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책들을 가까이하기 위해 폐지 압축공이 될 생각을 하고 있었으니까.” 책을 사랑하면 할 수 있을 일을 떠올렸을 때, 책의 최후를 지켜보는 현장 속 사람은 생각해 보지 못했었다. 소설 <너무 시끄러운 고독>의 주인공 한탸는 쏟아지는 폐지를 압축하는 일을 한다. 하지만 그의 진짜 일은 '책을 구해내는' 것이다. 한탸는 삼십 오 년 동안 지하실 폐지 압축기 앞에 서서, 머리 위 커다란 구멍으로 트럭이 쏟아 놓는 폐지를 기다린다. 온갖 종이들과 함께 온전한 책들도 함께 내려오곤 한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프로이센 왕실의 책이, 전쟁 후에는 나치관련 서적이, 문학과 철학, 복제화들도 쏟아진다. 한탸는 쉴러, 탈무드, 헤겔, 니체, 칸트의 책을 찾아내, 한 줄씩 읽어 나간다.
“나는 근사한 문장을 통째로 쪼아 사탕처럼 빨아먹고, 작은 잔에 든 리큐어처럼 홀짝대며 음미한다. 사상이 내 안에 알코올처럼 녹아들 때까지 문장은 천천히 스며들어 나의 뇌와 심장을 적실 뿐 아니라 혈관 깊숙이 모세혈관까지 비집고 들어온다.”
한탸는 어두운 지하의 쓰레기 더미에서 가치 있는 책을 찾는다. 글을 읽으며, 그는 미지의 세상과 아름다움에 눈을 뜨고 낙담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게 된다. 한탸가 만들어 낸 폐지 꾸러미는 특별하다. 압축한 꾸러미는 브뤼헐, 고갱, 반 고흐의 복제화로 둘러싸여 한껏 화려한 겉모습을 뽐내며 트럭에 실려간다. 한탸는 폐지 꾸러미를 매일 새롭게 만들기 위해 때론 철학책을 펼쳐서 꾸러미 사이에 넣기도 하고 색종이도 뿌린다. 뜻하지 않게 지하실 생쥐도 함께 찍혀나가기도 하지만.
책을 손으로 느껴보기 위해서 장갑은 한 번도 끼지 않고 일을 해온 한탸. 폐지 더미 속에서 희귀한 서적을 발견했을 때 한탸는 책을 즉시 집어 들지 않고 플란넬 헝겊으로 압축기의 굴대를 닦은 후 손 힘을 다스린 후 책을 펼친다. 소중하게 건져낸 책들은 퇴근 후 그의 집에 모셔진다.
어느 날, 마을에 회전식 기중기로 된 부브니 대형 압축기계가 들어온다. 한탸는 부브니 기계 앞에서 오렌지색 장갑을 낀 사회주의 노동당원들이 획일적으로 일하는 모습을 보고 경악을 한다. 그는 이제 수작업으로 폐지 더미 속에서 가치 있는 책을 집어낼 시간조차 허락되지 않는 새로운 시대가 시작됨을 깨닫는다. 폐지를 직접 손으로 만지며 느꼈던 감각적인 매력은 곧 사라질 것이니.
한탸는 담당 소장으로부터 이제부터 마당에서 비질하든지, 다른 인쇄소 지하실에서 백지를 꾸리라는 말을 듣게 된다. 그는 “더럽고 냄새나는 폐지 더미 속에서 선물과도 같은 멋진 책 한 권을 찾아내는지 모른다는 희망으로 매 순간을 살아온 내가, 이제 비인간적인 백색 꾸러미들을 만들어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되다니”라고 한탄하며 자신의 일터를 떠나기를 거부한다.
제2차 세계대전 후, 공산주의 체제의 감시 아래에 들어선 체코. 작가 브라밀 흐라발의 작품은 금서가 된다. <너무 시끄러운 고독>은 1977년에 지하로 유통되었다가 1989년이 되어서야 출간되었다. 나치의 지배하에 학업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던 흐라발은 철도원, 제강소 노동자, 단역 연극배우, 보험사 직원, 그리고 <너무 시끄러운 고독>의 주인공인 한탸처럼 폐지 압축공으로 일을 하며 글을 썼다. 흐라발은 체코의 암울한 시대를 대변하는 말로 “하늘은 인간적이지 않다”라는 문장을 이 소설에서 여러 번 반복하고 있다.
지하에서 폐지 압축공으로 삼십오 년 동안 일하면서 한탸는 자신의 임무에 의미를 두려고 했던 인물이다. 폐지 꾸러미를 자신만의 예술품으로 만들려 했고 문학과 철학을 읽으며 끊임없이 ‘사고하는’ 인간이고자 했다. <너무 시끄러운 고독>은 나치와 공산주의 체제 아래 하루하루 버티며 살아갔던 한 노동자의 삶을 130여 페이지에 압축해 놓았다. 자칫했으면 어두웠을 서사를 흐라발은 기발한 유머와 담담한 시선으로 시대의 어두움을, 실패를, 죽음까지도 초월할 여지를 곳곳에 던져 놓았다. 책과 함께 숭고한 죽음을 택한 한탸. 눈을 감는 마지막 순간에 아우슈비츠에서 소각되었을 줄만 알았던 집시 여인이 나타난다. 선명하게 새겨진 그녀의 이름. 한탸가 그 이름에 손을 내밀려고 하는 장면에서 독자들의 마음은 오래 머무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