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서진 사월
이스마일 카다레 지음, 유정희 옮김 / 문학동네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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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생경해서 판타지 소설을 보는 것 같았다.   

카눈,이라는 고원지대의 전통적 관습법을 바닥에 깔고 있는 소설은, 존재하지 않는 세상의 존재하지 않는 이야기 같았는데, 실상은 존재하는 이야기. 나를 새삼 먼 곳으로 데려다 준다고 느낀 두번째 소설-첫번째 소설은 '카자르 사전': 묘사된 설화라든지, 상상이 너무 생경해서, 와 신기한 나라구나, 그랬었지-이 되었다.  

그저 손님일 뿐인데도 신의 지위를 주고, 그 손님 때문에 복수의 고리에 얽혀 버리는 과정이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인가 싶기도 한 느낌. 

도시화로 세계의 어디나 비슷해져버린 지금의 내가 보기에, 그건은 이상하기만 한 그래서 판타지같다고 느껴지지만, 죽음까지도 명예보다 가벼운 고원지대의 율법 속에서 개인이 아니라 속한 자로써 살고 죽는 청년을 생각한다. 지금 삶에서 무언가 비어버린 부분 때문에, 나도 마차 속의 귀부인도 그 청년에 흔들리는 것일 거다. 그저 야만,이라고 말할 수 없는 문화적 차이를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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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란 무엇인가
마이클 샌델 지음, 이창신 옮김 / 김영사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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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맥가이버'에서 이런 에피를 본 기억이 있다. 맥가이버가 방문한 작은 공동체 마을에서, 공동체에 죄를 지어 벌을 받는 사람이 나온다. 그 사람에게는 아무도 말을 걸지도 않고, 얼굴을 보지도 않고, 공놀이에 끼워주지도 않는다. 그 공동체에서 그 사람은 말 그대로 투명인간, 존재하나 존재하지 않는 사람인 벌을 받고 있었다. 외부자인 맥가이버는 이게 부당하다고 생각하하고 바로잡으려는 노력을 하는데, 나는 이상했다. 그 벌이 뭐가 어때서, 라고 생각한 것. 때리는 것도 죽이는 것도 추방하는 것도 아니고, 공동체에서 허용하지 않은 일을 한 벌로써 이루어지는 그 벌을 어째서 잘못,이라고 판단하는가, 했던 것. 아, 나는 지독하게 비사회적인 인간이기는 하다.   

책은 강의록이다. 하버드의 명강의를 옮겨놓았다는 설명대로, 책의 저자는 정의에 대한 철학적인 대답들을 차례대로 훑고, 자신의 견해를 밝힌다.  

내용은 새롭다기보다 이 질문에 답을 찾는 과정이 얼마나 오래되고 첨예하고 어려운지를 깨닫게 한다. 이건 정답이 있는 질문이 아니라, 끊임없이 질문해야 하는, 결국 상황마다 다른 답이 나올지도 모르는 문제라는 생각을 한다.

나는 어찌보면 아리스토텔레스적인 방식으로 정의를 설명하는 사람이구나, 깨닫게 되더라. 아리스토텔레스의 수련하는 방식에 공감하게 된다. 정의도, 도덕도 수련하는 방식. 이게, 오히려 나와 가깝다고 생각한다.  

이 책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지금 시대가 간절히 원하는 정의가 그리 단순하지는 않다는 것, 그래서 계속 질문해야 한다는 것, 오랜 동안 많은 사람이 서로 다른 답을 내 놓았고, 그걸 통해 자기 자신이 어떤 정의에 더 가까운지 생각해볼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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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쇼핑 - 아무것도 사지 않은 1년, 그 생생한 기록
주디스 러바인 지음, 곽미경 옮김 / 좋은생각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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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주제는 위험하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비난받는다고 느낄 수 있으므로, 그런데도, 그 사람들에게 공감을 사야 하는 거니까. 그래서, 난 사려고 하지 않았는데, 남편의 주문도서 목록에 들어 있었다. 오늘 아침 남편보다 먼저 책을 끝냈다. 그러고는 잊고 있었다. 챙겨서, 출근을 했고, 일없이 왔다갔다, 그러다가, 무언가를 산다는 것에 대해 말하는 '굿바이'님의 페이퍼(http://blog.aladin.co.kr/goodbye/3970119)를 읽고 아, 난 다르게 생각하는 것 같아, 라고 정리할 결심을 하게 만든다.  

