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따뜻해져서 다시 달리고 있다. 코로나로 인해 수영장이 문을 닫아 작년 10월부터 시작한 달리기. 나는 천천히 약 20분 정도 뛰고 있지만, 아침 달리기를 나가보면 아파트 둘레길, 6.4 km를 달리고 있는 이들을 만난다. 팔과 다리의 최소 움직임으로 바람을 가르는 그들의 가뿐한 몸. 군살 없는 장딴지 근육은 하루아침에 자리 잡은 것이 아니리라. 고른 숨을 내쉬며 전방에 고정된 그들의 시선은 잡념이 없고 평화로워 보인다. 무아지경에 이른 것일까.
서른세 살에 장거리 달리기를 시작한 하루키는 매일 10 km를 달린다. 뉴욕, 보스턴, 호놀룰루 마라톤 등 전 세계 주요 마라톤 대회에 모두 참가했고 최근 몇 년까지도 풀코스 마라톤을 3시간 안으로 완주하고 있다. 그는 100 km 울트라 마라톤 대회에도 참가하여 11시간 42분을 달리기도 하였다. 하루키는 왜 달릴까. 당연한 대답이겠지만, 장편 소설을 꾸준히 쓰기 위해서다. 글쓰기 체력을 다지기 위해 달리기를 한다. 그는 소설을 쓸때 필요한 집중력과 지속력이 달리기를 통한 근육 훈련에서 나온다고 말한다. 마라톤 선수들이 매번 경기를 거듭하면서 자신의 목표를 조금씩 높혀 가듯이, 하루키 역시 자신이 설정한 기준에 작품이 도달했는가 아닌가를 매번 판단한다.
이론이나 도식보다는 실제 눈앞에서 만져지는 것을 믿는 하루키. 그는 몸으로 직접 경험하는 것을 신뢰한다. 마라톤이란 살아있는 인간이 스스로 결승점을 두 다리로 직접 통과하는 행위이기에 진실하다. 하루키는 매일 계속해서 달릴 수 있는 것은 의지보다는 달리기가 단지 그의 성격에 맞을 뿐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하루키의 의지는 강했다. 마라톤이나 트라이애슬론에서 끝까지 완주하고자 했다. 100킬로 울트라 마라톤에서는 극심한 근육통증에 시달렸지만 하루키는 아무리 아파도 다른 사람들처럼 걸을 수 없다며 느리더라도 끝까지 달린다.
시시각각 변하는 여러 도시의 계절 풍경, 오리지널 마라톤 코스인 마라톤-아테네 달리기, 앞지르는 포니테일 머리모양을 한 하버드 신입생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달리기가 단조로운 직진만이 아니란 걸 알게 된다. 굴곡진 일생 마라톤이다. 마라톤 선수들이 대회를 준비하며 매일 뛰고 있다면, 하루키는 장편 소설을 쓰기 위해 달리고 있다. ‘아무 생각 없이 달린다’고 고백하는 하루키. 하지만 그는 달리면서 모든 풍경을 눈에 담아 기록하고 있었다. 끝까지 걷지 않았던 소설가. 달렸던 하루키.
주어진 개개인의 한계 속에서 조금이라도 효과적으로 자기를 연소시켜 가는 일,그것이 달리기의 본질이며, 그것은 또 사는 것의 (그리고 나에게 있어서는 글쓰는 것의) 메타포이기도 한 것이다. - P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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