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는 딸래미를 재운다고 오매,아배가 먼저 잠든다. 그게 대략 아홉시 반부터 열시 반 쯤. 주중의 모든 드라마들을 볼 수가 없다. '태양의 여자'는 김지수 연기가 끝내 준다고 하고, '밤이면 밤마다'도 재미있다는데, 어쩔 수 없는 거 아닌가.

겨우 겨우 제시간에 보는 드라마는 '엄마가 뿔났다'뿐인가보다.
지난 주말, 김한자(김혜자)가 가족들 앞에서 '집을 나가 1년간 살고 싶다'고 말했을 때, 나는 '아, 이게 김수현이 이 드라마로 말하고 싶던 거구나'였다. 차례 차례 쌓아올린 이야기들이, 이 막 회갑이 된, 자식들 혼사 다 치른 이 시대의 어머니에게 '휴가'를 주기 위한 것이었구나 였다. 어이없는 신문사 기자들의 "주말 저녁, 시청자들 '엄뿔'보고 뿔난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고 부터, 내 생각과 다른 이 기자의 사고방식을 의심하면서 기사들도 오고가는 말들도 좀 찾아보는 중이다.
어제는 드디어 엄마가 남편과 시아버지의 허락을 구해 집을 나갔는데, 인터넷에서 여기에 대해 말들이 많다. 왜 그 심정 모를까, 나도 알겠는데. 하는 마음이 되었다. 염치없다면서 눈물도 나지만, 좋아서 눈물도 난다는 이 엄마의 심정이 이해가 되는데, 왜 그 기자는 그런 기사를 썼을까. 왜 이 사람들은 엄마에게 뭐라고 하는 걸까.
엄마들의 휴가라, 정말 좋구나.

옛날에 중학생이었는지, 내가 어렸을 때, 그런 상상을 한 적 있다. 엄마가 아프면 어쩌지, 갑자기 안 계시게 되면 어쩌지, 그러다가 이성적으로 생각할 여유도 없이 튀어나오는 나의 반응이 '그럼 빨래는, 밥은?'이어서 내자신이 너무 싫어졌었다. 엄마가 내게 소중한 이유가 정말 그거 뿐인가, 하는 마음이 생겨서 엄마가 내게 해주는 어떤 일도 당연한 것은 없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고등학교를 유학 가면서, 엄마에게 밥과 빨래를 의지하는 걸 그만 둔 이후로, 오늘에 이르기까지-지금 나는 김치를 엄마에게 전적으로 의지한다- 엄마의 어떤 노동도 당연하지 않고 감사하려고 노력한다.(08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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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어쩌냐, 이거 끝나면"

어제 광분하여 닥본사하는 나에게 남편이 한말이다.
그렇게 보였나. 그래, 정말 열심히 보고 있다. 무엇때문일까, 계속 생각한다. 무엇때문에 쾌도 홍길동을 좋아하는지.

아, 훌륭하다. 이 이상 어떻게 정치에 대해 이야기하는가, 말이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재미있는 것들은 정치에 대한 무관심을 불러왔지만, 홍길동은 왜 정치에 무심하면 안 되는지 노골적이거나 우회적으로 계속 말한다.
1.
대학 때 갓 입학한 후배가 나에게
'누나, 운동은 왜 해요?'
'뭐 별 이유없어'
'내가 아는 누나는 그래서 인생 말아먹었잖아요'
독재의 기억을 가진 이 땅에서 가장 약하고 낮은 자가 정치를 한다는 것은 이런 것이었나, 싶은 그 약한 마음에 대해 드라마가 말해주었던 것이다.
그래, 길동이도 거창한 이유에서 출발한 게 아니었다. 길동이가 의적이 되게 한, 알고 보게 되면 어쩌지 못하는 그 마음들이 나에게도 있었던 것이다. 그저 자신의 억울을 풀려다가, 알아버린 타인의 억울이, 그 보아넘길 수 없는 다른 이의 죽음이 결국 자신의 죽음과 새로운 삶을 열었던 거고. 약한 마음을 이해하지만, 변호하지는 않고, 결국은 그들이 움직이게 하던 그 힘이 좋은 것이다.

