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시간에 쫓기는가 - 삶을 변화시킬 새로운 시간의 심리학
필립 짐바르도.존 보이드 지음, 오정아 옮김 / 프런티어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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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벤자민 버튼의 시간만 거꾸로 가는 게 아니다. 실제로 어떤 사람들의 시간은 뒷걸음질 한다. 아직 오지 않은 먼 미래로 훌쩍 날아가는가 하면 아예 한자리에 딱 멈춰 서 있기도 한다. 한없이 늘어지는 시간이 있는가 하면 눈 깜짝일 새 없이 휙 지나가 버리는 시간도 있다. 시간 여행은 공상과학영화 속에서나 벌어지는 허무맹랑한 사건이 아니다. 시간이라는 그릇이 담고 있는 삶 자체가 무형의 타임머신이고 우리 모두가 시간 여행자인 셈이다. 삶이라는 시간 여행을 하고 있는 당신은 달력이나 시계의 한계를 넘어서는 심리적 시간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를 둘러싼 그 시간(경험이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의 층은 거의 무한대적이고 변화무쌍하며 우리 자신이 그 시간의 설계자라는 것도 수긍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왜 시간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할까. 왜 그렇게 자주 시간 앞에 무력감을 느끼는 것일까. <스탠퍼드 감옥 실험>으로 유명한 필립 짐바르도와 그의 연구 동료 존 보이드는 이 책에서 개인의 존재 양식과 국가의 운명 더 나아가 전 지구적인 미래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시간>이라는 주제를 심층 해부하면서 그 답을 찾아간다.

     인간은 사건의 순위를 정하고 일관성과 의미를 부여하는 시간의 틀 안으로 끊임없이 경험들을 분류해 넣는다. 이러한 시간의 틀은 계절의 변화나 월간 업무, 자녀의 생일과 같은 주기적이고 반복적인 패턴을 반영하거나, 부모의 죽음, 사고를 당한 날, 전쟁의 발발 등과 같은 독특하고 남다른 경험을 반영하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뭔가를 감지하고 느낄 때뿐만 아니라 존재하고 예상하고 목표를 세우고 우연을 만들고 상황을 가정할 때에도 작용한다. (본문 중에서)

     누가 당신에게 시간을 묻는다면 당신은 쉽게 대답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이 몇 세기인지 올해가 몇 년도인지 오늘이 며칠인지 현재 시각이 몇 시인지 오래 생각하지 않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질문을 조금 바꿔 보면 어떨까. 당신의 시간은 어느 방향으로 흐릅니까. 또는, 당신의 시간은 어떤 성격을 지니고 있습니까. 질문의 의도를 알아챈 사람이라도 곧장 답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현대 사회를 지배하는 연대기적 시간에 길들어 있어서 그렇다. 몇년도에 태어나서 몇년도에 학교에 가고 몇년도에 졸업하고 직장을 얻고 몇 년이 흘러 결혼하고 애를 낳는다. 아침 여섯 시에 일어나서 아홉 시에 출근하고 열 시간쯤 노동하고 일곱 시쯤 퇴근하고... 올해 목표는 내년까지 승진하는 것이고... 십 년쯤 후에는... 저자들에 따르면 시계적인 시간관이 지배하는 오늘날의 사회는 과도하게 미래지향적이다. 말 그래도 시간이 곧 돈이 되는 자본주의 경제 구조는 미래지향성을 더욱 부추기는 효과를 낳았다. 일 분 한 시간 하루는 돈으로 환산되고 돈은 곧 미래를 보장해 주는 가장 확실한 방편이므로 현재의 욕망과 쾌락을 희생하는 것도 달콤한 고통이 된다. 사람들의 마음은 일 년 후 십 년 후 미래에 가 있고 현재는 다만 미래로 가는 정거장쯤으로 치부된다. 결과적으로 현대인은 매순간 시간에 쫓기는 삶을 살게 되었다.

