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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 엄마와 보내는 마지막 시간
리사 고이치 지음, 김미란 옮김 / 가나출판사 / 2016년 1월
평점 :
절판
신장 투석을 받으며 오래 입원해 있던 밀리 고이치는 어느 날 가족들에게 연명 치료를 중단하겠다고 선언한다. 여든다섯의 아내이자 어머니인, 헝겊 인형처럼 몸이 오그라든 작은 여인의 이 놀라운 선언은 가족들에게 충격과 혼란과 갈등을 불러일으킨다. 이제 그만 죽고 싶다는 어머니를 어떻게 해야 하나. 선뜻 동의하기도 어렵지만 무조건 반대할 만한 명분이란 것도 대개 이기적이다. 이건 명백한 자살 행위이고 자살 행위는 죄악이므로 천국에 갈 수 없다는 아들의 주장도 설득력이 없다. 고통스러운 화학 치료를 받으면서 평생을 병원 침대에 누워 보내야 하는 사람에게 미지의 지옥이 위협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어머니의 뜻은 단호했고 결국 가족들은 어머니의 인생이므로 본인의 마지막 결정을 존중하기로 마음을 모은다.
내가 첫발을 떼었을 때 내 잡은 손을 놓아준 사람, 처음으로 두발자전거 페달을 밟을 때 의자에서 손을 떼어준 사람, 고등학교 때 매드 도그 20/20을 마시고 취했을 때 외출금지령을 내렸던 사람, 남자애 때문에 흐느껴 울 때 나와 함께 부엌 바닥에 주저앉아주었던 사람, 내가 당신이 받은 것 중 가장 귀한 선물이며 태어나줘서 정말 기쁘다고 말해준 사람, 바로 그 사람이 자기는 이제 끝났다고 내게 말하고 있었다. (34쪽)
퇴원 수속을 밟는 가족에게 의사는 앞으로 남은 시간이 2주, 그러니까 14일 정도라고 알린다. 퇴원한 날로부터 임종을 맞이한 14일째까지 가족들은 밀리 고이치의 곁을 지킨다. 밀리 고이치의 둘째딸 리사 고이치는 어머니의 임종 과정을 매일 기록한다. 이 책은 바로 그 기록물이다. 생각보다는 차분하다. 생각하기에 따라서 지나치게 차분하다고 느낄 수도 있겠다. 리사 고이치나 그 가족들이 특별하거나 슬픔이 덜해서가 아니다. 마음껏 슬퍼하기에 14일은 너무 짧은 시간 아닌가. 임종 과정부터 장례식까지 한 사람의 죽음에는 지극히 현실적인 문제들이 기다리고 있다. 리사 고이치는 환자의 위생 문제, 통증조절, 정서적 안정부터 서류 정리, 장례식장 결정에 이르기까지 임종 과정을 있는 그대로 기술하고 있다. 통곡도 원망도 없이 고이치 가족이 그 모든 일들을 겪어내는 과정은 뜻밖의 감동을 안겨준다. 그들이 주고 받는 말과 심지어 침묵 속에서도 가족에 대한 배려와 애정을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엄마가 거실 한가운데 호스피스 침대에 누웠을 때 우리 식구는 전부 시계만 보았다. 매일매일. 엄마도 마찬가지였다. “나 아직도 여기에 있니?” “네, 어머니. 아직 여기에 있어요.” “빌어먹을.” 그러고 나서 우리는 TV 보는 일로 돌아갔다. (153~154쪽)
사랑하는 사람과 온전히 작별(사별)할 수 있으려면 얼마간의 시간이 필요할까. 그 시간을 헤아려 보는 일부터가 힘겨운 일일 것이다. 14일. 시간으로 치면 336시간. 이 책을 펼치기 전에 당신은 어떤 특별한 에피소드(이를 테면 마지막 가족여행이나 임종을 앞둔 환자의 소원 성취 같은 영화적 요소)를 기대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책에 그런 특별함이나 넘쳐 흐르는 감정 같은 건 없다. 고이치 가족은 차분하고 그들의 시간은 일상적으로 흐른다. (환자의 기저귀를 갈거나 마지막 며칠에 모르핀을 주사했던 것 말고는) 밥을 먹고 TV를 보고 이야기를 나눈다. 놀랍게도 농담을 주고 받기까지 한다. 그것도 거의 매 순간, 농담이 섞이지 않은 대화는 불가능하다는 듯이. 처음에 나는 이들의 태도가 익살을 위장한 슬픔에 불과할 것이라고 여겼다. 이 상황에 저런 농담이 가능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얼마쯤 책을 읽어나가면서 나는 점점 더 놀라게 되었다. 고이치 가족은 우스갯말이 일상화된 사람들이었고 그들은 계속 하던 대로 했다. 그것은 고이치 가족만의 특별한 유대였고 죽어가는 어머니에게 보여줄 수 있는 최선의 모습이었다.
