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1100만 명을 어떻게 죽일까?
앤디 앤드루스 지음, 이은정 옮김 / 에이미팩토리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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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전이 직원에 해당하는 성과연봉제를 투표로 가결시켰다. 

우리회사는, 노조동의없이 이사회 인준만으로 직원성과연봉제를 도입했다. 

나는 성과연봉제가 '평가기준이 공정하다면' 좋은 제도,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보통,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에게 설명하기 위해서, 나는 지금 이미 간부급에 진행되는 성과평가제도가 어떤 식인지 말하게 된다. 공기업은 나라가 평가한다. 언론이 조장하는 '방만경영'이라는 익숙한 말은 결국 나라에서 하는 공기업평가,가 언론과 여론과,결국 국민들의 입에 달려있다는 거다. 평가는 정부가 하지만, 평가하는 방법은 분위기에 달라질 수밖에 없다. 계량평가,와 비계량평가가 있고, 정부가 추진하는 온갖 정책이-사회적기업 물품구매비율,이나 친환경녹색제품 구매율- 동원할 수 있는 모든 공기업을 통해 추진된다. 비계량평가를 위해서는 보기 좋은 보고서를 선정된 평가위원에게 제출해서 평가받는다. 그림과 도표를 멋지게 넣기 위해 돈을 쓴다. 회사평가를 S를 받으면, 성과급이 달라지기 때문에, 어느 정도 감수할 수 있다. 회사가 평가받는 여러 지표는 회사내 조직들에게 또 배분되어 내부 경쟁지표로 활용된다. 발전소가, 발전소를 지원해야 하는 본부가, 운전요원을 교육하는 훈련센터에 업무성격을 고려하지만 크게 고려할 수는 없는 형태로 배분된다. 사회적기업물품구매비율의 경우, 총 구매비용 중 몇 % 이런 식이기 때문에, 모든 조직은 그런 압력을 받는다. 이건 또 내부 경쟁이기 때문에, 궁극적으로 회사가 목표를 달성해야 하는 문제기는 하지만, 내 조직은 달성하고 다른 조직은 달성하지 못하는 것을 어쩔 수 없이 기뻐하는 사태가 벌어지고, 그래서, 협업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러고 몇년 지나니, '협업노력도'라는 계량지표가 최고경영자의 지시로 추가된다. 계량은 조직을 비협조적으로 만들고, 비계량은 그러니까 거짓을 단련시킨다. 계량할 수 없기 때문에 쓰는 비계량보고서지만, 평가자의 부담을 덜기 위해서, 기술하는 내용은 가능한 계량화시킨다. 일보다 보고서가 중요해진다. 평가를 급여와 최종적으로 퇴출에까지 연결시키면, 평가를 위해 거짓을 말하는 것은 그야말로 그럴 수 있는 일이 되어 번진다. 합리적,이라고 언제나 모범처럼 말하는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엔론,에서 실제로 벌어진 일들이다. 거짓을 켜켜이 쌓아 만든 보고서로, 평가와 경영을 한다. 가치는 전도된다. 

현실의 삶에서 거짓말,은 도처에 있다. 성과연봉제,처럼 이미 실패한 경험이 쌓인 제도조차, 공기업이라는 공공의 부를 사적으로 취하려는 경영계의 지도자분들의 노련한 주도아래, 정치와 언론이 함께 그럴 듯하게 포장할 수 있다. 성과연봉제를 도입해서 공기업이 부실해지면, 공기업이 방만해서 그렇다고 하면 되고, 공기업이 방만하니까, 사기업화한다고 하면 되는 거다. 

눈을 크게 뜨고, 진실을 보려고 노력해야 한다. 

아, 사는 건 살수록 어렵다. 


책은 나쁘지 않다. 단, 너무 짧다. 