2.
이기적인 사랑에 대해 사람들은 말한다. 그런데, 길동이와 이녹이와 은혜와 창휘를 보고 있으면 왜 길동이는 이녹이여야 하는지 알게 된다. 사랑은 이기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사랑은 서로를 지키는 것이고, 존경하는 것이고, 응원하는 것이다. 옥에 갇혀 피흘리는 길동 앞에서 '너의 목숨만은 내가 살릴 테니, 모두 말하라'는 은혜를 그래서 길동이는 사랑하지 않는 것이다. 길동이의 사랑은 길동이 곁에서 같이 싸우는 사람, 힘든 길을 지켜보는 사람, 지지하고 존경하는 사람, 이녹이인 것이다. 사랑은 그런 것이다. 그걸 통해 강해지는 것, 혼자라면 못할 일도 둘이라면 가능한 것, 그래서 무섭지 않은 것, 그래서 이기적이지 않은 것.

3. 
이 치밀한 정치의 구조와 이야기들에 감동한다. 촘촘하다. 아버지의 세계와 길동이의 세계, 창휘의 나라와 길동이의 나라. 서자인 길동이와 적자인 창휘, 함께할 수도 피할 수도 없는 관계들이 놀랍다. 의미를 알 수 없던 '쾌도'라는 수식이 '사인검'과 나란히 있을 때, 서자이자 의적인 길동이가 적자이자 반정을 모의하는 창휘와 나란히 있을 때, 광휘가 창휘를 죽이려던 이유와 창휘가 왕이 되려는 이유, 권력이 작동하는 방식, 적과 적 아닌 자를 알 수 없는 모호함,
장화홍련전은 계급사회의 비극이 되고, 심청전은 자본주의 사회의 비극이 된다.

4.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미!있!다!

아, 다음 주 수요일 막방이다.(08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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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verjinny 2009-08-03 18: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쾌도 홍길동을 볼때는
"지켜보는 국민이 되겠습니다.."라고 생각했는데..지금의 사태에서
방관자로 있는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고 있어.


별족 2009-08-04 13:22   좋아요 0 | URL
그게 참 어려운 일이라 그런겨.
 
마이 시스터즈 키퍼 - 쌍둥이별
조디 피콜트 지음, 곽영미 옮김 / 이레 / 2008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어제 밥은 집에서 먹고, 술을 마시러 남편은 나가고, 아이는 잘 때, 채널을 돌리다가 CSI를 봤다. 안 본 에피는 없으니, 본 적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다시 보게 되었다.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생각했던 것을 기록해두기로 하였다.   

책 속에서, 누나의 완벽한 일치형 유전자를 가진 맞춤아기인 동생은 의료행위를 거부하는 소송을 부모를 상대로 제기한다. 

CSI 에피에서, 오빠와 유전자가 일치하는 여동생은 살해당한다. 살해된 여아를 검사하면서, 고통스런 골수이식의 순간들에 대해 대화하는 장면에서 나는 이 책이 떠올랐다. 범인을 추리하는 실험실의 과학자들이 그 가족들에 대해서 생각하고 말하게 되는 순간에 책 손의 이야기가 겹쳐졌다. 아들에게 에너지를 쏟아, 다른 딸은 챙길 수 없었다고 말하는 수척한 엄마나, 이제 시체로 회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어린 여자 아이가, 계속 책을 떠오르게 했다.  

이 책을 읽을 때 나는, 이 복잡한 의료행위들 속에서 인간 존재에 대한 의문, 권리나 의무 이런 것들을 생각한 게 아니었다. 조각난 신체라던지, 아이의 신체에 대한 결정권을 행사하는 부모라던지, 맞춤 아기라던지는 내 머릿속을 그냥 가로질러 갔고, 나를 사로잡은 것은 아이에게 부모란 어떤 존재인지, 얼마나 거대하고 절대적인 존재인가 하는 것이었다. 어떤 고통도 부모를 위해 참을 수 있는 아이라는 존재, 자신의 삶 전체를 완전하게 의지하는 존재, 그리고 그렇게 아이를 책임지는 자로써의 부모.  

