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넷페미史 - 우리에게도 빛과 그늘의 역사가 있다
권김현영 외 지음 / 나무연필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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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가 선물로 준 책이다. 세 명이 한 강의를 엮은 책은, 결이 조금씩 다르고, 내가 지나온 90년대를 말하는 첫번째 강의가 맘에 들지 않았다. 엄밀히 말하자면, 책 제목도 맘에 들지 않는다. 넷페미!라니!!!

페미니스트인 나는, 내 자신을 온라인과 오프라인으로 구분하지 않는다. 부끄러워서, 온라인에 내가 쓰는 글을 오프라인의 사람들에게 알려주지 못하지만 나는 온라인으로 오프라인으로도 나다. 내 이름을 쓰는 건 아니지만, 언제나 같은 아이디로 부끄러운 글들을 뒤에 남기고 그렇게 지금까지 살아왔다. 내 자신의 정신과 육체도 나누지 못하고, 또 내 자신을 온라인과 오프라인으로 나누지도 못하고, 타인에게 모진 말을 하면서 내 자신에 관대하지도 못한다. 

첫번째 강의자였던 분은 스스로를 넷 페미,라고 90년대 호주제, 군가산점이 이슈가 되었을 때, 자신을 가장하여 논쟁하는 이야기를 한다. 인터넷이라는 가상의 공간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가장하고 중학생을 가르치는 남자 교사인 체, 아이가 있는 엄마인 체, 타인을 설득하는 실험들을 했다고 말한다. 고지식한 나는, 그건 가능하지 않다고, 다들 자기 정체성 안에서 가장 정직하게 말해야 겨우 소통이란 걸 할 수 있는데, 소통을 하지 않고 하는 설득이란 얼마나 건조한가, 라고 생각하는 거다. 자신이 옳고 타인은 그르다는 확신 속에서, 스스로에게 정직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면서 타인이 가장 받아들일 수 있는 존재를 가상하여 쓰는 글은, 정말 설득을 할 수 있을까. 

젊은 페미니스트들이 가득 찬 자리에서, 어쩌면 웃으면서 즐겁게 이루어졌을 그 이야기들이 페미니즘을 오해하게 한다는 생각을 한다. 자연과 문명의 이분법이 얼마나 여성을 대상화하고 착취했는지,를 말하는 페미니스트가 인터넷 상에서 자신의 절대적 옳음을 확신하고 타인의 말을 흉내낸다. 깨어지는 것은 상대의 유리같은 마음만이 아니다. 자신도 말하면서 아닌 체 하지 못해서, 결국 자신의 마음도 변해 버린다. 무슨 이유로라도 자기 자신에게 정직하지 못하면, 마음이 병들어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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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키우는데, 마을이 필요한가,
마을을 만드는데, 아이가 필요한가,
내가 아이가 없다면, 나는 공동체를 요구할까.
지금의 파편화된 삶에도 그럭저럭 살아낼 수 있지 않을까.
아이들이 있어서, 자기 세상을 이제 조금씩 확장하는 아이들이 있어서, 공동체가 있기를 바라고, 그 공동체가 안전하기를 바라고, 또 그런 공동체가 서로를 믿으면서 지지하기를 바라는 게 아닐까.
아이가 없다면 공동체를 요구할까, 싶은 마음과
여자가 하지 않는다면 누가 공동체를 지지할까, 싶은 마음까지. 
그래서, 1988의 세계 속에서 아이를 함께 키우는 부모들의 마을,이 내가 젊은 어떤 날 도망치고 싶던 오지라퍼들의 세상일 수도 있는데도, 그래도 역시 그립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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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경고 - 현대인들의 부영양화된 삶을 꼬집어주는 책
엘리자베스 파렐리 지음, 박여진 옮김 / 베이직북스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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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철이라, 분위기가 싱숭생숭하여, 노조 사무실에서 책을 빌려다 읽었다. 책은, 예전에 본부장이 우수사원?이라고 선정해서는 그 사람들에게 선물했던 책이다. 표지 앞에 아마도 선물받았을 사람의 이름이 쓰여 있었다. 책은 현대인의 지나치게 풍요로운 삶을 비판한다. 지나치게 많이 소유하는 공간으로의 집, 개인화되면서 사라지는 가치, 창작에 요구되는 진정성 등에 문제제기한다. 대부분의 문제제기에 공감하면서도 굉장히 어렵게 읽었다. 

