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판에 여자들의 이슈로 가득하다. 

조동연, 김건희, 신지예, 진명여고. 여가부 폐지, 다시 김건희.

나는 조동연이 깔끔하게 떨어져나간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김건희가 윤석렬의 아킬레스 건이 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신지예가 표를 갉아냈던 것도 다 수긍하고, 있다. 

 

진명여고 위문편지는 쉴드 칠 이유가 없고-종로에서 뺨맞고 한강에서 화풀이한 사람을 도대체 왜? 뺨 때린 사람이 잘못이니까 화풀이한 건 용서해주자???? 도대체 왜? 화풀이 당한 사람은?-, 여가부 폐지에도 동의하고 있다. 

지금의 내가 이렇게 된 데에는 여직원회 회장을 한 게 원인일 수 있다. 16년부터 19년까지 여직원회장을 하면서, 그 부당한 요구들에 대응하지 못하는 순간들 생각이 났다. 논리나 합리, 명분 대신 다수 의견이니까 회장은 가서 전달만 하면 된다고 했었다.

동의와 공감의 언어만을 요구한다. 동의나 공감의 말들이 그룹 내에서 커지는 가운데, 이상한 주장이나 요구를 꽤나 정당하다고 스스로 믿는다. 

친구는 내가 일반화를 하고 있다고 모든 여자조직이 그렇지 않다고 말했지만, 사람이라 어쩔 수 없이 내가 겪은 경험들 가운데, 나는 좋은 여자들의 조직을 여자들의 말들이 흐르는 방향을 알지 못한다. 평등하고 위계가 없기 때문에 자기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면서, 그룹 안 말의 흐름 위에서 판단을 가늠한다. 친분이 많은 사람의 말이 힘을 얻는다. 친구들과 하는 밴드에서 다른 의견이 나올 때의 반응,도 다르지 않다. 공감의 반응은 거리낌이 없지만, 반대의견 다음에는 침묵만이 있다. 거기는 그런 말을 할 수 없는 데지,라는 말을 들었는데, 그럼 먼 데 있는 나는 언제 그런 말을 할 수 있지?라는 질문이 생기기도 한다.  

진명여고 위문편지의 트위터 발 여론을 딸에게 전해 들으면서, 트위터는 반대의견을 리트윗하면서 반대의견을 달면서 자신이 리트윗한 글의 작성자가 보지 못하게 할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 와, 놀랍도록 편향적인 시스템이 아닌가. 대화가 아닌 말들의 잔치, 나와 같은 의견들만 모이는 편향의 축제. 놀랍도록 공격적이고, 놀랍도록 친절하고, 또 놀랍도록 폐쇄적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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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소년 2022-03-10 17: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최근에 어느 유명 유튜버의 여성 집단 내에서의 관계 형성에 관한 영상을 접했습니다. 여성 집단 내에서 배제당하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의 편을 만들고자 하고 자신의 주장을 굽히고 자기자신을 잃어갈 수 밖에 없는 여성들이 등장하더군요. 저는 그 장면들이 낯설지 않았습니다. 아마 낯설지않았던 것은 익히 많이 봐왔던 장면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과거 일 다닐 때 알고 지내던 여성 분이 자신의 집단(여성들) 눈치를 보면서 자신의 의견을 표명하지 못 하는 것에 안타까움을 느꼈던 기억이 납니다. 저는 그러한 문제가 그 곳에 한정되지 않다고 생각되어집니다. 타인이 자신과 같아져야 한다며 서로가 서로를 얽매이는 환경에서 과연 인간은 행복할 수 있을까요?

별족 2022-03-11 05:50   좋아요 1 | URL
저도 그 영상을 보고 싶은데 알려주세요!

커피소년 2022-03-11 06:02   좋아요 1 | URL
제가 폰으로만 북플을 해서 링크를 걸어드릴 수가 없어서 글로 설명하는 것에 대해 이해해주시길 바랍니다.

유튜브에 진용진의 없는 영화라고 검색하시면 바로 제일 위에 뜨는 영상이 있을겁니다. 제목이 여자들 99%가 무조건 겪어봤다는 이야기라는 영상입니다. 영상 댓글 보면 여자로 왕따를 단 한 번이라도 당해본 적이 없다면 타인을 처참히 짓밟고 관계 경쟁에서 승리한 사람이라는 댓글이 있었거든요. 그걸 보고 여성으로 이루어진 집단의 문제점을 생각해볼 수 있지 않나 생각이 됩니다.

별족 2022-03-11 06:24   좋아요 1 | URL
찾아서 잘 보았습니다. 사실, 저는 학교 다닐 때는 혼자 다니는 타입이었어서 그런 상황을 겪지는 못했습니다. 그래서 다 늦게 겪고 놀란 걸 수도 있습니다. 권인숙선생님의 양성평등이야기를 읽었을 때(https://blog.aladin.co.kr/hahayo/9078175) 제가 겪었던 상황을 아주 조금 묘사합니다.

