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지옥

요며칠 이 말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런데, 어제 아가씨를 부탁해,를 보면서, 그 말이 다시 떠올랐다.
이제 강혜나는 왜 서동찬이 자신의 집사가 되었는지, 어떤 목적으로 자기 곁에 있었는지 모두 알았다. 그런데도, 마음이 그게 아니라, 기회를 준다고 에둘러 말하는데도, 서동찬은 그 기회를 날려버린다.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는데, 그녀의 마음은 지옥이 되었다.  

그런데, 그런데, 그런데,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그런 말을 하고, 그런 의도를 가진 것이 무엇을 증명하는가. 서동찬은 그런 의도로 -강혜나를 꼬셔서 자기 빚 1억을 갚을- 그녀의 집사가 되어서는, 그녀가 이태윤변호사를 좋아하는 그 마음을 알고 이태윤변호사가 그녀 마음을 알도록 그녀를 거들어 주었고- 그 의도를 증명하려면 적어도 훼방을 놓았어야 한다-, 더 이상 그녀를 꼬실 수 없다고 생각했을 때 그녀 곁을 떠났으며, 그녀가 정말 어려움에 처했을 때 다시 돌아와서는 회사 안에서 그녀가 인정받도록 도와주고 있다.
나는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다. 말이나 의도는 아무 것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오로지 '행동'이다. 무엇을 했고, 어떻게 했는가만이 중요하다. 나에게 도움이 될 의도로 하는 모든 행동이 모두 다 고맙지 않은 것처럼, 그리고 그 행동이 오히려 해가 될 수도 있는 것처럼, 의도를 가졌다는 것은 아무 것도 증명하지 않는다. 그런 의도를 공표했다는 것도 또한 아무 것도 증명하지 않는다. 그 의도는 행동으로 증명되어야만 한다.  


언제부턴가 나는 속지 않거나, 이용당하지 않으려고 너무 애쓰지 않기로 했다. 사람은 서로 서로 어떤 방식으로 관계맺는다. 그건 표현하기에 따라서, 이용하고 이용당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런데, 관계 안에서 자신이 자기 자신에게 정직하다면, 타인의 의도를 알려고 애쓰는 것은 정말 아무 소용도 없다. 그 사람이 원하는 방식으로 내가 움직이려고 할 때, 그 마음이 정말 내 마음이라면, 그리고 상대가 나에게 행한 방식이 폭력이나 협박이나 어떤 부당한 게 아니라면, 왜 공연히 마음을 지옥으로 만들겠는가. 상대방의 의도라는 것도, 나와 관계맺는 과정에서 바뀔 수 있는 것, 계획과 실제는 달라질 수도 있는 것이 아닌가. 오로지, 타인에 대한 판단은 '행동'을 통해서만 가능한 게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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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바이어던 살인
보리스 아쿠닌 지음, 이형숙 옮김 / 황금가지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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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 나는 서로 책을 살 때 알려주기로 했다. 택배비를 줄이자는 심산이다. 그래서, 이 책은 내가 살 때, 남편의 요청으로 들어온 시리즈물이다.  

아자젤의 음모는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진행되는 에라스트 판도린의 첫번째 등장을 알리는 사건이고, 이건 두번째 사건으로 시점이 바뀌면서 진행된다. 나는 첫번째보다 이번 사건이 더 좋았다.  아자젤의 음모,가 비운의 단독자에 대한 이야기로 비장미 넘치는, 그러니까 영화로 치자면 본 아이덴티티 느낌인데, 내가 적을 거의 초반에 알아차려서 싱거웠다면, 리바이어던 살인,은 나일의 살인이나 오리엔트 특급살인을 연상시켰다.  그렇다. 이 이야기는 리바이어던,이라는 여객선에서 범인을 추적한다. 살인사건의 용의자는 배안에 있고, 한 테이블로 좁혀져 있다. 사건의 주요 배경이 고립된 운송수단이란 측면에서 나일의 살인, 이나 오리엔트 특급이 떠올랐다면, 그 살인사건의 동기나, 용의자의 면면에 대한 묘사라는 면에서 인디애나 존스가 떠올랐다. 분명히 주인이 있는 그 재물을 무력을 동원한 식민지의 지배자가 취할 수 있었던 시대, 그 시대상이 책 속에 묘사된다. 세계 어디를 가던 비자를 쓸 수 있는 시대에, 부족국가 왕의 어마어마한 보물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것은, 인디애나 존스를 보는 것과도 같은 느낌. 많은 사회적인 배경들을 모른 척 쳐내고 나면 남는 소년의 로망같은 묘한 동경을 불러일으킨다.    

