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은자신의 광기와 접촉하는 한 방식이다. 그리고 손택은 사회적 차별의 대상이며 그에 대항하기 위해 글쓰기를 ‘무기‘로 동원해야 한다고 느끼게 한 성격의 일부, 다시 말해 자신의 ‘어두운 면‘과 조우하게 만든 예술의 영역을 포함하는 논란 속으로 자신을 밀어넣었다. 

이를테면 그는 미국의 엄격한 검열에도전하고 때로는 검열을 받아야 하는 현대 언더그라운드 영화에 관한 글쓰기가 불법적으로 이런 감정에 숨통을 틔워줄기회를 제공하고 생각했다.  - P151


예술작품을 ‘의미‘로 환원시킬 때, 비평은 그것을 길들이며, 말 잘 듣고 통제 가능한 상품으로 만들며, 그것에서 마음을 뒤흔드는 능력을 빼앗아가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해석은 개인의 정서적 경험을 더럽히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오늘날은 그런 시대, 대부분의 해석 작업이 반동적이고 사람들의숨통을 막아버리는 시대다. 도시의 공기를 더럽히는 자동차와중공업 공장이 내뿜는 매연처럼, 예술 해석의 분출도 우리의감수성을 해친다." - P168

손택은 아방가르드 미학이 예술적·정치적 진보를 촉진하리라는 것을 더는 굳게 믿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이제 손택의 관심은 문화를 혁명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의식을 탈바꿈시키는 것이다.

 손택은 더는 아방가르드의 선봉에 서지않으며, 대신 모더니즘의 영속적인 정신적 혁명에 질문을 던지고, 그것이 예술과 삶에 있어서 어떤 도덕적 함축을 갖는지묻는다.

이 탐구는 루마니아 출신 프랑스 철학자 에밀 시오랑에 관한 에세이에서 가장 명료하게 표현된다. 손택이 보기에 시오랑의 철학은 영속적인 파멸의 시대에 정신은 어떻게 살아 남을 수 있는가라는 긴급한 질문에 대한 해답을 담고 있었다. - P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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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등에 벚나무가 자라는 흑인 노예 세서가 있다. 농장주들에게 수많은 매질을 당해 등이 “붉고 넓게 쫙 벌어져 수액이 가득하고, 나뭇가지가 갈라지는 곳”이 되었다. 성하지 않은 몸을 굽혀 나무 덤불 속을 기면서 세서는 탈출 중이다. 뱃속에 아이와 함께. 먼저 보낸 아이 셋과 노예제에서 풀려난 시어머니인 베이비 석스가 사는 124번지를 향해.

 

도망가는 도중에 아기를 낳고 가까스로 124번지에 도착한 세서. 아이들과 재회한지 한 달 만에 자신을 뒤쫓는 노예 사냥꾼들에게 발각이 된다. 세서는 자신의 딸이 그들에게 빼앗겨 노예농장으로 보내질 바엔 차라리 죽는게 낫다고 생각한다. 세서는 두 살 난 딸, 빌러비드를 자신의 손으로 죽인다. 124번지에는 베이비 석스, 세서 그리고 갓 태어난 덴버, 3대가 남는다. 죽은 원혼들이 나타나곤 하는 124번지에 어느 날, 세서와 노예 농장에서 함께 일했던 폴 디와 죽은 딸, 빌러비드의 혼이 방문한다.

 

미국의 흑인여성 작가 토니 모리슨이 쓴 <빌러비드>는 미국 노예제의 시대인 1800년대를 배경으로 한 작품이다. 소설은 일부 노예제가 폐지된 1874년 시점에서 등장인물들이 과거로 플래시백하는 구성으로 되어 있다. 흑인 노예들이 겪었던 참혹한 상황을 폴디의 경험담과 빌러비드에게 자신이 죽은 이유를 설명하면서 과거의 기억이 현재로 소환된다.

 

노예제를 주제로 한다면 핍박받고 상처 입은 인물들 이야기로 주를 이를 법도 한데, 작가는 3대에 걸친 흑인 여성을 주체적 인물로 그린다. 시어머니인 베이비 석스는 “멋대로 써먹다가 밧줄로 묶고 사슬에 채우고 자르고 빈손으로 버릴” 자신의 몸을 사랑하라고 연설을 하고, 세서는 노예 도망법에 저항하듯, 백인들의 손에 들어가 노예로 살아갈 바엔 차라리 자신의 딸, 빌러비드가 자신의 손에 죽는 것이 낫다며 딸을 죽인다. 자식의 목숨을 살해로 선택한 ‘자유’의 대가로 세서는 빌러비드의 원혼과 한바탕 한풀이를 겪어낸다.

