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불멸주의자 - 인류 문명을 움직여온 죽음의 사회심리학
셸던 솔로몬.제프 그린버그.톰 피진스키 지음, 이은경 옮김 / 흐름출판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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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죄 없는 짐승들을 죽여언젠가 술자리에서 사냥을 즐기는 친구에게 물었던 적이 있다그냥취미지돌아온 대답은 그랬다그래세상에는 재미 삼아 새들을 쏴 죽이는 사람들이 있고 영문을 모른 채 죽어버리는 생명들이 있다예고 없이 날아온 총알을 맞고 별똥처럼 떨어지는 죽은 새들을 떠올리면 무슨 만화영화의 한 장면처럼 비현실적인 통증이 느껴지는데그들의 죽음이 결코 우리의 죽음나의 죽음과 무관하지 않아서이다언젠가 나도 저들의 신세를 면치 못하게 되리라는 인식과 아직까지는 죽음이라는 총알이 날아들지 않았다는 안도감이 동시에 찾아드는 것이다.

 

   죽음 그 자체보다 누구나 언젠가는 죽는다는 인식이 인간 존재 핵심에 존재하는 고뇌이다그것이 우리를 인간답게 만들고 끊임없는 불멸 추구의 길로 이끈다그 탐색은 인간 역사의 과정에 심오한 영향을 미쳤고 오늘날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330)


    <공포 관리 이론 terror management theory>을 기반으로 인류 문명의 가치와 의미를 조명하는 이 책은 인간 행동의 핵심을 죽음의 공포에 대한 무의식적인 저항 반응으로 설명한다공포 관리 이론에 따르면사냥꾼 친구가 게임하듯 짐승들을 쏴 죽이는 것은 죽음 불안을 해결하려는 무의식적인 노력이다다른 동물들을 하등한 존재로 취급하고 그들의 삶과 죽음을 통제한다는 우월감 속에서 우리가 그들과 같은 운명이라는 사실을 부정하는 것이다살생을 십악의 하나로 여기는 불교에서라면 사냥은 천벌 받을 짓이다기독교도들에게는 부처님을 섬기는 불교야말로 지옥불에 던져버려야 할 망령이다이와 같이 인간은 모두 저마다의 문화적 세계관과 신념 체계 속에서 삶의 유한성에 대처해 나간다는 것이다.

 

   죽음을 초월하려는 갈망은 서로를 향한 폭력을 부채질한다내가 속한 문화적 사물 체계를 통해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공포를 억누르지만전혀 다른 신념 체계로 이 공포에 대처하는 사람들도 있기 마련인 것이다그들의 진실을 인정하는 순간불가피하게 우리들이 아는 진실에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다인생은 의미를 담고 있고 인간은 가치 있고 영원한 존재라는 불안정한 관점을 유지하려면 어쩔 수 없이 우리들만의 진실을 믿어야만 한다. (206)

 

   <공포 관리 이론>의 기초가 된 어니스트 베커Ernest Becker의 학설과 그를 뒷받침하는 광범위한 연구 성과들이 고대와 현대를 아우르며 죽음 공포에 대한 인간 행동과 그 결과물들을 보여준다책에 의하면 죽음에 대한 의식은 예술과 문화종교철학전쟁섹스에 이르기까지 인간 삶의 전반에 걸쳐 크고 작은 영향을 미친다.

 

   모욕을 받을 때 인간은 자존감을 잃고 의미 있는 세계에 사는 중요한 존재가 아니라 그저 미약한 생물로 전락한다소말리 족 속담에는 모욕은 죽음보다 나쁘다전시 상황에서 모욕적인 언사는 총알보다 더 큰 상처를 준다라는 말이 있다총알은 육체를 죽이지만 모욕은 덧없는 존재에 불과하다는 공포를 억누르고 있던 중요한 감각을 깬다인류 역사상 상처 입은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한 보복 전쟁은 수없이 많았다. (218)

 

