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는 여자를 통제하고, 여자는 아이를 통제한다. 

아이들은 자라서 남자도 되고, 여자도 된다. 

짱구를 못 보게 하는 엄마들을 안다. 

나는, 내버려두지만, 왜 보지 말라고 하는지 알 것도 같다. 

남자들의 어떤 로망을 응축시켜놓은 것 같은 짱구는, 여자인 내가 보기에 무례하고, 의뭉스럽다. 

뭐든지 용서받는 언제까지고, 다섯살이다. 


직장인 아빠와, 전업주부 엄마와 아직 어린 여동생, 하얀 강아지, 정형화된 가족이 묘사된다.

정형화된 묘사 가운데, 가지는 모든 위험들이 노출된다. 

극장판은 좀 더 노골적이라서, 기모노를 입은 남자들이 깃발을 휘두르는 묘사도, 낭비를 일삼는 여성에 대한 반감으로 모든 인간을 동물로 만들려는 남자의 묘사도, 등장한다. 커다란 가슴과 엉덩이를 흔드는 여자들이 춤을 추고, 스물 대여섯도 되지 않은 유치원 선생님은 벌써 노처녀소리를 듣는다. 아빠의 직장에는 아빠보다 젊은 미혼의 여자들이 일하고 있다.  


그런데, 나는 통제받으며 자라지 않아서, 통제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이 상태로도 내 자신이 썩 마음에 들어서, 괜찮다는 생각이 드는 거다. 그런 만화를 봐도, 이런 부모를 보면, 균형이 잡힐 거라고 기대하고 있다. 백마디 말보다, 한번의 실천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서, 말들의 잔치에 휩쓸리지 않을 수도 있을 거라고 기대하고 있다. 어지러운 가운데, 정직한 사람을 찾아낼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스스로 생각하고, 이상한 걸 찾아낼 수도 있을 거라고도 기대하고 있다. 


남자가 여자를 통제할 때, 어리석어서,라는 이유를 붙인다는 걸 알고 있다. 

여자가 아이를 통제할 때, 같은 이유를 붙이는 것도 알고 있다. 

(특히 엄마는 여성이라서, 아들을 더 믿지 못한다.)

그런데, 그 이유 때문에 반발하게 되는 거다. 

상대가 나를 어리석다고 통제했다는 느낌은, 자란 다음 여성혐오의 방식으로 되갚을 수 있다.


그저 인간은 어리석고, 용서받을 기회는 자랄수록 줄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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