읽으면서 어지러웠다. 직전에 격몽요결,을 읽은 나는, 글쓴이의 지적 배경 그러니까 호주에 사는 백인 여성 건축가가 가지는 기독교 세계관과 서양 철학, 사고방식 더하여 건축학 지식 들과 충돌하고 있었다. 계속 반문하게 되는 단정들이 등장하는 거다. 서양식 사고방식. 고릴라 이스마엘을 읽을 때 느꼈던 잔인한 감정(http://blog.aladin.co.kr/hahayo/603247), 같은 것들 말이다. 아마도 또 최근에 초록불님 블로그에서 본 동아시아 인종의 DNA 분석에 대한 내용(http://orumi.egloos.com/7300179)이 연상되기도 했다. 기성세대의 것들을 부수고 찢고 새로이 등장하는, 은유로서는 아버지를 살해하는 아들로 묘사되는 문명 말이다. 그 문명 안에 자연으로 대상화되는 여성 정체성이 그 문명에 대해 문제제기하는 글이 나한테 잘 오지 않는 것이다. 어리석음을 깨치는 요결,이라는 책에서, 자세를 바르게 하라는 몸과 마음의 일체성에 대한 생각과 부모를 공경하라는 타이름을 구구절절 듣고 난 다음에 읽는 문명비평서,가 생경한 거다. 아버지를 살해하면서 결국 성장서사를 쓰는 서양의 문명과 부모의 피와 살을 받았고 몸과 마음이 별개가 아니라는 동양의 문명 사이의 거리만큼이 내가 이 문명비평서에 비판하는 대목들에 동감하면서도 어지럽다고 느끼는 감정이 되었다. 내가 무얼 안다고 하기는 어렵지만, 동양문명은 이분법 위에서 구축되지 않았고, 동양문명 안에서 여성인 나의 정체성은 소외되지 않는다. 자신의 노트에 '행복은 원하는 것을 얻는 데 있지 않고, 가진 것에 만족하는 데 있다'라고 적어주셨다던 작가의 할머니처럼, 여성에게는 이미 있는 그 정체성이 서구문명에서 얼마나 배척당해 왔을지도 알겠다. 여성들이 나섰다면 아직도 초가집에서 살고 있을 거라는 누군가의 비판에 동의하는 저자의 태도는 모호하고 괴롭다. 동양문화권의 내가 '그렇게 살면 뭐 어때서', 심지어 동양문화권에서 그건 은자의 존경받는 삶의 모습이기도 하다. 동양문화권 촌년인 나는, 저자가 비판하는 것처럼 누구나의 모든 욕망이 충족되어야 한다고 생각한 바 없고, 다들 그렇지 않나,라고까지 생각하는 거다. 

도시의 에너지 발자국이 시골-아마도 정확히는 교외주거지일 거다-의 에너지 발자국보다 작다는 데 살짝 놀라고, 여행과 인터넷을 금지한 이상적 미래도시 모습에서 어, 인터넷은. 이라는 심정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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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17-02-09 08: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은 현대인의 지나치게 풍요로운 삶을 비판한다. ; (산업국에서 사는) 현대인이 통상적으로 기대하는 삶은 (에어컨, 자동차, 육식, 해외여행 포함) 지구에서 공급하는 태양에너지의 6배가 필요하다고 합니다.

개인화의 가차판단은 좀 어렵군요.

별족 2017-02-09 09:06   좋아요 0 | URL
개인화,는 제가 어디 썼나요? 그걸 말한 대목은 많습니다. 극장과 홈시어터, 대중교통과 자동차, 같은 거요. ‘페미니즘‘에 대해 말하는 페미니즘이 ‘여성도 남성만큼 누릴 가치가 있다‘로 가면서, 어떻게 소비를 촉진하는지를 비판하는 대목도.

별족 2017-02-09 09:51   좋아요 0 | URL
사실, 개인화는 쓰고 싶었으나, 쓰기 어려워서 오래 전에 응답하라 1988 보고 썼던 걸, 다 늦게 올리기는 했습니다-_-;;;

마립간 2017-02-09 10:44   좋아요 0 | URL
개인화 ; 개인화는 동서양 가치관 및 문화, 비교에서 추론된 용어입니다.

보다 진보(?)적 문화를 위해서는 더 개인화(서양)가 되어야 한다는 의견과 진보(?)적 문화를 위해서는 공동체화(동양)가 유지되어야 한다는 의견이 공존하고 있다는 것을 언급하고 싶었습니다.
 

내 마음 속의 마지막 회는 13회,로 정했다. 14회는 안 본셈 치자. 15회는 보지 않았다. 

