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 봤는지 기억하지 못하는 이야기다. 


한 사람이 비바람이 몹시 부는 날, 숙소를 찾아 헤메다가 여관에 들어갔다. 방이 딱 하나 남았는데, 아래층에 굉장히 까다로운 손님이 들어갔으니 주의해달라는 말을 듣는다. 조용히 잠만 자고 나오겠다고 겨우 방을 구해서 들어가서는 침대에 걸터앉아서 신발을 벗다가 떨어뜨린다. 깜짝 놀라서, 조심조심 다른 신발을 벗고,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 날 아침, 숙소에서 나오는데, 눈이 퀭한 사람이 자신을 빤히 쳐다보면서 도대체 신발 한 짝은 언제 벗었느냐고 묻는 거다. 신발이 떨어지는 소리를 듣고 놀라서는 다음 신발 한짝이 떨어지기를 기다리느라 잠들지 못했다는 아래층 손님이다. 


누구 잘못도 아닌 이야기, 그래서 우스운 이야기,다. 

의도와 결과는 일치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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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족 2023-04-06 1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브레네 브라운의 마음산책,을 읽다가 ˝이민자들과 시골에서 도시로 밀려 들어온 사람들이 비좁은 공동주택에 모여살던 20세기 초반에는 위층 사람이 저녁에 신발 벗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며, 만들어진 영어의 관용적 표현 ‘We‘re always waiting for the other shoe to drop.‘을 말한다. 브레네 브라운은 이 말을 언제나 나쁜 상황을 상상하는? 기대하는? 기다리는 심리상태를 묘사하기 위해 쓰지만, 나는 좀 다르게 들은 거 같다.
 

초등학교 운동회가 있었다. 오랜 코로나 상황으로 막내가 입학하고 3학년이 되고서야 처음 하는 운동회다. 엄마도 구경을 오라,고는 했지만 도시락도 없고, 정말 구경이다. 운동장 뒤쪽에서 펜스에 기대서 하는 구경. 

운동장의 고무마감을 걷어내서, 운동장에는 뛰는 아이들로 모래바람이 일었다. 

점심도 먹고 나간 운동장에서 아이들의 계주를 구경한다. 

청팀과 백팀으로 나뉜 점수판이 큼직하게 정면에 보인다. 맞춘 듯 50점 차에, 계주가 끝나고도 이긴 팀에 50점을 준다. 

6학년 아들은 청팀이고, 3학년 딸은 백팀이라 어디를 응원해야 좋을지 모르겠는 구경에, 계주가 끝난 운동장에 행사 사회자가 아이들을 불러서는 막춤을 추게 하고, 마구 점수를 준다. 아, 비슷한 점수의 원인을 알게 된다. 저렇게 했어. 

아들은 반에서 '거 MC 양반 점수 좀 똑바로 주시오!'라고 항의하다가, 씨알도 안 먹히니까 친구들이랑 욕을 한 아이 하나가 급식시간에 담임선생님한테 '네가 젠민이냐?'라는 말을 듣고는 울었다고, 걔가 우는 거 처음 봤다고 말했다. 

나도 억울하겠어. 계주 이긴 거보다, 단체 줄다리기 이긴 것보다, 사회자 눈에 띄게 막춤을 춘 점수가 더 높은 게 왜 억울하지 억울하지 않겠어? 라고 말한다. 

어린이집 운동회 기억도 났다. 코로나 이전에 큰 아이 운동회에서 아이들도 뛰고, 부모들도 뛰었는데, 그 때 사회자가 아이들이 승패에 분하지 않도록 한다면서 점수를 부모 점수만 넣었다. 나는 내가 아이라면 죽게 뛰었는데, 점수가 없는 게 더 분할 거 같다. 이길 수도 있고, 질 수도 있는데, 왜 아이가 이긴 건 점수도 안 넣고, 엄마가 이긴 것, 아빠가 이긴 것만 점수에 넣지 싶어 읭~ 스러웠던 기억이 떠올랐다. 

이기고 지는 것으로 아이가 울지 않게 하겠다,라고, 운동회를 레크레이션으로 만드는 사회자를 초청한다. 그게 좋은가? 만약 누구보다 잘 달리는 아이라면, 청팀과 백팀이 나뉘었는데, 운동회인데, 그게 억울하지 않은가? 운동회에서 운동 잘하는 친구가 주인공이 되는 게, 시험치고 공부 잘하는 아이가 주목받는 게, 장기자랑에서 춤 잘 추는 아이가 주목받는 게, 문제인가? 열패감을 아예 느끼지 않게 세상을 평평하게 만들어야 하는 건가? 그게 가능한가?

