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는 너무 진지하게 생각한다.
그것이 세상의 원죄다.
만약 동굴 속에 살던 원시인들이 웃을 줄 알았더라면,
역사는 다른 길을 걸었을 것이다.
_오스카 와일드 - P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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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로운 사람이 당하는 고통은 불의한 사람이 누리는 행복만큼 이해할 수없는 문제이다. 인간은 질문한다. 이성이 대답할 수 없기 때문에 이 질문은 이성 너머, 신에게로 향한다. 신의 대답은 그러나 언제나 흡족하지 않다. 그 대답을 듣는 인간이 이성 너머를 사유할 수 없기 때문이고, 그 대답이 이성 너머를 사유할 수 없는 인간을 통해 전달되기 때문이다.  - P214

저 사람의 불행이 누구 죄 때문입니까, 하고 묻는 제자들은 죄 없이 고통당할 리 없다고 욥을 비난하고 고발했던 자들과 그 생각의 뿌리가 같다고 할 수 있을 거예요. 

예수님은 다르게 말씀하셨어요. 누구의 죄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려는 것이라고, 뿌린 대로 거두는 것이 자연의 이치지만, 거두는 것이 그저 뿌린 것만은 아니라는 것도 진리예요. 

병들었다고 불행한 것도 아니지만 불행하다고 마냥 나쁜 것만도 아니에요. 이 세상이 우리가 바라는 전부는 아니니까요. 그러니까 여보, 하나님을 원망하지 마요. 우리의의로움을 주장하기 위해 하나님을 불의하다고 하지 마요.나는 아프지만 불행하지 않고 나쁘지도 않아요. - P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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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삶에는 여러 측면이 존재하는데, 이는 오직 시의 기법을 통해서만 충실하게 재현할 수 있다. 하지만 바로 여기서 영화 연출자는 아주 빈번하게 시적 논리를 기술적 방법의 투박한 관습으로바꾸려고 애쓴다. 내가 말하는 것은 꿈이든 회상이든 몽상이든, 환영과 환상에 관련된 것이다.
- P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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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혼자서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낯선 도시에 도착하는 것을 수없이 꿈꾸어 보았다. 그러면 나는 겸허하게,아니 남루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 그렇게 되면 비밀을 간직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 자신에 대하여말을 한다거나 내가 이러이러한 사람이라는 것을 드러내보인다거나, 내 이름으로 행동한다는 것은 바로 내가 지닌것 중 그 무엇인가 가장 귀중한 것을 겉으로 드러내는 일이라는 생각을 나는 늘 해 왔다. 무슨 귀중한 것이 있기에?

아마 이런 생각은 다만 마음이 약하다는 증거, 즉 단순히존재할 뿐만 아니라 자신의 존재를 분명히 드러내기 위하여 누구에게나 반드시 필요하게 마련인 힘이 결여되어 있음을 나타내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이제 더 이상 환상에속지는 않는다. 

그래서 이 같은 타고난 부족함을 무슨 드높은 영혼의 발로라고 내세우지 않는다. 그러나 내게는 여전히 그런 비밀에 대한 취향이 남아 있다. 나는 오로지 나만의 삶을 갖는다는 즐거움을 위하여 별것 아닌 행동들을 숨기기도 한다.
- P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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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슨하게’라는 제목에 이끌려 책을 집어 들었다가 '빠르게' 아즈마 히로키에게 빠져 들었다. 철학자이자 비평가인 아즈마는 일본의 잡지 <켄론>의 편집자로도 활동하고 있다. 아즈마가 <니혼게이자이> 석간 신문에 연재한 글로 시작하는 이 책은 그를 우리 주변에서 만날 법한 이웃으로 소개한다.

 

 

 

아즈마는 사람들이 왜 가상화폐에 빠지는지 궁금해서 사흘간 비트코인을 가지고 있어보고, 연극이나 영화 상영 후 나누는 애프터 토크는 설익은 비평의 장이라며 불만스러워하기도 한다. 인터넷에 검색하면서 찾아다니는 관광지보다는 우연찮게 색다른 경로에 빠져들어 기뻐하기도 한다.