      근처의 과일을 따 먹고 물고기를 잡아먹던 동굴 사람들은 길고 추운 겨울을 견뎌내지 못했다. 살기 위해 초기 인류는 앞일을 내다보는 능력을 기르고 먹을거리를 구할 수 없을 때를 대비해 식량을 저장하는 방법을 고안했다. 인류 역사상의 이 같은 발전은 원시적인 생활양식인 즉흥적 생활에 종지부를 찍었다. 달력이 등장했고 우리는 미래를 걱정하기 시작했다. 오늘날까지 앞서거니 뒤서거니 달려온 우리는 이 계획 본능 때문에 목이 졸릴 지경이다. (본문 중에서)

     현재의 욕망과 쾌락이 제거된 (과도한) 미래지향적인 삶이 과연 건강하고 행복하다고 할 수 있을까. 미래지향적인 삶은 손에 잡히지 않는 끝없는 미래밖에는 없다. 미래에도 더 앞의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할 테니까. 하지만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유한하고 미래는 언제까지나 계속 이어지지 않는다. 이 유한한 시간 속에서 어떻게 하면 보다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을까. 긴 세월 다방면으로 시간을 연구해 온 필립과 존은 삶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킬 만한 시간관을 적극 제안한다.

​      현재 지향적으로 행동하는 아이들, 미래와 경력에 초점을 두는 아버지, 가정의례와 과거 가족들이 함께했던 좋은 ​시간들에 대한 향수에 초점을 두는 어머니. 사람들은 서로 상반되는 시간관이 가족 간의 갈등과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할 때가 많다. (...) 미래 지향적인 시간관을 가진 쪽에게는 불 보듯 뻔한 미래의 일이 현재 쾌락적인 시간관이 강해서 미래에 대해서는 거의 생각해본 적 없는 쪽에게는 전혀 이해되지 않는 일이다. (본문 중에서)

    시간관time perspective이란 <개인적 경험을 시간적 범주나 시간대에 할당하는 과정을 가리키는 심리학 용어>이다. 다시 말해 주관적이고 심리적인 시간에 대한 개인적인 평가 또는 태도를 가리킨다. 여러 국가 다양한 성별 인종 연령대의 사람들의 삶을 관찰하고 인터뷰한 결과 필립과 존은 시간을 해석하는 여섯 가지 유형을 발견하게 된다. 그 여섯 가지 시간관은 다음과 같다. 과거 부정적Past-negative 시간관, 과거 긍정적Past-positive 시간관, 현재 숙명론적Present-fatalistic 시간관, 현재 쾌락적Present-hedonistic 시간관, 미래 지향적Future 시간관, 초월적인 미래 지향적Transcendental-future 시간관. 초월적인 미래 지향적 시간관은 <최후의 심판><영생><죽은 사람들과의 재회><사후의 삶><환생> 같은 종교적이고 불가사의한 믿음과 관련이 있다. 그 외의 시간관들은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된다. 현대 사회가 미래 지향적 시간관에 편향되어 있는 것과는 별개로 개인적인 삶의 측면에서 우리는 다양한 시간관의 영향을 받는다. 이를 테면 우울증 환자들은 과거 부정적 시간관에, 알콜 도박 섹스 중독자들은 현재 쾌락적 시간관에 편향되어 있는 것이다. 또한 자살 폭탄 테러를 감행하는 사람들은 초월적인 미래 지향적 시간관이 강하다고 밝혀졌다. 이처럼 극단적인 시간 편향이 아니어도 많은 사람들이 특정 시간관에 편향되는 현상을 보인다고 한다. 책에서는 흥미로운 심리 실험 보고서와 심리학 이론, 다양한 예시 등을 통해 각 시간관의 특성을 소개하고 면밀하게 분석한다. 아울러 시간에 대한 태도가 우리 본성에 미치는 영향을 강조하면서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시간관의 균형과 조화를 꾀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 부정적인 태도를 갖게 되는 까닭은 과거에 실제로 경험한 고통스러운 사건 때문이기도 하지만 평범한 사건을 부정적으로 재구성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과거에 일어난 사건을 변화시킬 수 있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그러한 사건에 대한 태도나 믿음은 누구나 바꿀 수 있다. 마음이나 태도를 바꾸는 일은 쉽지 않지만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본문 중에서)

 