 

소설을 들어가며, 작가는 노예제의 비참한 역사를 잊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육천만 명 사람들에게 이 책을 바친다고 썼다. 흑인노예제를 겪지 않았던 한국의 독자들에게도 이 책은 얼만큼의 호소력이 있을까. 식민시기와 국가 폭력을 경험한 역사를 거쳐 왔기에 어떤 독자들은 이 소설을 읽으면서 위안부할머니들, 제주 4.3 희생자들, 광주 5.18 등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토니 모리슨은 노예제 당시의 상황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재현하며, 마주하고 싶지 않은 역사는 눈을 감는다고 해서 사라지지 않고 여전히 우리 곁에 기억해야 할 일로 남아 있다고 말한다. 비이성적인 폭력에 의해 이유조차 알지 못하게 채 억울하게 죽어갔던 원혼이 당신의 문을 두드린다면, 우리는 그들을 어떻게 달래줄 수 있을까. 소설은 124번지 뒤에 흐르는 시내 근처에서 빌러비드의 발자국이 나타났다 사라졌다를 반복하고 있다며 끝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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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22-06-18 21: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토리 모리슨의 장편은 안 읽어 봤어요. 단편만 학교에서 읽었는데 그리 혹 하진 않더라구요. 좀 난해하다는 느낌이 들어서 그런 것 같아요. 장편은 좀 다를까요?? ㅎㅎㅎ

청공 2022-06-20 02:41   좋아요 1 | URL
오.단편도 읽기가 쉽진 않았군요. 빌러비드도 처음 100쪽 정도까지 상황 파악하기에 완전 집중모드를 켰네요. 요책을 책모임에서 읽었는데요.어렵다는 분들도, 마음 아프다는 분들도, 슬프지만 묘사가 생생해 아름답다는 분들 등등...인물 중심으로 역사이야기랑 신비아파트까지 많은 이야기를 나눴어요~원서를 부분부분 읽어보았는데요. 문장이 생각보다 간결해서 의외다 싶었어요. 구성때문에 책이 어렵게 느껴졌던 건 아닐까 해요^^

scott 2022-06-21 23: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청공님 토니 모리슨의 <재즈> 추천합니다!

이분의 작품은 흑인의 소울이 담긴 언어인데
번역으로 잘 살려내지 못한 것 같습니다 ^^

청공 2022-06-22 21:39   좋아요 0 | URL
네~^^토니 모리슨 다음 책으로 재즈 읽어보고 싶네요. 한때 재즈 피아노 배우느라 스윙 리듬을, 흑인 소울을 몸으로 탔던 때가 있었네요ㅎㅎ온 몸으로 연주했던 재즈 뮤지션들...그립네요.
 

와락


반 평도 채 못되는 네 살갗
차라리 빨려들고만 싶던
막막한 나락

영혼에 푸른 불꽃을 불어넣던
불후의 입술
천번을 내리치던 이 생의 벼락

헐거워지는 너의 팔 안에서
너로 가득 찬 나는 텅 빈,

허공을 키질하는
바야흐로 바람 한자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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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판 신문에 실린 ‘박홍규의 이단아 읽기‘를 3년 가까이 챙겨 읽었었다.올해 초 독립운동가 현계옥을 마지막으로 연재가 끝나 아쉬웠는데, 이단아 57인이 책으로 나왔다.루이즈 미셸부터 나오미 클라인까지, 고야의 그림부터 히치카스의 힙합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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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22-05-25 16: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을 장바구니에 담게 만드시는데...전자책이 아니야요,,ㅠㅠ 전자책 출간 알림 일단 했습니다.^^

청공 2022-05-26 07:09   좋아요 0 | URL
그니까요.아직 전자책은 아니야요 ㅠ
이번에 책으로 나오면서 약간의 편집도 있을 것 같은데요, ‘박홍규의 이단아 읽기‘ 검색하셔서 칼럼 한 번 읽어보세요. 박홍규선생의 목소리가 뚜렷하게 들리실 겁니당^^

scott 2022-05-30 1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출간 간절하게 기다렸는데

아쉬움도 큽니다
글의 분량이
싹 뚝 ㅎㅎ

청공 2022-05-31 02:29   좋아요 1 | URL
이런~싹뚝까지인가요?ㅠ 박홍규 선생 일상이야기가 자주 들어가서 에세이적인 칼럼도 있었거든요.책으로 출판되면 어느 정도 편집이 있으리라 예상은 했지만요ㅜ 오늘 택배 도착하니 비교대조~해봐야겠네요. 스콧님 실망이 크셨나봅니다ㅠ

청공 2022-06-01 21:08   좋아요 1 | URL
스콧님~^^
요책하고 기존 칼럼하고 비교해 보니 거의 그대로 실려있는 듯해요. 한 5편정도 찾아서 대조해 보았어요.(토니 모리슨, 루이즈 미셸,히치카스, 무히카,뱅크시)
용어와 칼럼 쓰일당시 연도에 따른 수정이 눈에 보이네요.(예를들어 처녀작ㅡ>첫 작품, 지난해ㅡ>2019년)

전체 비교를 해보면 뭔가 더 다른점이 있을지도요^^
칼럼과 달리 사진자료가 책에 없다는게 젤 큰 아쉬움입니다.
 








