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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이문열 세계명작산책 1 - 사랑의 여러 빛깔, 개정판 ㅣ 이문열 세계명작산책 1
바실리 악쇼노프 외 지음, 이문열 엮음, 장경렬 외 옮김 / 무블출판사 / 2020년 12월
평점 :
대학의 기숙사 방에서 읽은 기억이 있다. 어떻게 구한 책인지는 모르는데, 강렬하고 불투명한 기억으로 남아 있었다. 사랑이 무언지 한창 궁금하던 때라서, 그런 인상이었던 걸까. 단편선의 제목처럼 사랑의 형태란 참으로 다양하구나, 라고 생각했던 걸까. 열병이나 교통사고 같은 사랑 뿐 아니라, 있는 듯 없는 듯 하면서도 애달픈 그런 사랑도 있다고 생각했을까.
다시 나와서 구경하면서 책을 검색했는데, 처음부터 전체가 검색된 게 아니라 단편이 따로 따로 묶여서 전체 한 권보다 싸게 나온 걸 본 거다. 욕을 하면서 다운 받아 본 첫 이야기는 '달로 가는 도중에'였다. 무언가 아련하게 슬픈 사랑,으로 기억하고 있었던 걸까. 그게 첫 이야기여서 였을까. 사건이랄 것은 별로 없는, 몸은 다른 여자랑 섞으면서, 마음은 다른 여자를 쫓는 남자의 이야기를 읽었다. 사건이랄 것은 없고, 무언가 사랑이라 부를 만한 것이 있는가 싶으면서도 그것도 사랑이라면 사랑이겠지,라면서 읽었다.
나중에 전체가 한 권으로 나온 이북도 있다는 걸 알고 다시 다운받아서 순서대로 읽었다. 개정판을 내면서 추가로 넣은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슌킨 이야기'는 앞쪽에 오 헨리의 '잊힌 결혼식'은 맨 마지막에 있다.
사랑이 존재하는 것인지도 의심스러운 이야기-'슌킨 이야기'- , 한 번 만나지도 못하면서 마음만 홀로 커지는 이야기-'환상을 쫓는 여인', '달로 가는 도중에'-, 만났어도 일방인 이야기-, '별'- , 일방이 아니었어도 서로의 색깔이 다른 이뤄지지 못한 이야기-'르네'- 사랑했으나 결국 이뤄지지 못한 이야기-'임멘호수'- , 사랑하고 사랑받으며 살아가지만 영원하지도 격렬하지도 않은 이야기-'사랑스러운 여인', '잊힌 결혼식'-, 남녀간의 정염과 다른 종류의 사랑이 결투하는 듯한 이야기-'바니나 바니니'-, 강렬하고 지독하고 어긋나 죽음에 이르게 하는 이야기-'에밀리를 위한 장미', '라이젠보그 남작의 운명'-도 있다.
돌이켜 스무살 무렵의 나에게 예방주사 같았다,고 생각한다. 격렬하고 기이한 이야기들만 가득 차 있었다면, 아마도 그런 사랑이 두려워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했을 지도 모른다.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는 환상으로 커지는 사랑만을 품고 두려움에 살았어도 역시 삶을 살아내지 못했을 지도 모른다. 격렬하지 않더라도, 이뤄지지 않더라도, 사랑이라고 이름붙이기 애매하더라도, 애국심에 자리를 양보해야 할지라도, 사랑이라고 부를 수도 있고, 이야기로도 남을 수도 있다,고 내 이야기는 내가 쓰겠다고 마음먹을 수 있게 한 것도 같다. 사랑은 제목처럼 여러 빛깔이고 어떤 이야기를 쓸 지는 내가 고를 수도 있다고 이야기들 가운데 즐거웠다.
재미있었어. 다시 읽어도 역시 재미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