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 포뮬러 - 성공의 공식
앨버트 라슬로 바라바시 지음, 홍지수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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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게 읽고 딱히 보탤 말이 없어서 서평은 못 쓴 책에 버나드 콘웰의 아서왕 연대기(https://www.aladin.co.kr/shop/common/wseriesitem.aspx?SRID=14905) 가 있다. 책 속에서 멀린이 행하는 마술은 다른 사람보다 일찍 알아차린 과학처럼 묘사된다. 마법사라는 도제관계에서 전해지는 식물과 동물과 광물의 특성을 이용하는 것. 아주 깊은 과학은 마술처럼 보인다, 라고도 생각하고 있다. 

책은 데이터과학으로 뽑아낸 성공의 공식, 이라고 한다. 이 책의 저자가 과학자가 아니라면, 이 책의 내용이 처세술 책과 구별이 될까,라고 생각했다. 그저 처세술 책의 말들이 근거없지는 않다,라는 정도의 인상이 될 수도 있다. 성공부터 정의하는 저자는 성공은 성과가 아니라, 타인이나 업계의 평가라고, 관계 안에서 인정받은 정도를 말한다. 성공의 정의부터 받아들이기 어렵다. 과학,이라는 척도가 기준을 원하기 때문에 그런 식으로 정의를 하는 거겠지만, 그러고 나면 킴 카다시안의 성공과 아인슈타인의 성공은 어떻게 비교할 수 있는가. 솔직히 자신의 아이가 대학에 원서를 내야 할 때, 자소서? 관리를 안 했다고 할 때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다. 1공식인 인적 네트워크를 관리하라,의 도입부로 동구의 나라에서 이민한 자신이 공부만 해서 좋은 성적만으로 아이가 성공하리라고 기대했는데 당장 명문대에 갈 수 없다는 걸 깨닫고는 되짚는 거다. 보면서 한 생각은 뭔가 요즘 공정의 논리 가운데, 선진국이라는 나라들도 다를 게 없다,면서 보여주고 싶었다. 시험만 잘 보면 높은 성적이 큰 성취의 기준이라고 주장하는 목소리들에게 들려주고는 싶다. 학교에서나 그렇지, 그건 아주 작은 부분에 불과해,라고. 과학자인 대학교수가 아이의 입시관리에 멍청했다고 고백하는 대목부터 연상시키는 게 너무 많아서 좋은 인상이 아니었다. 성공과 실패로 예를 든 바스키아와 바스키아의 파트너 이야기는 어떠한가? 바스키아는 나도 알 만큼 성공했지만 일찍 죽었잖아. 그런 성공이 좋아? 싶었다. 내가 감당하지 못할 성공은 삶을 파괴한다. 성공을 인정받는 정도,라고 했지만 그 인정에 가치가 배제된 과학적?이랄 척도라서 이 책의 어떤 태도가 서구적이라는 생각을 하는 거다. 요절한 젊은 천재를 기억하는 태도, 사람들의 기억을 성공의 척도로 삼는 태도- 애니메이션 코코를 볼 때 의문을 가졌던(https://blog.aladin.co.kr/hahayo/10022361)-같은 게 책 전체에 흐른다. 

초반에 좋지 않던 인상을 가진 채로 끝까지 책을 읽어야 했다. 스포츠나 쇼비즈니스로 시작했던 설명이 과학이라는 협소한 분야로 흐르고, 자신의 일에 대해서 자신의 성공에 대해서 희망을 가질 때에야 뭔가 다른 태도를 발견한다. 

과학적 분석 결과는 이것을 가르키지만, 마음과 태도는 저것이다,라고 설명하는 인상을 받는다. 

인맥이 성공을 만들 수 있고, 끊임없는 시도가 필요하고, 꾸준하고 성실할 필요가 있다,는 성과에는 한계가 있지만 성공에는 한계가 없고, 최고의 실력인 사람들 사이에서 성공과 실패는 불투명하다는 말들은 이게 과학이 아니라고 해도 너무 많이 들은 말들이 아닌가,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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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현대인은 자라지 않기로 결심한 건가.

서울우유 광고를 놀라면서 본다.

https://www.youtube.com/watch?v=BZug213xufI

링크를 찾아 유튜브를 검색했더니 댓글은 사용중지되어 있다. 


젊은 부부를 아이가 깨운다. 명랑하게 깬 아이는 아직 잠에서 깨지 못하는 부모를 깨운다. '일어나! 나 학교 가야지'라며 부모를 깨운 아이는 명랑하게 웃으며 우유를 내밀고, 셋은 함께 집을 나선다. 짧은 티비광고가 아니라, 30초짜리 풀버전에 부모는 모두 출근을 한다.

