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 속의 마지막 회는 13회,로 정했다. 14회는 안 본셈 치자. 15회는 보지 않았다. 

나는, 만약 기술이 발달해서 캡슐하나를 몸에 넣으면, 그 캡슐이 몸 속의 온갖 노화를 조절하면서, 불멸의 몸을 가질 수 있다고 해도, 그 캡슐을 몸에 안 넣고 도망갈 거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 모두가 그걸 넣는데도, 나는 안 넣을 거다. 사는 건 나쁘지는 않지만, 그렇게 좋지도 않다고. 자꾸자꾸 수명이 늘어나는 것도, 그래서 정년이 늘어나는 것도 심난한 나는, 너무 애쓰고 싶지 않은 거다. 오래살고 싶지 않다고. 지겨울 거 같다고. 다 같이 천년만년 산대도, 그걸 위해 새로 태어날 아이를 통제해야 한다면 정말이지 그건 아주 끔찍하고. 그럼 나는 지겨워서 살 수가 없다고. 내가 이런 인간이라서, 이렇게 생겨먹은 인간이라서, 사랑하는 사람들을 앞세우면서 혼자만 천년만년 산다는 도깨비가 결국 소멸했을 때, 참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칼이 가슴에 박힌 채로도, 아무 고통도 불편도 없는데, 칼이 빠져나왔다고 벌이 사라진 거야, 싶은 14회의 전개에 일없이 딸과 투덜거렸다. 칼이 가슴에 박힌 게 아니라, 영원히 죽지 않는다는 게 바로 벌이었는데, 이건 로맨스고, 로맨스의 해피엔딩은 언제나 '그래서 행복하게 살았습니다'이기 때문에, 도깨비는 다시 나타난다. 그래 나타날 수는 있다고, 나도 생각하지만, 다시 나타난 도깨비가 여전히 도깨비인 것은 용납이 안 되는 거다. 

사랑을 하기 위해 상대가 전능할 필요도, 불멸일 필요도 없다. 다시 나타난 도깨비가 '대표님'이 아니어도 되고, 문 하나만 열어서 캐나다로 데려다주지 못해도 된다. 사랑하는 사람이 먼저 죽는다는 건, 두렵고 슬프고 힘든 일이지만, 그렇다고 상대가 홀로 남겨져서 두렵고 슬프고 힘든 일을 겪으라고는 못 하는 거다. 너는 그대로 남아서, 나의 몇 번이 될 지 모르는 그 생들을 기다리라고 나는 못 하는 거다. 사랑은, 더 강한 상대에게 의존하는 마음이 아니라, 결국 소멸하는, 인간이라는 약한 존재가 세상을 견딜 수 있게 하는. 함께 버텨주는 그런 마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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