    <죽음 공포 이론>은 생경하거나 참신한 주장은 아니다인류가 생긴 이래 죽음을 부정하고 초월하려는 다양한 시도는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고다른 동물 다른 사람이 죽어가는 것을 보면서도 자신의 죽음만은 부정하는 <슬픈 불멸주의자>가 인간이니까책에서는 죽음 공포가 인간 행동에 미치는 중심 역할을 분명히 깨달음으로써 얻는 삶에 대한 긍정적인 대응책까지 마련해 놓고 있다물론 <슬픈 불멸주의자>들에게는 썩 명쾌한 답은 아닐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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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되고 싶지 않다
마르탱 파주 지음, 김주경 옮김 / 열림원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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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발상의 상상력이 돋보이는 이 소설집은 놀랍고아름다우며기묘하다앞뒤가 뒤바뀌고 안과 밖의 경계가 허물어진 세계는 이상하면서도 이미 여러 번 꾸었던 꿈인 것처럼 이질감이 없다이야기 바탕에 깔려 있는 인간 본성과 실존에 대한 보편적인 질문들이 도무지 말이 안 되는 정황들에 묘한 설득력을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선생님은 살아 있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실은 살아 있지 않아요사진사로서그리고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선생님께 한 가지 말씀드리자면무엇이든 눈에 보이는 대로 다 믿지 말아야 한다는 거예요. (...) 좀 웃어주시겠어요시체들은 대부분 너무 근엄한 표정을 짓고 있거든요앞으로는 그런 것도 차차 변하겠죠. (49~ 52)


   표제작 <아무도 되고 싶지 않다>의 주인공 필립은 거리에서 만난 남자로부터 이상한 제안을 받는다. “당신이 되고 싶습니다.” 그 누구도 아닌 필립이 되기를 원한다는 낯선 남자의 제안은 이상하면서도 간단하다그 자신이 필립의 자리를 대신하려면 필립 또한 필립이 아닌 다른 누군가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자기 자신이 아닌 다른 누군가가 되어보라는 제안 앞에서 고민하던 필립은 마침내 아무도 아닌 사람이 되기를 택하고 해방감을 얻는다.


 그는 이제 아무도 아닌 사람이었고, 왠지 다시 태어나는 기분이 들었다. (87)

   

   자고 일어나보니 살해당한 시신이 되어 있는 남자호모사피엔스가 아닌 멸종 종족이라는 선고와 동시에 강제 보호를 받게 된 남자매순간 살인을 시도하는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지켜내야 하는 남자 등 자기 정체성과 실존을 위협 받는 상황에 처한 주인공들이 만들어내는 기묘한 소극은 가면적 자아라는 피곤한 책임감을 지고 사는 현대인들에게 특별한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마르탱 파주 특유의 감각적 화법과 블랙유머가 살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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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러 넥스트 도어
알렉스 마우드 지음, 이한이 옮김 / 레드박스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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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작품을 평하는 자극적인 문구들에 혹하는 독자들이 많을 것 같다스티븐 킹은 이 소설에 대해 <지옥처럼 무섭다>고 했고 영국의 모 일간지는 <사악하고 눈을 뗄 수 없으며 독창적>이라고 평하고 있는데이거 하나는 단언할 수 있다아마도 쉽게 연상되는 그런 지옥의 공포나 사악함은 찾아볼 수 없을 것이다살인자가 등장하는 작품치고는 조용하고 단조롭고 무심하다웃음을 꾹 참고 있는 것도 같고 숨을 억누르고 있는 것도 같은 간지러운 긴장감만이 스릴러의 명분을 떠받치고 있다.


   앨리스를 옮길 때 미소 띤 그녀의 입매가 다시 벌어지는 것이 보였다피부가 수축돼 머리선 뒤로 넘어가 있었다그녀의 사랑니가 보였고그는 살가죽 뒤에 뼈가 있다는 사실을 고통스럽게 인지했다나는 네 기분을 몰라내 사랑책을 더 읽어야겠군내가 아는 건 일단 그녀가 지닌 본래의 수분이 빠져나가고 나면 내가 그걸 어쩌기에는 너무 늦고그녀는 가망이 없다는 것뿐이야그는 안락의자에 그녀를 부드럽게 앉히고자기 목에 둘러진 그녀의 팔을 풀었다그녀가 속삭이듯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내며 앉았다그녀의 머리칼은 가늘고 파삭거렸으며눈은 눈두덩 안쪽으로 푹 꺼져 있었다너는 아마 곧 카펫 위로 부서져 떨어지는 살갗과 뼈 외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될 거야결별에 대해 슬슬 생각해야 할 때가 된 것 같아. (120)

