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비밀 없는 스핑크스 Mystr 컬렉션 17
오스카 와일드 / 위즈덤커넥트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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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때, 영어교양수업 시간에 읽은 텍스트가 있었다. 화자는 남자였다. 줄거리는 여자의 환심을 사려는 화자가 자신의 입성을 개선해보겠다고 할아버지의 코트를 트렌디한 뭔가로 바꿨던가. 돈으로 바꿔서 트렌디한 뭔가를 장만했던가. 그런데, 알고보니 할아버지의 코트가 더 그 여자에게 어필할 수 있는 거였고, 뭔가 억울한 이 남자는 여우의 신포도를 품평하듯이 그 여자가 어리석다로 결론내리는 그런 이야기였다. 아 너무 희미한 기억이다. 그 이야기를 읽은 나는, 내가 여자였어서 그 이야기의 결론이 화자인 '남자'의 결론, 그러니까 지극히 남자 입장에서 본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그 여자가 남자의 의도를 알고도 그 남자가 싫어서 그럴 수도 있는 거니까. 그 여자가 굳이 어리석다고 할 수 있을까, 뭐 그런 태도였던 것. 그 텍스트로 같이 이야기한 동기가 그런 생각은 아예 안 해봤다고 해서, 이 놈이 남자라서 그런가. 그랬던 기억이 있다. 

비밀없는 스핑크스,도 그런 이야기다. 여자는 남자들의 이야기 속에서만 존재한다. 좋게 말하면 지나간 사랑과 추억에 대한 회한의 이야기지만, 결론은 그 여자는 '비밀없는 스핑크스였을 거야'라고 자기들끼리 단정하는 이야기. 

이 이야기를 나는 알라딘의 단편선,(이 이야기가 표제작이었다)에서 읽었다. 싱글즈가 나오는 바람에 무료 이북이던 단편선은 사라진 모양이다. 그 단편선의 많은 이야기들이 그런 이야기였다. 남성인 화자가 여성에 대해 하는 이야기. 피츠제럴드의 '분별있는 일',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덤불 속'(라쇼몽이다), 이상의 '봉별기', 호손의 '젊은 굿맨브라운'까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는 여성의 입을 빌려 말하지만, 나는 그게 여성의 말인지 의심하고, 다른 이야기들의 여성은 미지의 영역, 그러나 결국에는 '비밀없는 스핑크스'라는 결론이 되고 마는 건가, 싶은 이야기였다. 혹은 비밀없는 스핑크스,를 읽고 시작하는 바람에 그 인상이 그렇게 되어버렸는지도 모르겠다. 이야기속의 여자들에게 입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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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의 고기를 먹은 소녀 창비청소년문학 68
박정애 지음 / 창비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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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blog.aladin.co.kr/hahayo/10119362

아이의 책꽂이에 꽂아둔 책 리스트가 있다. 엄마가 권한 책, 이라는 게 독서의욕을 오히려 떨어뜨리는 모양이라, 그저 몰래 꽂아놓기만 했다. 아직도 읽었는지는 모르겠다. 

나는, 이 책이 너무 좋아서, 좋은 책에는 보탤 말이 없어서 아무 말도 쓰지는 못하고, 리스트에 짧은 코멘트만 달아 놓았었다. 다시 책 소개 페이지를 펼쳤는데, 리스트는 노출이 되지 않고, 책에는 리뷰가 하나만 달려있어서, 뭐라도 써야지 하는 마음이 되었다. 

나는, 이 책이 드라마로 만들어져서 누구든 많이 봤으면 좋겠다. 

남장여자 사극으로 그 왜 성균관 스캔들처럼 말이다. 

열네살의 소녀가 남장을 하고, 금강산을 유람한다. 다른 목적으로 동행하는 사람과 사랑하게 된다. 결국 비극이라는 것이 애석하지만,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장면은 비극 다음이다. 사랑이 이뤄져서가 아니라, 자신의 짐을 스스로 지기로 했기 때문에. 

죽은 채 태어난 자식을 끌어안고 하염없이 울던 방실 어멈과 방실 아범. 그러나 바로 그다음 날, 방실 어멈은 냇가로 이불 빨래를 나갔고 방실 아범은 장작을 팼다.
마음 속에서 맷돼지가 송곳니를 세웠다.
"삶이 고통밖에 없는 바다인데, 무엇하러 고생고생하며 그 바다를 헤엄쳐 나갈까요? 그냥 빠져 죽어 버리면 편할 텐데요."
허 의원이 실눈을 뜨고 먼 산을 바라보았다.
"용의 고기를 먹어 보지 않고 어찌 이야기로 고기 맛을 알겠느냐?"
무슨 말씀이지? 너는 알아들었니?
눈빛으로 죽서에게 물었다. 죽서도 고개를 가로저었다.- p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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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요즘에도 그래요? : 2018 숫자로 보는 한국의 성차별 대한민국 여성백서 시리즈 1
한국여성의전화 / 한국여성의전화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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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 뒤에 가려진 나는 어디 있는가. 