    

 

 

이 책은 2008년부터 2018년까지 아즈마가 여러 매체에 기고했던 글을 담고 있다. 거대한 담론 대신 인터넷상에서 소통하며 살아가는 현대 사회에서 아즈마는 우리가 어떻게 공공성이 있는 삶을 살 수 있을까를 고민한다.

    

 

 

복잡하고 다양한 사회 속에서 문학 평론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평론이란 본래 개별적 작품에서 보편적 문제를 도출하여 시대와 사건에 무관한 독자들에게도 공감을 일으키는 것이었다. 하지만 시대가 변하여 엘리트나 지식층이 다뤘던 평론을 이제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누구나 문학이나 예술에 관한 평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 진지한 평론이 설 자리는 어디일까. 영어권 검색 엔진인 딕 웹사이트에서 문학은 라이프 스타일 범주에 속해 있다. 심오한 사상을 말하는 것은 이제 한 개인이 주말에나 즐기는 취미가 되어 버렸다. 깊이 있는 사상과 평론이 다루어질 곳이 좁아졌다. 아즈마는 이제 “유연하게, 느슨하게, 산만하게” 사고할 때라고 말한다. 데리다가 말한 우편적 방식처럼 글쓴이가 의도한 바가 독자들에게 잘 전달되지 못하더라도 개의치 말라고 한다. 즉 오배(잘못된 배달)을 꿈꾸라 한다.

 

 

 

아즈마는 진지함으로 돌아가는 것보다는 경박함과 진지함 사이의 텍스트를 만드는 일이 중요한 시대라고 말한다. 진지한 문제가 경박하게 논의될 수도 있고 경박한 수다에서 진지한 철학적 사유가 나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그는 진지한 언어로 진지한 사상을 유통하기 힘든 세상에서는 대충대충 가벼운 마음으로 “어쩐지 재밌을 것 같아”라는 오락성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장르 경계가 점점 모호해지는 현대 사회에서는 상징적이고 논리적인 것이 반드시 우위에 있지 않을 수도 있지 않은가.

 

    

 

루소의 사상 일부를 현재 인터넷 세상과 연결하여 재해석을 해보자. 루소는 <사회 계약론>에서 대학, 노동조합, 자치 단체 등에서 사람들끼리 적극적으로 논의하는 것보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자기 힘으로만 정보를 모아 정책을 판단한다면 더욱 올바른 판단이 내려진다고 보았다. 즉 사람들 간의 소통은 중요하지 않다고 보았다. 아즈마는 루소의 사상을 인터넷 본질에 맞대응시킨다. 인터넷은 ‘소통의 확대가 아니’라, 각자가 취향에 맞는 콘텐츠를 찾고 정확한 데이터를 얻는데 있지 않은가.

 

 

 

아즈마는 데리다와 루소의 사상을 지금의 정보자본주의 속에서 나와 타자 그리고 공공적 담론과 연결해 당대와는 전혀 다른 문맥에서의 사유를 시도한다. ‘글을 쓰면서 생각을 풀어가는 스타일’로 글을 썼기에, 철학 사상에 사전 지식이 없는 독자들도 그의 사유를 따라가지 힘들지 않다. 이 책을 아즈마 히로키의 입문서로도 볼 수 있겠다.

 

 

 

아즈마는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새로운 공공성을 찾기 위해서 진지함이 아닌 “느슨하게, 가볍게 생각해 보기"를 권한다. 생각의 지평을 열어보라 한다. 그의 최근 저서인 <관광객의 철학>은 "기존 정치철학을 대표하는 이론들을 면밀히 검토하고 또 비판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가다듬어진 ‘관광객의 철학’에 도스토옙스키부터 현대 SF에 이르는 문학이 보여 준 전망을 접목시킨다"고 한다. 진지한 주제와 사상을 어떤 신선하고 느슨한 시점으로 서술하고 있을지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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