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회 한국과학문학상 수상작품집 - 관내분실 +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 TRS가 돌보고 있습니다 + 마지막 로그 + 라디오 장례식 + 독립의 오단계
김초엽 외 지음 / 허블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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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육가설'을 읽고 있다. '그건 부모 탓이 아니다'라는 책을 읽고 있는 와중에 빨리 끝내려고 책을 집었다. 여섯개의 이야기가 있는 단편집인데, 대상작인 '관내분실'과 마지막 실린 '독립의 오단계'가 엄마와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라 생각이 많다.


관내분실,은 미래에는 그럴 수도 있겠다,라는 설정에 놀라기는 했다. 뇌내 기억을 업로드해서 저장한 도서관같은 묘지에 대한 상상, 그럴 듯하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설정을 걷어내면 이야기는 어떠한가. 젊은 여성이 임신을 하고, '자아'를 잃는다. 산후 우울과 겹쳐 자식과 불화하고 불화하던 딸은 임신을 하고서야 죽은 엄마를 찾는다. 업로드된 엄마의 기억을 찾지 못하자 엄마에게 '엄마'의 것으로 정렬하려고 한다. 죽은 엄마의 기억을 찾을 수 있던 '엄마의 자아'가 결부된 물건은 엄마가 엄마가 되기 전 디자인한 책,이다. 죽은 엄마의 기억과 마주한 딸이 엄마를 이해한다,고 말하고 맺는 이야기다. 

독립의 오단계,는 한 줌 남은 뇌조각에도 안드로이드를 결합하여 살아가는 미래세계에 대한 이야기다. 인간과 같은 형상을 한 안드로이드의 권리에 대한 이야기는 억압하는 엄마를 '마녀'라고 부르는 아들의 독립투쟁을 얼개로 갖는다. 


그러니까, 엄마인 나는, 실려있는 여섯개의 이야기 중에 두 개의 이야기에서, 엄마에 대한 묘사를 보고 불편해한다. 엄마는 엄마가 되면서 자아를 잃게 되고, 여성은 임신하면서 그걸 감당해야 하고, 그제서야 겨우 엄마를 이해하게 되고, 또 자식은 엄마에게 독립하기 위해 자기 자신을 죽여야 하는 이야기를 보는 거다. 상상속의 엄마들, 상상 속의 부모자식관계, 나쁜 면을 극대화한 이야기 속의 상황. 뇌가 남았다고 내가 남았다고 볼 수 있나, 생각하는-예전에 요재지이에서 못생긴 부인의 머리를 미인의 머리로 바꾸는 이야기가 그러니까, 정체성이나 자아가 뇌에 있다는 서양과 가슴에 있다는 동양의 차이- 동양인인 나는, '자아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까지 생각하는 나는, '마녀'라고 불릴 만큼 자식에 집착하는 어린 마음,이나 '자아를 잃는다'고 생각하는 그러니까 '자아'라는 게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어린 마음 들이 상상해놓은 세계를 부정하며 보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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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존감 없는 사랑에 대하여 - 더 이상 사랑에 휘둘리고 싶지 않은 여자들을 위한 자아성장의 심리학
비벌리 엔젤 지음, 김희정 옮김 / 생각속의집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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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런 사람이 아니라서, 그렇게 좋지 않았다. 

내 마음 깊은 곳에 그런 선망이 있기는 하다. 내가 그런 사람이 아니라서, 생기는 기묘한 선망이다. 

말로만 듣고 보지는 않았으나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이나 뭐 다른 언제나 이야기들에 가득 찬 여자들 말이다. 파멸에 이르는 사랑,이나 어떻게 해 볼 수 없는 그런 감정들 말이다. 지금의 나는, 그것조차 환상,이나 습관,이라고 생각하는 지경이다. 세상에, 그런 감정을 모르다니,하고 나를 불쌍히 여긴대도 뭐 어쩔 수 없는 지경이다. 그런 사랑이, 일상을 파괴하는 그런 감정을, 그런 감정만을 사랑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지 모른단 말인가!!!!

