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 나의 집 미래인 청소년 걸작선 46
조 놀스 지음, 최제니 옮김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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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열두 살 소녀 펀의 눈에 비친 가족의 모습은 정상이 아니다. 레스토랑 홍보에 열성인 아버지는 가족의 불만에도 아랑곳없이 온 가족을 동원해 홍보 활동을 계속한다. 엄마는 레스토랑 구석에 자리한 사무실에서 명상 도구들을 늘어놓고 명상에 몰두하면서 모든 현실과 거리를 두고 싶어한다. 어느 때보다도 펀에게는 엄마의 애정이 필요하지만 엄마의 애정은 막냇동생 찰리에게 돌아선 것만 같다. 대학 입학에 실패하고 레스토랑 사업을 돕고 있는 언니 역시 마음이 붕 떠 있다. 그나마 정서적 교감을 나누던 홀든 오빠마저 자기 고민에 빠져 벽을 치고 있다. 엄마의 관심과 애정을 앗아간 원흉인 찰리의 엄마 노릇까지 대신해야 하는 펀의 외로움과 불만에 극에 달해 있을 때 불의의 사고로 찰리가 세상을 떠나게 된다.

     나는 오빠가 사실을 얘기해주기를 기다렸지만, 오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팔로 무릎을 안은 채 쭈그리고 앉아 있을 뿐이었다. 만일 언니의 말이 사실이라면, 게이가 되는 게 어떤 느낌일지 궁금했다. 스스로 남들과 다르다는 걸 알았을 때, 그리고 그것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미움을 받는다면 어떤 느낌일까. (본문 중에서)​

     찰리의 죽음은 펀에게도 다른 가족에게도 큰 전환점으로 작용한다. 가족의 구멍을 메우던 찰리의 빈자리는 애써 외면해 왔던 가족 간의 갈등과 상처를 드러내고, 마음 속 감춰 두었던 불만과 상처를 풀어내면서 펀의 가족은 서로의 맨얼굴을 마주하게 된다.

    찰리가 전해주는 그 행복은 언제나 손에 잡힐 듯 가까이 있었는데, 나는 그걸 회피하느라 찰리의 인생을 허비했다. 언제나 행복한 찰리가 질투가 나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그동안 난 왜 그렇게 불행하게 살았던 걸까? 왜 그랬는지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지금은 진짜 불행이 무엇인지 안다. 그래서 나는 아빠가 절대로 오빠의 행복한 밤을 망치도록 내버려두지 않을 작정이었다. 그리고 내 하룻밤의 행복도. (본문 중에서)

 

     뜻밖의 사고로 가족원을 잃은 한 가족이 공통의 슬픔 속에서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 나가는 과정을 열두 살 소녀의 시선으로 들여다보는 이 소설은 전형적인 성장 서사의 흐름을 따른다. 무겁고 불편할 수 있는 이야기를 열두 살 소녀 특유의 생기 있는 목소리가 부드럽게 감싸고 있다. 막냇동생 찰리에 대한 시기심이 자책감으로 그리움에서 자기 성찰로 이어지는 과정은 그 시기를 지나온 많은 이들의 공감과 연민을 끌어내기에 충분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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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이토 씨
나카자와 히나코 지음, 최윤영 옮김 / 레드박스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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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가족 = 식구>라는 등식이 당연하게 여겨지던 시절이 있었다. 그 시절의 가족이란 한 집에서 하나의 밥상을 놓고 밥을 먹는 관계였다. 학교에서 일터에서 귀가한 가족 구성원이 둘러 앉아 하루의 피로를 달래고 정을 나누는 자리가 밥상머리였던 것이다. 반면에 오늘날의 가족에는 밥상이 부재한다. 가족이면서 식구는 아니고 식구이기는 하나 가족이라고 하기는 미묘한 다양한 동거 형태가 전통적인 가족의 의미를 갈아엎고 있다. 아버지와 딸, 딸의 연인이 한집살이를 하면서 벌어지는 일련의 해프닝을 그리는 이 소설은 보편적인 화법으로 이 시대 <가족>의 의미를 환기하는 한편, 그 바탕에는 어쩔 수 없는 사람 사이의 간격, 그 공백을 담담히 응시하는 쓸쓸한 정조를 깔고 있다.

