더 작을 때, 이왕 나올 것 조금이라도 더 일찍. 그러나 출산의 시작은 전적으로 아기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고 한다. 나 역시 '아, 우리 아기는 38주에 태어났으면' 하고 바랐다. 솔직히 그 바람은 여전하다. 그런데 이것은 순전히 나의 욕심인 것이다. 아기는 자기가 나올 때가 되면 관련 호르몬을 분비하도록 하여 엄마의 뇌로 명령을 내린다. 진통이 일어나도록 말이다. 이렇기에 우리는 그냥 아기의 때를 기다리면 된다.
오늘날 우리나라에도 르봐이예 분만법을 따르는 산부인과와 의료진들이 늘고 있다. 그러나 미셸 오당 박사가 이 책에서 예로 들어놓은 피티비에 병원에서의 인권분만을 완벽하게 구현하고 있는 병원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나는 인권분만이 단순히 아기의 탄생의 순간만을 의미한다고 보지는 않는다. 분만을 위한 모든 의료과정의 전행위가 인권분만이라고 생각한다. 미셸 오당 박사는 임산부를 환자로 취급하지 말 것이며 성급히 의료적 진단을 하는 의사들에게 경고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병원에서 너무나 자연스럽게 환자처럼 취급당하며 모든 것을 정해진 범위, 즉 정상이라는 범위 안에 있기를 강요 받는다. "산모님 체중이 너무 늘었어요" "아기가 너무 커요" "이러면 제왕절개를 해야 할 거예요" 그 밖에 임신 40주가 되기도 전에 산모와 아기에게 건강상의 문제가 없지만 "아기가 더 자랄 수도 있어요. 유도분만을 합시다" 하고 속단하기도 한다. 실제로 예비맘들의 이런 하소연은 어렵잖게 들을 수 있다. "전 정말 자연분만을 하고 싶어요. 근데 우리 아기를 40주까지 기다리면 정말 낳다가 위험할 수도 있을까요? 의사 선생님의 말씀대로 지금 유도분만을 하는 게 맞을까요?" 당신이라면 어떤 답을 해주고 싶은가? 당신이 의사라면, 당신이 산모라면.... 물론 우리는 무지하고 전문가인 그들보다 적절한 판단을 내릴 수 없기에 대부분 고집을 꺾고 의료진의 말대로 하게 된다. 나는 지금 이런 결정을 내린 의료진의 판단이 틀렸다고 생각하거나 그런 판단을 질책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분명한 것은 아기가 그것을 원하는지는 결코 아무도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가급적이면 아기 스스로 준비가 되어 사인을 줄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가장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아기를 놀라게 하지 않는 분만이 된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비교적 자유로와졌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우리는 분만실의 침대 위로 가장 먼저 안내되며 산모를 눕게 한다. 그런데 피티비에 병원에는 '살레 사바지' 라고 해서 산모가 자유롭게 진통하고 다양한 자세로 출산할 수 있는 공간을 별도로 마련하고 있다. 진통을 경감할 수 있는 풀장까지 따로 준비되어 있다. 웅크린 자세로 아기를 분만할 수도 있다. (사실 이런 자세가 진통 및 태아 만출은 물론 태반 만출을 도와주고 회음 열상이 적다고 한다. 아마 중력 때문에 그런 것 같다.)
우리네 병원의 인권분만은 어떨까? 조명을 어둡게 하고 산모가 주로 듣던 음악 CD를 들려주고 진정을 도와주는 아로마를 발향해주고 분만 후 산모에게 안겨주고 탯줄을 천천히 자르는 정도를 시행하고 있다. (르봐이예 분만을 완벽하게 이행하고 있는 국내 산부인과의 유무에 대해서는 본인의 무지로 사실과 다를 수도 있다는 것을 밝힌다) 그리고 가족분만, 그네분만, 수중분만 등은 특별분만으로 분리되어 추가적인 비용을 내고 이용할 수 있는 옵션인 셈이다. 정말 인권분만의 참뜻을 알고 이를 모든 산모와 아기를 위해 이행하고자 한다면 이는 누구나 부담 없이 누릴 수 있는 혜택이어야 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실정은 그렇지 못하다. 가족분만 역시 '출산 당일 가족분만실이 비어 있을 경우 이용할 수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는 이용하지 못함'을 분명하게 전한다. 물론 가장 안타까운 것은 이처럼 누구나 르봐이예 분만으로 출산할 수 있도록 병원 시설과 환경이 구비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이에 있어서는 시간이 흐르더라도 병원과 의료진과 산모, 이 셋이 모두 합력하여 흉내 내기가 아닌 진정한 의미의 르봐이예 분만을 구현할 수 있도록 변화하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다.