나는 출근을 해야 하는 부모가 아이가 깨울 때까지 자고, 아이가 건네는 우유를 마시는 데 놀란다. 아이가 건네는 우유를 마시면서 아이에게 고맙다고 가볍게 아이를 토닥이는 부모를 신기하게 본다. 그런데, 4초짜리 버전https://www.youtube.com/watch?v=wDp161f2h283 )에 달린 댓글에 또 한 번 놀란다. 아이가 '나 학교가야지'라고 짜증내면서 깨우는 목소리가 싫다면서 그렇게 깨우면서 달랑 우유를 내민다고 광고에 대해 말한다. 에????그럼 아이가 부모를 깨우고 한 상 차려 먹여야 하는 건가? 사람들은 도대체 아이가 뭐라고 생각하는 거지. 그저 내가 아니기만 하면, 되는 건가. 부모에게 돌봄을 받으며 자랐을 저 젊은 부부는 이제 아이를 낳아 아이의 돌봄을 받기를 기대하는 건가. 저 광고가 공감을 받는다는 건 무엇에 대한 것인가.


나는 어렸을 때 불교는 '삶이 고통의 바다'라고 해서 싫다고 했었지만, 이제 삶이 고통의 바다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내 몫의 짐들이 무거워져서, 아 그래서 어른들은 그렇게 생각한 거구나, 하루 하루 깨닫고 있다. 그 와중에 내 젊은 날의 많은 말들이 어른의 짐을 오해한 말들, 불가능한 말들,이었던 것 같아 후회되기도 한다. 나의 취향을 드러내어 요구하는 것이, 더 많은 낭비를 불러온다는 자각도 들고(https://blog.aladin.co.kr/hahayo/11946079) 정말 그게 옳았던가, 생각도 많다. 그래도 살아간다는 것에 책임이 따르고, 내가 그 책임을 어떻게든 감당해보겠다는 태도도 있다. 그런데, 저 광고 속의 부모들은 어떠한가. 뭔가 부모라면 늘 하는 상상이거나 바램, 헛되지만 혼자서 킬킬댈 수는 있는 그런 부끄러운 상상을 이렇게 만천하에 드러낼 만큼 자신이 받은 돌봄에 대해 '아이도 할 수 있는데 내가 하기는 싫은 것'으로 생각하는 것인가. 부모인 자신은 매일 매일 지쳐서 깨지 못할 만큼 힘들지만, 자신의 아이는 그렇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자라면서 감당할 수 있는 괴로움의 크기가 또 커지는 거라면, 아이에게는 아이 몫의 괴로움이 있을 텐데, 도대체 왜 저렇게까지 아이를 그리는 걸까. 부모가 깨우고, 부모가 주는 밥을 먹고, 부모가 챙겨서 옷을 입고 학교에 가도, 아이는 아이 몫의 괴로움을 감당하면서 살아가는 건데, 광고 속의 아이가 너무 예쁘게 웃어서 어른이 보고 싶은 아이가 저런가 싶어 슬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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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andante 2021-04-28 09: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멋진 글 잘 읽었습니다.^^
 

현실에 존재하기 때문에 아마도 소설에 묘사되었을 것이다. 

아름답고, 아마도 스스로를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젊은 여자들, 뭐든 용서받을 수 있다고 자신만만한, 거짓 속을 살아가는 여자들. 


1. 레베카,의 레베카 

환상 속의 여인, 아름답고 유능하고, 자신의 미모와 성을 이용하는 사람. 

남자는 도구나 수단일 뿐이라서, 실상은 살해당한 전처,지만, 소설 속 

묘사는 죽음을 앞두고 남편이 자신을 죽이도록 사주했다는 식. 

늙음도 죽음도 감당하지 않기로 하는, 예쁘고 도덕심은 없는 환상 속의 여자. 

https://blog.aladin.co.kr/hahayo/11995210



2. 다정검객무정검,의 임선아

절세미녀, 남자는 손쉬운 도구일 뿐인 여자. 

남자를 이용하고 버리고, 자기 뜻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여자. 

늙고 초라하고 쓸쓸한 죽음은 합당하다고 볼 수 있는 동양적 해석일까. 

https://blog.aladin.co.kr/hahayo/11876101


3. 나를 찾아줘,의 에이미

똑똑하고 아름답다. 

남자들은 수단이나 도구, 자기 뜻대로 이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 사람은 물론 속일 수 있고, 더 많은 사람이라고 해도 속일 수 있다고 생각하고, 결국 속인다. 

https://blog.aladin.co.kr/hahayo/6377932



여자들은 피해자이기만 한 것처럼 말하지만, 그런 일은 책 속에도 현실 속에도 없다. 통계상으로 95%라고 해도, 5%는 존재하고, 통계상으로 95%라고 해서 사안의 반대쪽을 발언하지 못하게 할 수도 없다. 가스라이팅은 연애하는 남자가 여자에게 하고, 연인간의 폭력은 남자가 여자에게 한다고들 생각하지만, 여자도 남자에게 할 수 있다. 이상한 범주를 그대로 일반화시켜서, 사안마다 여성 곁에 서는 태도는 문제를 해소할 수 없다. 자신만만한 나쁜 여자들이 더 자신만만하게 만들 뿐이지. 여자가 가스라이팅을 당했다고 해도, 행동의 댓가는 여자가 치르는 것이고, 남자가 가스라이팅을 당했다고 해도, 그 댓가는 본인이 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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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청아님의 "페미니즘을 ‘하나‘로 사고하는 것"

