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를 믿지 못하겠으면 그것을 버리면 돼. 그리고 미래를위하여, 미래라는 공간의 아직 알 수 없는 국민을 위해서 일하는거야. 그러나 그 국민은 민족의 구별 없이 전 인류로 구성될 거야.그렇지 않아도 러시아라는 국가 형태는 언젠가는 사멸할 것이거든, 국가라는 것은 아무리 복받았다 하더라도 겨우 1천 5백년, 길어야 2천 년 정도밖에는 지속할 수 없는 거야. 

2천 년이나 2백 년이나 긴 눈으로 보면 마찬가지가 아닐까? 로마 인들도 역동적인 생명력을 발휘한 것은 고작 1천 5백 년 정도밖에는 안 되에서 자신 앞에었고, 나중에는 역시 하나의 도구적 역할만 담당하게 되어 버리고 말았어. 그들이 없어진 지는 오래 되었지만, 그들은 하나의 신념을 남겼지. 그리고 그것은 하나의 주요한 요소가 되어 미래의인류 운명 속으로 들어갔어. 인간에게 할 일이 없다고 어떻게 말할 수 있는 거지? 언젠가 할 일이 없게 되는 그런 상태를 나는 상상도 할 수 없어. 인류를 위해서 한번 일해 보는 거야. 그리고 그외의 일에 대해서는 마음을 쓰지 말아야지. 주의해서 주위를 돌아다보면 평생 해도 못할 만큼 일은 많이 있어. - P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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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 그 사람이 내 생각을 전혀 하지 않고 하루를 보내는 건 아닐까 자문해보기도 했다. 나는 존재하지도 않는다는 듯이 태연히 잠자리에서 일어나 커피를 마시고 이야기하고 웃는 그 사람의 모습이 눈앞에 보이는 듯했다. 

한시도 그 사람에 대한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나와의 차이 때문에 너무나 불안해졌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 아니다. 그 사람도 분명히 아침부터 저녁까지 내 생각만 하는 자신의 모습에 깜짝 놀랄 것이다.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내 태도가 옳은 건지 그 사람이 옳은 건지 굳이 가려낼 필요는 없다.그저 그 사람보다 내가 더 운이 좋다고 생각하면 그만이었다. - P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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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화가들이 시민들의 환영을 받은 것과 달리 고야는 시민들의환영을 받을 수 없었다. 프랑스에서는 화가들이 혁명의 기억을 그림에담고 그 성과를 변호하도록 하였는데, 이는 화가들에게 요구된 새로운시민계급적 기능이었다. 그러나 스페인에서는 독립전쟁에서 싸워 살아남은 민중계층이 전쟁 후 부르봉왕조의 노예로 전락했기에 고야를 비롯한 화가들은 프랑스에서처럼 새로운 사회적 기능을 담당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야는 민중으로부터 단결이라는 새로운 연대의 삶을 발견하여 그림을 그렸다는 점에서 위대하다. 고야는 프랑스 혁명에 의해서도 해방되지 못한 민중의 저항과 고통을 그렸다. 이는 다비드를 비롯한 프랑스 혁명의 공식화가들, 특히 다비드가 혁명화를 완전히 보수적인 역사화의 기법으로 그린 점과 지극히 대조적이다. - P291

 
내용 면에서도 <5월2일>은 혁명이다.  시민에 의한 항의 행동을 그린 최초의 그림으로, 고야 이후로 이 주제는 프랑스에서 필수 불가결하고 일반적인 것이 된다. 이로 인해 19세기 프랑스의 불안한 정치사와 동시대 역사를 기록하고자 하는 새로운 연대기로서 ‘항의적 회화‘를 정착시켰다. 우리나라에서 서양화 역사는 매우 짧다. 우리의 서양화 역사에서도 그러한 근대적 경험이 있었더라면 20세기 초엽부터 파리의 유행을정신없이 모방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프랑스에서는 1830년, 들라크루아가 고야를 본받아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을, 1867년에는 마네가 〈황제 맥시밀리안의 처형을 그린다. 또한 도미에(Honore Daumier, 1808~1879)와 쿠르베(Gustave Courbet,1819~1877)가 민중의 봉기를 그린 것도 고야로부터 출발했다.

- P293

나는 고야가 왕과 왕비를 비롯한 왕족뿐만 아니라 자신이 그린 사람들 모두를 샅샅이 알고 그린 것만 같다. 여기서 ‘리얼리즘에 대해서 설명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고야의 그림을 볼 때면 바로 이게 리얼리즘이다‘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고야에게서 느껴지는 살 냄새나 땀 내음을 그 어떤 화가에게서도 맡지 못했기 때문이다. 미술사에서 ‘리얼리즘의 선구‘라고 평가되는 벨라스케스나 ‘리얼리즘의 완성자‘라고 하는 쿠르베에게서조차도 말이다. 나는 벨라스케스에게서 그저 신비로운 창백함만이 보이고 쿠르베에게서는 굳어진 살덩이만이 보일 뿐이다 - P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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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야에 대해 굳이 ‘무슨 주의자‘라고 말해야 한다면 그건 ‘허무주의 ‘일것이다. 그것도 사회, 정치, 문화가 쓰고 있는 가면을 벗기는 황폐한 니힐리즘(nihilism)이다. 그는 인간을 부정적으로 보고 인간의 내면에 숨은 비이성적이고 잔혹한 부분을 낱낱이 까발린다. 흔히들 그를 ‘풍자가‘라고한다. 하지만 그것은 껍질에 불과하다. 그 풍자의 바닥에 있는 것은 코믹이나 유머가 아니다. 그의 그림을 보면 나는 경외와 공포의 감정을 느낀다. 특히 고야가 만년에 그린 연작 <검은 그림>은 그 극단을 보여준다.
- P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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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에 이미 투르게네프 (Ivan Sergeevich Turgenev, 1818~1883)가 햄릿적인간과 돈키호테적 인간을 인간상의 가장 전형적인 것으로 비교한 이래, 그리고 도스토옙스키(Fyodor Mikhailovich Dostoevskii, 1821~1881)가 돈키호테를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하고 슬픈 작품‘으로 극찬한 이래 수많은 작가들의 찬양을 받으면서 끝없이 재해석되었다. 나는 세르반테스적 방법의 유머와 아이러니를 가장 잘 이해하고 체현한 작가로 체코 출신의 쿤데라(Milan Kundera, 1929~)를 꼽고 싶다.
사실 돈키호테의 황당한 모험담이란 작품 속에서 아무런 의미가 없다. 예컨대 돈키호테가 풍차를 향해 달려가는 장면은 소설 전체에서 보면 없어도 무방하다. 왜냐하면 이 작품은 모험소설이 아니라 기지와 반어로 가득 찬 ‘대화의 책‘이기 때문이다.
- P67

20세기 최고의 철학자라고 할 수 있는 오르테가 (Jose Ortega y Gasset,1883~1955)는 스페인의 모든 문제는 세르반테스적 방법에 의해 해결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스페인 사람들의 국민적 병폐라고 할 수 있는편협성이나 관념성을 비판하며 이성을 통한 관용과 지적 성실을 희구하는 인간적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마치 루쉰(1881~1936)이 아큐정전을 통하여 이를 역설하였듯. - P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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