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아이들이 어릴 때 짱구를 못 보게 하는 엄마를 만난 적 있어서, 뭔가 쓴 적이 있다. ( https://blog.aladin.co.kr/hahayo/9972561 )

다음 뉴스에서 포텐독에 대한 정치하는 엄마들의 반대기사( https://www.mbn.co.kr/news/society/4560619 )를 보고, 뭔가 쓰고 싶어졌다. 


아이가 어렸을 때, 아이가 노는 놀이터에 따라가는 일은 참 무섭다. 아이가 방방 뛰고 이것 저것 신나게 하고 있을 때 보고 있으면 걱정이 뻗치거든. 트램펄린을 뛰고 있는데, 아이보다 큰 아이가 옆에서 뛰면 아이가 다칠까봐 걱정, 중심도 못 잡고 잘 서지도 못하면서 미끄럼이라도 거꾸로 올라가는 걸 보고 있으면 또 걱정. 트램펄린 옆에 앉아있고 싶고, 꼭 안고 그네를 내가 타고 싶고, 무언가 쥐고 있는 그 손을 내가 내 손으로 더 꽉 덮어주고 싶다. 그러고 싶은 마음을 꾹 참는 게 너무 어려워서 그냥 혼자 보냈다. 보고 있으면 걱정만 뻗치니 풀이라도 뽑다가 어느 순간에는 내가 굳이 왜 애 노는데 따라가나, 가 된 거다. 


아이가 자라다보면, 애국심에 경도되는 순간이 온다. 냉소적인 어른 둘이 살 때라면 필요없는 국기가 아이들이 생기면 필요해진다. 어느 날 아이는 독도는 우리땅 5절까지 신나게 부르고 애국가를 아빠에게 알려달라고 했다. 남편은 '몰라도 돼'라고 대답했지만, '그걸 왜 네가 정해주는데?'라는 내 물음에 수긍했다.  


포텐독을 보지는 않고 '똥 밟았네' 뮤비만 보고 뒤늦게 포텐독을 안 나는 기사의 묘사들이 정말 문제가 되는가, 생각했다. 짱구를 보지 못하게 하는 엄마나, '몰라도 돼'라고 대답하는 아빠 같다는 생각을 하는 거다. 악당이 없는 이야기는 재미가 없고, 악당이래봤자, 똥을 동네에 뿌리는 건데, 그것조차 혐오스럽다고 하면 뭐지? 싶다. 공개된 자리에서 먹으면서 똥을 싸라고 했다는 게 악당이잖아? 아이들은 그게 악당이고 그 짓이 나쁘다는 걸 아는 거잖아? 어떤 이야기들을 원하는 거지? 불법촬영물로 협박하는 게 악당이잖아? 주인공 남자애의 개팬티를 놀리는 놈들이 악당이잖아? 어떤 악당을 원하는 거지? 


놀이터에서 아이를 보는 것처럼, 세상 많은 이야기들 앞에 아이들이 나도 조마조마하기는 하다. 양아치같은 이야기들에 경도될까봐 다른 생각을 말해주려고 애도 쓴다. 그렇지만, 나는 그걸 이런 식으로는 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이야기를 없애고, 이야기를 검열해서는 적개심만 커진다. 아이의 적개심을 고양시켜서야, 아이의 판단을 그렇게까지 불신해서야 아이가 어떻게 자신의 판단을 믿는 어른이 될 수 있을까. 아이도 판단하고 있다. 게다가 그 만화에서 그 짓을 한 사람들은 모두 다 악당!!!이라고 이름표 붙은 사람들이다. 악당이 나쁜 짓을 했으니까 악당인 건데, 만화 속에 악당을 묘사하지 말라는 건가. 만화 속 여성캐릭터가 그런 지경인 것은 검열하고 통제하는 엄마에 대한 적개심 때문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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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을 어슬렁거리다가 이렇게 나란한 두 권의 책 표지를 봤다.

서양에서의 저자의 무게라는 이렇게 거대한가 싶어 새삼 놀라면서 다른 책들도 찾아보았다.

 

 

 

 

 

 

 

 

 

 

 

 

 

거의 디자인 상 차별점이 없는데,  원서에 저자 이름이 더 잘 보이게 편집되어 있다.

 

 

 

 

 

 

 

 

 

 

 

 

 

 

 

 

 

 

 

 

 

 

 

 

 

 

 

 

 

 

 

 

 

 

 

 한국저자의 책이 번역출판되는 상황이 궁금해서 추가.

 

 

 

 

 

 

 

 

 

 

우쭐한 태도가 드러나는 것일까. 자아에 대한 감각이 다른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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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비부인에, 쓰는 것은 문제가 있다. 나는 이걸 이선옥님의 안내메일을 받고 유튜브로 봤다.

http://leesunok.com/archives/2840

여기서 보고는 유튜브로도 가서 댓글들도 봤다. https://www.youtube.com/watch?v=3EtCmXpaMCk

장혜영의원의 입장문을 보고도 나는 페미니스트들과 의견이 달랐고,

https://blog.aladin.co.kr/hahayo/12343250

낙태와 관련해도 나는 달랐다.

https://blog.aladin.co.kr/hahayo/12210402

이런 저런 과정에서 나는 더이상 내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로 정의하지 않는다.