굿바이 쇼핑,의 주디스 러바인이 그 1년을 보낸 후 시민이 되었다,고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돈을 적게 쓰는 방식의 삶은 다른 공공재들을 요구하고, 삶을 달라지게 만들지만, 그게 더 다양성이 넘치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 걸어갈 수 있는 만큼의 공간에서 내가 가구를 사고, 책을 사고, 음식을 사고, 옷을 사서 그 공간 안에 가구점과 서점과 식료품가게와 옷가게가 있을 수는 있지만, 그 옷가게가 넘치는 다양성을 담보하라고 요구하지는 않는다. 차를 타고 달려가 이 마을과 저 마을을 비교한다면 그건 다양하고 특색있을지 몰라도, 그러지 않는다면, 삶은 물처럼 고요하고 심심하고 단순하고 아주 천편일률적이지 않을까. 작은 마을을 버리고 도시로 떠나는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그래서 오히려 다양성인 게 아닐까. 어릴 때 내가 살던 작은 마을에서, 아직 동네에 들어오지 않은 메이커의 옷을 어디 다른 곳에서 구해 입었던 게 우쭐할 일이었던 것처럼. 여기서 구할 수 없는 것이라는 말이, 가장 큰 자랑이었던 것처럼, 사람의 기묘한 속하고 싶지만, 우월하고 싶은 마음이 이 과소비를 만드는 것은 아닐까 생각하는 것. 동네 슈퍼 대신, 더 큰 대형마트가 들어오길 바라는 마음은, 그 다양성 때문이 아닐까. 좁은 다양성이 큰 다양성을 밀어내는 것을 그래서 의심없이 수용하는 게 아닐까. 그래서, 오히려 세계가 똑같아지는 무지막지한 지경에 몰린 게 아닐까.  

책 속의 1년은 쇼핑을 끊고, 시간을 벌어, 시민이 되는 식으로 흘러간다. 선거가 있는 해의 이야기는 욕망을 조장하는 쇼핑의 시간들이 생필품 이외에 쇼핑이 금지된 글쓴이가 택해 시간을 보내는 방식으로의 도서관과 대중교통, 무료공연들에 대한 현실로 옮아가고, 정부의 태도에 대한 비판으로 옮아간다. 그렇다. 사용하지 않는다면,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사용하지 않는다면, 그대로 수용하게 된다. 자가용이 있는데, 부족한 대중교통이 뭐가 문제가 되며, 내가 원하는 책을 살 수 있는데, 부족한 도서관이 뭐가 문제가 될까. 민간의료보험이 더 좋다는데, 국민의료보험이 뭐가 필요할까. 등등. 도대체 뭘 믿고, 공공재를 사유재인 것처럼 사고하게 하는 거짓말들에 속는 것일까,라고 말한다.  

사적인 일기처럼도 비춰지는 이 책은 그래서 나쁘지 않다. 객관적인 체 하지 않는 온전히 주관적인 미묘하고, 아슬아슬한 균형잡기가 책 속에서 드러난다. 그렇다. '쇼핑을 하지 않는 나는 쇼핑을 하는 당신을 비난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이런 것들을 한번쯤 생각해보는 이 1년은 나를 자유롭게 만들었다고 말해주고 싶다' 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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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마음껏 살아라! - 생의 끝자락에 선 아버지가 아들에게
티찌아노 테르짜니 지음, 이광일 옮김 / 들녘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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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에, 이 책이 소개되어 있어서, 넣었다. 거기 인용된 문구는 이런 것, 모든 혁명은 어린아이와 같아서, 아이일 때는 귀엽지만 자라면 비열한 어른이 된다.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닌 모든 혁명은 다 마찬가지다. 뭐 이런 것이었다.   