나는, 만약 기술이 발달해서 캡슐하나를 몸에 넣으면, 그 캡슐이 몸 속의 온갖 노화를 조절하면서, 불멸의 몸을 가질 수 있다고 해도, 그 캡슐을 몸에 안 넣고 도망갈 거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 모두가 그걸 넣는데도, 나는 안 넣을 거다. 사는 건 나쁘지는 않지만, 그렇게 좋지도 않다고. 자꾸자꾸 수명이 늘어나는 것도, 그래서 정년이 늘어나는 것도 심난한 나는, 너무 애쓰고 싶지 않은 거다. 오래살고 싶지 않다고. 지겨울 거 같다고. 다 같이 천년만년 산대도, 그걸 위해 새로 태어날 아이를 통제해야 한다면 정말이지 그건 아주 끔찍하고. 그럼 나는 지겨워서 살 수가 없다고. 내가 이런 인간이라서, 이렇게 생겨먹은 인간이라서, 사랑하는 사람들을 앞세우면서 혼자만 천년만년 산다는 도깨비가 결국 소멸했을 때, 참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칼이 가슴에 박힌 채로도, 아무 고통도 불편도 없는데, 칼이 빠져나왔다고 벌이 사라진 거야, 싶은 14회의 전개에 일없이 딸과 투덜거렸다. 칼이 가슴에 박힌 게 아니라, 영원히 죽지 않는다는 게 바로 벌이었는데, 이건 로맨스고, 로맨스의 해피엔딩은 언제나 '그래서 행복하게 살았습니다'이기 때문에, 도깨비는 다시 나타난다. 그래 나타날 수는 있다고, 나도 생각하지만, 다시 나타난 도깨비가 여전히 도깨비인 것은 용납이 안 되는 거다. 

사랑을 하기 위해 상대가 전능할 필요도, 불멸일 필요도 없다. 다시 나타난 도깨비가 '대표님'이 아니어도 되고, 문 하나만 열어서 캐나다로 데려다주지 못해도 된다. 사랑하는 사람이 먼저 죽는다는 건, 두렵고 슬프고 힘든 일이지만, 그렇다고 상대가 홀로 남겨져서 두렵고 슬프고 힘든 일을 겪으라고는 못 하는 거다. 너는 그대로 남아서, 나의 몇 번이 될 지 모르는 그 생들을 기다리라고 나는 못 하는 거다. 사랑은, 더 강한 상대에게 의존하는 마음이 아니라, 결국 소멸하는, 인간이라는 약한 존재가 세상을 견딜 수 있게 하는. 함께 버텨주는 그런 마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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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인숙 선생님의 양성평등 이야기
권인숙 지음, 유지연 그림 / 청년사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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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5학년이 되는 딸이 읽었으면 하고 샀다. 권인숙선생님이 자신의 딸에게 주는 여성학 입문서는 나에게는 익숙한 담론들이라 새롭지는 않았다. 아이가 어떻게 읽을지는 모르겠는데, 우선 읽기는 할런지 의문이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있던 나의 상황 때문에, 아주 작은 묘사에 격하게 공감했다. 책에 딱 한 줄 일터에서 여성을 묘사하는 대목에서, '일방적이며 순종적 상하 관계로 훈련된 조직 문화에서는 여성이 상대적으로 더 어려움을 겪는 게 자연스럽지 않을까? 여성은 평등하고 정서적 관계에 더 익숙하니까 말이야'라는 설명을 읽었다. 이 대목은 어쩌면, 군대식의 조직문화를 가진 일터의 문제점을 묘사하기 위한 거였고, 여성의 '평등하고 정서적 관계'에 대한 더 이상의 설명은 없었다. 그런데, 나는 그 때, 여성들의 모임에서 혼자만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이 되어서는 누구도 설득하지 못한 지경이어서 왜 이렇게까지 서로 대화가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나는 심지어 장,이었으니까, 적어도 장,에게는 좀 더 발언권이 있다고 생각하는 지경이었는데, 내가 들은 대답은 '장은, 대표이기 때문에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게 아니라, 여러 의견을 대리하기만 해야 한다'였다. 말을 하지도 못하게 하고, 내 말은 듣지도 않는 지경에 처해서 참담한 와중에 결국 그 말들은 남성인 다른 장,에게 가서 깨졌다.
책에서 그 대목을 만난 순간, 나는 아, 여성의 조직은, 평등하고 정서적 관계를 원하기 때문에, 다른 의견을 수용하지 못하는 구나,라고 수긍했다. 나는, 보통은 남자들 가운데 혼자 여자였던 경우가 많아서, 내 의견이 하나뿐인 걸 그 상태로도 이해하고 있었고, 그 하나 뿐인 의견을 말하는 게 꺼려졌던 적은 없었다. 그리고, 여성인 채로, 말단인 채로, 혹은 지금 고참직원인 채로, 차츰 발언권이 생기고 있다고도 느꼈다. 그런데, 여성의 조직에서, 내가 장이라고 해도-아, 손들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장이기는 합니다만- 권위로 의견을 무시하지 않았던 나의 동료나 후배들이, 내 의견이 하나뿐이라고 무시하는 상황에 처해지니, 착잡했다. 언제나 말할 시간은 부족하고, 비어버린 소통 가운데 효율,만이 남아서, 평등하고 정서적 관계, 안에서도 나는 고립된다. 어쩔 수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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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17-01-24 07: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적절한 예가 되겠지만 모르겠지만, 딸과 딸 친구들의 관계를 보면서 새삼스럽게 느끼고 있습니다.

별족 2017-01-24 09:11   좋아요 0 | URL
이러나 저러나, 균형잡기의 문제가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