     ​책에는 읽을거리가 풍부하다. 다양한 심리 실험 결과는 물론 신데렐라, 아기돼지 삼형제, 셰익스피어나 베케트의 작품 등을 들어 시간의 속성을 효과적으로 설명하기도 하고 프로이트나 아들러의 시간에 대한 관점과 해석을 활용하는 등 다각적이고 심층적인 논의를 펼친다. 독자가 직접 해볼 수 있는 짐바르도 시간관 검사ZTPI, 특정 시간관 편향을 보완 교정할 수 있게 도와주는 구체적이고 다양한 방법들도 싣고 있다. 책 곳곳에 저자들의 열정과 진심이 묻어 있어서 더욱 신뢰가 간다. 부정적인 시간관에 사로잡혀 불행하고 피곤한 삶을 이어가는 사람들에게 이 책이 재차 당부하는 내용은 사실 단순한 것이다. 과거에서 배우고 현재를 즐기며 미래를 계획하라는 것. 매우 단순한 진리지만 복잡한 시간의 지배를 받는 현대인에게는 쉽지 않은 문제이기도 하다. 현실이 불만족스럽지만 막상 변화를 꾀하기엔 막막하다. 불행의 원인을 바깥에서만 찾으면서 현재 숙명론적 시간관에 사로잡혀 사는 사람들도 많다. 오리무중에 빠져 있는 사람들에게 이 책은 새로운 시간 설계법을 내놓고 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시간 노예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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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미너리스 2
엘리너 캐턴 지음, 김지원 옮김 / 다산책방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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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년 맨부커 수상작이다. 점성술에 기반한 독창적인 기법의 인물 설정, 천체의 운행을 따르는 정교한 이야기 구조, 서사와 극의 조화가 돋보이는 수작이다. 탐광 열풍이 한창이던 19세기 중반 뉴질랜드 남섬의 광산 마을 호키티카를 배경으로 하는 이 소설은 인간의 탐욕이 불러들인 파멸의 과정을 점성학적으로 풀어낸다. 각각의 별과 행성에 배치된 인물들의 기질과 욕망이 충돌하고 연쇄하면서 의문의 사건의 전말을 밝혀내는 구조는 흡사 오우로보로스를 연상시킨다. 이야기의 배경지인 <호키티카>라는 지명은 마오리족 언어로 <한 바퀴. 그리고 다시 시작으로 돌아온다>라는 뜻이다. <호키티카>는 천체의 순환 구조를 따르는 서사 구조를 암시하고 있다. 하나의 사건에 대한 각각의 시점이 교차하고 중복되면서 이야기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순환한다. 그리고 다시 시작 지점에서 와서 멈춘다.

  

    마침내 타우웨어는 손가락을 들어올려 허공에 원을 그렸다. 손가락 끝이 처음 시작했던 자리로 오자 그는 날카롭게 돌아온 자리를 손가락으로 찔렀다. 하지만 원에서 어떤 지점을 특정할 수는 없는 법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원에서 자리를 점찍는 경우는 원을 부수기 위해서이고, 그렇게 되면 더 이상 원이 아니니까. “한 바퀴. 그리고 다시 시작으로 돌아온다.” (1, 157)

 

     1865년 겨울. 오두막에 은거하던 사내 크로스비 웰스의 사체와 함께 발견된 4천 파운드의 황금이 이야기의 발단이 된다. 탐광꾼이 되기 위해 호키티카에 도착한 월터 무디는 여정을 푼 호텔에서 일명 크로스비 웰스 사건에 관련된 열두 명의 남자들과 만나게 된다. 크로스비 웰스 사건과 관련해 밀담을 나누던 이들은 무디가 타고 온 배의 선장이 크로스비 웰스 사건의 용의자 프랜시스 카버라는 것을 알고 무디에게서 작은 정보라도 캐내려고 한다. 그러는 과정에서 무디와 열두 명의 남자들은 서로의 비밀을 공유하고 크로스비 웰스 사건의 퍼즐을 맞춰가기 시작한다. 단순한 자살로 보였던 웰스의 죽음에는 간통, 협박, 살인, 복수의 드라마가 숨겨져 있다.

