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가 그랬어 198호
고래가그랬어 편집부 지음 / 고래가그랬어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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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가 그랬어,도 끊어야 하나. 

이번 호 '검정고무신'만화에 원자력발전소에 대한 언급이 있다. 두려움을 과장하는 묘사들인데, 출처를 알 수가 없다. 이런 식. '미국 롱아일랜드의 브룩헤이븐 국립연구소는 원자로 수조의 헌 연료(폐연료봉)에 노출되면 반경 800km  안에 있는 사람들이 곧바로 숨질 수 있다는 보고서를 냈습니다.' 으레 있는 '10만년 동안 격리해야 한다'라는 과장된 묘사도 있고, 월성의 할머니는 암이라서 눈을 감싸고 우는 아이의 묘사도, 병원에서 백혈병 진단을 받는 아이의 묘사도 있다. 전형적이고, 감정에 호소하는 묘사들이다. 아 그 연구소 보고서는 내가 좀 보고 싶네, 그런데, 알 수가 없다. 

그 만화를 보고 짜증이 돌덩이처럼 얹힌 채로, 한겨레에 실린 월성할머니 기사(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945430.html)를 또 봤다. 인과관계나 논리나 정보가 없는 (당시 환경운동연합은 ~알려져 있다) 글이다. 감정적이라 비판할 수 없는 글이다. 숫자가 하나도 없어서 반박할 수 없고, 그저 느낌이라 또 반박할 수가 없다. 쇠 1킬로그램이랑 솜 1킬로그램이랑 어느 게 무겁게? 에 똑같다고 말할 수 있는 것처럼 방사선량 단위 중에 유효선량은 그대로 같다. 내부피폭 1밀리시버트나 외부피폭 1밀리시버트나 똑같고, 삼중수소로 1밀리시버트로 피폭당하나, 바나나 먹고 칼륨으로 1밀리시버트 피폭당하나 똑같다.- 나도 숫자에는 약해서 인터넷을 찾아봤더니 정리가 잘 되어 있다.(https://blog.naver.com/bluerain5004/221580747457) 삼중수소가 안 나오면 좋겠지만, 안 나오지는 않고, 나오지만, 그렇게 인체에 해롭지는 않다.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201602012097434711 )

뭐래? 내가 그렇게 느낀다는데? 나는 더 민감하다고?라고 하면 그러면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어요.라고 또 실용적인 태도가 나선다. 나는 쇠 1킬로가 솜보다 무겁다고 느꼈어, 내 마음을 몰라주다니 넌 정말 나쁘구나, 라고 한다면 아, 나쁘고 아니고가 중요한가요? 둘 다 1킬로인데? 

방사선안전부에 근무했을 때, 교육을 시키는 게 너무 어려웠다. 작업자가 너무 무서워해도 진실은 아니고, 그렇다고 너무 안 무서워해도 안 되니까. 업무가 되어서 위험을 강조하는 게 도움을 구할 때 쉬울 때도 물론 있었다. 그렇지만, 두려움을 조장하는 건 언제나 해롭다. 사람을 두려움으로 현혹시키는 것은 위험하다. 

참 폐연료봉에 대해서도 정리가 잘 되 있어서 링크를 건다.(https://blog.naver.com/bluerain5004/2217792642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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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단한 개인
이선옥 지음 / 필로소픽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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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솝우화 중에 지도자를 원하는 개구리들 이야기가 있다. 저희에게 현명한 왕을 내려주십시오,라고 기도한 개구리들은 나무토막을 받는다. 나무토막을 받은 개구리들은 기대하는 모든 것을 지도자에게 원하고, 응답없는 나무토막 대신 다른 걸 내려달라고 다시 기도한다. 그리고 그 응답으로 황새를 받아서는 잡아먹힌다. 

나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꽤나 자신만만하게 내 자신을 믿고, 타인의 조언들을 내 멋대로 오려서 듣고, 결국 내 마음대로 살아왔다. 그래서 전능한 누군가에게 일임하는 태도나, 싸움일 수도 협상일 수도 있는 와중에 심판에게 달려가는 사람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당사자성, 스스로 판단하겠다는 마음, 자신의 판단에 결과를 달게 받겠다는 태도를 언제나 원했다. 그리고 나의 아이들이 언제나 그렇기를 또 원해서, 부모면서도 황새가 되기 보다 나무토막이 되려고 한다. 그러고는 나의 이런 태도가 무용한 것은 아닌가, 싶어 갈팡질팡하는 순간이 있다. 부모는 어때야 하는가,에 바위같이 단단하게 거기 있어주면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그게 과연 존재하기는 하는 거냐고 항의라도 들을라치면 그런가, 싶은 거다. 