   

   런던 외곽의 오래된 6층짜리 아파트에서 벌어지는 실종 살인 사건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이 소설은 살인자가 아파트 주민이라는 암시를 주면서 시작한다책을 펼친 동시에 탐정 역할을 떠맡은 독자가 비밀스러운 여섯 용의자의 삶을 추적하는 순간에도 <연인>이라는 가칭으로 등장하는 살인자의 범행은 계속 이어지면서 극적 긴장감이 유지된다앞서 밝혔듯이 그 긴장감이라는 것이 강렬하지는 않다이 소설에 배경음이 깔린다면 아마도 슈베르트의 <마왕같은 곡이 어울릴 것 같다음침한 듯 경쾌한 리듬이 소설을 끌고 간다.

 

  그들은 말없이 모두 함께 시체 곁으로 모여들었다그리고 그를 타일 벽에 기대 뉘였다그의 몸에서 물이 뚝뚝 떨어졌다오물이 그의 코와 입에서 느리게 흘러내렸다좀비처럼 녹갈색 침이 흘렀다안경은 없어진 상태였다안경을 다시 찾으려면 변기 안으로 손을 집어넣어야 했지만아무도 자원하지 않았다그들이 그를 끌어낸 이후 계속 뜨여 있는 눈은 그에게 더는 안경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분명히 알려주고 있었다. (...) 셰릴이 가스레인지 옆에 서서 멍하니 손가락을 머리에 난 혹으로 가져갔다그리고 물었다. “이제 우린 뭘 해야 하죠?” (264)

 

   눈치 빠른 독자라면 이 소설이 범인을 감추는 데 주력하는 작품은 아니란 걸 알아챌 것이다사건 공간이나 인물이 제한적이어서 범인을 추리하는 건 일도 아니다이 소설의 방점은 낡고 오래된 아파트에 숨어든 여섯 주민의 특별한 연대에 찍을 수 있겠다. <아무것도 묻지 않고 세입자를 받는 이런 종류의 집>에 모여든 사람들의 처지는 책을 읽지 않고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자폐 성향이 있는 남자악덕업주의 돈을 들고 내뺀 여자좀도둑질로 연명하는 가출 소녀정치적 망명자 등 각자의 사연을 안고 있는 인물들이들이 한마음으로 증오하는 집주인 로이의 우발적인 죽음으로 한순간 공모자가 되는데이 과정에서 서로의 상처와 외로움을 나누는 모습이 잔잔한 감동을 준다.

 

   실망이야. 그런 온갖 문제를 겪고도 나는 지칠 정도로 사람들에게 사랑과 관심을 온통 쏟아부었는데, 그들은 어쨋든 날 떠났어. 내가 그녀를 원망하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야. 먼저 끝내는 것이 늘 최선이었어. 나는 지쳤어, 너무 진저리가 난다고. 떨어진 몸 조각을 줍고, 애인을 옮기고, 그녀에게 애정을 쏟고, 희망을 품지만, 그래도 결국 여전히 혼자인 신세지. (179~180쪽) 



