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쉽게 믿는 자들의 민주주의
제랄드 브로네르 지음, 김수진 옮김 / 책세상 / 2021년 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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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펀게시판을 돌아다니다가 조깅이 아침조에 달릴깅이라면서, 달릴 깅,자를 한자로 써놓은 걸 봤다. 깜빡 속았다. 아침은 조깅, 밤에 달리는 건 야깅이라고 써 있는데, 남편도 아이도 눈을 동그랗게 뜨고 엄마가 저걸 진짜 믿냐는 표정으로 볼 때에야 뭔가 이상한가, 생각했다. 그렇다, 나는 정말 믿었다. 달리는 사람같아 보이는 한자모양도 믿어버렸다. 나는 얼마나 쉽게 믿는 사람인가, 놀란다. 

꽤나 오랫동안 정치인이 되는 걸 생각했다. 민주노동당을 지지했고, 스스로를 여성주의자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늘 나의 어떤 태도가 '경계'에 대해 물러선다. 부족한 자원을 어떻게 쓸 지 결정하는 정치인의 일에서, 경계를 짓는 데 실패한다. 오히려 원하는 게 너무 달라서, 사람들의 불가능한 소망을 다루지 못한다. 야, 그게 없다고 죽어?라고 반문하는 정치인이라니 가당키나 한가, 하고 늘 생각하고 있다. 그러고도 정말 못 할 일이구나 생각한 건 사람들의 의견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알게 되는 순간들 때문이다. 

나는 결혼을 했고 아이도 셋인데, 여자들이 모여서 출산 무용담을 말할 때 말하지 말라는 말을 들었다. 출산 무용담, 양육에 대한 애로, 남편에 대한 불만, 무엇 하나 말할 수가 없다. 재미있다는 이야기는 좀 더 과장되는 것들이라서 여론은 고통스러운 출산과 악마같은 아이, 아이와 다를 바 없는 남편에 대한 것들이다. 

세상에 많은 이야기들이 그러하듯이, 평범한 이야기는 흘러가버리고 과장된 이야기들이 회자된다. 그런 이야기들은 또 세상을 바라보는 왜곡된 렌즈가 되어, 살아가기보다 구경하는 많은 젊은이들의 눈을 가린다. 조직은 멍청하고 음흉하고, 부도덕하고, 권력기관은 권력을 부당하게 행사할 뿐이다. 지나치게 늘어나는 정보는 생각하기 귀찮은 사람들을 상대로 이상한 이야기들을 퍼뜨리고, 어리석은 판단들이 이뤄진다. 믿음을 가진 열성적인 사람들이 음모론이 대세인 인터넷 세상을 만들고, 생각하는 게 귀찮은 사람들은 '뭐라도 있으니까 저러는 게 아니야?'라고 생각하면서 판단을 유보한다. 그 와중에 '유사역사학'이, '전자렌지 유해성'이 퍼져나간다. 전문가의 말들이 힘을 잃고, 유의미한 해결책이 유보되고, 편리한 신기술이 유보된다. 기술 도입에 비전문가를 포함한 위원회의 결정을 따른다던지, 통계적으로 의미없는 차이에 이념의 프레임으로 접근한다던지. 프랑스의 이야기인데도 우리나라의 사례를 열거할 수 있을 거 같다. 원자력발전소에 다니고 있어서 더 새삼스러운 이야기가 아니다. 

저자의 해결책을 한 번 더 읽었다. 인터넷 말고 만나서 말하는 공간,들에 대해 말한다. 편향된 의견이 더 편향되는 의지를 가지고 모이는 모임말고, 모르는 채로 다른 채로도 마주 앉아 이야기하는 공간의 확장을 말한다. 프랑스에도 이미 사라졌다는 협회나 학회, 교사모임 같은 것들을 이야기한다. 인지마케팅기법으로 대화하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전문가집단에게도 말한다. 너무 말같지도 않아서 대꾸하지 않았다가 지분을 잃어버리는 전문가집단,에게 인간의 한계에 대해서 인지한 다음 좀 더 효과적인 소통방식을 궁리하도록 요구한다. 원자력발전소에 대해 말하다가 나가 떨어진 적이 있어서(https://blog.aladin.co.kr/hahayo/7744179 , https://blog.aladin.co.kr/hahayo/9663603 https://blog.aladin.co.kr/hahayo/9459044 https://blog.aladin.co.kr/hahayo/11733638  )책의 말들이 더 많이 와닿았다. 

너무 재미있게 읽고, 이북으로 읽은 게 아쉬워서 책으로도 샀다. 

첫째, 우리의 사고방식은 차원적으로 한계를 지닌다. 왜냐하면 우리의 의식은 제한된 공간과 영원한 현재 안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둘째, 문화적으로도 한계를 지닌다. 우리의 사고방식은 앞서 일어난 표상에 따라 모든 정보를 해석하기 때문이다. 셋째, 인지적으로도 바닥짐의 부담을 지고 있다. 우리의 정보처리능력은 무한하지 않으며, 어떤 문제의 복잡성은 우리의 상식적 잠재력을 능가하기 때문이다.
이 세 가지 한계는 아마도 극복할 수 없을 것이다. -이북이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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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가방 2021-06-26 12: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대화가 필요한데.. 대화 하는 법을 아무데서도 가르쳐주지 않으니....

별족 2021-06-28 05:15   좋아요 1 | URL
가르친다, 거나 배운다, 는 게 교실에만 있는 게 아니고, 대화라는 게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반응하는 거라서, 대화는 사람마다 다를 수밖에 없어서 저는 사실, 가르쳐 줄 수 없을 거 같아요. 자기 자신을 계속 보면서, 상대를 또 보면서 그렇게 혼자서 깨우쳐나가야 하는 거라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