그래서, 저는, 제가 페미니스트,라고 생각할 때조차도 뭔가를 강경하게 주장하지 못했습니다. 딱 제 자신의 의견이나 입장만 말할 수 있었죠. 페미니즘이 층위가 다양하다는 말은 그 자체로 진실이지만, 세상 모든 사람이 그 층위를 알아야 하는 것은 아니고, 결국 사안에서 페미니즘을 선점해서 돌출하는 주장만이 ‘페미니즘‘으로 받아들여지잖아요. 그래서 지금 굳이 책을 찾아 여러 종류의 페미니즘을 공부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낙태에 찬성하고, 모자보건법에 아동을 지우고, 난민을 반대하고, 사회적 성취를 하지 못하는 울분을 토로하고, 가족을 건사하는 일을 폄하하면서, 여성이 하는 눈물의 호소라면 상황을 살피지 않고 곁에 서는 태도들을 페미니즘이라고 보는 게 아닐까요?
저는 제가 페미니스트인 채로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고 일하는 것에 모순을 느끼지 않았는데, 지금 페미니스트라고 스스로를 드러내는 분들은, 제가 하는 말, 저의 삶에 ‘페미니스트가 아닌 거‘라고 하더라구요. 페미니즘에 다양한 층위가 있으니, 페미니즘 비판이 부당하다는 말은 그래서 저는 좀 이상하게 들리네요.

참, 제3세계 페미니즘,에 대한 불만은 이해합니다만, 페미니즘,이라는 학문자체의 출발이 제1세계 여성들이다보니 그런 분류가 된 거라고 생각합니다. 스스로 인지하기에 기이한 사고라고 생각하는 자연과 좀 더 가깝고, 여성의 역할과 책임에 의미를 부여하는 태도-에코 페미니즘,같은-에 대해 그 사람들은 이름붙일 말을 몰랐던 거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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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의 탄생 - 50인의 증언으로 새롭게 밝히는 박원순 사건의 진상
손병관 지음 / 왕의서재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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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날 나의 말들을 의심하는 날들이다. 그 때 그 말들은 정말 그대로 옳았던 걸까. 돌이켜 생각한다. 그저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을 '내가 왜! 해야 하냐'는 억울함의 토로 같은 건 아니었는지 생각한다. 

미묘한 희롱을 오래 당한 적이 있다. 걸으면서 그 말은 무슨 뜻이었을까,를 복기해야 하는 순간들이었다. 그런데, 직접 말하지는 못했다. 내가 그런 연결을 하고, 심난해 했다는 것에 상대가 기뻐할 거 같았거든. 이미 늙은 남자가, 이런 저런 말들로 찔러보는데, 내가 반응하는 걸까봐 악착같이 못 알아듣는 사람 연기를 했다. 못 알아듣고 눈치없는 사람 연기를 하는 중에, '00님이 00씨를 예뻐하신다며?!'라는 말을 들으면 또 덜컥하고 겁이 났다. 그게 희롱이 아니었다고, 그 분이 나쁘지 않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나를 무섭게 한 건 나에 대한 어떤 행위라기 보다, 내 안에서 부풀린 상상들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적절한 처벌을 생각해낼 수 없었다. 그래서 그냥 지나가게 뒀다. 


책은 돌아가신 분이 나에게 변명할 수 있게 하려고 샀다. 읽는 것은 너무 잡다해서 재미있지는 않았다. 사람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오해에 대한 이야기처럼 보인다. 오해들이 쌓이고, 폭발해버리는 이야기. 

조직에 처음 들어온 여자가 선망하던 사람의 비서가 된다. 좋아하는 마음을 마음껏 표현하고, 기쁘게 일한다. 같이 일하는 사람들과 좋은 유대를 맺었고, 능력을 인정받으면서 기쁘다. 그런데, 어느 날 동료로서 돈독하다고 생각한 사람에게 성폭행을 당한다. 내가 존경한, 나를 아꼈던 나의 상사는 충분히 상대를 벌 주지 않는다. 복수심과 배신감이 뒤엉킨 채로 만난 사람들은 상사의 정치적 적대자다. 믿었던 사람들은 나를 배신했고, 지금 나를 둘러싼 사람들은 나를 절대적으로 지지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꼬인 거라고, 읽었다. 


조직에 오래 속한 사람이라서, 조직 밖의 요구들이 기이한 순간이 많다. 권력자라고 해도, 심지어 대통령이라고 해도, 지금은 법에 없는 벌을 줄 수 없다. 조금만 감정적인 거리를 두고 생각했다면, 상황이 이렇게까지 치닫지는 않았을 것이다. 애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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