   비위가 틀리는 잔인한 장면이 등장하기도 하지만 그런 장면에서 작가가 원초적이고 즉각적인 감정적 흥분을 의도한 것 같지는 않다.소설 곳곳에 내장 썩는 냄새를 풍기는 주범인 살인자일명 <연인>의 엽기적인 행태는 공포스럽거나 사악하다는 인상보다는 안타까움과 연민을 자아낸다영화 <더 보이스>(The Voices, 2014)의 제리를 연상시키기도 하는 <연인>은 배신의 상처로 인한 고립 속에서 처절한 외로움에 휩싸인 인간의 비극을 극단적인 방식으로 보여주고 있다그런 의미에서라면 이 책은 충분히 무섭다지옥처럼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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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는 왜 다섯 살 난 동생을 죽였을까? - 평범한 사람들의 기이한 심리 상담집
타냐 바이런 지음, 황금진 옮김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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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제부턴가 심리적인 문제를 토로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인간의 정신을 다루는 분야도 세분화되고 있다확실히 크고 작은 마음의 병을 앓는 사람들이 늘어가는 추세인 것 같다그럼에도 여전히 정신병에 대한 해묵은 편견은 남아 있다병은 알려야 낫는다는 옛말도 정신병에만큼은 해당되지 않는다정신병에 대한 무지에서 기인한 혐오와 두려움이 사람들의 마음속에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를 그어놓고 싶어하는 것 같다인간의 정신세계를 그렇게 명확히 규정하는 것이 가능한가임상 심리학자인 타냐 바이런이 이십대 초반이었던1989년부터 1992년까지 삼 년 간 이어진 임상 실습 기록을 담고 있는 이 책은 인간의 정신을 정상과 비정상으로 경계 짓는 것이 얼마나 무의미한가를 보여준다.

 

    이 책의 원제는 <THE SKELETON CUPBOARD>이다주방 찬장 안에 숨겨진 해골처럼 내밀하고 비밀스러운 인간 정신세계를 밝은 데로 끌어내면서 정신병에 대한 왜곡된 의식을 바로잡고 있는 이 책의 내용과 의도를 잘 드러내 주는 제목이라는 생각이다여섯 단락으로 이루어진 이 책에는 기이하고 안타깝고 충격적인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 등장한다심각한 자살충동에 시달리는 열두 살 소녀버림받았다는 트라우마 때문에 생모를 거부하는 여자홀로코스트의 악몽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노인,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시한부 환자 등 이른바 <비정상적인상태에 놓인 이들이 들려주는 특별한 인생담과 내면의 고백은 복합적인 감동을 일으키는 한편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건 무엇인가 하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소설 형식으로 전개되는 이 책은 잘 쓰인 소설 못지않게 몰입감이 대단하다매끄러운 구성력과 실재감 있는 서사인간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이 녹아 있는 이 책은 <한 번 잡으면 쉽게 놓을 수 없다>는 찬사가 허언이 아님을 증명한다타냐 바이런은 이 책에서 초보 임상심리사의 미숙함과 내면적 동요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환자를 상담하면서 몰랐던 자기 내면의 상처와 마주하는 경우도 감동적으로 그려냈다전문가적인 냉철함보다는 인간적인 면모를 부각하면서 상담자와 환자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를 부드럽게 허물고 있다.이 책이 주는 감동과 가치는 여기 있다책의 맨 처음을 장식하는 실비아 플라스의 말처럼우리 모두는 매달릴 수 있는 또 다른 영혼을 얼마나 필요로 하는가를 감동적인 방식으로 일깨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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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학교 : 자연과 연결되는 법 인생학교 How to 시리즈
트리스탄 굴리 지음, 구미화 옮김 / 프런티어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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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가 알랭 드 보통이 2008년 영국 런던에 처음 문을 연 <인생학교>(The School of Life)는 인문학적 사유와 감성을 기반으로 인생의 본질적인 문제들에 대해 고민하고 답을 찾아가는어른들을 위한 학교이다일정한 삶의 궤도 안에서 안주하면서 감동도 변화도 성장도 없는 보통의 어른들에게 지적이고 감성적인 자극을 통해 다채로운 생의 감각을 일깨우고 함께 성장해 나가자는 취지에서 시작된 <인생학교>는 강연과 책 출판 외에도 여러 프로젝트들을 진행하면서 세계 곳곳에 퍼져나가고 있다작년에는 서울에도 분교가 생겼다여행작가로도 활동하고 있는 방송인 손미나 씨가 분교장을 맡고 있다관심 있는 분은 아래 홈페이지를 찾아보면 더 자세한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  인생학교(서울)  http://www.theschooloflife.com/seoul          


 

    지금 소개하는 책 자연과 연결되는 법은 인생학교(The School of Life) How to 시리즈 중 한 권이다기계적이고 인공적인 생활환경 속에서 점점 자연과 멀어지고 있는 현대인을 위한 자연감수성 회복 프로젝트라고 할 수 있겠다항법사이자 탐험가로서 긴 세월 자연에서 체득한 지혜를 책과 강연방송 등 각종 매체를 통해 전하고 있는 트리스탄 굴리Tristan Gooley는 이 책에서 자연과 교감하는 구체적인 방법들을 소개하면서 자연 친화적인 삶의 의의와 그 이점들에 대해 폭넓은 사유를 펼쳐 보인다.