 

협상의 테이블에 앉을 때, 상대와 나는 동의된 목표가 있어야 한다. 국가 간 협상이라면 '전쟁은 안 돼!'라는 정도의 공감대, 국가 내 이익단체 간의 협상이라면 '국가는 필요하고, 국가는 약자를 보호해야 한다'정도의 공감대는 있어야 협상이라는 걸 할 수가 있다.

국가가 망하던지 말던지, 뭔 상관이야, 라고 하는 사람이라면 국가의 어떤 결정에 함께 할 수 있을까. '국가는 필요하고, 국가는 약자를 보호해야 한다'에는 동의하지만 의제 안에서, '약자는 바로 나!!!!'고 인정하지 않는 너는 나쁜 거라고만 주장한다면 그게 국가라는 이 다양한 사람들의 공동체에서 진지하게 들어야 하는 말이기는 할까? 그 사람을 협상 테이블에 앉게 해야 할까? 뭐라도 그 사람에게 국가를 운영하게 해야 할까?

 

백분토론에 이선옥작가의 말들이 나의 어떤 답답함에 대해 말하고 있는 거 같아서 좋았다. 책들로 여러 번 정리한 간결하고 분명한 말들을 여러 사람들이 들었으면 좋겠다.

토론자로써 우석훈 교수나 장혜영의원은 너무나도 준비도 안 되어 있고, 논리도 빈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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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못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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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들의 마을
이시무레 미치코 지음, 서은혜 옮김 / 녹색평론사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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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치게 감상적이다. 너무 계속 우는 느낌이라 따라갈 수가 없다.
사람들이 죽지 않았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하면서 우는데, 나 원 참, 세상에 안 죽는 사람도 있어,라는 나의 냉소적인 태도가 계속 출몰해서 못 읽었다.
유럽사 산책 1- 20세기, 유럽을 걷다
헤이르트 마크 지음, 강주헌 옮김 / 옥당(북커스베르겐)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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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학교에서 어른들에게 6.25 경험담을 듣고 오라고 숙제를 주신 적이 있다. 그 때 아빠는 마을 사람들이 좌익으로 몰린 사람을 린치한 이야기를 했다. 반공연설을 하던 모범생이던 나는, 이게 선생님이 원하는 경험담이 아니라는 느낌을 받았다. 숙제는 해 갔었던가, 기억이 안 난다. 유럽사 산책, 거시사가 아닌 미시사, 내가 했던 것처럼 내 주변의 사람들이 겪은 전쟁들에 대한 이야기라는데, 내가 유럽사를 그렇게 궁금해하지 않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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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인트 (양장)
이희영 지음 / 창비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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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정만 있는 가짜같은 이야기다. 의문이 많이 생긴다. 

차별이 존재하는데, 왜 열여덟?이 될 때까지 격리시켜서 살게 하는가. 

격리된 공간에 대한 이야기가 왜 자꾸 생기는 걸까. 

근미래, 섹스는 원하지만 아이는 원치 않는 사람들이 낳은 아이들이 NC센터로 보내진다. 이른 입양이 아동학대와 방임으로 이어지자, 입양가능연령이 13살로 올라간다. 13살???? 부모로부터 심리적으로 떨어져나갈 나이에 뭐하러? 싶다. 나는 오히려, 이런 완전한 격리를 왜 하는 건지 의심이 든다. NC센터가 규모가 정말 책처럼 커서, 가족 내에서 자라는 아이들보다 많다면, 정말 차별은 하려고 해도 할 수가 없을 테고-NC센터 출신 연쇄살인마의 존재로 차별이 심해져서 서류 상 출신을 지우기 위해 늦어도 입양을 보내려고 한다는 배경이 있는데-, 이미 아이들의 7~80%가 NC센터 출신이라면 그게 의미가 있나, 싶은 거지. 게다가 나는 굉장히 실용적인 사람이라서, 아이를 낳아 기르지도 않으면서 결혼해서 사는 사람들-그러니까 여전히 입양하려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에 의문이 또 생긴다. 

양육가설에서 부모가 없이 자라는 아이들이 서로의 부모가 되어주는 이야기가 있다. 

자식이 부모를 선택하게 한다,라는 설정을 위해 현실성을 포기한 이야기다. 

결혼에 대한 어떤 설정을 밀어붙인 트렁크를 읽고도 그런 생각이 들었었다. (https://blog.aladin.co.kr/hahayo/9676837) 

비밀을 참 쉽게 생각하는 게 아닌가? 같이 살아가는 사람들을 너무 투명하게 생각하는 게 아닌가? NC센터에서 13년을 살다가 입양이 되서 기록을 없애면 그 사람이 NC센터 출신인 건 사라지는가? 기록과 실재 사이에 아무 것도 없는가? 기록만 없으면, 실재는 없는 게 되나? 왜 그렇게 생각하는 거지? 물론 타인에 대한 관심은 얄팍한 게 맞지만, 기록만이 사실은 아니다. 관계라는 것들이 있는데 어떻게?라는 질문이 남아서 좋게 읽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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