우먼스플레인을 읽고(https://blog.aladin.co.kr/hahayo/11065525 ). 작가의 글을 구독했다. 작가의 새로 나온 책에서 구독한 글들로 보았던 그 단단한 모습을 본다. 구독한 글들로 만난 것들이 책으로 정리되었다. 짧은 언명으로 힘을 발휘하겠지만 복잡한 삶의 국면에 모순을 모른 채하는 지금의 페미니즘에 대한 논리적인 반박이 있다. 마음 깊이 믿는 오래된 전통의 가치들과 국가와 개인의 긴장관계가 드러난다. 너무 오래되서 부끄러워하면서 말하기 힘든 것들이지만, 이미 내 마음 속에 있는 것들이라서, 찰랑이고 휩쓸리는 약하고 흔들리는 마음들 가운데 너무 외로운 마음이 들 때, 책 속에 단단함이 위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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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andante 2020-08-29 20: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을 구입하게 된 계기가 된 리뷰입니다^^
필로소픽이란 출판사가 펴낸 책들을 보니, 현재의 대한민국에서 꼭 필요한 책들이 많이 보이네요.
 
임계장 이야기 - 63세 임시 계약직 노인장의 노동 일지 우리시대의 논리 27
조정진 지음 / 후마니타스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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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가 이 책을 보고, 나라가 노년을 부양해야 한다고 SNS에 남겼다. 나는 나라가 부양하는 노년이 결국 코로나에 대응하는 스웨덴의 태도가 될 거 같아서 적개심이 생겼다. 

연휴라 정말 오랜만에 간 친정에 언니가 가지고 온 책을 읽었다. 나는, 스스로를 지키지 않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 지켜줄 수 없다,고 생각했다.

나라가 부양한다고 한들, 이 아저씨가 노동을 하지 않을까,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고, 일할 사람은 많고 일자리는 없는데 이보다 더 강경한 자세는 가능할까. 가끔 질문을 자기자신에게 해야 하는 게 아닐까.

자기 자신을 지키지 않는 사람을 타인이 어떻게 지켜줄 수가 있을까.

경력을 살렸다고는 하지만 모두가 젊은이를 원하는 분위기에는 버티지 못한다. 

새로 들어간 자리는 20년 근속의 전임자를 하루 아침에 통보도 없이 해고하고 들어간 자리였다.

열심히 일한다면 알아줄 거라고 생각한다. 도대체, 무얼 왜?

몸을 쓰지 않던 사람이 몸을 써서, 부서져라 일한다. 자신의 아들에게조차, 나는 이제 소득이 없으니 네가 벌어서 다녀야 한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스스로의 책임을 진다고 생각하겠지만 정말 그러한 건가, 모르겠다.

모두에게는 저간의 사정이 있고, 저자에게는 저자의 사정이 있어-책에 쓴 거 말고도- 여전히 일을 하고 여기 책도 썼지만, 나는 이 책이 어떤 가치가 있는 글인 줄 모르겠다.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에서 '제 값을 달라고 하기 위해서 스스로를 비루하게 만들고 있다'라는 걸 들은 적이 있다. 읽는 내내, 일에 값을 매기는 와중에, 점점 점점 비루해져서, 정말 그 일이 비루해지는 느낌을 받는다. 먹고 살기 위해서 정년퇴직한 노인이 중노동을 한다,로 묘사되는 그 상황에 거부감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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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park0409 2020-11-11 15: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책 첫부분이 가장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저자의 입장이 되어보지 못해서 하는 말일수 있지만
왜 자식의 학비와,결혼에 본인이 평생 일해 모은돈을 대줬어야 했나 안타깝네요
자기인생은 자기가 책임지고 사는거라 생각합니다
자기 노후도 자기 책임이고
성인이된후 자식들 앞길 또한 자식들이 스스로 책임지고 가야할길이라 생각합니다

그래도 책 자체는 의미가 있다고 생각되는게
우리사회가 비정규직 노동자들 특히 고령의 노동자들을 보호해주지 못하고있고
사회 구조적 문제가 많다는걸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게 우리 청년들, 우리 부모님들의 미래가 될수있다 생각 합니다

별족 2020-11-12 09:06   좋아요 0 | URL
저는 일에 대한 묘사가 싫었던 거 같습니다. 누군가는 해야 되는 일,이란 것을 그렇게 묘사하는 것이 합당한가, 라고. 제가 분리수거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어서 그런 것도 같습니다.
 