시간을 보내기 좋은 책이다. 지나간 시대의 가십들이 아귀가 맞도록 조합되어 있다. 내가 열광하거나, 경탄하는 종류는 아니지만,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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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플 플랜 모중석 스릴러 클럽 19
스콧 스미스 지음, 조동섭 옮김 / 비채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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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유명해서 기대치가 높았다. 거금을 눈앞에 두고, 사람이 악해진다,는 개인적으로 영 동의하고 싶지 않은 줄거리란 걸 애초에 알고 시작하는 거니까, 문제는 그 과정이 얼마나 설득력 있는가, 더하기 얼마나 흥미진진한가, 였다.    

읽으면서, 내내, 나는, 왜 이 화자는 자신이 얼마나 악해질 수 있는지, 의심하지 않는가 의아했다. 그리고, 또 왜 이토록 돈에 매여 있는가 생각하였다. 내가 생각한 원인은 미국의 문화, 돈을 대하는 문화적 방식이 주인공을 그런 식으로 자기합리화하면서 범죄를 저지르게 했다고 생각했다. 자기자신의 도덕성을 완전하게 믿는 태도, 그러면서도, 현재 삶에 대한 불만으로 들끓는 자기자신과 아내, 더하여 문화적으로 조장되는 물신주의.   

사실, 화자가 자신의 도덕성을 확신하는 것은, 상대적으로-다른 두 명의 공범에 비하여- 자신이 자신의 삶에 만족하고 있다는 전제에서 비롯된다. 그렇지만, 나는 절대반지를 거부하는 회색마법사 간달프의 태도로 내 자신을 믿지 못한다. 그래서 그의 태도가 의아했다. 그리고, 이런 지나친 확신을 경계해야 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우리 문화 안에, '행복은 부로부터 나오지 않는다'는 수많은 은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부자의 가을걷이 볏가리 뒤에 웅크린 채 깔깔 대는 거지 모녀에 대한 묘사를 어린 날 내 어머니로부터 들었었다. 그것은, 반복되는 문화적 은유 속이 계속된다. 그래서, 화자가 점점 그 돈 자체를 포기하지 못하는 과정에 공감하지 못했다.

화자가 남성이면서 갖게 되는 여성에 대한 묘사에 또 의아했다. 노골적인 팜므 파탈은 아니지만, 오히려 더 나쁜, 구조 상 화자의 변명에 동원되는 그의 아내에 대한 묘사다. 손에 피를 묻히지 않고, 남편의 손에 피를 묻히도록 하는 그의 아내는 많은 이야기 속에서 참으로 흔하고 매번 나의 미움을 산다. 그만큼은 화자에게 설득당한 거다.

그리고, 이야기 말미에 붙은 해설을 읽으면서, 나는, 그 해설에 내 자신이 떠올라서 두려웠다. 해설에서 말하는 원인은 내가 생각한 원인과 달랐다. 그 속에서 주인공이 범죄를 저지르는 원인은 '친구없이 가족 내에 고립된 삶'과 '지나친 가족주의'였다. 화자가 이야기 속에서 잠깐 언급하지만, 도대체 친구란 어떤 존재이길래라는 게 나의 의문. 친구를 어떻게 안단 말인가. 친구란 어떤 존재란 말인가. 그런 걸 원인이라고 떡하니 명시하다니 이상하지 않은가. 해설이 이상하다고 말해버리고 말테다.

번역의 문제로 냉소적인 원작의 많은 부분이 훼손되었다고, 그래서, 화자의 성격이 많이 사라졌다는 리뷰를 봤다. 아마도 그래서 내가 수긍하지 못하는 게 있는 거라고, 그래서 그만큼 재미도 덜했던 거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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吾 口 次 言 汝 聽 彼  我 手 招 來 爾 往 彼
오 구 차 언 여 청 피  아 수 초 래 이 왕 피
吾 意 貴 爾 又 逆 行  君 愛 眞 情 我 斷 腸
오 의 귀 이 우 역 행  군 애 진 정 아 단 장

조선의 선비가 이런 시를 남기고 죽었다. 여기서 이야기가 시작되었나보다. 이 시는 마지막 순간에 흐른 것이었으나, 이 이야기를 만든 사람에게는 시작이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나의 입을 이것을 말하나 너는 저것을 듣고, 나의 손은 오라 하나, 너는 가는구나.
나의 의도에 너는 반하는구나. 너의 사랑은 진정 나를 죽이는구나.

실제 티비에서 나온 해석이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전설의 고향이 갖는 전통적 교훈이란 것과 전설의 고향이 갖는 미덕들, 더하여 현대적으로 재해석된 무엇이 있는가 생각하였는데, 어제 이야기는 좀 이상해져서 계속 생각했다.