이미 아이들은 프로듀스 101같은 프로에서 잔혹한 경쟁을 보고 아는데,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거지?

좀 더 고리타분한 운동회를 고지식한 운동회가 나는 좀 더 좋다. 

레크레이션,은 잠깐이고, 뛰고 달리는 게 좀 더 중요한 그런 운동회, 사회자가 어색해도, 점수가 계주에 백점정도 걸리고, 춤은 아무리 잘 춰도 응원점수로, 한 종목 이기는 것에도 못 미치는 정도로, 나는 그 정도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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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친밀한 이방인
정한아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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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안나는 안나가 되었나, 생각한다. 안나는 늙은 부모가 예측하지 못한 순간에 태어난 예쁜 여자아이였고, 언제나 원하는 걸 가질 수 있는 귀한 아이였다. 안나의 아버지는 지나치게 아이를 귀히 여겼다. 안나의 어머니는 무지하고, 무력하게 묘사된다. 벙어리에 발달장애?로 묘사되는 어머니는 안나를 임신했을 때조차 안나의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하다가 어느 순간 벼락치듯 출산한다. 책 속 묘사에서 어머니는 경제적으로 아버지에 종속되었고, 어떤 면에서도 안나에게 영향력이 없는 듯 하다. 안나를 돌볼 힘이 부족했던가. 부모의 돌봄 가운데 자라서, 세상밖으로 나아갔을 때 안나의 욕망들은 제어되지 않았고, 안나는 원하는 모든 것을 얻을 수 있는 가운데 자라서, 원하는 모든 것을 얻을 수 없는 상황에서 거짓을 택한다. 작은 거짓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걸, 방치한다. 어린 안나의 모든 것이 가능하게 했던 아버지가 죽고 어머니가 남자, 안나는 계속 거짓을 선택하고 그 삶을 살아가다가 이야기 속에서 사라진다. 이야기의 결말에서 나는 과연 안나는 존재했을까 의심한다.  

수지가 주연한 안나,의 원작소설이라 궁금해서 받아 읽었다. 소설가의 추적 가운데, 안나의 삶은 소설적이고 이야기는 빠르게 읽힌다. 그런데, 나는, 안나의 이야기에 공감하지는 못한다. 신기하고 재미있는 이야기에 호응하는 정도고 반면교사처럼 내 앞에 있다. 게다가 난 부모라서, 모든 게 가능하지 않다는 걸 아이에게 어떻게 가르칠지 생각한다. 빈부의 차이를 그 가운데 너무 비교하면서 열패감에 빠지지 않고, 어느 정도 받아들이도록 어떻게 가르칠 수 있을 지 생각한다. 내 아이가 비교 가운데, 스스로의 중심을 툭 놓치기를 원하지 않는다. 스스로의 단단한 중심이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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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일기를 쓰려고 컴퓨터를 켜는데, 페이스북 알림 카운트가 오른쪽 아래에 보인다. 

언니 뿐이지만, 들어가서 확인한다. 언니는 페북에 포항MBC에서 제작한 '새어나온 비밀' (https://www.youtube.com/watch?v=0zEzNVUSqGQ) 이라는 다큐를 링크로 걸었다. 

잠깐 보다가 끈다. 커서를 빠르게 밀어 보는 인터뷰에서 10년 전에 갑상선 암 수술을 받았다는 할머니도, 할아버지도 보이고, 평상에 모여 앉은 어른들에게 젊은 환경운동가는 계란으로 바위치기고 오래 걸리겠지만 그때까지 살아계시라,고 말한다. 


원자력발전소 옆에 살지 않아도, 사람은 늙고 죽는데, 어떻게 원인을 저렇게까지 확신하지,라고 생각하면서, 새롭지도 않고 언제나처럼 감정에 호소하는 이야기네, 라면서 끈다. 


출근해서 회사의 신문스크랩에서 경북매일의 "방사능 괴담으로 파탄난 지역경제 책임져라"

(http://www.kbmaeil.com/news/articleView.html?idxno=939884 ) 라는 기사를 본다. 환경운동가가, 포항 MBC의 기자가 지역경제를 파탄내려고 그런 기사를 냈을 리는 없다. 더 중요한 게 있고, 더 중요한 걸 위해서 사람들을 위해서 입 없는 사람들의 입이 될 결심으로 하고 있을 것이다.

믿기 때문에, 믿어 의심치 않기 때문에, 감정에 호소하는 일, 공포를 조장하고 있으면서도 그래도 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보이지 않아서 알 수 없는 것이라서 더 쉽다. 


다른 누군가-자연, 지구, 약자, 그게 무엇이든-를 위해 높인다는 목소리가 과연 도움이 되는 말일까, 의심하는 지경이다. 