피노키오는 왜 엄펑소니를 꿀꺽했을까? - 문자도 우리 문화 그림책 15
박연철 글.그림 / 사계절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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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러서 들어,라고 동생에게 조언한 적이 있다. 엄마가 너한테 하는 말도, 내가 너한테 하는 말도. 거짓은 아니어도 의도가 있고, 그 의도 가운데 숨기고 싶은 말은 숨기고, 상황은 자신의 입장에서 편집되어 있어. 그러니까, 항상 걸러서 들어야 해. 곧이 곧대로 들어도 상관은 없는데, 그러다가, 자기자신을 보호하지도 않고 마구 마구 앞지르면 안 되. 다른 사람의 말은 그게 무엇이라도 너 자신보다 중요하지는 않고, 네 삶을 타인이 휘두르게 해서도 안 되고, 타인의 삶을 네가 휘두르려고 해도 안 돼. 소설도 드라마도 그렇다. 삶이 아닌 모든 것들,은 걸러서 들어야 한다. 

책은 큰 애가 아직 어렸을 때, 정말 대박이라는 서평(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6138708)을 보고 골랐을 거다. 너무 이르게 산 책이라서- 그 때 큰 애는 다섯살이었다- 아이는 그저 신기하게 병풍처럼 펼쳐지는 책만 신기해했고, 나는 이야기가 너무 뒤집혀있어서 난처했었다. 그런데, 이제 둘째가 4학년이 되고도 학교에 못 가는 날들에 책을 한 권씩 골라주는데도 책보다는 유튜브나 컴퓨터게임을 즐기고 있어서 그럼 엄마가 함 읽어줄께 하고 읽었는데 반응이 너무 좋았다. 아, 확 뒤집힌 뜻에 웃으려면 원 뜻을 아는 아이들이 읽어야 해. 내가 처음 읽었을 때 난처했던 마음은, 거짓말이거나 뻥이라고 말하고 있어도 아이들은 그걸 모를 수도 있어서였는데, 이미 4학년인 아들이 와하하 웃으면서 들으니 그대로 좋았다. 그 웃음이 원뜻을 알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것도 아니까, 이 책이 나쁜 깨우침을 주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생기는 거다. 막 1학년 입학하고도 학교에 못 가는 막내는 오빠처럼 웃지 못하는 이야기였다. 나는 아이가 너무 재미나게 웃어서, 이 책이 좋은 책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고, 작가의 말에 '많은? 것이 엄펑소니다'할 때는 내 마음 같았다. 세상에 말들을 적당히 걸러서 듣고, 적당히 엄펑소니라고 생각하면서 듣는 것은 삶보다 이야기로 가득 찬 세상을 살아가게 해 주는 힘이다. 

어느 날, 콧구멍을 파다가 문득 깨달았어요. 이 세상에 참 많은 것이 엄펑소니란 것을. 그렇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었어요. 나중에 화장실에서 똥을 누다가 문득 또 깨달았지요. 엄펑소니를 엄펑소니가 아니게 할 수 있다는 것을. 그래서 난 예술가가 되었고 이 책을 만들었답니다. -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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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란 뭘까. 나는 내가 하는 말도 멀지는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조심한다. 정부를 비판하는 말들의 거울에 나를 비췄을 때, 내가 그러지 않는가. 회사를 비판하는 말들의 거울에 나를 비췄을 때 나는 그러지 않는가. 아이들을 아직 가정보육해야 했을 때, 회사에 다니는 다른 엄마가 '선배, 너무 페이 올리지 말아요, 우리가 힘들어요'라고 했다. '우리'라는 말이 가지는 무게 때문에, 나는 그 엄마와 나의 '우리'와 아이를 셋이나 계속 봐주고 계신 아주머니와 나의 '우리'를 저울에 달았다. 그 말을 듣고 '우리'의 무게를 가늠하면서 비약이 심한 나는, 그래서 아마도 사장님들은 노동자에게 그렇게 구는 거겠지,라고도 생각했다. 작은 회사라서 직원과 사장이 묶이는 우리,가 더 강경하다면, 사장님들끼리 모여앉아 가지는 '우리'라는 감각을 앞지를 수도 있겠지. 항상 노동자라고 내 스스로를 정의하면서 생각하던 방식이, 아이들을 맡기면서 어그러졌다. 나는 그 상황에서 고용한 사람이 되고, 내가 고용된 사람이었을 때 요구하고 주장하던 그 많은 걸, 나는 내가 고용한 사람에게 해 줄 수 없다는 걸 알았다. 그걸 원하는 아주머니였다면, 욕했을 거야. 뭐 이런 생각도 하고, 그러면서 나의 요구는 괜찮은가, 또 생각했다. 5인 이상 사업장,이라는 노동법의 많은 단서 조항이 약한 노동자를 보호하지 못한다는 말에 수긍했었는데, 지금은 모르겠다. 사업주,라는 이름 뒤에 가려진 사람이 보였다. 입장은 점점 흐릿해지고, 신문기사는 뭔가 잘못 말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고, 가끔은 큰 회사의 노동자들이 압력을 행사해서, 작은 회사의 이문이 줄어들고 있다고도 생각하게 되었다. 