계집종이 몰락한 양반의 도령을 사모한다. 도령은 이상을 품은 훌륭한 선비, 계집종이라 하여 하대하지 않는 훌륭한 인간이다. 그런데, 계집종은 도령의 행동을 사랑이라 오해하고, 도령의 매파를 살해하고, 도령에게 함께 도망가자하는 거다. 도령은 거절하고, 그 다음에 도령 주변에 귀신들 출몰. 주변사람들이 귀신에 씌인다. 그런데, 귀신이 씌이는 시점이 딱 눈동자가 써클렌즈 낀 만큼 더 검어지는데, 이게 참 미묘하게 무섭다. 목소리가 바뀌는 것도 아니고, 살짝 바뀌면서 귀신의 형상이 덮어쓰기도 하지만, 그 전에 홍채가 더 짙어지고 더 커지는 그 순간이 오싹하다. 무서워서 쭉 못 보고 계속 돌려가면서 보았다.

내가 내내 한 질문은 이런 것
와, 저 남자가 잘못한 게 뭐람.
왜 이상에 대해 말한 것, 종을 사람으로 대한 것, 웃고 말한 것이 잘못이야?
-그 남자는 조광조의 애제자로 금부도사인 옛 동무에게 '조광조가 역모를 도모했다'는 상소를 올리라는 협박을 듣고 있었다
도대체, 왜 저 남자가 저런 고초를 겪어야 해?
완전 저 여자 싸이코구만.

그러다가, 마지막 순간에, 그 남자를 중심으로 그 남자가 사랑한 여자-역모로 몰려 기녀가 되었다, 그녀는 금부도사의 청을 들어 '자기 아비를 빼낼 수 있게 거짓 상소를 올려달라' 청하러 왔다. '자기를 연모한다면 그걸 해 달라'고 -, 그 남자의 어머니가 차례로 귀신들려 그 남자 앞에 섰을 때, 귀신이 "왜 저의 사랑은 잘못되었다 하시면서, 어머니의 사랑은 그리 말하지 않으십니까?" 질문할 때, 깨달았다. 그 말을 하고 싶었던 거다. 달아난 그녀가 살아서 세월을 겪었다면, 그녀는 그 사랑을 품고 다시 나타날 수도 있지만, 그저 그 사랑을 지나가게 두었을 수도 있었다. 이미 그녀가 매파를 죽이고, 무서운 짓을 했으니, 더 어떤 짓을 했을지 몰랐더라도, 그녀가 원귀가 되는 것은 어머니의 비뚤어진 사랑 탓이었다. 어머니는 달아난 그녀를 잡아 욕보이고 죽게 하였다.

어머니와 그녀가 엇갈려 눈앞에 나타나자 남자는 결국 자신을 찌른다.

비가 오고, 어둡고, 축축하고, 무녀는 정말 무서웠다.

홀로 아들을 키운 어머니는, 아들에 대한 사랑 때문에 결국 아들을 죽게 한다. 어머니도 그 계집종도, 자신의 사랑을 변호하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그녀도. 

 사랑은 모든 부도덕한 행위를 덮는 커다란 담요같은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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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시의 원저자를 알아보려고 인터넷을 뒤졌는데, 못 찾고 대신 어떤 평들이 있는지 보게 되었다.
나처럼 진짜 재밌게 본 사람도 있고, 이야기가 아귀가 하나도 안 맞는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그 때 죽은 그 원귀가 4년이나 지나서 나타난 이유같은 게 설명이 안 된다면서. 아, 그렇기도 하네. 야, 그런데, 못 알아차리고 완전 속았잖아, 대단한 거지. 이야기가 아니면, 그림이.
나는, 저 한시가 가지는 그런 상상을 좋아하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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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곽선생 2009-09-14 1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저와 같은생각을 하시는분이 계셨군요~~반갑네요

저두 시의 원저자를 알아보려고 인터넷 뒤지고있던중 님블로글에 오게되었습니다

좋은글 읽고갑니다~~^^

별족 2009-09-15 15:02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그래서, 나는 남편에게 그 얘기를 했던 것이다. 티비에서, 파트너를 하고 있었고, 그때, 이태조(이동욱 분)변호사가 잠수타서, 한정원(이하늬 분) 변호사가 강은호(김현주 분)변호사랑 동행할 일이 있었다. 절도혐의로 재판을 받게 된 국회의원 부인을 면담하고 오는 길이었는데, 강은호에게 한정원이 '이기기만 하면 되는 거'라는 말을 하고 있었다. 극 중 한정원은 유능하고, 사람에 신경 안 쓰는 캐릭이고, 강은호는 사람에 신경 많이 쓰는 초짜 캐릭이라서, 그래서 생각나서 한 말이었다.-극 중 강은호는 엄청 유능하다. 승률 100%(두 번 해봤으니)-

