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래는 중 3 아이들 연합고사 본 다음 아이들이 무한정의 수다에 빠져있는 교실의 한 켠에서 짬짬이 이시다 유스케의 "가보기 전엔 죽지 마라"를 읽었다. 이시다 유스케의 글은 그야말로 뚝뚝 조금씩 시간이 주어지는 학교 생활에 적당한 책이지 않았나 싶다. 거의 2주 가까이 읽은 책이다. -.- 그러다보니 여정을 잘 따라가지 못 할 때도 있어지만 나름대로 괜찮은 책이었다. 남미의 티칼을 꼭 가봐야겠다는 소망이 생겼다는 것이 작은 수확이다. ^^;;
그다음 겨울 방학 내내 문집을 갖고 끙끙 대다가 무조건 손 가는 대로 잡은 것이 김중미의 "거대한 뿌리"이다. 우리 사회의 그늘진 부분인 혼혈인에 대해 구체적으로 그려놓았다. 이성적으로는 모두 평등한 사람이라는 생각 이면에 강하게 똬리를 틀고 있는 혼혈인에 대한 이질적인 생각들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기회가 되었다. 김중미라는 작가가 동두천에서 성장했다는 것도 관심이 많이 갔다. 처음에 의정부에 발령을 받고, 아무렇지도 않게 버스를 타고 그 수많은 미군 부대를 지나쳤던 나의 무심함이 떠오르기도 했다. 그리고 효순이 미선이가 죽었을 때도 무덤덤했던 나의 일상들... 일상은 그래서 무서운가 보다. 이렇게 잘도 잊혀지니...
2월 개학을 하고도 여전히 수다에 빠져있는 곧 고등학생이 될 나의 제자들... 그런 가운데 그동안 책 표지와 제목에 이끌려 한 번은 읽고 싶었던 강미의 "길 위의 책"을 잡는다. 아이들이 떠드는 통에 정신이 없어 읽을 때 약간 힘들기도 했지만 나리와 필남의 은근하면서도 두터운 우정, 집안 환경으로 인한 내면의 갈등, 책과 독서 동아리를 통한 인물들의 내적 성숙 등이 잘 나타나 있었다. 내가 고등학교 시절에 이 책을 만났다면 좀더 도움을 많이 받지 않았을까 싶다. 여고생들의 내면 묘사가 세세한 부분까지 잘 되어 있다. 입시로 얼룩진 우리의 고등학교 현장에서 이런 토론이 가능할까 싶기도 하고, 이런 수업을 하고 있을 지도 모르는 작가가 한없이 부러워지는 그런 책이었다. 근데 왜 정작 할 일 없는 아이들한테 같이 책을 읽자고 말 하지도 못한 건지... 이럴 때 보면 참 소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들의 이유 없는 야유와 반대에 맞서 나갈 수 있는 좀더 용기있는 교사가 되어야 하는데... 오랜 과제일 뿐이다. 그런 자책이 들 때면 내 안으로 침잠할 뿐이다. 이것도 병인가?
그리고 2월의 마지막 한숨을 돌릴 수 있는 이 순간, 3월의 정신없는 시간 앞에 잠깐 주어지는 이 시간에 발레리 제나티의 "가자에 띄운 편지"를 읽는다. 아직 첫 부분이지만 3월이 시작되기 전에 다 읽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든다. 같은 느낌일지는 모르겠지만, 예전에 통일 관련 드라마였는데 남한의 예쁜 소녀가 하얀 원피스를 입고 휴전선을 넘어 비무장지대(아마 상상 속의 공간이겠지만...)에서 북한의 소년(멜빵 반바지를 입었던 듯...)과 즐거운 한 때를 보내고 서로 헤어지는 그 내용이 생각이 났다. 중학생 때 쯤에 본 것 같은데 그 당시 북한에 대한 막연한 불안함, 적대감을 갖고 있었을 텐데도 그 드라마를 통해 막연하게나마 북한을 다시 생각해보게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참 영상이 아름다웠다.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 큰 문제이겠지만... 가자에 띄운 편지는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모습을 좀더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 싶다.
이렇게 청소년 소설 위주로만 손이 가니 좀 불안하기도 하다. 근데 이상하게 자꾸 마음이 이쪽으로 가고, 읽다보면 편안해진다. 이를 어쩌리!!! 그냥 읽을 수밖에. ㅋㅋㅋ
새로 만나는 아이들하고는 몇 명이라도 같이 독서 모임을 가져보고 싶은데... 시작이 반이라고 했으니 이번에 읽은 이 책을 빌려주면서 몇 명 마음을 좀 떠봐야할 것 같다. 좀 의욕적으로 살았으면 좋겠다. 걱정은 그만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