내가 이런 사람이니, 이 책 속의 묘사들이 다 그저 그랬다. 초반에 남자는, 여자는,은 그 상황을 인식하고 벗어날 필요가 있다는 의미였겠지만, 정말 그러한가,에 동의가 되지 않아서 볼 수가 없었다. 서양과 동양은 다르다고,라는 반발심도 솟구친다. '양육가설'이라는 '그건 엄마탓이 아닙니다'라는 책을 읽고 있어서, 양육과정의 어떤 방치나 혹은 학대가 그런 남자만 골라 파멸적 사랑을 하게 한다는 대목에도 하, 참, 이러면서 읽었다. 설렁설렁 넘기며 읽었다. 

아직, 사랑,이란 것에 환상이 크고, 자기 자신을 모르는 사람이라면 도움이 될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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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놈들에게 당하지 않고 살아남는 법 - 여성범죄 전담 형사가 들려주는
이회림 지음 / 청림Life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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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들면 할 수 있는 회사의 여직원회 회장이고, 회사생활 오래된 여자라고 성희롱고충상담원도 하고 있다. 성추행, 폭력과는 다르게 성희롱,에는 내가 입장이 분명해지지 않는다. 예쁘다,거나 주말에 남친이랑 좋았어?라고 묻는 것도 안 된다는데 기묘한 불균형이 있다는 생각이 드는 거다. 왜 이렇게까지 결벽적인가,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고. 나조차도 그 기준은 못 맞추겠다 싶은 순간도 있다. 가해자가 피해자를 고르기 위해 여러 상대를 찔러본다는 말을 했다가 '감수성이 떨어지는' '닫힌 태도'의 고충상담원,이라는 말도 들었다. 

뉘앙스,라는 걸 모르지는 않는데, 그 뉘앙스를 타인에게 설명하지는 못하겠다. 

여자들은 2차 오지 말라는 말이, 배려인가 장벽인가, 도 모르겠고. 혼자 살던 때처럼 내 사생활에는 신경 꺼주시죠,라는 태도도 유지할 수가 없다. 


나는, 나탈리 포트만,이 레옹을 찍고 나서 '너랑 섹스하고 싶다'는 펜레터,를 받고 '고지식하고 올드'하다는 평을 받기 위해 했다는 노력들이 '억압'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그게 사람들이 상대를 대하는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SNS에는 비키니 셀카를 올리고, 회사에서는 '예쁘네'라는 말에도 화를 내는 여성을 상상하지 못한다. 클럽에서는 처음 보는 남자와 포옹정도 하는 사람이 직장에서는 어깨에 손이 올라왔다고 흥분한다는 것도 상상하지 못한다. 다른 공간에 있어도 한 사람이니까, 그 사람의 연속성에 대해 판단하게 되는 거다. 


책은, 성희롱보다는 훨씬 센 강력범죄들에 대한 것들이다. 

나는 내가 하려던 말들이 가지는 위험을 이 책이 어떻게 피했는지 궁금했다. 대처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것은, 언제나 '피해자'의 무능을 드러내는 것일 수도 있기 때문에 조심스럽다. 읽으면서 그건 관점에 따라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심하라,는 말이니까, 경계를 늦추지 말라,는 말이니까 고깝게 듣는다면 고깝게 들릴 것이다.


그런데, 언제나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미친놈들은 어디에나 있고, 목표는 언제나 생존이다!!! 

사건이 발생하기 전에도, 그 후에도 언제나 생존이 목표다. 

자책으로 자신을 죽이지 말고, 살아남았으니 살아야 한다. 책 속에 인용된 대로 나를 죽이지 못한 것은 나를 강하게 한다,는 태도로 더 강해져서 살아남아야 한다. 


실제 상황에서 얼지 않도록, 상상하는 것도, 상대를 얕잡아 보는 것도 중요하다. 

실재보다 부풀려 겁먹지 말고, 실재보다 부풀려 걱정하지 말아야 한다. 

중요하다! 심호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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팡쓰치의 첫사랑 낙원
린이한 지음, 허유영 옮김 / 비채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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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ize.co.kr/articleView.html?no=2018071623137291971

이 글을 읽는데, 팡쓰치 생각이 났다. 

날아오르는 여성 뮤지션을 땅으로 끌어내리는 엄마라는 현실,에 대한 묘사가 팡쓰치를 떠오르게 했다. 이성과 감성, 영혼과 육체, 이상과 현실, 문명과 야만, 성과 속, 하늘과 땅, 남성과 여성, 이 모든 대립항 속에 은유가 있다. 지금의 나는, 이 대립항 사이에 우열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생존한 다음에야 누릴 수 있는 문명이고, 이상이고, 영혼이고 이성이라는 면에서 오히려 땅이, 속이, 야만이, 현실이, 육체가 감성이 중하다고도 생각한다. 