졸업하자마자 취업해, 남초 직장에서 이십년을 넘게 보냈다.(21.9%) 책 속의 숫자로 나는, 유리천장에 막혀 진급하지 못한 여성 과장이 된다. 대기업 여성임원 비율(0.9%)에 역으로 기여하고 있다. 아이를 셋 낳았고, 남편과 같은 직장을 다니고 있다. 같은 직급 같은 재직기간의 남자와 급여 차이는 군호봉 정도이니, 책 속의 급여차등은 없다고 볼 수 있나, 있다고 볼 수 있나. 동기들은 팀장이니, 급여를 물어봐야 하나.  

학생 때 친구의 자취방에서 지구가 내일 멸망한다면, 무얼 하고 싶은지 말한 적이 있다. 아아, 나는 아이를 낳고 싶은데,라고 말했더니, 친구는 '야,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는데, 애는 무슨 죄야'라고 말하는데, 어?! 싶었었다. 

친구들과 여성의 가사노동의 가치에 대해 말할 때는-그 때 아내가 죽고 남편이 아내의 죽음에 대해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재판이 진행되고 있어서, 한창 가사노동의 가치에 대해 논쟁이 진행 중이었다- 그럼 그냥 주부를 바꿔서 일하면 되겠네, 했던가. 따로 일자리를 구할 필요도 없고 새로 일자리를 만들 필요도 없이, 너는 우리 집 일을하고, 나는 너네 집 일을 하고 돈을 받자, 이런 거. 그런데, 그런데, 그렇게 말해놓고 보니, 마음 깊이 거부감이 드는 것이, 그러고 싶지 않았다.. 

여성의 유리천장에 대해 말할 때, 친구는 신문사에 다니는 선배언니가 그런 배치-그러니까, 있어보이는 정치나 사회면 배정이 아니라, 생활이나 연예면 배정이-가 웰컴이랬다고 했던가. 직장생활 하다보니 알겠다. 

스무 살에 좋아보이던 것이 마흔 살에도 좋아보이지 않고,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이 뒤죽박죽이 되어버렸다. 저 숫자 뒤에 나는 유리천장에 가로막힌 여성 직장인이겠지만, 지금의 나의 삶이, 내 자신에게 진지하게 묻고 한 내 자신의 대답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나는 아이를 낳고 싶었고, 돈버는 것과 상관없이 힘들기만 해도 내 살림을 하고 싶었다. 그리고, 내가 하고 싶은 데로 아이를 낳고, 살림을 한다. 내가 하는 일도, 내가 조직에 살아남는 것도 중하다고 생각해서 버티고도 있다. 후회하지도 실망하지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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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
김원영 지음 / 사계절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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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 다닐 때 아빠랑 전교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가치가 돈으로 평가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당연히 돈 더 달라고도 싸워야 한다'는 내게, 아빠는 '돈으로 교환되지 않는 가치'에 대해 설명하려고 한참을 애쓰셨다. 아무리 노력해도 쉽지 않았던 아빠는 한숨을 쉬셨던가. 

그 때의 나는 내가 합리적이라고 생각했는데, 엄마가 되고 보니 조금은 아빠를 이해할 수도 있을 거 같다. 지금의 나는 합리의 언어로는 설명하지 못하는 것들과, 돈으로 교환함으로써 무가치해지는 것들에 대해 조금은 알 수도 있을 거 같다. 아빠처럼 역시 아이에게도 아이 없는 어른에게도 설명하기 힘들어 포기하고 말지만, 알 것도 같다. 법이나 제도, 이전에 마음 속에 있는 것들,에 대해서도 역시 말하지 못하고 말 거라고, 조롱당하고 말 거라고 쉽게 꺼내지 못하는 것들에 대해 생각하는 거다. 


이 책을 읽을 때, 나는 합리의 언어로 실존의 문제, 생존의 문제를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한데,라고 생각했다. 내가 아이를 셋이나 낳은 것, 그래서 행복한 걸, 설명하지 못하는 거다. 시스템과 재판과 변론, 자체가 그래서 한심하고, 법을 다루는 사람들은 살면서 결코 만나지 않는 게 최선이다,라고 생각하는 나는, 장애를 가진 변호사가 장애를 가진 아이를 태어나게 했다고 의사를 고소한 사례를 들어 '나의 존재는 실격인가'라고 질문하는 게 가슴 아팠다. 그런 질문을 하게 만들었다는 것 자체가, 한심하다고 생각했다. 존재자체를 의심하게 하는 모든 말들을 이미 하고 있는 그 무례함에 대해 생각하는 거다. 동양에서라면 못 했을 텐데, 이제 서양의 가치와 합리가 들어와서 누군가 '네가 잠깐의 슬픔을 참으면, 부모는 돈이 생기니 할 수도 있다'고도 생각하겠지. 억만금을 준대도 할 수 없어,라던 마음이 조금씩 조금씩, 타협하는 거다. 모욕을 참기로 결심하고 다른 걸 취하기로 하는 가난한 자, 불행한 자, 장애를 가진 자,에 대해 생각한다.   

