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 그것은 상처
에카 쿠르니아완 지음, 박소현 옮김 / 오월의봄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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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6 큰 딸이 티비 다시보기로 '크라임 씬 3'를 연속으로 보던 주말이 있었다. 그 아래 어린 동생들은 집을 나가 놀고 있는 참이라, 나도 졸다 깨다 같이 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연속으로 두 편에 여자 살인자가 등장해서 화들짝 놀랐다. 재미있게 보고 있는 딸에게 이건 살짝 그렇다며 언질을 주다가, 아마도 여자 살인자가 희박해서 저 이야기가 재미있는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 벌어지는 백 개의 살인에 백명의 살인자 중에 여자가 열명쯤 되면, 그 열 건에 사람들이 눈을 크게 뜨고 놀라서 귀를 쫑긋 세우고 듣는 거다. 옛 말씀에 당연한 이야기-너는 죽게 되어 있어, 같은-에는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지만, 네가 죽지 않는 방법을 내가 알고 있어, 같은 허무 맹량한 이야기에는 구름처럼 사람들이 달려가는 것 말이다. 


인도네시아 작가가 쓴 책이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재미나게 읽었다. 영혼의 집,이 떠올랐지만-띠지에 '가디언''뉴욕타임즈''파이낸셜타임즈'최고의 책,이라는 월계관을 뒷표지에는 가르시아 마르케스와 살만 루슈디,를 언급하는 찬탄들이 가득하지만, 마르케스의 백년동안의 고독,은 읽은 바 없고, 살만 루슈디의 악마의 시는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작가가 남성임을 끊임없이 깨닫게 한다. 

인도네시아의 해안가 늪지대였었다던 할라문다,라는 소도시를 배경으로 한 집안의 가계도 안에, 딸들의 짝으로 역사 속의 적대자를 연결시킴으로써 인도네시아의 역사를 그려낸다. 

그러나, 이야기 속의 여성이 남성의 상상 속에 여성들이다. 치명적으로 아름답고, 강하고, 그렇기 때문에 창녀가 되는 데위 아유나, 치명적으로 아름답고, 강하고, 자신의 아름다움으로 거만하게 남자들을 상처 입히며, 사랑하는 남자를 두고 자신을 강간한 남자와 결혼하면서도 결코 사랑하지 않음으로써 복수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알라만다나, 치명적으로 아름답고, 강하고, 언니의 사랑을 결국 차지하는 아딘다나, 어머니의 뜻에 따라 고분고분 어머니의 남자와 결혼하는 마야나 도대체 여성인 나는 이입하기보다 구경꾼이 된다. 

강간당하면서도 파괴되지 않는 여자를 남자가 얼마나 선망하는지, 책 속에 수없이 많은 노골적인 성애묘사로부터 알아차린다. 남자가 여자를 강간하는 이유는 여자가 아름답고 친절했고 자신을 보고 웃었기 때문이지 자신의 잘못은 아니고, 남자가 여자를 강간했다고 해서 여자가 파괴되지는 않는다. 강간당해 결혼한 알라만다가 남편을 사랑하지 않기 위해 하는 수고들을 나는 세상 저렇게 황당한 여자도 있을까, 이해하지 못하면서 구경한다. 기구한 인도네시아의 역사나, 기이한 신화들 가운데, 귀신과 악령과 복수를 구경한다. 그저 이야기로, 허무맹랑하기 때문에 구경하면서 읽었다. 그렇지만, 남자들이 보는 포르노를 옆에서 보는 듯한 죄책감이 드는 즐거움이다. 이야기의 허무맹랑함을 나는 감당할 수 있지만, 물론 나도 강간 따위로 파괴되지 않을 강한 여성을 원하지만, 이건 뭔가 남성의 변명을 위해 만들어진 여자들이란 생각이 든다. 이런 책에 찬사를 늘어놓는 남자들?이란, 이라고 편견으로 가득 찬 생각까지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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