우리나라 역사라면 이야기를 산처럼 쌓을 수도 있겠지만, 그게 더 설득력이 있을지는 모르겠다. 오히려 적당한 거리가 있는 편이, 자신이 공범이 아니라는 자각이 더 많은 호응을 유도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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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명원 화실 비룡소 창작그림책 35
이수지 글 그림 / 비룡소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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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를 배우는 것은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라, 배우는 사람에게 달렸다,라고 중용,-중용을 읽어야 하는데, 중용의 연장통,을 읽고 있다-에서 말한단다.

나의 명원화실,은 언제나 책 택배가 도착하면, 먼저 달려나가 택배상자를 열고, 연 택배상자에서 자신의 책들을 찾는 아이들을 위해서, 넣은 책 중에 하나다. 이건, 매일 웹툰을 따라그리고 어린이날에는 타블렛을 사달라는 큰 딸을 위한 책이다. 초등학교 4학년에게 딱 맞는 책은 아니지만, 차라리 '나는 만화가가 될' 거라는 청소년 소설을 샀어야 했나 싶지만, 그림을 나도 보고 싶어서 이 책을 넣었다. 작가의 이벤트가 진행중이었다.

 

보면서, 중용의 말을 처음 떠올리는 건, 무언가 요즘의 가르침은 과하다는 생각 때문이다. 굳이 특별히 무얼 할 필요 없다는 나의 태도가 지나치게 게으르거나, 무심해보여서, 사실 드러내고 말하지 못하지만, 늘 무언가 못마땅하기 때문이다. 교단을 연극무대처럼, 듣는 이의 관심을 끌어들여, 이것도 저것도 하는 요즘의 어떤 가르침들이나, 출석에도 한 번의 시범에도 멋진 동작에도 우렁찬 기합에도 태권머니를 주는, 나는 못마땅하고, 아이는 신난 태권도 학원에 보내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절집에서 하는 캠프에 간 적이 있어요, 아무 것도 하라고 하지 않아요,라고 말하는 후배에게, '정말 심심했겠다'라고 대답한 적이 있다.  내 대답에 그 후배는 '아니요, 되게 좋았어요. 결국 무언가 하게 되요'라고 말했었다. 늙어가는 중인 나는, 시간에 잡아먹히지 않으려고, 아마도 지금 가장 열심히 수련해야 하는 것은, 무료한 시간을 보내는 것, 그 와중에 배울 수 있는 것, 이라고 생각하고. 아마도 무언가 배울 수 있으려면, 선생이 훌륭하거나 교수법이 훌륭한 것보다, 내가 배울 수 있어야 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아무 것도 특별히 가르치지 않는, 그래서 아마도 결국 사라졌겠지만, 그래도 이 소녀에게 그림이 무엇인가를 결국 가르치는데 성공한 명원화실,의 존재가 새삼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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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조협려 세트 - 전8권
김용 지음, 이덕옥 옮김 / 김영사 / 200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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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정은 다르다. 나의 사랑,은 가능하지만, 나의 정,은 이상하다. 그러니까, 정은 둘 사이에 묵은 감정이고, 시간이 필요하다. 


나는, 나와 남편이 곽정이나 황용, 양과나 소용녀 같았으면 좋겠다. 아직 나의 인생도 끝나지 않았고, 책 속의 곽정이나 황용, 양과나 소용녀도 이 다음에 어찌 될지는 '의천도룡기'까지 봐야 알겠지만-봐도 모를 수 있지만-, 여기까지 두 쌍의 모습은 그래, 이상적이다. 서로에게 서로 뿐이고, 그 믿음을 잃지 않는다. 


이 책은 사조영웅전의 다음 이야기로, 사조영웅전,이 곽정와 황용이 영웅이 되어가는 과정을 그린다면, 그 다음 세대인 양과와 소용녀를 중심으로 이 둘의 사랑이 결국 이어지는 이야기이다. 양과가 영웅 신조협,이 되는 것은 그러니까, 무협이니까 그런 거다. 