'한 번 다녀왔습니다'가 재밌다길래, 우선 짤들을 몇 개 보고, 지난 일요일에는 본방을 보았다. 오랜 물장사 이력을 접고 시장에 김밥집을 차린 이정은(극 중 이름을 모르겠다)이 문제적인 호객-헐벗은 여종업원을 동원해서 호객한다. 나는 그럴 수는 있지만, 맛도 없는 김밥을 그런 호객에 줄 서서 먹는다는 것이 남자들에 대한 모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벌써 문제삼는 사람들이 많았고, 정리되고 있다-을 해서 대립하는 장면 다음에 시장 상인회 장면이 나왔다. 상인회 가입조건으로 여러가지를 시정하려는 시장의 여자들이 등장하고, 그렇다면 상인회에 가입하지 않겠다는 장면이 나온다. 결국 시장 쓰레기장 아닌 먼 데 쓰레기장에 가야 하고, 상인회 발급 상품권 교환도 불가능해지고, 방역에 제외되면서 김밥집은 조건을 수용하고 상인회에 들어간다. 나는 공연히 사람들이 김밥집에 이입할까 걱정하면서 본다. 김밥집 여자들이나 대립하는 시장의 여자들이나 묘사되는 방식은 문제가 있다. 시장의 남자들은 여자들끼리 화해해야 할 기싸움으로 보고 뒤로 빠져있고, 여자들끼리 오직 여자들만 김밥집에 몰려가서 문제삼는다. 그건 흔히 하는 묘사처럼 여성혐오적이다. 김밥집의 호객행위가 시대에 뒤처진 묘사라고 생각하는 나도, 시장의 여자들처럼 굴었을 것도 같다. 그렇지만, 다시 내가 해 온 많은 말들을 생각해보면, 그걸 원한다고 해서 조건을 달거나 배척하는 것에 반대해왔다는 것도 알고 있다. '우리'라는 말 안에 단정한 사람을 원한다고 해서, 단정하지 않으면 '우리'가 아니라고 말하는 것에도 찬성하지 않았다. 

'우리'라는 경계 안과 밖은 달라야 한다. 상인회 소속 상인들이 누리는 여러가지는 무엇때문에 가능한 걸까. 회비를 냈을 수도 있고, 회의에 참석해서 의견을 냈을 수도 있다. 상인회 바깥의 상인이 상인회에 들어가고 싶어하는 것은 자신의 필요에 의해야 하지만, 그 많은 것들이 그냥 주어지는 것일 수는 없는 거다. 정치란 그런 부분들에 있다. 모임이란 그런 용도로 만들어지고, 모임에 속한 사람이 지는 책임과 얻는 이득의 균형사이에 모임은 자란다. 모임에 속하면서 크고 작은 정치를 훈련하게 된다. 학교나 직장, 국가 수많은 우리의 경계에서 '우리'의 조건을 걸고 의무를 요구하면서, '우리'는 '우리'가 되는 거다. 속하고 싶지 않다면 감당해야 하는 불이익이 있고, 그건 어쩌면 당연하다. 누군가 선악으로 존재하는 게 아니다. 조건을 달고 상인회 가입을 찬성하느니 마느니 하는 것보다 나는 차라리, 상인회에 가입하면 이득과 손실에 대해 묘사해주기를 원했다. 가입할 때 내야 하는 회비가 있다면 것도 설명해주고, 이용할 수 있는 것들과 해야 할 책임들에 대해서 설명해주고 그런 과정에서 보는 사람들이 너무 부당하지는 않다고도 생각할 수 있게 했으면 좋았겠다 생각했다. 그렇다면 드라마가 아니라, 무언가 선전물 같았겠지. 드라마는 묘사하고 있지만, 전부를 묘사하지는 못한다.

삶은 드라마의 묘사보다 복잡하고, 매 순간 내가 속한 '우리'를 저울질한다. 저울질하는 순간마다, 마음이 나의 단단한 마음이 중심을 잘 잡고 있어야 자기 자신을 감당할 수 있다. 내 마음을 내가 감당할 수가 있으려면, 좀 더 단단한 나의 중심이 늘 내 안에 있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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