 

    그들의 믿음은 더더욱 기발해지고, 그들의 가설은 더욱 비현실적이 되었으며, 그들의 논의는 점점 더 엇나갔다. 확인되지 않은 의심은 시간이 흐르며 점점 더 제멋대로이고 불합리해지는 경향이 있고, 기분에 따라 변하곤 한다. 일반적으로 미신이 지닌 모든 특성을 갖게 되는 것이다. (2, 10)

 

     주인공이 없는 동시에 모두가 주인공이고 사건의 피해자가 용의자가 되고 다시 용의자가 피해자로 둔갑하기도 하는, 하나의 사건을 관점만 달리해 끝없이 변주하는 방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이해관계에 얽힌 열두 명의 인물들의 이야기는서로 다른 위치에서 별자리를 그려보는 것처럼 다층적인 감상과 해석의 여지를 마련해 준다. 이게 무슨 그림일까 한 점 한 점 따라가면서 하나의 커다란 그림을 완성해 나간다는 기분이 든다. 한 문단 한 문장 불필요한 부분 없이 치밀하게 이야기를 직조해 나가는 작가의 능란한 솜씨가 이야기에 풍부한 음영을 더하고 있다.

 

    그는 지도에 없는 외로운 해변에 금이 보이지 않게 숨겨진 채로 반짝이는 것을 상상했다. 널따란 바다 위로 노란 보름달이 떠오르는 것을, 골짜기 사이를 말을 타고 달리고, 맨땅에서 잠을 자고, 나무로 된 선광대로 물을 거르고, 깜부기불 위에서 막대 주위에 광부의 반죽을 감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했다. 자신이 찾은 부가 인류와 인류의 역사보다도 오래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는 건 얼마나 근사한 일일까, 그걸 자신의 두 손으로 땅에서 파낸다는 것이 얼마나 굉장한 일일까 그는 생각했다. (2, 544)

 

    19세기 중반 뉴질랜드 사회상, 중국의 아편전쟁까지 뻗어나가는 복잡한 이야기 구조, 톱니바퀴처럼 얽혀 있는 수많은 등장인물들. 천이백여 쪽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이 부담스럽다는 예비 독자도 있겠는데, 걱정할 것 없다. 이야기 전개가 빠르고 앞서 밝혔듯이 하나의 큰 퍼즐을 맞춰나가는 구성이어서 한 번 읽기 시작하면 멈출 수가 없다. 개인적으로는 굉장히 몰입해서 읽었다. 다 읽고 나서도 얼마간 이야기의 여운에 붙들려 있었다. 탐욕에 눈 먼 인간의 파멸이라는 거칠고 투박한 소재를 매끄럽게 제련해 낸 작가의 솜씨가 놀라울 따름이다. 각각의 인물이 지닌 기질과 의지가 하나의 사건, 한 사람의 운명에 어떤 식으로 작용하고 개입하는가를 매혹적으로 서술해 냈다. 소설이 이룰 수 있는 최선의 것을 구현하고 있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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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겐 새 이름이 필요해
노바이올렛 불라와요 지음, 이진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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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짐바브웨 출신의 젊은 작가가 쓴 이 소설에는 과연 <새 이름>이 필요해 보이는 아이들이 등장한다. 배스터드Bastard 갓노즈Godknows 심지어는 그 의미조차 모호한 치포Chipo 스브호Sbho 같은 이름들은 영국 식민지 시대의 잔재를 그대로 보여준다. 졸지에 나라를 잃고 어리둥절해진 부모들이 잠꼬대처럼 이상한 영국식 이름들을 붙여주었던 것이다. 갓노즈, 배스터드 같은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독립 이전에 태어난 열 살 소녀 달링Darling​의 특별한 성장담으로 읽히는 이 소설에는 짐바브웨의 역사와 참담한 현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해방이다 자유다 기쁨도 잠시 무가베 정권의 장기 독재로 다시금 혼란과 절망의 시절을 겪는 짐바브웨 사람들의 목소리가 살아 있다.