커피소년 2022-03-11 06:48   좋아요 1 | URL
허허 또 링크를 주셨군요. 바로 접속하기가 가능하면 수월할텐데 북플에서는 글을 복사할 수가 없네요. 알라딘을 다시 설치해야 하는 것인가요.

그렇군요. 혼자 다니는 것에 익숙해지는 것이 오히려 정서적으로 좋을지도 모릅니다. 함께 하던 것에 익숙해지면 혼자가 되면 너무 힘들어지더군요. 무엇이던 내성을 길러야겠지요.

아침부터 부지런한 별족님 덕분에 즐거운 시간을 보내게 된 것 같습니다.
 

나는 오랫동안 정치인의 꿈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항상 대답하지 못하는 순간이 있었다. 국가 대 국가의 협상의 순간, 자국의 이익을 위해 타국의 손해를 요구하는 순간에 정치인인 나라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답하기 힘들었다. 지금의 세계는 국가 내 벌어지는 양극화 만큼 심각하게, 국가간의 양극화도 벌어지고 있지 않은가. 내가 누리는 삶 자체가 대한민국의 부유에 빚지고 있고, 이 대한민국의 부유는 가난한 나라들의 선망과 정치적 불안정들에 빚지고 있지 않은가. 우주로 나아가고, 영생을 꿈꾸는 미래전망 반대편에는 식량을 포기하고 니켈 따위를 채굴하는 가난한 나라의 국민들이 있는 것은 아닌가. 국내 정치에서 가지는 나의 어떤 정치인의 태도를 국외정치에서 일관되게 유지할 수 없다는 생각을 헛되이 상상으로 계속 하면서 나는 정치를 못 하겠는걸,이라고 생각했다. 

벌거벗은 세계사,에서 아편전쟁을 다루었다. 도입에 영국인과 중국인에게 어떻게 배우는지 물었다. 영국인은 거의 배우지 않고, 중국인은 굉장히 중요하게 배운다고 말했다. 식민지배의 역사를 가르치지 않는 일본과 영국은 다를 게 뭔가, 빈정거리는 마음으로 시작했다. 그러고는 끝까지 볼 수가 없었다. 그 결과를 알고, 그 무도함을 할고, 의회에서 9표 차로 전쟁을 승인한 무뢰배들이 결국 이긴다는 걸 알고 있어서, 세계관의 충돌이라는 것이 꽤나 그럴 듯하게 포장한 서구의 세계관이 과연 그러한가 의심하는 거다. 동등한 국가로 보고 자유무역을 청하였다? 그럴 리가. 자신의 우월을 의심치 않았기에 자유무역을 청한 거겠지. 시장이 없이 유지되지 못하는 자신의 부를 위해서, 식민지를 개척하고 약탈하는 제국의 무도함을 본다. 아, 지난 번 아프가니스탄,에 개입한 미국의 서사에서도 나는 무언가 끔찍해져서 싫었던 거지. 힘의 우위로 스스로의 옳음을 증명했다고 생각하는가, 싶어서 끔찍했었다. 그 무도함때문에 아편전쟁은 가장 추악한 전쟁으로 회자될 거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힘을 가지는 것은, 이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지키기 위해서 필요하다는 교훈은 남는다. 평화에 익숙한 거대한 제국이 속절없이 힘을 잃은 뒤에 전 세계는 자국의 이익을 위해 타국의 파멸을 모른 체 하는 무도한 파멸의 길로 뛰어든 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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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한해도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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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을 돌다가 이 기사(https://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211201500057&wlog_tag3=daum)를 봤다. 젊어서 성폭행을 당한 작가는 자신의 경험을 책으로 썼다. 그 책(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5268491)을 영화화하려던 감독이 사건 증거가 부실함을 의심하면서 재심을 했고, 결국 재심 결과 범인은 무죄로 판명되었고, 작가는 무죄판결이 나고 7일만에 사과를 했다는 기사였다. 범인으로 지목되었던 남자는 감옥에서 16년을 보냈고 성폭행범이라는 오명을 40년이나 뒤집어쓰고 있었다. 유명한 작가라길래 책을 검색했다. 자신의 경험을 쓴 책은 번역되지 않았지만, 다른 책을 내가 읽었더라. 

그 책을 읽었을 때 울기는 했지만 마음 속에 굴러다니던 모래알이 있어서, 다 늦게 써놨던 게 있나 찾았다. 

울었다고만 썼더라. 마음 속에 껄끄러움을 가지고도 나는 이야기에 대해 말하는 게 꺼려졌었다. 