프랑스 사회학자이자 언론인인 디디에 에리봉은 아버지의 부음을 듣고 고향인 랭스를 30년 만에 방문한다. 랭스는 그에게 노동계급의 인장을 찍어줬고, 자신의 성소수자 정체성을 드러내기를 수치스럽게 만들었던 곳이었다. 아버지의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았던 에리봉. 그는 공장노동자였던 아버지와 대화를 나눈 적이 없고, 심지어 아버지가 그럴 능력이 없다고 고백한다. 공식적인 석상에서는 지적, 정치적으로 사회 세계의 위계질서에 맞서 싸워야 한다고 말해 왔지만, 정작 그 자신은 노동계급에 속한 자기 가족을 부끄럽게 여겼다.

 

“나는 왜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할까? 부르주아 세계와 프티부르주아 세계에 발을 좀 담가보았다고 해서 이렇게 가족을 버리고 그들을 부끄럽게 여겨도 되는 것일까? 지적, 정치적으로 사회세계의 위계질서에 맞서 싸워야 한다고 주장하는 내가 왜 그 질서를 체화하고 있는 것일까? 나는 분열되어 편치 않았다.” (80쪽) 부유층과 고위직 인사들이 사회운동, 파업, 시위 등에 대해 적대감을 표출할 때 에리봉은 그들에게 증오심을 느꼈다. 동시에 그는 자신이 노동 계급 출신이었다는 사실을 거부했다.

 

우파 소속의 후보자들에게 투표를 가족들을 보며, 에리봉은 프랑스 좌파가 어떻게 변질되었는지 또 왜 노동계급이 우파에 표심을 던지는지 추적한다. 신보수주의 지식인들 영향 아래에서 놓인 좌파는 지배계급에 대한 착취와 저항보다는 ‘개인적 책임’을 더 부각시키기 시작했다. 사회보장 제도가 약해져 노동계층은 부당하게 취급 받게 되고 자신들을 대표하는 이들에게 조차 무시를 당했다. 


프랑스 노동계급층이 극우 정당을 지지하는 또 다른 이유는 인종주의에 있었다. 에리봉의 부모님이 살던 동네에 새로운 이주민들이 들어오면서 노동자들은 자신의 생활터를 잃어갔다. 이주민들을 향한 반감은 커졌다.

 

“부모님은 이렇게 한때 자신들에게 속했으나 이제는 박탈당하고 있다고 느끼는 세계에 갑작스레 침입한, 그들(이주자)에게 엄청난 위협으로 자각되는 것을 피해 달아났다. 어머니는 이 새로운 이주자들에게 딸린 아이들의 행렬에 대해 불평을 늘어놓기 시작했다.”(163쪽)

 

한때 공산당이 지배적이었던 노동계 층에게서 민족주의적 원리가 작용한 셈이다. 에리봉은 좌파가 마르크스로 돌아가자고 계급투쟁을 내세우기보다는, 민중 계급이 때로는 자신들을 좌파에, 때로는 우파에도 위치시키는 현상을 받아들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민중에게 정치 담론이 형성 가능한 정당이 필요함을 강조한다. 스스로 말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정당을 통해 의견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랭스로 되돌아가다>는 1950년대 랭스를 생생하게 재연하면서 에리봉의 솔직한 고백이 담긴 자전적인 글이다. 개인적인 에세이보다는 가족의 이야기를 확대해 프랑스 노동계급의 보수화와 좌파의 변질을 탐구하고 있기에 사회비평서에 가깝다. 에리봉은 자기 연민에 빠지지 않고 자신과 거리두기를 하며, 계급 정체성과 성 정체성을 문학 작품과 사회과학 이론을 적용하여 풀어낸다.


“우리는 판결이 이미 내려진 세계에 도착한다.”(250쪽) 

에리봉은 이 책에서 커다란 변화를 시도하려는 메시지보다는, 운명론을 받아들이며 자신을 ‘재발명’하려는 성찰적 글쓰기를 보여준다. 사회적 편견과 거부감, 수치심을 느꼈던 과거와 대면하는 디디에 에리봉을 모델 삼아, 독자들도 과거의 어떤 순간을 떠올리며 살아온 시간을 재해석하고 싶은 욕구가 생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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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5-18 23: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5-19 01:10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