오늘 날의 산모들은 때때로 자신을 위해 제왕절개를 선택하기도 한다. 물론 산모 역시 출산에 있어 태아와 같이 막중한 역할을 하는 자이기에 출산의 방법을 자신의 의사대로 정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출산의 주인은 아기는 전혀 무시한채 오로지 산모의 입장에서 출산의 방법을 선택하는 것은 다시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혹자는 자연분만으로 출산할 경우 질이 늘어짐으로 인해 출산후 부부관계가 원만하지 못할까봐 기피하기도 하고 혹자는 끔찍한 산통을 겪고 싶지 않아서 제왕절개를 원하기도 한다. 또 혹자는 자연분만으로 진통을 겪다 끝까지 참지 못하고 제왕절개를 요구하기도 한다. 그러나 단지 이런 이유로 (자연분만을 통한 출산으로 산모와 태아의 건강상의 문제가 없음에 불구하고) 자연분만을 기피하는 예비맘들은 이 책을 한 번 읽어보았으면 좋겠다. 아이에게 단 한 번 뿐인 출생이자 세상과 처음 맞닥뜨리는 출생의 순간, 내가 아기라면 엄마가 나를 안아주길 원하고 젖을 물려주길 바랄 것이다. 마취로 의식을 잃어 의료진만 분주히 오가는 수술실을 원치 않을 것 같다.
그리고 아기에게는 부모와의 정서적 교감, 애착, 스킨십이 정말 너무나도 중요하다. 이것은 더 강조해도 지나치지가 않고 유아교육으로 보더라도 영아기에는 감각과 부모의 따사로운 스킨십이 뇌 발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그런데 너무나 많은 엄마와 아기와 출산 후 분리된다. 이것은 엄마들의 희망이다. "아기를 낳는다고 너무 힘들었으니 이제 그만 쉬고 싶어요" 그런데 아기의 생각도 같을까? 아기는 여전히 본능적으로 엄마를 찾는다. 열 달 동안 들리던 목소리는 들리지 않게 되었고 엄마는 자신에게 그토록 따뜻한 목소리와 어루만짐으로 배를 쓰다듬어 주었는데 수유를 거부한다. 산모들이 많이 찾는다는 산후조리원에서도 굳이 엄마에게 모자동실을 강요하지 않는다. 그렇게 했다가는 입소한 산모로부터 "애도 제대로 봐주지 않더라" "아무것도 해주지 않더라" 라는 소리를 듣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모유 수유를 중요히 여기지도 않는다. 잠든 엄마를 호출해서 피곤에 쩌든 엄마가 안 나오는 젖을 물리며 칭얼대는 아기와 실랑이하는 것을 보느니 엄마가 허락하는 선에서는 분유를 먹이려 한다.
산후조리원은 오로지 휴식만을 위한 곳이라는 의식이 팽배하다. 그예로, 내가 출산 후 병원에서건 산후조리원에서건 가급적 모자동실을 하겠다고 하니 주변에서 모두 말린다. "그러면 절대 못쉬어" "그럴 거면서 산후조리원에는 왜 가니?" "며칠, 몇 주 떨어져 있는다고 애착형성이 안된다니?" 라고들 한다. 그러나 내 생각은 여전히 변함없다. 나는 될 수 있는 한, 모자동실을 할 것이다. 분명한 것은 아기와 엄마가 서로의 심장소리와 체취가 느껴지는 거리에 있을 때 우리 몸의 호르몬도 모유 수유를 더 잘할 수 있도록 젖을 분비해주고 모성애를 키워준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 너무 긴 이야기를 늘어놓다가는 내 생각이 절대 진리임을 논설하게 될까 그만두기로 한다. 나는 르봐이예 분만 또한 아주 중요하지만 태어난 아기를 인격적으로, 정서적으로 안정되게, 이 역시 자연스럽게 엄마와의 관계를 유지하도록 도와주는 참된 산후조리 문화가 시급하다고 본다. 주체가 되는 산모 역시 단순한 몸조리로의 의미를 넘어 나와 내 아기에게 가장 중요한 최초의 시간을 보내는 기간으로 생각해보면 어떨까 싶다.
세상에서 가장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출산은 아기를 위해서나 엄마를 위해서나 (또 진정으로 아기의 탄생을 위해 일하는 의료진을 위해서나) 가장 좋음에 두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산모 뿐 아니라 의사 역시 이 책을 반드시 읽어보았으면 좋겠다. 산모라면 비록 극심한 고통에라도 자연분만을 선택하고 용기를 갖게 될 것이며 의사라면 진정한 사명을 감당하는 중의 보람을 안겨줄 책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 땅의 모든 아기들이 인격적으로 존중받으며 탄생하고 그렇게 길러지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