 

     손에 닿을 정도로 가까운 곳에 그들의 포근한 식탁이 있다. 하지만 동시에 아버지에게 있어 그것은 영원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먼 지평선에 존재하는 정경이겠지. 왜냐하면 아버지에게는 이 없으니까. 물론 돌아가야 할 '장소는 있다. 하지만 그건 정말이지 오후 도서관의 할아버지들처럼, ’선택한것이 아니라 강요된것에 지나지 않는다. (본문 중에서)

 

    서른 중반의 미혼 여성 <아야>는 스무 살 연상의 돌싱남 <이토 씨>와 방 두 칸짜리 아파트에서 일 년째 한집살이 중이다.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두 사람은 어떤 사건을 기점으로 가까워졌는데, 그때까지는 어떤 정서적 교류도 없다가 순전히 서로의 성적 매력(이를 테면 “25센티미터...)에 이끌려서 연인이 되었다. 특별한 계획도 약속도 없이 서로의 생활을 침범하지 않으면서 무던한 일상을 이어가던 두 사람 앞에 아야의 아버지가 등장하면서 이들의 관계는 새로운 국면에 들어서게 된다.

 

    “OO은 도망가지 않는다.” 이토 씨의 입버릇이다. 분명 도망가지 않는 것은 세상에 많다. 하지만 그렇게 느긋한 자세를 취하는 동안, 혹은 보지 않는 척하는 사이에 존재 자체를 잃어버린 것이 많지 않을까. 결국 놓쳐 버리고 만 것이. 이토 씨에게는. (본문 중에서)

 

    미혼의 딸이 스무 살 연상의, 그것도 학교 급식실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미래 없는 남자와 한집에서 살고 있단 걸 알게 된 아버지와 두 연인의 우여곡절이 펼쳐질 줄 알았는데. 가족이면서 식구는 아녔던 아버지와 딸, 식구지만 가족이라기엔 애매한 이토 씨. 이들 세 사람이 한집살이를 하게 되면서 서로를 수용하고 이해해 나가는 과정이 뭉클하게 담겼다. 갈등의 불씨가 되어 마땅할 이토 씨는 오히려 위태로운 한 가족을 이어주는 역할까지 맡고 있다. 이야기 속에서 이토 씨가 밥을 짓고 반찬을 만드는 장면과 (연인의 아버지와 이토씨가) 한 자리에서 밥을 먹는 장면이 여러 번 등장하는 것도 그런 맥락에서 읽을 수 있겠다. 그러나 이토 씨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와 딸의 거리(아야와 아버지의 불화는 이토 씨의 존재와는 무관하다)는 쉽게 좁혀지지 않는다. 단지 밥을 같이 먹는다고 해서 온전한 가족이 되는 것은 아니라고, 연인의 방과 아버지가 머무는 방을 가로막고 있는 벽과 그 벽 너머 불편한 정적, 미동도 없이 닫혀 있는 문 같은 것이 대신 말해주고 있다.