이야기는 자신을 배신한 남자를 결국 죽이기 위해 십년만에 나타나는 여자가 이미 죽은 남자와 그의 아내를 어쩌지 못하고 그 남자의 남은 가족들을 몰살하면서 시작된다. 책의 각 권은 모두, 이 버림받은 무서운 여자가 부르는 노래인 '정이란 무엇인가'로 연다. 

스승과 제자로 만나 연인이 된 양과와 소용녀가 내내 어긋나고 다시 만나는 과정에서, 여러 남녀의 모습들을 본다. 곽정과 황용같은 서로에게 유일한 존재인 경우도 있고, 어긋나버려 결코 이루지못한 왕중양과 임소영?(아 그새 잊다니!!!), 결국 서로를 증오하게 되는 구천척이나 공손지도, 원망이나 미움이나 죄책감으로 오랜 세월 돌아 만나게 되는 주백통과 영고도 있다.


기본적으로 한족의 이야기라서, 무학을 익힌 영웅대협들이 대항하는 악의 축은 금에서 원으로 바뀌었다. 지난 이야기의 소년과 소녀는 부모가 되었고, 아이들은 부모세대의 복수의 짐을 나눠지고 자란다. 무공을 겨루던, 한때 적이었던 무림의 고수가 최후의 순간까지 무공을 겨루다 죽음을 맞기도 한다. 원한과 은혜가 얽히고, 영웅도 결국 늙고 새로운 세대가 새로운 영웅이 된다.  


부모인 나는, 소년 소녀의 모험,이나 영웅으로 자라는 성장서사, 혹은 결국 정인을 찾아 만나게 되는 과정이 지금의 나에게는 지나가버린 다시 못 올 시기같아, 아쉽지만 다행이다, 싶다. 


먼 옛날 이야기인데도,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느낀다. 처첩을 넷이나 거느린 남자에게 '여자를 울리면 안 된다'고 말하는 양과나, 노예로 살던 남자가 자신의 딸을 마음에 들어하는 주인에게 감사하는 걸 보며 '뼛속까지 노예가 되었다'며 돌아서는 부인-남편의 노예신분을 털어주려고 기방에서 몸을 팔았으나, 그래서 부정하다 버려지는-의 이야기는, 사회적 제도나 배경 이전에 이미 마음 속에 같은 게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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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맥(漂麥) 2016-04-27 08: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협지의 최고봉은 역시 김용의 소설 영웅문...^^

별족 2016-04-27 09:05   좋아요 0 | URL
제가 무협지,를 논할 처지는 아닙니다만, -읽은 게 일천하야-_-;;;- 장르를 말하지 않더라도 훌륭한 이야기라는 생각은 들더라구요.
 
테러리즘, 폭력인가 저항인가? - 테러리즘 Terrorism 아주 특별한 상식 NN 9
조너선 바커 지음, 이광수 옮김 / 이후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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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방지법 국회통과 저지를 위해 필리버스터가 진행될 때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빨리도, 쉽게도 읽을 수가 없었다. 

제국주의로 부를 일군 서구 주류의 상식은 테러와 테러리스트에 대한 적대적인 감각이고 그 상식에 반하는 다른 관점, 그러니까 저항일 수도 있는 테러에 대해 설명하는 이 책은, 식민지였던 역사를 가진 나에게는 그렇게 새롭지는 않았다. 폭력으로 하는 저항이었던 테러를, 책 속에서 묘사하는 먼 이야기들보다 많이 우리 역사 속에서 끌어다 댈 수도 있겠다, 싶었다. 

안중근 의사,를 테러리스트,라고 부르는 것은, 잘못된 명명인가? 나는 4월의 제주와 5월의 광주를 아는데, 미 문화원을 점거한 젊은이들은 테러리스트인가? 군인,은 국가,는 단지 지금 권력을 가졌다고 해서, 다른가? 뭐라고 부르든 무슨 상관인가, 싶은 거다. 