엄마는 자신의 인생에서 마지막 2주 동안 집을 찾아오는 모든 사람과 주먹 인사를 나눴다. (...) 그 2주 동안 엄마는 누구에게도 “굿바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냥 “또 보자고!”라고 했다. (80쪽)
그들만의 방식으로 작별하고 애도하는 고이치 가족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무엇보다도 놀라운 건 죽어가는 사람의 태도였다. 밀리 고이치, 여든다섯의 이 할머니는 정말로 명랑하고 엉뚱하다. 죽음을 며칠 앞두고 있는 사람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이다. 이 엉뚱하고 기발한 할머니는 사람들이 방문할 때마다 카메라에 자신의 모습과 마지막 인사말을 담게 한다. 커튼을 치거나 걷게 하면서 빛을 조절하고 카메라 각도까지 지시하면서. 장례식에서 입을 옷을 결정했다면서 <와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적힌 흰색 운동복을 가족들 앞에 펼쳐보이기도 한다. 이 사랑스러운 할머니는 자신의 장례식을 인생의 작은 이벤트쯤으로 여기는 것 같다. 의식이 흐릿해지기 전까지 밀리 할머니는 두렵거나 초조한 기색도 비치지 않는다. 오히려 홀가분해 보이고 들떠 보이기까지 한다. 정말 쿨해 보이지만 그 모습이 너무나 꾸밈이 없어서 지켜보는 이를 안심시킬 정도이다.
누군가의 죽음을 기다리는 일은 케이크 굽기, 빨래 말리기, TV 유선 설치 기사 기다리기와 전혀 다르지 않다. 자리에 앉는다. 시계를 본다. 그리고 기다린다. 우리는 죽음이 오늘, 내일, 다음 주, 혹은 그다음 주 언제 일어날지 모르기 때문에 모든 것을 보류하고 있어야 한다. 그러더가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어느 날에 결국 일어난다. (153쪽)
그럼에도,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은 눈물샘을 자극한다. 울음을 터뜨리지 않을 수가 없다. 슬프다. 죽어가는 사람과 그를 지켜보는 사람들의 기다림. 유머로도 덮을 수 없는 환자의 똥오줌 냄새, 수치심, 죄책감, 장례 비용 문제( 마음에 드는 관을 가리키는 고이치 가족에게 직원은 그 관은 너무 값싼 것이며 영세민들이나 들어가는 관이라고 말한다), 다가올 성탄절 행사나 값비싼 공연 티켓에 대한 걱정(엄마가 죽어가는 와중에) 같은 것들. 그러니까 한 사람의 죽음은 물리적이고 또한 세속적인 문제들로부터도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와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적힌 우스꽝스러운 운동복 같은 걸 입고 관 속에 눕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가족들 체면을 구기게 될 테니까)을 아프게 일깨운다. 책을 읽으면서 오래 전에 죽고 없는 나의 어머니를 떠올렸다. 손 잡아주는 이도 사랑한다고 귓가에 속삭여주는 이도 없이 홀로 마지막 숨을 쉬었을 사람. 죽음은 공평하게 주어지지만 누구나 임종의 순간에 가족의 애정과 존중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유머와 신뢰와 애정과 극진한 보살핌이 있어도 죽어가는 일은 살아가는 일만큼이나 외롭고 지난한 과정이라는 것을 이 책은 몸소 보여준다. 그럼에도, 그렇기에 더욱 사랑하는 사람의 애정과 보살핌이 필요하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