나는, 이 책에서 범인이 너무 전형적이라서 껄끄러웠다. 이웃의 소녀를 강간해서 살인하리라고 모든 사람의 머릿 속에 그리는 그런 인물이 범인이었다. 나는 그게 불편했다. 

 

어떤 이야기가 만들어지고 어떤 이야기가 살아남는가,에 대해 생각한다. 100명의 살인 사건 중 95명의 남자 살인자 이야기는 살아남지 못하고, 5명의 여자 살인자 이야기가 유명해지는 것에 대해서 썼었다. (https://blog.aladin.co.kr/hahayo/10152825 ) 당연한 이야기는 재미가 없고, 사람들은 신기한 이야기를 좋아하니까. 결국 이야기, 일 뿐이다. 이야기들 가운데, 어떤 중심을 잡고 살아가는가,는 전혀 다른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야기가 의미있는 이야기가 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또 생각한다. 전형적인 범죄자가 더 많을 텐데도 비전형적인 범죄자의 이야기가 더 많은 이유는, 소설이 통계가 아니기 때문일까,라고도 생각한다. 

사람들에게는 편견이 있다. 문화가 구성한 편견도, 경험이 만든 편견도 내 안에 있고, 단단해지거나 물렁해지면서 선택의 순간에 힘을 발휘한다. 남자나 여자, 기혼이나 미혼, 동양인이냐 서양인이냐, 아이이거나 어른이거나 고향이 어디라거나, 형제가 있거나 없거나, 맏아이거나 작은 아이거나, 막내거나, ABO식 혈액형에 따른 방식이거나, 종교에 대한 방식이거나, 가족과 함께 사는지나 혼자 사는지나, 사람을 둘러싼 모든 것에 편견은 작동할 수 있다. 그 편견들은 내 안에서 나름 이유가 있다. 그렇지만, 내가 처음 만난 사람을 그 정형화된 편견으로 판단한다면 아예 범인으로 지목하기까지 한다면 그건 다르다. 내 자신이 편견이 있을 수 있음을 늘 조심스럽게, 의심하고, 새로운 사람은 백지위에서 판단을 쌓기 위해 애써 노력해야 한다.80%의 00이 나쁜 선택을 한다고 해서, 내가 만난 그 00이 나쁜 선택을 할 거라고 기대하지 않는 노력이 필요하다. 세상은 훨씬 더 복잡하고, 내가 만날 수 있는 사람은 전부가 아니고, 심리학도 과학도 사회학도 세상의 전부를 담지는 못하니까, 소설을 읽는다. 그 어느 것도 내가 만난 그 사람을 묘사할 수는 또 없고, 나와 그 사람의 관계는 오직 나와 그 사람에게만 달린 게 아닌가, 생각한다. 

다시 한 번 친구로 대한다면 친구가 된다고. 기대한 대로 되기 위해 얼마나 스스로 애쓰는가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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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나게 보고 있다. 돌리면 재방이 나오는데, 나올 때마다 기다려서 둘이 나누는 대화들을 듣는다. 

'저하의 사람이지만, 제 전부가 저하의 것은 아닙니다'도 좋고, '우리가 귤에 대해 말하는 게 맞느냐'도 좋고, 아주 좋다!!!


그런데, 이런 나도 처음에 거슬려서 계속 볼까 말까 고민한 부분이 있었다. 내가 거슬린 거 두 가지는 굉장히 사소하다. 

하나는 어린 동궁이 요를 깔고 누운 방이 마루방이던 것, 이다. 한옥에 대한 책에서-출처를 찾다가 포기했다- 한옥에서 사람이 자는 방은 언제나 온돌이어야 한다,는 말이 있었다. 사람에게는 온돌방을 주는 거라고, 분명히 봤는데. 찾을 수가 없다. 그런데, 세손저하가 감기에라도 걸렸는지 아픈데, 그 방이 마루방인 게 너무 거슬린 거다. 콩댐을 한 노란 온돌방이 아니라, 검은 나무로 짠 마루방에 귀한 사람을 눕힌다.니. 

다른 하나는 마룻방에 눕힌 동궁의 요가 비단 면을 위로 오게 한 거였다. 어렸을 때 엄마가 이불잇을 시침하는 걸 봤는데, 요를 저런 방식으로 깐다고? 실용적이지가 않잖아,라면서 불편했다. 사람의 몸이 닿는 부분이 비단이 닿는 것은 부유한 사람들의 방식인가? 왜 그러는 거지? 

그 두가지가 무척 거슬려서 옛날 사극도 찾아보는 지경. 눈이 시원하게 공간을 넓히려니 온돌의 공간을 쓰지 못한 것인가. 만드는 사람들의 이유가 많이 많이 궁금하다. 어디다 물어보면 말해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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