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플 플랜 모중석 스릴러 클럽 19
스콧 스미스 지음, 조동섭 옮김 / 비채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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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유명해서 기대치가 높았다. 거금을 눈앞에 두고, 사람이 악해진다,는 개인적으로 영 동의하고 싶지 않은 줄거리란 걸 애초에 알고 시작하는 거니까, 문제는 그 과정이 얼마나 설득력 있는가, 더하기 얼마나 흥미진진한가, 였다.    

읽으면서, 내내, 나는, 왜 이 화자는 자신이 얼마나 악해질 수 있는지, 의심하지 않는가 의아했다. 그리고, 또 왜 이토록 돈에 매여 있는가 생각하였다. 내가 생각한 원인은 미국의 문화, 돈을 대하는 문화적 방식이 주인공을 그런 식으로 자기합리화하면서 범죄를 저지르게 했다고 생각했다. 자기자신의 도덕성을 완전하게 믿는 태도, 그러면서도, 현재 삶에 대한 불만으로 들끓는 자기자신과 아내, 더하여 문화적으로 조장되는 물신주의.   

사실, 화자가 자신의 도덕성을 확신하는 것은, 상대적으로-다른 두 명의 공범에 비하여- 자신이 자신의 삶에 만족하고 있다는 전제에서 비롯된다. 그렇지만, 나는 절대반지를 거부하는 회색마법사 간달프의 태도로 내 자신을 믿지 못한다. 그래서 그의 태도가 의아했다. 그리고, 이런 지나친 확신을 경계해야 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우리 문화 안에, '행복은 부로부터 나오지 않는다'는 수많은 은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부자의 가을걷이 볏가리 뒤에 웅크린 채 깔깔 대는 거지 모녀에 대한 묘사를 어린 날 내 어머니로부터 들었었다. 그것은, 반복되는 문화적 은유 속이 계속된다. 그래서, 화자가 점점 그 돈 자체를 포기하지 못하는 과정에 공감하지 못했다.

화자가 남성이면서 갖게 되는 여성에 대한 묘사에 또 의아했다. 노골적인 팜므 파탈은 아니지만, 오히려 더 나쁜, 구조 상 화자의 변명에 동원되는 그의 아내에 대한 묘사다. 손에 피를 묻히지 않고, 남편의 손에 피를 묻히도록 하는 그의 아내는 많은 이야기 속에서 참으로 흔하고 매번 나의 미움을 산다. 그만큼은 화자에게 설득당한 거다.

그리고, 이야기 말미에 붙은 해설을 읽으면서, 나는, 그 해설에 내 자신이 떠올라서 두려웠다. 해설에서 말하는 원인은 내가 생각한 원인과 달랐다. 그 속에서 주인공이 범죄를 저지르는 원인은 '친구없이 가족 내에 고립된 삶'과 '지나친 가족주의'였다. 화자가 이야기 속에서 잠깐 언급하지만, 도대체 친구란 어떤 존재이길래라는 게 나의 의문. 친구를 어떻게 안단 말인가. 친구란 어떤 존재란 말인가. 그런 걸 원인이라고 떡하니 명시하다니 이상하지 않은가. 해설이 이상하다고 말해버리고 말테다.

번역의 문제로 냉소적인 원작의 많은 부분이 훼손되었다고, 그래서, 화자의 성격이 많이 사라졌다는 리뷰를 봤다. 아마도 그래서 내가 수긍하지 못하는 게 있는 거라고, 그래서 그만큼 재미도 덜했던 거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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吾 口 次 言 汝 聽 彼  我 手 招 來 爾 往 彼
오 구 차 언 여 청 피  아 수 초 래 이 왕 피
吾 意 貴 爾 又 逆 行  君 愛 眞 情 我 斷 腸
오 의 귀 이 우 역 행  군 애 진 정 아 단 장

조선의 선비가 이런 시를 남기고 죽었다. 여기서 이야기가 시작되었나보다. 이 시는 마지막 순간에 흐른 것이었으나, 이 이야기를 만든 사람에게는 시작이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나의 입을 이것을 말하나 너는 저것을 듣고, 나의 손은 오라 하나, 너는 가는구나.
나의 의도에 너는 반하는구나. 너의 사랑은 진정 나를 죽이는구나.

실제 티비에서 나온 해석이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전설의 고향이 갖는 전통적 교훈이란 것과 전설의 고향이 갖는 미덕들, 더하여 현대적으로 재해석된 무엇이 있는가 생각하였는데, 어제 이야기는 좀 이상해져서 계속 생각했다.

