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의 사랑은 순백의 백설탕 색과 어울릴까. 아니면 세월의 흔적이 녹아든 흑설탕 색이 제격일까. 아무렴 어떠한가, 둘 다 “천진한 달콤한" 맛인 걸. <흑설탕 캔디>는 화자인 ‘나’가 할머니의 유품인 일기장을 읽으면서 할머니의 이야기를 복원한다. 60대 후반인 할머니는 주재원인 아들을 따라 손주를 돌봐주러 프랑스로 떠난다. 젊은 시절 피아노를 연주했던 할머니는 ‘쇼팽’의 나라 프랑스를 동경해왔다. 프랑스어를 배우기가 쉽지 않아 할머니는 대화할 사람이 없어 외로운 나날을 살아간다. 손주를 기다리며 대부분의 시간을 집안 청소를 하고 아이들과 한국 드라마 비디오 빌려 시청하는 게 유일한 낙이었다.
어느 날, 할머니는 일층에 사는 브뤼니에씨가 피아노를 연주하는 것을 듣게 된다. 젊은 시절 피아노를 연주했던 할머니는 피아노를 치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힌다. 브뤼니에씨와 서로 말이 안 통했기에 공원 벤치에서 만난 두 사람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에 “베토벤”이름만 교환하고 나란히 앉아 있을 뿐. 할머니는 한불, 불한사전을 들고 브뤼니에씨 집에 찾아가 이야기를 나누고 피아노 앞에 앉는다. 피아노를 연주하면서 할머니는 과거 사랑했던 유부남 음악 교사를 떠올린다. 슈만과 클라라, 윤심덕과 김우진의 연인 이야기를 들으며 특별한 인생이 펼쳐질 것만 같았던 젊은 시절을 회상한다.
할머니는 브뤼니에씨를 만나고 나서부터 화장을 하기 시작한다. 할아버지와 음악을 같이 듣고 사전을 사이에 두고 이야기를 나눈다. 테이블 위에 각설탕 탑을 진지하게 쌓는 할아버지를 바라보며 할머니는 언어가 아닌 서로가 지금껏 살아온 세월을 헤아리며 교감을 느낀다. “그와의 사이에 무언가, 공감이라든지 이해, 생의 가장자리로 떠밀려온 사람들 사이의 연약한 연대나 우정 같은 것이 존재한다.”
두 사람은 테이블 위에 놓인 각설탕 탑을 함께 쌓으며 어린 아이들처럼 기뻐한다. 각설탕을 쌓는 브뤼니에 씨의 팔에 검버섯이 피어있지만 한국 남자와는 달리 은빛털이 뒤덮혀 있는 것을 보며, 그는 끝내 할머니를, 할머니는 끝내 그를 알지 못하리라는 사실에, 할머니는 ”가슴 안쪽에서 통증“을 느낀다. 늙어가는 건 몸일 뿐, 욕망이나 갈망은 없어지지 않는다는 걸 깨달은 할머니는 할아버지를 보며 삶에 대한 갈망과 기대를 갖는다.
하지만 할머니는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게 된다. 할아버지는 할머니에게 작별인사로 대명사 두 개와 동사 한 개의 말을 남겼다. 화자인 ‘나’는 요리조리 3개의 단어를 배열해 본다. 할머니가 브뤼니에를 향해 느꼈던 연민, 갈망은 할머니만의 이름,"난설"로 남게 된다. 브뤼니에씨를 만나면서 할머니는 그와 모든 걸 함께 할 수 없는 걸 알았지만 황홀한 사랑의 참맛을 느꼈다.
백수린은 단편집 <여름의 빌라>에서 소녀, 여학생, 엄마, 그리고 할머니를 등장시켜 각 나이에 여성이 느꼈을 갈등, 욕망을 우리 사회와 타지에서 그려낸다. 어린 소녀를 남기고 도망친 엄마를 이해하고, 수유기의 여인이 젊은 발레리노에게 성적 충동을 느끼고, 가난한 사람들을 바라보는 독일부부와의 시선차이를 받아들이며 등장인물들은 '자신이 누구인지'를 찾아간다. 작은 세계를 벗어나 타인의 세계로 들어가는 8편의 이야기는 고요하면서도 생생하다. 그래서 우리의 기억 속 ' 누군가'를 불러낸다. 그 여름날, 나를 반짝이게 만들었던 그 사람을.
"예상치 못했던 일이 주는 즐거움. 계획이 어그러진 순간에만 찾아오는 특별한 기쁨. 다 잃은 것 같다고 생각하고 있으면 어느새 한여름의 유성처럼 떨어져 내리던 행복의 찰나들." - P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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