이 책은 이탈리아에서 태어나 독일의 잡지사에서 일하면서 혁명의 나라들에 혁명의 순간을 찾아다닌 기자였던 저자가 암으로 생을 정리하면서 아들과 나눈 대화를 정리한 책이다. 책은 아버지가 아들에게 하는 구술형식의 편지로 시작한다. 책을 받아보고 나는 공저자로 아들의 이름이 없어 의아했는데, 책을 펼쳐 읽으면서 알았다. 이 책에서 아들의 역할은 타자수 정도밖에 없다. 완벽한 대화체를 그대로 책으로 옮겨놓았다. 아들의 질문 다음에 아버지의 대답, 아버지의 긴 서술 다음, 아들의 짧은 추임새 형식으로, 익숙하지도 않고, 내가 좋아하는 형식도 아니다.  

저자는 하고 싶은 일은 하면서 내내 살았다고, 자기는 하고 싶은 게 먼저였고, 그걸 하기 위해서, 기자라는 직업을 가졌다고 말한다. 중국에 가기 위해, 중국특파원이 필요한 잡지사를 유럽 전역에 걸쳐 물색하는 방식의 삶이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돈도 벌었으니 얼마나 좋으냐면서, 권력과 타협하지 않는 기자로서의 무용담을 말한다. 2차대전말의 풍경을 겪으면서 자랐고, 혁명의 중국, 베트남, 라오스에 있었던 이 아저씨의 말들은 진지하다. 인도의 경제성장에 대한 기사를 쓸 수 없던 그 마음의 진실을 알겠고, 차라리 지금과 같은 베트남이 될 바엔, 그 전쟁에 승리하지 않았던들 무슨 상관인가,라고 말하는 마음도 알겠다.  

이른 죽음을 맞은 이 아버지가-표지의 그 하얀 저자는 일흔이 안 되었다- 자신의 아들에게 '내적 혁명만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하는 그 진심도 알겠다.  

전 세계가 자본주의화되는 과정을 지켜본, 어린아이같이 아름답던 혁명에 열광하던 청년이 혁명의 추악한 변화를 지켜보고 노인이 되어, 진정한 혁명은 마음 속에서만 가능하다고 말하는 그 깊은 진심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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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체오페르 2010-06-09 1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음에 들것같은 책을 찾았네요. 감사합니다,별족님^^

별족 2010-06-16 13:13   좋아요 0 | URL
읽고도 마음에 드시길 바랍니다.
 
저 반짝이는 별들로부터 - 10대를 위한 SF 걸작선 창비청소년문학 24
필립 K. 딕 외 지음, 패트릭 닐슨 헤이든 엮음, 정소연 옮김 / 창비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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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책이 안 읽힌다. 이것도 저것도. 그래, 판타스틱이 마지막으로 내게 권했던, 이 책을 읽기 시작한 것이다. '청소년을 위한 SF단편선'.   

재미있다. 편집자가 밝힌 것처럼, SF는 과학적 환상을 보여주는 장르물이라기 보다는, 현실을 비추는 거울로써의 물음이라는 걸 알게 된다. 각각은 다른 질문을 하고, 때로 깊고 무겁고, 때로 얕고 가볍지만, 그걸로 충분히 즐겁다. 길이도 깊이도 주제도 다른데, 그 각각이 다 그대로 여운을 준다.  

실제로 그 질문은, 현실의 어떤 다른 상황으로 돌려질 수 있지만, 지금 이 속에서 던지는 질문들은 SF라는 외피 덕에 더 쉽게 다가온다.  

저 반짝이는 별들로부터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진 자가 우리를 방문하였을 때, 우리는 그를 경멸하고 멀리할 수도 있고, 외롭고 황량한 우주에서 자신과 가족과의 관계를 되짚을 수도 있다.  

알 수 없는 미래가 어떤 풍경일지, 저 먼 별바다에 누가 살지, 우리는 알 수 없으니 상상할 수 있고, 우리는 우리 삶 속에서만 상상할 수 있으니, 그 상상은 우리 삶을 비춘다. 그 모든 반짝이는 이야기들을 만나서 기뻤다.

아, 판타스틱, 고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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