계집종이 몰락한 양반의 도령을 사모한다. 도령은 이상을 품은 훌륭한 선비, 계집종이라 하여 하대하지 않는 훌륭한 인간이다. 그런데, 계집종은 도령의 행동을 사랑이라 오해하고, 도령의 매파를 살해하고, 도령에게 함께 도망가자하는 거다. 도령은 거절하고, 그 다음에 도령 주변에 귀신들 출몰. 주변사람들이 귀신에 씌인다. 그런데, 귀신이 씌이는 시점이 딱 눈동자가 써클렌즈 낀 만큼 더 검어지는데, 이게 참 미묘하게 무섭다. 목소리가 바뀌는 것도 아니고, 살짝 바뀌면서 귀신의 형상이 덮어쓰기도 하지만, 그 전에 홍채가 더 짙어지고 더 커지는 그 순간이 오싹하다. 무서워서 쭉 못 보고 계속 돌려가면서 보았다.

내가 내내 한 질문은 이런 것
와, 저 남자가 잘못한 게 뭐람.
왜 이상에 대해 말한 것, 종을 사람으로 대한 것, 웃고 말한 것이 잘못이야?
-그 남자는 조광조의 애제자로 금부도사인 옛 동무에게 '조광조가 역모를 도모했다'는 상소를 올리라는 협박을 듣고 있었다
도대체, 왜 저 남자가 저런 고초를 겪어야 해?
완전 저 여자 싸이코구만.

그러다가, 마지막 순간에, 그 남자를 중심으로 그 남자가 사랑한 여자-역모로 몰려 기녀가 되었다, 그녀는 금부도사의 청을 들어 '자기 아비를 빼낼 수 있게 거짓 상소를 올려달라' 청하러 왔다. '자기를 연모한다면 그걸 해 달라'고 -, 그 남자의 어머니가 차례로 귀신들려 그 남자 앞에 섰을 때, 귀신이 "왜 저의 사랑은 잘못되었다 하시면서, 어머니의 사랑은 그리 말하지 않으십니까?" 질문할 때, 깨달았다. 그 말을 하고 싶었던 거다. 달아난 그녀가 살아서 세월을 겪었다면, 그녀는 그 사랑을 품고 다시 나타날 수도 있지만, 그저 그 사랑을 지나가게 두었을 수도 있었다. 이미 그녀가 매파를 죽이고, 무서운 짓을 했으니, 더 어떤 짓을 했을지 몰랐더라도, 그녀가 원귀가 되는 것은 어머니의 비뚤어진 사랑 탓이었다. 어머니는 달아난 그녀를 잡아 욕보이고 죽게 하였다.

어머니와 그녀가 엇갈려 눈앞에 나타나자 남자는 결국 자신을 찌른다.

비가 오고, 어둡고, 축축하고, 무녀는 정말 무서웠다.

홀로 아들을 키운 어머니는, 아들에 대한 사랑 때문에 결국 아들을 죽게 한다. 어머니도 그 계집종도, 자신의 사랑을 변호하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그녀도. 

 사랑은 모든 부도덕한 행위를 덮는 커다란 담요같은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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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시의 원저자를 알아보려고 인터넷을 뒤졌는데, 못 찾고 대신 어떤 평들이 있는지 보게 되었다.
나처럼 진짜 재밌게 본 사람도 있고, 이야기가 아귀가 하나도 안 맞는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그 때 죽은 그 원귀가 4년이나 지나서 나타난 이유같은 게 설명이 안 된다면서. 아, 그렇기도 하네. 야, 그런데, 못 알아차리고 완전 속았잖아, 대단한 거지. 이야기가 아니면, 그림이.
나는, 저 한시가 가지는 그런 상상을 좋아하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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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곽선생 2009-09-14 1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저와 같은생각을 하시는분이 계셨군요~~반갑네요

저두 시의 원저자를 알아보려고 인터넷 뒤지고있던중 님블로글에 오게되었습니다

좋은글 읽고갑니다~~^^

별족 2009-09-15 15:02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그래서, 나는 남편에게 그 얘기를 했던 것이다. 티비에서, 파트너를 하고 있었고, 그때, 이태조(이동욱 분)변호사가 잠수타서, 한정원(이하늬 분) 변호사가 강은호(김현주 분)변호사랑 동행할 일이 있었다. 절도혐의로 재판을 받게 된 국회의원 부인을 면담하고 오는 길이었는데, 강은호에게 한정원이 '이기기만 하면 되는 거'라는 말을 하고 있었다. 극 중 한정원은 유능하고, 사람에 신경 안 쓰는 캐릭이고, 강은호는 사람에 신경 많이 쓰는 초짜 캐릭이라서, 그래서 생각나서 한 말이었다.-극 중 강은호는 엄청 유능하다. 승률 100%(두 번 해봤으니)-