    그들에겐 아무것도 없었다. 다만 기억이 있을 뿐이었다. 그들 자신의 기억, 그리고 그들의 어머니와 어머니의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기억. 한 나라의 기억. (본문 중에서)

   ​   정권 탄압과 내란으로 쫓기듯 떠나온 사람들이 모여드는 작은 마을 패러다이스paradise는 그 이름과는 달리 가난과 근친상간, 에이즈, 크고 작은 내란이 끊이지 않는 지옥 같은 곳이다. 폭력과 부조리, 극심한 굶주림 속에서 아이들은 어른의 폭력과 전쟁의 역사를 놀이로써 답습한다. 여러 개로 나눈 땅바닥에 나라 이름을 써놓고 이긴 사람이 나라들을 차지해 나가는 짐바브웨식 땅따먹기, 상상의 트럭과 미국 총으로 서로를 쏴 죽이는 전쟁 놀이, 점점 배가 부풀어오르는 임신부 소녀 치포를 살리기 위한 병원 놀이 같은 걸 하면서 무의식적 분노와 공포를 배출하는 것이다. 달링의 눈에 비친 어른들의 모습은 부조리하고 무력하다. 변화를 부르짖다 한순간 죽어나가는 혁명가, 고통을 잠재울 유일한 약이라도 된다는 듯 술 마시고 노래하고 춤추는 마을 어른들, 타국에서 돈 대신 병만 얻어 돌아온 아버지, 슬픔과 절망에 빠진 마을 사람들을 이상한 힘으로 현혹하는 사이비 교주, 패러다이스와 대비되는 부유하고 평온한 부다페스트 사람들의 삶. 달링과 그 친구들에게 마지막 희망은 저주 받은 이 나라를 떠나 희망의 땅으로 가는 것뿐이다. 노래처럼 매순간 읊조리던 그 땅. 아메리카.

     어머나, 세상에! 너희들 나라 봤어! 뉴스에 나오더라! 사람들의 입에서 부서진 벽돌처럼 이런 말들이 쏟아져 나올 때면 우리는 다시 눈짓을 주고받았다. 그리고 결국엔 눈물보가 터졌다. 우리의 미소가 스러져가는 그림자처럼 녹아내리고 어느 순간 우리는 흐느껴 울었다. 우리의 소중하고 가엾은 국가를 위해. 사람들은 그런 우리를 동정하며 말했다. 괜찮아. 이젠 괜찮아. 이제 너희는 미국에 있잖아. (본문 중에서)

     크게 이 부로 나뉘는 이 소설은 짐바브웨에서 힘든 유년기를 보낸 달링이 마침내 꿈꾸던 아메리카에서 새로운 슬픔과 고난의 시절을 살아가는 모습을 통해 나라를 등지고 떠나온 불법 체류자들의 불안한 삶을 핍진하게 그려낸다. 그 수많은 이민자들이 그러했듯, 달링이 희망의 땅이라 믿어온 미국 역시 부조리와 편견에 찬 모습을 보여준다. 언제라도 바꿔 쓸 수 있는 가면이라도 되는 듯 눈 코 입을 고치는가 하면, 없어서 못 먹는 게 아니라 인위적으로 식사를 제한하는 알 수 없는 행동. 아프리카를 하나의 국가라고 착각하는 무지한 사람들의 무례한 질문들. 가난한 이민자들에게 미국은 패러다이스가 되어주지 못한다. 힘든 노동, 저임금, 차별과 멸시, 언제 내쫓길지 모르는 불안한 나날 뿐이다. 무엇보다 이들의 가슴을 짓누르는 것은 고국을 등졌다는 죄의식과 고국을 영영 잃고 말았다는 상실감이다. 모국에 대한 향수와 죄의식 때문에 정신을 놓아버린 샤카 줄루의 모습과 소설의 마지막 장면에 등장하는 개 은컨쿠의 죽음이 비탄에 사로잡힌 이들의 심정을 극단적으로 대변해 주고 있다. 로벨스 빵 냄새!

     네 나라도 아닌 데서 너 지금 뭐하고 있는 거야? 왜 미국으로 도망갔어, 달링 논쿨루레코 느칼라? 여기가 네 조국이면 떠나지 말고 여기 남아서 사랑했어야지. 무슨 일이 있어도 바로잡으면서 살았어야지. 집에 불이 나면 집을 버려? 아니면 물을 길어다가 불을 꺼? 불난 집을 떠나놓고 불이 저절로 물이 되어서 꺼지길 바라는 거야? 달링, 넌 조국을 떠났어. 불난 집을 두고 떠났다고. 그런데 네가 갖고 태어나지도 않은 그 한심한 억양으로, 너한테 어울리지도 않는 그 억양으로, 여기가 네 나라라고 말하고 있는 거야? (본문 중에서)