아이가 없을 때였던가, '할 수 있는 게 없다길래 임신 중 기형아 검사는 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직장선배의 말을 들었었다. 그때 속으로 지울 수도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는데, 임신을 하고 그 선택지라는 것이 얼마나 회색인지 알게 되었다. 살고 죽는 것에 선택이란 얼마나 무서운가.이미 태어난 아이가 이미 뛰고 있는 심장을 두고, 그걸 결정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얼마나 무서운가. 그렇게 유일한 선택지가 지워지고 나니, 검사할 이유가 사라졌다. 

이미 존재한다. 이유도 방법도 없다. 그 상태로 살아내야 한다. 존재의 조건들에 저울을 다는 것은 그게 무엇이든 가치가 없다. 이미 존재하니, 살아내는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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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은 진보를 상상하라 - 정체성 정치를 넘어
마크 릴라 지음, 전대호 옮김 / 필로소픽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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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몇 줄의 책 소개(https://www.sisain.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32084)로도 내용을 다 알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내가 화나서 하고 싶었던 말들이다.

내가 가졌던 불만, 단정하고 단죄하고 법에 호소하는 모든 사람들에 대한 불만이 드러난다. 양당제 미국, 종교적인 나라, 미국의 묘사가 걸리지만, 우리 나라라고 다를까 싶은 풍경들이다.


원자력발전소에 다니는 사람이랑 같이 활동은 못 하겠어,라는 말을 들었었다. 

그렇게 관대하게 굴겠다니 페미니스트가 아니라고 선언하라,는 말도 들었었다. (http://blog.aladin.co.kr/hahayo/7620022)

'핵발전소'라는 '옳은' 표현을 택하라,는 말도 들었었다. (http://blog.aladin.co.kr/hahayo/7744179)

나에게 이 말들을 한 사람들이 누구보다 진지한 생태주의자, 여성주의자, 환경운동가였기 때문에 그때 더 화가 났었다. 


정치적으로 올바른 언어들은 짜증나고(http://blog.aladin.co.kr/hahayo/10093320)-나는 한글을 다 하대하는 말이라고 하다니, 이 무슨 사대주의냐,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언어를 교정하려는 행위들은 교육수준이 다른 사람을 배제하는 식으로만 작동한다. 

명백한 불법이야,라는 말은 지나치게 수동적이라 답답하다. 


불만은 많은데 아이디어가 없어서 내가 뭘 못하겠다. 

'사명감'이나, '책임감'에 대한 말들을 비웃을까봐, 내가 택한 말 한마디 한마디를 조롱할까봐. 

내 발언의 자격에 대해 문제 삼을까봐, 당연한 걸 모르다니 한심하다고 할까봐. 


돌이켜보면, 함께 대화나눌 공통의 가치를 모두 다 때려부순 게 공동체를 비웃고, 달아나려고 했던 나였다는 생각도 든다. 그래서, 역시 또 할 말을 잘 못 찾겠다.

그리하여 과거라면 ‘나는 A라고 생각해. 그리고 그 근거는 이러이러해.‘라는 식으로 시작되었을 학급 토론이 지금은 ‘X로서 말하는데, 네가 B라고 주장하는 것 은 나를 모욕하는 거야.‘라는 형태를 띤다. 만약에 정체성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면, 이런 형태의 논쟁 전술은 완벽하게 합리적이다. 정체성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말은 공평한 대화의장은 존재하지 않음을 의미한다. 백인 남성들은 이런 인식론을 가지고, 흑인 여성들은 저런 인식론을 가진다. 그러니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그리하여 금기가 논쟁을 대체한다.-p94

관건은 대개 여러 상대적인 가치들 사이의 균형을 어떻게 잡을것인가이다. 평범한 민주 정치에서 집단들이 내세우는 주장들은 제각각 옹호될 수 있을 뿐 아니라 합의 도출에 필수적이라면 서로 견주어 균형 있게 조정될 수 있다. 반면에 의제를 법원 으로 가져간다면, 당신은 당신의 주장이 절대적인 법에 따라 옳다고 주장하기만 하면 되고 당신의 사건을 배당받은 판사들 만 설득하면 된다.
이렇게 법원에 호소하는 것은 시민권 운동 초기에 필수 전 술의 하나였지만, 그때 이후 진보주의에 대한 대중의 평판에 심각한 악영향을 끼쳐왔다. -p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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