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신연의 일송북 중국 6대 기서 시리즈 2
허중림 지음, 서지원 엮음 / 일송북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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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에 산책을 하는데, 이 북으로 빌려서 읽었다. 

중화티비의 봉신연의를 드라마로 본 기억이 있어서, 지금도 끊임없이 재창작되는 오래된 이야기가 궁금했다. 은나라의 마지막과 주나라의 처음이라는 역사적 배경에 온갖 요괴들이 등장하고, 도교의 신선과 도사들, 부처님도 등장한다. 이야기의 시작이 신에 대한 경외심을 잃은 황제에서 출발하는 것은 상징적이고, 요괴들까지 두 나라의 흥망에 관여하고 있다는 설정에 계속 상상한다. 그 때 사회상은 어땠을까. 지금의 사회상이 어떤 소설에 투영되어 남을 때 어떨까. 그 때의 사회상에 묘사되는 요괴는 어떤 것들이었을까. 도사나 신선은 도대체 어떤 존재들이었을까. 어떤 존재들의 어떤 믿음들이 혼란 가운데, 이런 이야기로 만들어져 남았을까, 궁금했다. 나타의 이야기가 언급되는 대목도 즐거웠고-나타지마동강세, 만화 이야기를 유튜브에서 봤었다-, 양전과 강태공의 이야기는 드라마에 어땠었나, 되짚어가기도 했다. 달기의 이야기는 드라마와 다르네,라면서 읽었다. 수도 없이 다시 만들어지는 거대한 이야기, 한 토막만을 들어내어도 이야기 하나를 만들 수 있는 이야기, 모른다고 해도 토막토막 과연 몰랐는가 싶은 이야기를 전투소설이나 요괴소설이나 가상역사소설로 읽는 거다. 

구구절절 한사람 한사람을 말하고 있지 않아서, 휘몰아치는 전개가 -어쩌면 그건 내가 다이제스트로 읽어서겠지만- 즐거웠다. 이렇게 긴 역사 가운데, 백년이라고 해도 그리 긴 이야기일까 싶기도 하고, 무에 그리 무거울까 싶기도 해서, 즐겁게 읽었다. 

국가, 거대한 제국인 중국의 종주국이 뒤바뀌기 위해서 벌어진 거대한 이야기에는 종교적 전복도 있을 테고, 무수한 이민족의 귀신들이 요괴의 형상으로 복종하는 모습이 있는 것도 같다. 이야기로도 이야기가 은유하는 현상을 상상하는 것도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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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어떻게 대해야 할까
생각의 뿌리를 찾아서 떠나는 여행 - 수호믈린스키의 인성 동화집
바실리 알렉산드로비치 수호믈린스키 지음, 박건웅 그림, 박미령 옮김 / 고인돌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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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키우는 데 딱 한 권의 책을 읽는다면, 나는 인재시교,를 읽겠다. (https://blog.aladin.co.kr/hahayo/9371196) 

인재시교,에서 아이를 대하는 태도, 세상을 대하는 태도가 좋았어서, 인재시교가 언급하는 수호믈린스키의 책을 찾아 읽었다. 우화를 좋아하는 나의 성정을 보태어, 교육학자라는 저자의 우화집을 골랐다. 생각보다 오래 걸려서 받아본 책은 굳이 정의하자면, 공산주의자의 교육서다. 교육의 태도는 아이를 대하는 태도로는 그릇되다고 할 수 없으나, 사회로 확장한다면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삶을 대하는 나의 태도로는 받아들일 수 있으나, 사회를 세상을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들었다. 