​     노바이올렛 블라와요는 이 작품으로 각종 문학상을 휩쓸면서 화제의 중심에 올랐다. 아프리카 여성 최초로 맨 부커상 최종 후보에까지 오른 작품이기도 하다. 이 소설에서 노바이올렛 블라와요가 보여준 구성력과 함축적이고 힘 있는 문장은 독자를 매혹하기에 충분해 보인다. 한 장면 한 장면이 강렬하게 각인된다. 인물들의 표정과 몸짓 목소리를 생생하게 전달한다. 특히 충격적이고 압도적인 마지막 장면은 그만 책을 덮으려는 독자의 마음을 덥석 물고 늘어질 것이다. 재치 있는 언변과 블랙 유머가 무거운 분위기를 몰아내면서 가독성을 높이고 있다. 작가의 개인적 체험이 녹아 있는 자전 소설이라는 점에서 그 울림이 더 깊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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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 엄마와 보내는 마지막 시간
리사 고이치 지음, 김미란 옮김 / 가나출판사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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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장 투석을 받으며 오래 입원해 있던 밀리 고이치는 어느 날 가족들에게 연명 치료를 중단하겠다고 선언한다. 여든다섯의 아내이자 어머니인, 헝겊 인형처럼 몸이 오그라든 작은 여인의 이 놀라운 선언은 가족들에게 충격과 혼란과 갈등을 불러일으킨다. 이제 그만 죽고 싶다는 어머니를 어떻게 해야 하나. 선뜻 동의하기도 어렵지만 무조건 반대할 만한 명분이란 것도 대개 이기적이다. 이건 명백한 자살 행위이고 자살 행위는 죄악이므로 천국에 갈 수 없다는 아들의 주장도 설득력이 없다. 고통스러운 화학 치료를 받으면서 평생을 병원 침대에 누워 보내야 하는 사람에게 미지의 지옥이 위협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어머니의 뜻은 단호했고 결국 가족들은 어머니의 인생이므로 본인의 마지막 결정을 존중하기로 마음을 모은다.

 

     내가 첫발을 떼었을 때 내 잡은 손을 놓아준 사람, 처음으로 두발자전거 페달을 밟을 때 의자에서 손을 떼어준 사람, 고등학교 때 매드 도그 20/20을 마시고 취했을 때 외출금지령을 내렸던 사람, 남자애 때문에 흐느껴 울 때 나와 함께 부엌 바닥에 주저앉아주었던 사람, 내가 당신이 받은 것 중 가장 귀한 선물이며 태어나줘서 정말 기쁘다고 말해준 사람, 바로 그 사람이 자기는 이제 끝났다고 내게 말하고 있었다. (34)



 

     퇴원 수속을 밟는 가족에게 의사는 앞으로 남은 시간이 2, 그러니까 14일 정도라고 알린다. 퇴원한 날로부터 임종을 맞이한 14일째까지 가족들은 밀리 고이치의 곁을 지킨다. 밀리 고이치의 둘째딸 리사 고이치는 어머니의 임종 과정을 매일 기록한다. 이 책은 바로 그 기록물이다. 생각보다는 차분하다. 생각하기에 따라서 지나치게 차분하다고 느낄 수도 있겠다. 리사 고이치나 그 가족들이 특별하거나 슬픔이 덜해서가 아니다. 마음껏 슬퍼하기에 14일은 너무 짧은 시간 아닌가. 임종 과정부터 장례식까지 한 사람의 죽음에는 지극히 현실적인 문제들이 기다리고 있다. 리사 고이치는 환자의 위생 문제, 통증조절, 정서적 안정부터 서류 정리, 장례식장 결정에 이르기까지 임종 과정을 있는 그대로 기술하고 있다. 통곡도 원망도 없이 고이치 가족이 그 모든 일들을 겪어내는 과정은 뜻밖의 감동을 안겨준다. 그들이 주고 받는 말과 심지어 침묵 속에서도 가족에 대한 배려와 애정을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엄마가 거실 한가운데 호스피스 침대에 누웠을 때 우리 식구는 전부 시계만 보았다. 매일매일. 엄마도 마찬가지였다. “나 아직도 여기에 있니?” “, 어머니. 아직 여기에 있어요.” “빌어먹을.” 그러고 나서 우리는 TV 보는 일로 돌아갔다. (153~154)