나는 이제 엄마인 것이다. 나의 바람들은 나의 아이에게 전해질 것이다. 그것은, 말로도 전해지지만, 눈빛으로도, 억양으로도 전해질 것이다. 그리고, 나의 아이는 옳고 그름이 아니라, 나의 눈빛, 나의 격려, 나의 웃음과 눈물로 고양되면서 행위하게 되는 것이다. 책 속의 소녀가, 또 CSI의 그 소녀가 그랬던 것처럼, 엄마의 바람이 자신을 고통스럽게도 하고, 울게도 하고, 자기가 원하는 것을 못 하게도 할 수 있지만, 다른 모든 저항에도 불구하고, 엄마가 원하기 때문에 할 수도 있게 되는 것이다. 아, 나는 나의 아이에게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가, 절대 잊지 않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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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오바디스 한국경제 (이준구) - 이준구 교수의, 이념이 아닌 합리성의 경제를 향하여
이준구 지음 / 푸른숲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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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내 장르물만 읽고 있던 와중에, 이벤트에 걸려서 받은 책이다. 글쓴이가 누군지도, 책의 성격이 어떤지도 모르고 읽기 시작했다. 읽다가, 글쓴이가 누군지 책날개의 소개도 보고, 그에 비추어 글에 대해 생각했다.  

"어떤데." 

"왜, 학교에서 공부만 한 선생님이 너무 답답해서 쓴 글이라는 느낌이 들어. 글솜씨가 뛰어나거나, 논쟁에 단련되서 재미나거나, 그러지는 않은데. 왜 그런 거 있잖아. 교과서적이라는 말, 참 훌륭하고 좋은 말인데, 재미있지는 않잖아. 그런데도, 이런 말조차 못하게 하는 세상이라 그런지 담백하고 좋구나, 그래." 

책상에서 강단에서 누구보다 시장주의자고, 누구보다 보수적이라는 평판을 듣던 선생님이 좌파,라는 말을 들으면 답답하겠다.  자신의 정책에 반대하는 모든 사람을 좌파로 매도하는 정권에, 논리없는 기득권세력에, 하고 싶은 말들을 하고 있다.   

내가 좋았던 것은, 자기 편한데로 끌어다 댄 논리로 자기 이익을 지키느라 어제와 다른 말을 하는 언론과 정부와 기득권자들 사이에서, 이미 사라졌다고 생각했던 사람을 만난 것이다. 원래, 배운다는 건, 자신의 삶에서 드러나야 하는 것이다. 학자인 사람은, 학자답게 살아야 하는 것이고, 그런 면에서 저자는 고리타분하고 재미없을지는 몰라도 존경받을 만하다.  

지금 우리 나라에서 모두에게 당연하다는-자신의 이익에 따른 가치판단- 것에 정말로 그게 당연한 건가, 라고 묻는 글을 만나서 공연히 새삼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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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 Space Fantasia (2001 야화) 세트 1~3(완결) 2001 Space Fantasia
호시노 유키노부 글.그림, 박상준 감수 / 애니북스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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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을 권하는 사람의 면전에서 말은 못했지만, 나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나는 세상의 모든 아름다움을 깨닫겠다는 욕심 따위 없다. 클래식의 아름다움을 모르고 사는 인생은, 이미 그 아름다움을 아는 사람의 눈에 '앙꼬없는 찐빵'처럼 보일지라도, '지금' '내'가 원하지 않는 무엇을 하기에 나는 지나치게 게으른 것이다.  

아는 거 많아서, 먹고 싶은 것도 많겠어, 라는 칭찬도 아니고 욕도 아닌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사는 게 그렇다. 끝이 없는 것, 그것이 무엇이든, 하자면 끝이 없다.  

유한한 생에서, 누리지 못할 무한한 즐거움이 세상에 있다. 동화 속의 파랑새처럼, 아름다움을 찾아 세상 끝까지 가봤더라도, 정작 코 앞의 아름다움을 알아채지 못하고, 내 생이 끝나버릴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도, 세상은 그렇게 달라지는 거라면서, 새로운 것을 알고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데 게으르지 말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래서, 사라지는 지금 여기, 존재하는 것은 어쩔 것인가.  

세 권에 빼곡히 들어찬 이야기는 그런 것이다. 우주로 향하는 인간의 이야기, 그 속에서 겪게 되는 여러가지, 그러다가 결국 다시 태양계로 돌아올 수도, 더 먼 우주로 나아갈 수도 있다. 실패도 성공도 하고, 나아가기도, 돌아오기도 하는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앞으로도 그러할 인간의 이야기이다. 깨달을 수도, 깨닫지 못할 수도 있는, 어느 것이 옳다고도 하지 못하는 인간의 현재를 은유하는 미래의 인간의 이야기이다.  

아, 나는 언제나 나 편한 대로, 어디도 가지 않고 여기서 아름다움을 찾아내는 존재가 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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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체오페르 2009-10-15 0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근래 본 최고의 마음에 드는 서평중 하나입니다.
공감도 하고요. 좋은 리뷰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