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미너리스 2
엘리너 캐턴 지음, 김지원 옮김 / 다산책방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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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년 맨부커 수상작이다. 점성술에 기반한 독창적인 기법의 인물 설정, 천체의 운행을 따르는 정교한 이야기 구조, 서사와 극의 조화가 돋보이는 수작이다. 탐광 열풍이 한창이던 19세기 중반 뉴질랜드 남섬의 광산 마을 호키티카를 배경으로 하는 이 소설은 인간의 탐욕이 불러들인 파멸의 과정을 점성학적으로 풀어낸다. 각각의 별과 행성에 배치된 인물들의 기질과 욕망이 충돌하고 연쇄하면서 의문의 사건의 전말을 밝혀내는 구조는 흡사 오우로보로스를 연상시킨다. 이야기의 배경지인 <호키티카>라는 지명은 마오리족 언어로 <한 바퀴. 그리고 다시 시작으로 돌아온다>라는 뜻이다. <호키티카>는 천체의 순환 구조를 따르는 서사 구조를 암시하고 있다. 하나의 사건에 대한 각각의 시점이 교차하고 중복되면서 이야기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순환한다. 그리고 다시 시작 지점에서 와서 멈춘다.

  

    마침내 타우웨어는 손가락을 들어올려 허공에 원을 그렸다. 손가락 끝이 처음 시작했던 자리로 오자 그는 날카롭게 돌아온 자리를 손가락으로 찔렀다. 하지만 원에서 어떤 지점을 특정할 수는 없는 법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원에서 자리를 점찍는 경우는 원을 부수기 위해서이고, 그렇게 되면 더 이상 원이 아니니까. “한 바퀴. 그리고 다시 시작으로 돌아온다.” (1, 157)

 

     1865년 겨울. 오두막에 은거하던 사내 크로스비 웰스의 사체와 함께 발견된 4천 파운드의 황금이 이야기의 발단이 된다. 탐광꾼이 되기 위해 호키티카에 도착한 월터 무디는 여정을 푼 호텔에서 일명 크로스비 웰스 사건에 관련된 열두 명의 남자들과 만나게 된다. 크로스비 웰스 사건과 관련해 밀담을 나누던 이들은 무디가 타고 온 배의 선장이 크로스비 웰스 사건의 용의자 프랜시스 카버라는 것을 알고 무디에게서 작은 정보라도 캐내려고 한다. 그러는 과정에서 무디와 열두 명의 남자들은 서로의 비밀을 공유하고 크로스비 웰스 사건의 퍼즐을 맞춰가기 시작한다. 단순한 자살로 보였던 웰스의 죽음에는 간통, 협박, 살인, 복수의 드라마가 숨겨져 있다.

 

    그들의 믿음은 더더욱 기발해지고, 그들의 가설은 더욱 비현실적이 되었으며, 그들의 논의는 점점 더 엇나갔다. 확인되지 않은 의심은 시간이 흐르며 점점 더 제멋대로이고 불합리해지는 경향이 있고, 기분에 따라 변하곤 한다. 일반적으로 미신이 지닌 모든 특성을 갖게 되는 것이다. (2, 10)

 

     주인공이 없는 동시에 모두가 주인공이고 사건의 피해자가 용의자가 되고 다시 용의자가 피해자로 둔갑하기도 하는, 하나의 사건을 관점만 달리해 끝없이 변주하는 방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이해관계에 얽힌 열두 명의 인물들의 이야기는서로 다른 위치에서 별자리를 그려보는 것처럼 다층적인 감상과 해석의 여지를 마련해 준다. 이게 무슨 그림일까 한 점 한 점 따라가면서 하나의 커다란 그림을 완성해 나간다는 기분이 든다. 한 문단 한 문장 불필요한 부분 없이 치밀하게 이야기를 직조해 나가는 작가의 능란한 솜씨가 이야기에 풍부한 음영을 더하고 있다.

 

    그는 지도에 없는 외로운 해변에 금이 보이지 않게 숨겨진 채로 반짝이는 것을 상상했다. 널따란 바다 위로 노란 보름달이 떠오르는 것을, 골짜기 사이를 말을 타고 달리고, 맨땅에서 잠을 자고, 나무로 된 선광대로 물을 거르고, 깜부기불 위에서 막대 주위에 광부의 반죽을 감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했다. 자신이 찾은 부가 인류와 인류의 역사보다도 오래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는 건 얼마나 근사한 일일까, 그걸 자신의 두 손으로 땅에서 파낸다는 것이 얼마나 굉장한 일일까 그는 생각했다. (2, 544)

 

    19세기 중반 뉴질랜드 사회상, 중국의 아편전쟁까지 뻗어나가는 복잡한 이야기 구조, 톱니바퀴처럼 얽혀 있는 수많은 등장인물들. 천이백여 쪽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이 부담스럽다는 예비 독자도 있겠는데, 걱정할 것 없다. 이야기 전개가 빠르고 앞서 밝혔듯이 하나의 큰 퍼즐을 맞춰나가는 구성이어서 한 번 읽기 시작하면 멈출 수가 없다. 개인적으로는 굉장히 몰입해서 읽었다. 다 읽고 나서도 얼마간 이야기의 여운에 붙들려 있었다. 탐욕에 눈 먼 인간의 파멸이라는 거칠고 투박한 소재를 매끄럽게 제련해 낸 작가의 솜씨가 놀라울 따름이다. 각각의 인물이 지닌 기질과 의지가 하나의 사건, 한 사람의 운명에 어떤 식으로 작용하고 개입하는가를 매혹적으로 서술해 냈다. 소설이 이룰 수 있는 최선의 것을 구현하고 있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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