"있잖아, 어떤 사람이 블로깅해놨던 걸 봤는데, 착하고 무능한 의사란 존재하기 어렵다고 했더라. 착한 사람, 환자를 귀하게 생각하는 의사라면, 생명을 다루는 자신의 능력을 연마하지 않을 수 없다고 그렇게 썼더라고."
"열심히 한다는거, 최선을 다한다는 거랑, 무능이나 유능은 분명히 다르지."
"물론 그건 다르지, 여기서 착하다는 것은 선하다, 악하다, 뭐 이런 개념이랑 통하는 거지. 선한 어떤 가치들을 추구하는 거지. 의사라면 환자의 생명을 내가 구하겠다는 그런 거."
아, 돌이켜 쓰자니 잘 못하겠다. 00씨는 '착하다'는 말을 태도로 받아들였던 거 같아서, 우리는 성실한 태도보다, 게으른 태도가 낫다든지, 하는 이상한 말들을 서로에게 해댔고. 함께 일을 하는 존재들로서 어떤 존재가 가장 좋은지 뭐 이런 말들을 또 했다. 내가 하려던 말은 그게 아니었는데.
그러니까, 내가 하려던 말은 처음부터 이런 거였다.
"착하고 무능한 의사와 악하고 유능한 의사의 대립항을 만들고 선택하라는 것에는 정치적 의도가 있다"라는 것. 이런 말을 하려고 한 이유는, 애초에 이런 담론이 누구에게나 익숙하리라는 전제를 또 깔고 있었다. "좋은 선생 필요없어, 잘 가르치기만 하면 되지, 때려도 상관없어"라는 식의 담론. "착한 거 필요없어, 내 병을 낫게만 하면 되"라는 식의 담론, 그 사람들의 시간을 귀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그저 열심히 하는 것 말고, 더 필요한 게 무언가, 궁리할 거라는 생각. 그러면, 그 사람이 선생이라면 착하고도 잘 가르치는 선생이 될 거고, 그 사람이 의사라면 착하고도 잘 고치는 의사가 될 거고, 그 사람이 내 옆에서 일하는 직장인이라면 자신의 업무를 수행하는 데 좀 더 고민한 결과물을 내 보일 것이라는 생각.
아, 그래서, 나는 그 이상한 대립항이, '착하다'-이건 보편가치다-를 무능과 묶어서, 결국 모든 사람이 '악하고 유능한'사람을 선택하는 자명한 상황을 통해-누군들, 내 생명과 내 능력과 내 시간을 맡기면서, 원하는 것을 분명하게 말하지 않을까- 보편가치가 무용한 것처럼 포장하기 위한 정치적인 수사에 불과하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그런데, 쓸데없이, 00씨와 태도를 중시하는 사람들의 성향, 결국 태도조차 정치적인 가치판단이라는 식의 말들을 해야 했다. 이 때, 나는 정말 화가 버럭 났는데, 내가 사용한 '착하다'는 말은 보편가치로서 둘 다 동의해야 가능한 대화였기 때문에, 00씨가 그렇게 말하니까 정말 화가 났었다. 그런데, 00씨는 자신의 계속되는 업무지체때문에 사람들이 유능함 대신 성실함을 택하는 것 때문에 착하다,는 수사를 성실함으로 오해하고, 나에게 반박을 하려고 했던 것이다.

회사에서 일을 할 때, 누구든 업무에 구멍은 용납되지 않는다. 업무의 질은 유능과 무능을 가르겠지만, 내 개인적으로 태도로써의 성실이냐, 아니냐는 주변 사람을 대하는 여유로운 태도의 문제기 때문에, 누구라도, 게으른 똑똑이를 최우선으로 칠 거라고 생각한다. 00씨는 내가 이렇게 말하자, 자신과 말한 많은 사람들은 성실하고 안 똑똑한 사람을 더 선호했다면서, 다시 성실하다,라는 말의 해석가능한 무한한 범위에 대해 혼란스러워했다. 대화를 했지만, 정의가 없어서, 어떤 것이 성실인지 그 사람과 자신이 달랐을 거라면서 어지러워했다.

* 그 블로깅을 다시 찾아보려고 검색했는데, 정작 그 글은 못 찾았는데, 착한 의사라는 말이, 꽤 유명한 말인 모양이다. http://dusl.tistory.com/479 (09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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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verjinny 2009-08-18 16: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편집은 너무 힘들어가지 않았나? 그렇게 하지 않았어도 좋았을 것을..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별족 2009-08-18 17:25   좋아요 0 | URL
좀 어지럽긴 하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