 

     상자는 아버지 손에서 떨어져 공중에서 회전했다. 힘과 열로 인해 상자가 터진다. 터진 상자에서 무수히 많은, 반짝반짝 눈부시게 빛나는 작은 것들이 튀어나왔다. 그것은, 식기였다. 모두 식기였다. 자루가 긴 스푼. 과일을 먹기 위한 작은 포크. 검은 옻칠을 입힌 식사용 젓가락. 끝에만 톱날이 달린 큰 나이프……. 식사를 위한 온갖 도구가 골판지 상자에서 튀어나와 유유히 허공을 떠돌았다. (본문 중에서)

 

    외면적으로 이 소설은 아버지와 딸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읽기에 따라 다양한 관점에서 생각할 여지가 많다. 아버지도 아야도 이토 씨도 <밥상머리>가 부재하는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쓸쓸한 자화상을 보여준다. <밥상머리>가 사라진 자리에는 침묵과 무관심으로 봉인된 진한 허기가 쓸모를 잃고 늘어가는 식기들처럼 차가운 몸을 맞대고 숨죽이고 있다. 이 시대의 온전한 가족의 의미를 묻고 있는 이 소설은 제8회 현대소설 장편 신인상을 수상하면서 찬사를 받았다. 분명 좋은 소설이다. 다만 도치법으로 일관하는 번역체 문장과 쉼표의 남용이 독서의 호흡을 방해하고 이야기의 맛을 반감시킨 것 같아 아쉽다. 그럼에도, 불길에 휩싸인 고향집에서 아버지의 상자가 열리고 그 안에서 갖가지 식기들이 번쩍이며 허공으로 치솟는 장면은 단연 압권이다. 이 장면 하나만으로 모든 것이 용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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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가 미안하다고 전해달랬어요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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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베라는 남자>로 전세계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은 프레드릭 배크만의 후속작이다. <오베라는 남자>는 사회성이 부족한 중년 남성 오베가 이웃과 융화되어 가는 과정을 작가 특유의 유머 감각과 온정적 시선으로 그려낸 소설이다. 이번 작품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읽힌다. 저마다의 상처를 보듬고 살던 소외된 사람들이 특별한 계기를 통해 마음의 빗장을 여는 과정을 일곱 살 소녀의 시점에서 풀어낸다.

 

      잠시 후에 교장선생님이 남자아이와 엘사에게 서로 악수하고 사과하라고 하자 할머니가 벌떡 일어나면서 물었다. “엘사는 도대체 뭣 때문에 사과해야 되는 거요?” 교장선생님은 엘사가 남자애를 도발했으니 일말의 책임이 있다고, 남자애는 감정 조절에 문제가 있는 아이라고 했다. 바로 그때 할머니가 지구본을 집어서 교장선생님에게 던지려고 했는데, 마지막 순간에 엄마가 할머니의 팔을 붙잡는 바람에 지구본이 컴퓨터에 부딪쳐서 모니터가 박살 났다. “당신이 날 도발했잖아!” 할머니는 엄마에게 잡혀 복도로 끌려 나가면서 교장선생님에게 고함을 질렀다. “나는 감정 조절을 못 하는 사람이라고!” (99)

 

     주인공 소녀 엘사는 여느 일곱 살 아이와는 조금 다르다. 어른들의 말을 자르고 맞춤법의 오류를 지적하고 그것도 모자라 빨간펜을 들고 다니면서 도로 간판이나 식당 메뉴판의 언어적 오류를 직접 수정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다. 엘사의 마음속에도 보이지 않는 빨간펜 같은 것이 있어서 엘사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에 일정한 규칙을 부여한다. 엘사와는 반대로 일흔일곱의 외할머니는 마치 세상의 규칙을 깨기 위해 존재하는 사람처럼 보인다. <할머니는 모노폴리 게임을 할 때 속임수를 쓰고> <르노 승용차로 버스 전용 차로를 달리며> <이케아에 가면 노란색 쇼핑백을 슬쩍하고> <공항에서 수하물을 찾을 때 안전선 밖으로 나와 서 있지 않>으며 <일을 볼 땐 화장실 문을 닫지 않는다>. 청결과 질서에 집착하는 이웃의 현관문에 피자 조각을 걸어놓는가 하면 한껏 치장한 이웃의 고급 원피스에 페인트총을 쏘면서 즐거워한다. 자기만의 틀에 갇힌 외톨이 소녀 엘사에게 그런 할머니는 천하무적 <슈퍼 히어로>이다. 이 멋진 할머니는 엘사에게 상상 속 동화 나라의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세계의 다양성과 열린 마음으로 이웃을 포용하는 지혜를 일깨워 준다.