"있잖아, 어떤 사람이 블로깅해놨던 걸 봤는데, 착하고 무능한 의사란 존재하기 어렵다고 했더라. 착한 사람, 환자를 귀하게 생각하는 의사라면, 생명을 다루는 자신의 능력을 연마하지 않을 수 없다고 그렇게 썼더라고."
"열심히 한다는거, 최선을 다한다는 거랑, 무능이나 유능은 분명히 다르지."
"물론 그건 다르지, 여기서 착하다는 것은 선하다, 악하다, 뭐 이런 개념이랑 통하는 거지. 선한 어떤 가치들을 추구하는 거지. 의사라면 환자의 생명을 내가 구하겠다는 그런 거."
아, 돌이켜 쓰자니 잘 못하겠다. 00씨는 '착하다'는 말을 태도로 받아들였던 거 같아서, 우리는 성실한 태도보다, 게으른 태도가 낫다든지, 하는 이상한 말들을 서로에게 해댔고. 함께 일을 하는 존재들로서 어떤 존재가 가장 좋은지 뭐 이런 말들을 또 했다. 내가 하려던 말은 그게 아니었는데.
그러니까, 내가 하려던 말은 처음부터 이런 거였다.
"착하고 무능한 의사와 악하고 유능한 의사의 대립항을 만들고 선택하라는 것에는 정치적 의도가 있다"라는 것. 이런 말을 하려고 한 이유는, 애초에 이런 담론이 누구에게나 익숙하리라는 전제를 또 깔고 있었다. "좋은 선생 필요없어, 잘 가르치기만 하면 되지, 때려도 상관없어"라는 식의 담론. "착한 거 필요없어, 내 병을 낫게만 하면 되"라는 식의 담론, 그 사람들의 시간을 귀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그저 열심히 하는 것 말고, 더 필요한 게 무언가, 궁리할 거라는 생각. 그러면, 그 사람이 선생이라면 착하고도 잘 가르치는 선생이 될 거고, 그 사람이 의사라면 착하고도 잘 고치는 의사가 될 거고, 그 사람이 내 옆에서 일하는 직장인이라면 자신의 업무를 수행하는 데 좀 더 고민한 결과물을 내 보일 것이라는 생각.
아, 그래서, 나는 그 이상한 대립항이, '착하다'-이건 보편가치다-를 무능과 묶어서, 결국 모든 사람이 '악하고 유능한'사람을 선택하는 자명한 상황을 통해-누군들, 내 생명과 내 능력과 내 시간을 맡기면서, 원하는 것을 분명하게 말하지 않을까- 보편가치가 무용한 것처럼 포장하기 위한 정치적인 수사에 불과하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그런데, 쓸데없이, 00씨와 태도를 중시하는 사람들의 성향, 결국 태도조차 정치적인 가치판단이라는 식의 말들을 해야 했다. 이 때, 나는 정말 화가 버럭 났는데, 내가 사용한 '착하다'는 말은 보편가치로서 둘 다 동의해야 가능한 대화였기 때문에, 00씨가 그렇게 말하니까 정말 화가 났었다. 그런데, 00씨는 자신의 계속되는 업무지체때문에 사람들이 유능함 대신 성실함을 택하는 것 때문에 착하다,는 수사를 성실함으로 오해하고, 나에게 반박을 하려고 했던 것이다.

회사에서 일을 할 때, 누구든 업무에 구멍은 용납되지 않는다. 업무의 질은 유능과 무능을 가르겠지만, 내 개인적으로 태도로써의 성실이냐, 아니냐는 주변 사람을 대하는 여유로운 태도의 문제기 때문에, 누구라도, 게으른 똑똑이를 최우선으로 칠 거라고 생각한다. 00씨는 내가 이렇게 말하자, 자신과 말한 많은 사람들은 성실하고 안 똑똑한 사람을 더 선호했다면서, 다시 성실하다,라는 말의 해석가능한 무한한 범위에 대해 혼란스러워했다. 대화를 했지만, 정의가 없어서, 어떤 것이 성실인지 그 사람과 자신이 달랐을 거라면서 어지러워했다.

* 그 블로깅을 다시 찾아보려고 검색했는데, 정작 그 글은 못 찾았는데, 착한 의사라는 말이, 꽤 유명한 말인 모양이다. http://dusl.tistory.com/479 (09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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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verjinny 2009-08-18 16: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편집은 너무 힘들어가지 않았나? 그렇게 하지 않았어도 좋았을 것을..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별족 2009-08-18 17:25   좋아요 0 | URL
좀 어지럽긴 하더라.
 

