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노키오는 왜 엄펑소니를 꿀꺽했을까? - 문자도 우리 문화 그림책 15
박연철 글.그림 / 사계절 / 2010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걸러서 들어,라고 동생에게 조언한 적이 있다. 엄마가 너한테 하는 말도, 내가 너한테 하는 말도. 거짓은 아니어도 의도가 있고, 그 의도 가운데 숨기고 싶은 말은 숨기고, 상황은 자신의 입장에서 편집되어 있어. 그러니까, 항상 걸러서 들어야 해. 곧이 곧대로 들어도 상관은 없는데, 그러다가, 자기자신을 보호하지도 않고 마구 마구 앞지르면 안 되. 다른 사람의 말은 그게 무엇이라도 너 자신보다 중요하지는 않고, 네 삶을 타인이 휘두르게 해서도 안 되고, 타인의 삶을 네가 휘두르려고 해도 안 돼. 소설도 드라마도 그렇다. 삶이 아닌 모든 것들,은 걸러서 들어야 한다. 

책은 큰 애가 아직 어렸을 때, 정말 대박이라는 서평(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6138708)을 보고 골랐을 거다. 너무 이르게 산 책이라서- 그 때 큰 애는 다섯살이었다- 아이는 그저 신기하게 병풍처럼 펼쳐지는 책만 신기해했고, 나는 이야기가 너무 뒤집혀있어서 난처했었다. 그런데, 이제 둘째가 4학년이 되고도 학교에 못 가는 날들에 책을 한 권씩 골라주는데도 책보다는 유튜브나 컴퓨터게임을 즐기고 있어서 그럼 엄마가 함 읽어줄께 하고 읽었는데 반응이 너무 좋았다. 아, 확 뒤집힌 뜻에 웃으려면 원 뜻을 아는 아이들이 읽어야 해. 내가 처음 읽었을 때 난처했던 마음은, 거짓말이거나 뻥이라고 말하고 있어도 아이들은 그걸 모를 수도 있어서였는데, 이미 4학년인 아들이 와하하 웃으면서 들으니 그대로 좋았다. 그 웃음이 원뜻을 알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것도 아니까, 이 책이 나쁜 깨우침을 주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생기는 거다. 막 1학년 입학하고도 학교에 못 가는 막내는 오빠처럼 웃지 못하는 이야기였다. 나는 아이가 너무 재미나게 웃어서, 이 책이 좋은 책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고, 작가의 말에 '많은? 것이 엄펑소니다'할 때는 내 마음 같았다. 세상에 말들을 적당히 걸러서 듣고, 적당히 엄펑소니라고 생각하면서 듣는 것은 삶보다 이야기로 가득 찬 세상을 살아가게 해 주는 힘이다. 

어느 날, 콧구멍을 파다가 문득 깨달았어요. 이 세상에 참 많은 것이 엄펑소니란 것을. 그렇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었어요. 나중에 화장실에서 똥을 누다가 문득 또 깨달았지요. 엄펑소니를 엄펑소니가 아니게 할 수 있다는 것을. 그래서 난 예술가가 되었고 이 책을 만들었답니다. -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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