아이들과 집에 있는 날, 책 속의 한 대목을 읽어주었다. '열 살이면 노동할 수 있는 나이다'라고 씌여있다. 종일 밭을 메고 들어온 나의 엄마가 종일 놀 만큼 논 나에게 '이웃의 아이는 밥을 해놓고 엄마를 기다린다'고 푸념하던 순간과 아이들과 나란히 앉아 책을 읽는 엄마인 내가 아이에게 '열 살이면 노동할 수 있는 나이다'라는 우화집을 읽어주는 건 얼마나 다른가. 책 속의 이야기에 가지는 나의 거리감은 그런 것이다. 아이에게 노동의 의미나 가치를 가르쳐 주는 것은 중요하고, 이야기의 많은 부분이 종교적 색채가 없는 '공산주의자!!!'의 교육서 이기 때문에, 무신론자인 나에게 좋기도 했지만, 이미 너무 부유해서 거리감이 생겨버렸다. 이미 너무 풍요해져서, 그 풍요 가운데 너무 멀어져버린 자연의 변화, 삶의 근본적인 가치, 삶과 죽음, 인생의 의미 같은 단순화시킨 이야기들이 그대로 와닿지 않았다. 그런 마음이 그런 삶에 대한 태도가 내 안에 있지만, 이미 나조차도 노동과 많이 멀어져버렸고, 살기 보다 더 많이 보고 읽고 이야기하고 있는 중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이들이 가진 태생적 선함이 있다는 믿음이 교육서로서는 가치가 있지만, 너무 두꺼운 이야기들을 계속 읽고 있으려니, 이 믿음이 확장하여 만들어진 사회를 또 상상하고 있으려니 좋아하던 마음이 조금씩 가라앉았다. 이야기 자체로는 좋지만, 그게 믿음이 된 세상을 알고 있어서, 그 세상이 어떻게 병들었는지 또 알고 있어서, 조심스럽게 물러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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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건에 대해 잊히지 않는 장면의 기억이 있다. 갓 시집온 며느리(이승연)가 시댁에서 설거지를 하고 있다. 설거지를 하는 며느리가 낡은 후라이팬을 닦는데, 많은 홈드라마가 그러하듯이 나이 든 어른 여자(이모할머니였던가, 시어머니였던가)가 숟가락으로 기름때를 긁어서 떼어내면 된다고 알려준다. 그렇게 닦던 며느리가 '버리고 새로 사요'라고 말하는데, 그 어른 여자가 '나도 늙고 쓸모없으면 내다 버리겠구나'라고 응수하는 장면이다.(https://ko.wikipedia.org/wiki/%EB%82%B4%EC%82%AC%EB%9E%91_%EB%88%84%EA%B5%B4%EA%B9%8C)
날카롭게 콱 박힌 기억이라 언젠가 한 번은 쓰고 싶었다.
왜 그렇게 콱 박혔을까. 그 연결이 생경해서, 혹은 그 말이 너무 공격적이어서, 내가 그 젊은 며느리와 다를 바 없어서? 

버리는 일을 힘들어하는 지금의 나는 그 할머니 같다. 물건을 나 자신처럼 생각하고 있다. 스터프를 읽고 (https://blog.aladin.co.kr/hahayo/7043654) 만든 많은 변명들을 더하기 까지 해서, 더 못 버리는 지경이기도 하다. 철학책을 읽는 중에 물건을 대하는 태도가 결국 자신을 대하는 태도가 되어서, 현대인이 좀 더 결핍을 많이 느낀다는 대목을 읽고도 또 고개를 주억거리는 거다. 

청소하기 싫다,는 말을 청소가 도대체 뭐야, 여기서 저기로 옮겨놓는 것 뿐이잖아?라고 궤변을 늘어놓는 나는 버리기보다 태우고 싶다. 완전히 사라지게 할 수 있다면 더 쉽게 버릴 수도 있을 거 같다는 생각마저 든다. 

신박한 정리를 보고 있다. 어디 있는지, 어디에 쓸지, 과연 쓸지 알 수 없는 물건들로 가득 찬 집들이 버리고 버리고 버린 와중에 집 꼴을 갖춘다. 버려야만 가능한 일이다. 그런 집에서 울컥한 사람들을 보고 있다. 인생의 어떤 순간들을 흘러가게 둘 수 있어야 가능하다. 아직도 흘려보내지 못한 어떤 순간들이 쌓여 있다. 마음과 집, 나와 물건, 나와 자연, 나와 지구, 그 무엇도 칼로 자르듯 베어낼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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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솝 우화로 읽는 철학 이야기 - 이솝의 지혜, 철학자의 생각법! 일상에서 써먹는 철학 개념
박승억 지음, 박진희 그림 / 이케이북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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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용 도서로 분류되어 회사 책구매로 살 수가 없어서 따로 샀다. 처음부터 재미나게 읽지는 못했는데, 청소년에게 철학 특히 서양철학을 가르치기 위해 그런 것이란 생각을 하고 나니 마음이 누그러졌다. 서양사람들은 도대체 자기 이름을 왜 남기고 싶은 거래, 싶은 지경이었다. 알맹이가 아니라, 누가 그 말을 했는지 이름표를 달기 위해 배움이 느려지는 거다, 싶었다. 

모두 현명해지는 일은 아예 없으니, 어리석은 대중은 종교-기독교-로 계도하고, 학문의 영역에는 장애물을 만들기로 작정을 하고, 오리지널리티를 부여하기로 한 모양이라고 투덜거렸다. 여전히 공자와 맹자와 순자와 법가, 부처님에 대해서 말하는 동양의 사람이라서, 도대체, 저 느리고 한심한 사람들이 철학자의 이름들을 열거하는 것이 허영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도 청소년일 때는 저랬을 거야. 밴담의 책은 읽은 바 없으면서 공리주의를 말하고, 보이지 않는 손을 말한 건 또 누구고 이러면서 우쭐해했겠지. 지금의 나는 이미 살고 있는데, 그 삶을 설명하는 말을 만든다는 것이, 오리지널리티를 부여받을 일인가, 싶어서 우화인 채로의 이야기가 더 좋았다. 철학으로 붙은 철학자의 사진과 그림과 석고상은 대표저서와 이런 저런 외래어는 정말 다 사족같았다. 공연히 다들 아는 이야기에 자기 이름표를 달기 위한 것 같다. 어쩌면 삼체,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먼 미래에 우리의 어떤 기술은 과연 어떤 식으로 남을까. 공주님을 찾아나서는 왕자의 이야기로 전해지지는 않을까. 