발단은 30분 다큐.
거기서 보여준 방법은 일본의 차고지증명-차를 살 때, 어디에 둘 지 미리 증명해야 한다-

"와, 우리도 저런 걸 하면 되지 않을까?"
"그럼 지금 있는 사람들은? 경찰이 주차단속을 계속 해야 해?"
"그럴 수도 있지."
"뭐, 그럴 수가 있어? 주차문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고."
"왜 해결할 수 없어. 해결해야지."
"이미 심각해져서, 빈터나, 골목 여기저기 불법 주정차를 하는데, 그걸 계속 단속하라고?"
"필요하면 할 수도 있지. 단속도 하고, 새 차를 구입하려는 사람한테 차고지 증명도 하게 하고."
"그럼 벌써 차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어쩌고? 형평성 문제는?"
"재수지."
"야, 무슨 정책을 그런 식으로 하냐, 복불복 정책이잖아."
"그런데, 60년대에는 환경규제 없었어. 그렇다고 지금 그 규제를 복불복 정책이라고 할 수는 없잖아. 주차문제로 이웃간에 살인이 날 지경이면 해결책을 찾아야지."
"지금 상황은 너무 심각해서 해결이 안 되는 상황이라고. 그럼 주차할 데 없는 사람은 차를 사면 안 되나? 내가 서울로 이사가면 어떡해"
"차고지를 못 구하면, 차를 포기해야 하는 상황도 있을 수 있는 거지."
"내가 생계형 운전자야, 그럼 어떡해. 차가 꼭 필요해."
"그때는 그럼 집을 구하는 것보다 차고지 구하는 게 중요한 문제가 될 수도 있는 거지."
"뭐 그런 말이 있냐? 사람이 사는 데 집보다 차고지가 중요하다니. 그런 식이면 어떻게 더 말을 하냐?"
"해결이 안 되는 문제가 어딨어. 해결책을 찾아야지."
"야, 너 지금 나랑 싸우자는 거냐. 어떻게 더 말을 하냐. 그만 하지."


어디선가 무언가 나는 더 이상 할 말을 못 찾고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한참을 가만히 아무 말도 안하고 있으려니.

"뭐라고 말을 해보지."
"나는 싸우고 싶었던 것도 아니고, 아직도 나는 주차문제를 생각하고 있어서, 말을 하게 되면 그 말을 하게 될 거야. 그런데, 00씨는 그 말을 하지 말자고 하니까. 말을 안 했던 거지."
"회사에서 나는 어느 순간 더 이상 대화가 안 되는 순간이 되면, 서로 다른 사람이구나, 하고 말을 그만 하게 되더라. 설득의 능력이 없는 걸 수도 있는데, 그런 상황이 있는 거잖아. 예전에는 언성을 높이고, 내가 일부러 가서 술이라도 먹고 풀자고 했었는데, 요새는 아예 귀찮아. 다르면 다른 대로 그냥 가는 거지."
"그래, 나도 그렇게 해."
"그런데, 왜 지금 이렇게 계속 하는데."
"00씨는 술을 먹고 들어오면, 이런 이야기 잘 받아주고 오래 잘해. 그런데, 지난 금요일에 그런 얘기 하길래, 내가 맨정신에 하자고 했더니, 다음 날은 아예 무슨 얘기를 하려고 했는지도 잊었더라."
"내가 말하고 싶었던 건, 정책이 실현되면서, 그 과정에서 다른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거지. 게다가 손해를 보는 사람은 가장 약자일 수도 있다는 거지."
"그렇지, 정책이란 그런 거지. 경기도 교육위원들도 나쁜 뜻이 있어서 반대했겠어. 돈은 한정되어 있는데, 급식비 낼 수 있는 사람까지 보조해줄 수 없다는 거지. 김남주가 출산장려금을 받아도 되느냐고 분개하는 사람들이랑 같은 논리인 거지."
"그렇지, 그 사람들도 선의는 있었던 거겠지?"