책 속에는 정치가 불안정한 나라들에서 벌어지는, 테러리스트와 다를 바 없는 국가의 폭력들-암살, 납치, 폭파, 폭력을 조장하는 폭력행위-을 묘사하고, 지금 이슬람 원리주의 세력들이 자라나는데 기여한 미국의 행위들을 묘사한다. 그저 자국의 이익에 부합한다면, 그 나라의 독재를 오히려 지원했던 미국을 묘사한다. 책을 보면서, 미문화원을 점거한 젊은이의 절박함, 을 알겠다. 미국의 군사적 교두보가 되어버린 이 나라의, 미군없이는 이 나라를 지킬 수 없다고, 때마다 공포로 표를 구걸하는, 지금 권력을 잡은 자들을 본다. 

두려움,은 살아가는 데 필요하다.  그러나, 너무 큰 두려움을 말하는 사람을 대할 때면, 언제나 그 꿍꿍이를 조심해야 한다.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위험도 없을 거라며, 테러방지법이건, 부당한 권력행사 건 눈 감는 건, 권력이 더 커지고, 더 위험해지도록 내버려 두는 거다. 나라 안의 권력은, 지구 상의 권력은 적당한 크기로 적당하게 행사되어야 한다. 나라 안에 독점적 권력자가 존재하는 것, 지구 위에 단 하나의 거대한 권력으로 미국이 존재하는 것, 그 권력이 크다고 두려워하는 것, 그런 것들이 계속 사람 안의 울분을 폭력을 밀어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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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우리는 무엇을 알고 있나? - 이슬람 Islam 아주 특별한 상식 NN 8
지아우딘 사르다르.메릴 윈 데이비스 지음, 유나영 옮김 / 이후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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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슬람에 대해 나쁜 인상은 아니다. 우선, 만날 일이 없는 채로 어느 날 들은 이야기가 '이슬람에서는 이자를 받으면 안 된대'였다. 고리 사채에 시달리는 이야기들에 둘러싸여 '친한 사이일수록 돈은 빌려주면 안 돼'고, '빚보증은 절대 안 된다'는 식의 조언들로 관계들이 절단나는 세상에서, 어떤 종교는 아예 '이자'를 받지 말라고 한다니 참으로 훌륭하지 않은가, 그런 거다. 한참 도심개발로 극심한 철거가 진행되고 있을 때 들은 이야기는, '이슬람에서는 이미 지어져 사람이 사는 집은 부수지 못한다'는 거였다. 이런 이런 이야기를 듣고, 나는 서구의 기독교도들이 묘사하는 것보다 훨씬 더 훌륭한 종교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 거다. 


이 책은 영국에서 출간된 NO-NONSENSE 시리즈의 8권이고, 애초에 보편적이랄 만한 기존 관점에 다른 관점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나는 애초에 이슬람을 나쁘게 생각한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뭘 알고 있는 건 아니라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종교에 대한 이야기, 이슬람 문명의 흥망성쇠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특히 종교에 대한 이야기를 재미있게 읽었다. 

이슬람에서는 하느님이 스물 다섯 명의 선지자를 보냈고, 선지자 마호메트를 마지막으로 더이상 선지자는 없다고 하셨단다. 그러니까, 그 스물 다섯 명에는 아브라함도 모세도 예수도 포함되어 있다. 구약이나 신약을 몰라도, 온갖 매체를 통해 그 이름을 모를 수 없는 나는 이런 설정이 너무 즐거운 거다. 그래 세상 모든 신을 그래 있다 치고,로 시작하는 나는, 신들의 마을에서 하느님이 선지자를 보낼 때마다 부처님이 옆에서 '도대체 그런 고달픈 일을 왜 하느냐'라고 물을 거 같고, 공자님이 '인간 스스로 깨닫지 못한다면 모두 소용없다'며 혀를 끌끌 찰 것도 같다. 아마도 하느님이란 신은 신 중에서 그래도 젊고 패기에 차서 인간을 구제할 수 있을 거라고 선지자를 보냈겠지만, 결국 거듭된 실패로 스물 다섯이나 보내놓고 아 최후의 경전을 보내고도 이런 세상을 보고 있겠구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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