살아 남는 게 가장 중하고, 뭐든 그 다음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살아 있는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들은 이미 살아 있기 때문에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다.

목숨을 바쳐 지키려는 이상과, 가치, 사랑에 대한 말들이 있고, 가끔은 그 말들이 강력하게 작동하는 세상이라는 걸 알고 있다. 그래서, 위안부 할머니가 어머니의 무덤가에서 '왜 그 때 살아돌아와서 고맙다, 고 한 마디를 안 해줬냐'고 원망한다는 것도 알고 있다.-아이 캔 스피크,에서 그런 장면이 있다-


사랑,처럼 허명이 가득 차 있는 것이 있을까.

첫 눈에 사로잡히는 사랑,이나 자신의 모든 것을 내팽개치게 하는 무자비한 감정으로의 사랑,이 얼마나 많은 말들로 차고 넘치는가. 그런 사랑이 어딘가에 있으니, 이렇게 이야기되겠지만, 또 그런 사랑이 그렇게 특별히 살아남은 이유는 그렇게 특별하기 때문이 아닐까. 스스로가 특별하길 원한다는 건, 이야기 속에 주인공이 되길 원한다는 건 행복이나 건강한 삶과는 거리가 있다. 읽지도 않고 인용으로 아는 '안나 카레니나'의 시작처럼 말이다. 


살아남는다는 건, 허명에 휘둘리지 않아야 겨우 가능하다. 

이미 살아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변명이, 이렇게 사는 것이 사는 거라고 전시되는 삶들이 세상에 가득하다. 그 속에서 자기자신을 잃지 않고, 자기자신을 들여다보아야, 설명할 수 없는 몸의 감각을 무시하지 말아야, 겨우 살아남을 수 있다. 


팡쓰치를 억압하던 언어의 감옥을, 문학의 허명을 생각했다. 

자신의 딸에게 글을 가르치지 않던 리궈화의 태도나, 부모까지 비난하는 가운데에서 강경하게 살아남는 궈샤오치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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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롱뇽과의 전쟁
카렐 차페크 지음, 김선형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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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야, 라고 찬탄하는 글을 읽어서, 읽었다. 

읽으면서 끝까지 못 읽을 거 같았다. 

문명 제국의 우월감이 가득 찬 서사를 식민지 기억을 가지고 읽는 게 힘들었다. 

도롱뇽으로 묘사되는 존재가 서양인이 보는 동양인일 수 있다는 자각이 계속 닥쳤다. 

문명 제국의 우월감이 가득차서, 진보의 사다리를 오른다고 믿는, 자신만만한 서사를 보고 있는 것이 괴로웠다. 인간이 지구를 가득 채우거나, 지구를 멸망하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부주의한 옛 서사가 인연의 고리들이 가득 찬 나의 세계관과 충돌한다. 

자신에 비추어 상대를 상상할 수 밖에 없는 존재가, 공포로 묘사한 도롱뇽은 한심한 그저 거울상이 되었다. 자신을 통해 문명의 사다리를 올라, 자신과 같은 모습이 되어 인간의 멸종을 도모하는 도롱뇽의 존재로 닫는 소설이다. 

이미 전쟁의 기운이 가득 찬 유럽에서, 작가가 제국주의를 '비판'하고, '풍자'하고, 글을 통해 가끔은 조금 '되돌릴 마음으로' 썼겠지만, 도롱뇽을 한국인으로 바꾸어도 딱히 위화감 없는 서사에 그 시대 우리가 당했던 수난들에 대입하고 있자면 괴로운 거다. 아마도, 오래된 소설이라, 이미 이 비슷한 소설들을 내가 읽었을 수도 있다. 이념대립의 거울상이던 '빼앗긴 자들'이 주던 건조함을 제국주의 충돌의 거울상인 이 책에서도 느꼈다. 

건조한 인상이고, 인간이 이런 존재들이라는 게 싫다. 문명이란 이름으로 이런 존재들로 변하고 있다는 것이 싫다. 존재나 문명의 우월을 상대의 멸절로 되갚는 방식이라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이름으로 받아들여지는가 싶어, 또 쓸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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