 

     사랑하는 사람과 온전히 작별(사별)할 수 있으려면 얼마간의 시간이 필요할까. 그 시간을 헤아려 보는 일부터가 힘겨운 일일 것이다. 14. 시간으로 치면 336시간. 이 책을 펼치기 전에 당신은 어떤 특별한 에피소드(이를 테면 마지막 가족여행이나 임종을 앞둔 환자의 소원 성취 같은 영화적 요소)를 기대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책에 그런 특별함이나 넘쳐 흐르는 감정 같은 건 없다. 고이치 가족은 차분하고 그들의 시간은 일상적으로 흐른다. (환자의 기저귀를 갈거나 마지막 며칠에 모르핀을 주사했던 것 말고는) 밥을 먹고 TV를 보고 이야기를 나눈다. 놀랍게도 농담을 주고 받기까지 한다. 그것도 거의 매 순간, 농담이 섞이지 않은 대화는 불가능하다는 듯이. 처음에 나는 이들의 태도가 익살을 위장한 슬픔에 불과할 것이라고 여겼다. 이 상황에 저런 농담이 가능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얼마쯤 책을 읽어나가면서 나는 점점 더 놀라게 되었다. 고이치 가족은 우스갯말이 일상화된 사람들이었고 그들은 계속 하던 대로 했다. 그것은 고이치 가족만의 특별한 유대였고 죽어가는 어머니에게 보여줄 수 있는 최선의 모습이었다.

 

   엄마는 자신의 인생에서 마지막 2주 동안 집을 찾아오는 모든 사람과 주먹 인사를 나눴다. (...) 2주 동안 엄마는 누구에게도 굿바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냥 또 보자고!”라고 했다. (80)

 

    그들만의 방식으로 작별하고 애도하는 고이치 가족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무엇보다도 놀라운 건 죽어가는 사람의 태도였다. 밀리 고이치, 여든다섯의 이 할머니는 정말로 명랑하고 엉뚱하다. 죽음을 며칠 앞두고 있는 사람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이다. 이 엉뚱하고 기발한 할머니는 사람들이 방문할 때마다 카메라에 자신의 모습과 마지막 인사말을 담게 한다. 커튼을 치거나 걷게 하면서 빛을 조절하고 카메라 각도까지 지시하면서. 장례식에서 입을 옷을 결정했다면서 <와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적힌 흰색 운동복을 가족들 앞에 펼쳐보이기도 한다. 이 사랑스러운 할머니는 자신의 장례식을 인생의 작은 이벤트쯤으로 여기는 것 같다. 의식이 흐릿해지기 전까지 밀리 할머니는 두렵거나 초조한 기색도 비치지 않는다. 오히려 홀가분해 보이고 들떠 보이기까지 한다. 정말 쿨해 보이지만 그 모습이 너무나 꾸밈이 없어서 지켜보는 이를 안심시킬 정도이다.

 

    누군가의 죽음을 기다리는 일은 케이크 굽기, 빨래 말리기, TV 유선 설치 기사 기다리기와 전혀 다르지 않다. 자리에 앉는다. 시계를 본다. 그리고 기다린다. 우리는 죽음이 오늘, 내일, 다음 주, 혹은 그다음 주 언제 일어날지 모르기 때문에 모든 것을 보류하고 있어야 한다. 그러더가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어느 날에 결국 일어난다. (153)