세상의 복잡하고 다양한 면면 가운데, 확신에 찬 목소리들에 의심이 생기고, 감정에 호소하는 말들을 밀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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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우 2022-09-30 12: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지나 친 확신은 좀 부담스럽긴 해요. 신념에 가득 찬 사람들을 보면 좀 불편한데, 그렇게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도 필요하겠지.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래도 자기들이 옳다는 걸 증명하려고 감정에 호소하는 건 좀 아닌 거 같아요.

카스피 2022-10-01 18: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방사능 위협이 큰것은 사실이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그걸 어떤사유에선지 너무 과대포장하여 공포감을 조성하는분들이 문제인거 갔습니다

별족 2022-10-03 07:09   좋아요 0 | URL
크다, 작다, 라는 게 모두 상대적인 거라서, 저는 무엇에 비하여 크다는 건지 회의하고 있습니다. -_-
 
[eBook] 이문열 세계명작산책 1 - 사랑의 여러 빛깔, 개정판 이문열 세계명작산책 1
바실리 악쇼노프 외 지음, 이문열 엮음, 장경렬 외 옮김 / 무블출판사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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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의 기숙사 방에서 읽은 기억이 있다. 어떻게 구한 책인지는 모르는데,  강렬하고 불투명한 기억으로 남아 있었다. 사랑이 무언지 한창 궁금하던 때라서, 그런 인상이었던 걸까. 단편선의 제목처럼 사랑의 형태란 참으로 다양하구나, 라고 생각했던 걸까. 열병이나 교통사고 같은 사랑 뿐 아니라, 있는 듯 없는 듯 하면서도 애달픈 그런 사랑도 있다고 생각했을까. 

다시 나와서 구경하면서 책을 검색했는데, 처음부터 전체가 검색된 게 아니라 단편이 따로 따로 묶여서 전체 한 권보다 싸게 나온 걸 본 거다. 욕을 하면서 다운 받아 본 첫 이야기는 '달로 가는 도중에'였다. 무언가 아련하게 슬픈 사랑,으로 기억하고 있었던 걸까. 그게 첫 이야기여서 였을까. 사건이랄 것은 별로 없는, 몸은 다른 여자랑 섞으면서, 마음은 다른 여자를 쫓는 남자의 이야기를 읽었다. 사건이랄 것은 없고, 무언가 사랑이라 부를 만한 것이 있는가 싶으면서도 그것도 사랑이라면 사랑이겠지,라면서 읽었다. 

나중에 전체가 한 권으로 나온 이북도 있다는 걸 알고 다시 다운받아서 순서대로 읽었다. 개정판을 내면서 추가로 넣은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슌킨 이야기'는 앞쪽에 오 헨리의 '잊힌 결혼식'은 맨 마지막에 있다. 

사랑이 존재하는 것인지도 의심스러운 이야기-'슌킨 이야기'- , 한 번 만나지도 못하면서 마음만 홀로 커지는 이야기-'환상을 쫓는 여인', '달로 가는 도중에'-, 만났어도 일방인 이야기-, '별'- , 일방이 아니었어도 서로의 색깔이 다른 이뤄지지 못한 이야기-'르네'- 사랑했으나 결국 이뤄지지 못한 이야기-'임멘호수'- , 사랑하고 사랑받으며 살아가지만 영원하지도 격렬하지도 않은 이야기-'사랑스러운 여인', '잊힌 결혼식'-, 남녀간의 정염과 다른 종류의 사랑이 결투하는 듯한 이야기-'바니나 바니니'-, 강렬하고 지독하고 어긋나 죽음에 이르게 하는 이야기-'에밀리를 위한 장미', '라이젠보그 남작의 운명'-도 있다. 

돌이켜 스무살 무렵의 나에게 예방주사 같았다,고 생각한다. 격렬하고 기이한 이야기들만 가득 차 있었다면, 아마도 그런 사랑이 두려워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했을 지도 모른다.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는 환상으로 커지는 사랑만을 품고 두려움에 살았어도 역시 삶을 살아내지 못했을 지도 모른다. 격렬하지 않더라도, 이뤄지지 않더라도, 사랑이라고 이름붙이기 애매하더라도, 애국심에 자리를 양보해야 할지라도, 사랑이라고 부를 수도 있고, 이야기로도 남을 수도 있다,고 내 이야기는 내가 쓰겠다고 마음먹을 수 있게 한 것도 같다. 사랑은 제목처럼 여러 빛깔이고 어떤 이야기를 쓸 지는 내가 고를 수도 있다고 이야기들 가운데 즐거웠다. 

재미있었어. 다시 읽어도 역시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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