청소년이 읽는다면 더 재미있게 읽을 수도 있을 거 같다. 이름을 남기겠어,라는 야망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 이름들을 알고 기억하는 게 의미 있는 거라고 지적 우월함을 뽐낼 생각을 하고 있다면, 더 즐겁게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실용적인 나는, 실천하지 못하는 앎이 무슨 소용이야,라고 생각하는 나는 좀 덜 재미나게 읽었다. 이솝우화, 안에는 원래 그런 심연이 있었다니까. 철학자가 이미 이름붙이기 전에 살면서 이미 오래 전에 알고 있었다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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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cm 다이빙 - 현실에서 딱 1cm 벗어나는 행복을 찾아, 일센치 다이빙
태수.문정 지음 / FIKA(피카)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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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서점에 갔더니, 초등 4학년인 아들놈이 고른 책이다. 처음 들어보는 제목에 여태 이렇게 글자 많은 책을 즐겨 읽던 놈이 아니라서 '엄마가 먼저 읽어봐도 되냐?'고 묻고 먼저 읽었다. 

생물학적 나이에 0.8을 곱해야 미숙한 현대인이 옛날 사람들 또래랑 비슷해진다는 현대인 나이계산법 생각이 났고, 옛날에 옛날에 아빠가 이야기하던 생각도 났다. 그 때, 내가 막 결혼했고 아이는 없던 어떤 명절에 언니랑 여동생, 나랑 남편 아마도 넷이 모여서 사무실의 이상한 인간들에 대해 흉을 보고 있었다. 아빠는 옆에서 듣다가 지나가시면서 다른 사람 이야기 그렇게 하는 거 아니다,라고 하셨었던가. 재잘재잘 재미나게 떠들던 나는 '뭐래? 성인군자라도 되라고?'라면서 이야기를 계속 했었나. 책 속에서 '사무실에서 참기 힘든 사람'에 대해 서로 한 꼭지씩 쓰고는 당신도 해보라고 권하는 대목에서 떠올랐다. 나는 그걸 소수의 아주 가까운 사람들과 했는데, 그걸 이제 책으로 보란 듯이 하는구나. 그 때, 나는 아빠에게 그러지 말라는 조언을 들었는데, 이 사람은 그런 말을 듣기보다 책이라는 일방적인 매체를 통해 이 책을 읽는 당신도 한 번 해보라고 권하고 있구나. 

책은 서른살의 남자와 스물여덟살의 여자가 지금껏 자신이 너무 답답하게 살아왔다고 스스로의 행복을 찾아 딱 1cm 정도 일상을 벗어난 일탈을 하자,는 내용인데, 나는 뭔가 답답했다. 뭐야? 너무 어리잖아. 

또래집단이 모여서, 서로 듣기 좋은 말을 해준다. 주변에 이런 친구들만 있으면, 삶은 어떻게 될까, 싶다. 

아빠가 우리의 잡담에 당부를 했듯이, 나의 친구 중에 한 명쯤은 동감 말고 다른 말을 해주면 좋겠다. 덕업을 서로 권하고, 나쁜 짓을 서로 말리고, 그래서 들을 때는 입을 조금은 삐죽여도, 지나고 나면 한 번 더 생각하고 자신을 바로잡으면 좋겠다. 주변에 온통 조언들 뿐이라서 공감이 필요해서 쓴 책이란 건 알겠으나, 과연 공감이란 도움이 되는 감정인지 점점 더 모르겠다. 나쁘게 살라는 책은 아니지만, 자신의 착한? 삶이 단지 억압일 뿐이었다는 말은 기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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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andante 2020-10-17 23: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런 책은 솔직히 좀 많이 한심합니다. 말씀하신대로 너무 어리죠. 각자의 삶이 다 정당하고 옳지는 않을 텐데 말입니다...

별족 2020-10-18 07:46   좋아요 1 | URL
이럴 줄 알았으면 읽지 않으면 될 일인 건가, 싶기는 합니다. 유튜브도 뭐든 말하고, 싫으면 안 보면 되잖아요, 하고. 젊은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나 궁금해서 봤고, 내가 젊었을 때도 다르지는 않았던 거 같기는 한데, 지금은 너무 젊은 날의 부끄러운 말들이 글들로 남게 되는 거 같아 안타깝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