 

    당신이 길을 찾을 때 어떤 나무를 이용했다면 이제 당신과 그 나무는 특별한 관계가 된다자꾸만 그 나무가 눈에 띄고태양과 바람그리고 당신이 걷고 있는 길이 그 나무와 어떤 관계인지도 잘 알게 된다. (74)

 

    트리스탄 굴리가 소개하는 자연과 연결되는 방법들은 초등학교 자연 시간에 받은 관찰학습 같기도 하고 명상 같은가 하면 여행 같기도 하다이 얇은 책은 그 모든 것을 담고 있다자연 탐험가로서 살아온 저자의 지혜와 통찰삶에 대한 굳센 믿음 같은 것이 문장 안에 살아 꿈틀거리고 있다우직하고 튼튼한 목수의 망치질 같은 명료하고 힘찬 문장들이 둔감한 감각들을 두들겨 깨운다.

 

    게임은 여러 가지 조건을 통제한 상황에서 인생의 작은 한 부분을 보여준다마치 솜씨 좋은 마술사처럼 우리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모습들을 보여준다자연에서 벌이는 게임도 마찬가지다누군가가 우리에게 숲에 들어가 땅에서 나는 냄새를 맡아보라고 권하면 우리는 당연히 싫다고 할 가능성이 높다하지만 숲에서 숨바꼭질 같은 즐거운 게임을 하다 보면 누구나 썩어가는 낙엽 냄새를 평생토록 사랑하게 된다. (72)

 

    트리스탄 굴리가 제안하는 자연 친화적인 삶은 능동적이고 활동적이다이 책을 읽는 독자에게도 역시 적극적인 태도가 필요하다트리스탄 굴리는 책 곳곳에 독자를 위한 실천 과제들을 마련해 놓았는데약간의 시간과 주의를 기울이면 해낼 수 있는 간단한 것들이다.깨어 있는 감각과 적극적인 주의력이면 충분하다대부분의 과제들이 단순하고 시시해 보이기까지 하지만 일단 해보면 그 작은 실천에서 얻을 수 있는 커다란 성취감과 순수한 기쁨보다 깊고 넓어진 시각에 놀라게 될 것이다.

 

    우리의 뇌는 움직이는 것들에 주목하도록 학습돼왔다그래서 일부러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것들을 찾으려고 각별히 노력을 해야 미묘하게 다른 세상이 보인다똑같은 길을 다시 한 번 산책하면서 모양과 색깔이 가장 지루해 보이는 것들을 찾아보는 경험도 해보길 권한다. (82)


    트리스탄 굴리가 말하는 자연은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이다자연과 거리가 멀어 보이는 <건강비즈니스정치스포츠섹스폭력,문화...> 같은 삶의 요소들도 깊이 들여다보면 결국 자연의 연결고리 안에 있는 자연의 일부라는 것을 단순하지만 매력적인 방식으로 일깨운다자연과 긴밀한 관계를 맺는 일은 그러므로 우리를 둘러싼 복잡한 삶의 연결망을 좀 더 잘 이해하게 되는 길이라는 것이다트리스탄 굴리가 결국 책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삶에 대한 깨어 있는 태도이다. 우리가 깨어 있는 만큼 삶의 숨겨진 보물들을 누리는 기쁨 또한 커진다는 것이다. <우리가 먹는 것이 곧 우리다.>라는 문장이 책 속에 있다이 문장을 조금 바꿔서 이 책의 요지를 전해볼 수도 있겠다우리가 보고 듣고 의식하는 것이 곧 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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