    그럼에도,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은 눈물샘을 자극한다. 울음을 터뜨리지 않을 수가 없다. 슬프다. 죽어가는 사람과 그를 지켜보는 사람들의 기다림. 유머로도 덮을 수 없는 환자의 똥오줌 냄새, 수치심, 죄책감, 장례 비용 문제( 마음에 드는 관을 가리키는 고이치 가족에게 직원은 그 관은 너무 값싼 것이며 영세민들이나 들어가는 관이라고 말한다), 다가올 성탄절 행사나 값비싼 공연 티켓에 대한 걱정(엄마가 죽어가는 와중에) 같은 것들. 그러니까 한 사람의 죽음은 물리적이고 또한 세속적인 문제들로부터도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와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적힌 우스꽝스러운 운동복 같은 걸 입고 관 속에 눕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가족들 체면을 구기게 될 테니까) 아프게 일깨운다. 책을 읽으면서 오래 전에 죽고 없는 나의 어머니를 떠올렸다. 손 잡아주는 이도 사랑한다고 귓가에 속삭여주는 이도 없이 홀로 마지막 숨을 쉬었을 사람. 죽음은 공평하게 주어지지만 누구나 임종의 순간에 가족의 애정과 존중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유머와 신뢰와 애정과 극진한 보살핌이 있어도 죽어가는 일은 살아가는 일만큼이나 외롭고 지난한 과정이라는 것을 이 책은 몸소 보여준다. 그럼에도, 그렇기에 더욱 사랑하는 사람의 애정과 보살핌이 필요하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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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멋진 문장이라면 - 필사, 나를 물들이는 텍스트와의 만남
장석주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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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반인을 위한 글쓰기 비법서에 이어 필사를 위한 책들이 속속 출간되고 있다. 개인의 자기 표현 욕구가 커지고 있다는 방증일 것이다. 문장 강화 훈련뿐만 아니라 요즘에는 마음 수련을 위해 필사를 택하는 사람들도 많은 것 같다. 책 속의 문장을 백지에 옮겨 적는 순간의 몰입감 때문일 것이다. 단어 하나에서부터 문장부호, 행간에 흐르는 미묘한 리듬까지 놓치지 않고 새겨 읽기 위해 필사를 해볼 수도 있다. 어떤 이유에서든 필사를 하려는 이들이 부쩍 늘어나는 추세인 것 같다. 일상적으로 필사를 해 온 사람들과 달리 이제 막 필사를 시작하려는 사람들은 필사할 책을 고르는 일부터가 녹록찮게 여겨질 것이다. 무턱대고 남들 다 한다는 필사의 고전서를 택했다가 제풀에 지치는 경우도 많다. 단순하게 다른 사람의 문장을 베껴 쓰는 것이 필사의 전부는 아니기 때문이다. 베껴 쓰는 행위에서 한 발 나아가 자기만의 문장과 호흡을 찾아가는 과정이 필사의 매력 아닐까. 자기만의 문장을 찾기 전까지는 다양한 문장들을 자유자재로 놀려보는 것도 내 경험상으로는 좋은 것 같다. 문장을 반드시 그대로 옮겨 적지 않아도 좋다. 낱말 하나, 문장 부호 따위를 보태거나 바꾸면서 나만의 문장 연습을 해보는 것이다. 경직된 마음이야말로 글쓰기의 가장 큰 걸림돌이니까 말이다.

  

    


    지금 소개하는 책이 내게는 두 번째 필사책이다. 첫 번째 필사책은 우리 소설 작품 전체를 필사하도록 구성되어 있었다. 딱히 필사책이 아니더라도 소설책과 노트 한 권만 있으면 필사가 가능한 방식이었다. 지금 소개하는 필사책은 그보다 부담이 적고 어떤 면에서 효율적이다. 책 읽다 마음에 드는 문장이 있으면 노트에 옮겨 적고 멋대로 고쳐 써 보는, 필사를 낙서처럼 하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마침맞은 구성 같다. 국내외 문학 작품은 물론 다양한 인문서에서 발췌한 다채로운 문장들은 자기만의 문장을 찾아가는 필사 초보자에게도 도움이 될 것 같다. 장석주 시인은 각 문장들을 주제별로 묶어놓고 있다. 어떤 문장은 감각을 일깨우고 어떤 문장은 감정을 다스려준다. 책에 실린 문장들을 옮겨 적다 보면 필사는 <읽기의 연장>이라는 것을 새삼 생각하게 된다. 잘 쓰려면 우선 잘 읽어야 하니까. 다른 사람의 문장을 한 자 한 자 마음으로 좇아 가다 보면 멀고 깊고 캄캄한 저 내부에서 무언가 깨어나고 조금씩 선명해진다. 생활이나 생각이나 감정이나 무엇 하나 흐릿하고 모호할 때, 좀 더 잘 읽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이토록 멋진 문장이라면> 하나의 좋은 <연장>이 될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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