"나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로 단정하는 게 참을 수 없는 거지. 그리고, 나 학교 다닐때, 학교 옆에 개천이 반만 복개되어 있었는데, 그걸 다 복개하려고 했었어. 학생회나 환경단체나 여기저기서 나는 당연히 복개하면 안 된다는 말을 계속 들었었는데, 간만에 동기들이랑 저녁을 먹었나, 술을 먹었나 그 얘기가 나왔는데, 딱 한 사람이 복개를 찬성하는 거야. 걔가 차를 가지고 있었거든. 그러니까, 나는 차를 가지고 쓰는 건, 여러가지 다른 가치판단을 하는 기본이 되는 거 같더라고. 그러니까, 차를 가진다는 건, 큰 도로를 내는 것, 개천을 덮어서 주차장을 만드는 것, 뭐 여러가지 다른 것들을 정할 때 자기 입장을 다르게 한다는 거란 생각이 들어서. 차를 가지는 게 더 불편한 일이었으면 해."
"그래. 이러니, 저러니 해도 차를 쓰는 건 자기 편하자고 하는 거지. 그런데, 나는 여러 공공기관들이 충분히 주차문제를 해소하려는 노력없이, 개인에게 강요한다는 생각이 들어. 공공시설, 학교나 교회, 면사무소나 여러가지, 밤에 주차할 수 있도록 해준다면 많이 해소될 텐데, 그런 노력없이, 하는 건 아니라고 말하려던 거야. 그리고 지금의 주차문제는 한가구가 살던 단독주택이 다세대 주택으로 변하면서 발생한 문제라는 것도 고려해야 되고"
"그런데, 단독주택을 다세대 주택으로 개조할 때 허가를 내주는 것도 정부고, 차고지를 증명하라는 것도 정부고, 길을 내는 것도 정부고, 그러니까, 나는 해결할 방법도 있다고 생각하는 거지."

말은 오래 했는데, 끝은 어찌났던 것일까.(09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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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기, 좋다.
토요일 남편이 친구 결혼식이라고 제주도에 혼자 내려가서, 아주 종일 티비를 봤다. 딸래미는 밖에 나가자고는 하지만, 옷을 입으려 하지 않아서, 그냥 주구창창 집에서 늘어져 있었던 건데, 그 와중에 찬란한 유산, 재방송을 보았다. 재밌더라.

이걸 보게 된 건, 그 전에 누군가의 블로그에서 찬란한 유산의 미덕에 대해 읽었기 때문이었다. 그 내용은 이런 거였다. 사람들이 찬란한 유산을 좋아하는 건, 과정을 들여다보기 때문이라고, 부자들의 부를 구성하는 노동에 대하여 말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안하무인 재벌가의 아들이 그 노동을 알아가는 것에, 그 부를 형성했던 할머니는 자신의 핏줄에게가 아니라, 자신의 철학을 가장 잘 실천할 사람에게-착한- 유산을 남기기로 했다는 것에 열광한다는.

아, 나는 성장에 대해 생각한다. 자신이 한 잘못을 기억하는 사람의 존재를 보고 있자니 좋더라. 할머니에게도 믿음을 얻지 못하고, 이제 더이상 돈을 쉽게 쓰지 못하는 환이란 남자가, 자기가 옛날에 얼마나 나빴던지 기억하고 있다는 게 기특했다. 어제는 자기의 옛모습 그대로인 남자가 자신을 발 걸어 넘어뜨렸을 때 간신히 사과하고 옥상에 올라갔는데, 자기보다 더 펄펄뛰는 고은성에게 '그 말은 지금 과거의 나에게 하는 말이냐'라고 말한다.

나는 그런 사람들을 안다. 말하고 있지만, 자신을 보지 않는 사람. 나라고, 말한 그대로 살고 있다고 자신하지는 못한다. 그렇지만, 나는 내가 어떻게 살고 있을 때, 아 나는 이렇게 살면 안 되는 거야. 이런 말을 했었지, 하고 생각한다. 언제나 언제나 조심한다. 그런데, 자기가 자기 입으로 그 말을 하면서, 그 기준을 언제나 남에게만 들이대는 사람들이 있다.
어제의 나는, 아니, 내일의 나는, 아니, 지금의 나는 그렇게 살지는 않았는지, 살려고는 않는지, 생각하지 않는 사람. 그런 사람들은 성장하지 못한다. 지금 찬란한 유산에서 이승기가 연기하는 그 남자, 선우 환처럼 그렇게 성장하지 못한다. 새로운 기준을 내 안에 세울 때, 그 기준은 자신의 전 생에서 유효한 것이어야 한다. 그런 사람은 성장하게 된다. 미움을 사랑으로 바꾸고, 없던 믿음도 생겨나게, 그렇게 자라는 거다.(09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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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영이 2009-07-31 18: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히히 주구창창 이라고 쓸줄 몰랐어.
표준어를 구사한다고 생각했는데...

별족 2009-08-03 08: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 주야장천,이라고 써야 하는 거지?

overjinny 2009-08-03 18: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주야장천이더라고...사전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