 

    현실 세계 속 사람들은 끔찍한 일이 벌어지면 슬픔과 상실감과 심장이 아리는 고통이 시간이 지나면 차츰 가시겠지라고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가 않다. 슬픔과 상실감은 변함이 없는데, 그걸 평생 간직하고 살아야 한다면 어느 누가 버틸 수 있을까. 슬픔으로 마비되지 않겠는가. 그래서 우리는 결국 슬픔을 가방에 넣어서 두고 올 만한 장소를 찾아 나선다. 그런 장소가 바로 미플로리스다. 슬픔으로 가득한 큼지막한 짐을 질질 끌며 사방에서 나그네들이 한 명씩 천천히 걸어오는 곳. 가져온 짐을 내려놓고 일상으로 돌아가는 곳. (330~331)

 

     죽음을 앞둔 할머니가 세상과 불화하는 손녀에게 남기는 특별하고 가슴 찡한 메시지를 담고 있는 이 소설은 <오베라는 남자>의 동화 버전이라고 봐도 되겠다. 현실 세계(어른의 세계)와 동화 속 세계(아이의 세계)의 이야기가 대립하거나 포개지면서 극적 긴장감을 고조시키고 이야기의 명암을 부각시킨다. <깰락말락나라> <미플로리스> <미아우다카스><미레바스><미모바스><미바탈로스><미아마스> <워스> <울프하트> 같은 재미있고 이상한 이름들이 현실의 경계를 허물고 쏟아지는데 처음에는 혼란스럽다는 인상을 받을 수도 있겠다. 엘사의 표현에 따르면 <고품격 문학작품을 충분히 읽은 사람에겐 복잡한 문제도 아니지만> 말이다.

 

    “왜 전기면도기를 엉뚱한 서랍에 넣었어요?”“무슨 소린지 모르겠구나.”엘사가 보기에 무슨 소리인지 빤히 아는 눈치인데도 그녀는 이렇게 대답한다. “켄트 아저씨가 원래 첫 번째 서랍에 두지 않느냐고 하니까 아줌마는 원래 두 번째 서랍에 둔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아저씨가 나가니까 이번에는 세 번째 서랍에 넣었잖아요.” “그래, 그래. 내가 아마 그랬을 거야. 아마도 그랬겠지.”“ 왜 그랬어요?”“그이가 큰 소리로 내 이름을 부르면 좋으니까.” (440)

 

    또 다른 버전의 <오베>들이 이 소설에는 여럿 등장한다. 이웃의 원성에도 아랑곳없이 자기만의 원칙을 내세우는 브릿마리, 전쟁에서 얻은 끔찍한 상흔 때문에 강박적이고 페쇄적인 삶을 사는 울프 하트, 불의의 사고로 가족을 잃고 단절적이고 자기파괴적인 생활을 하는 여자 등 오랜 슬픔의 그림자가 점령한 <미플로리스>(슬퍼하다라는 뜻) 주민들에 대한 작가의 따뜻한 시선이 이야기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프레드릭 배크만이 전작에서 보여준 오베식 까칠한 유머 감각과 가독성 좋은 간결체 문장도 다시 한 번 그 진가를 발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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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로디 - 사랑의 연대기
미즈바야시 아키라 지음, 이재룡 옮김 / 현대문학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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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스 문학을 전공한 일본인 학자 미즈바야시 아키라가 몇 년 전 세상을 떠난 그의 개 멜로디를 추억하면서 쓴 책이다. 생후 두 달부터 12년을 함께 한 반려견에 대한 살뜰한 애정이, 마음을 두드리는 선율이 행간마다 흐르고 있다. 그저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다. 실제로 책 곳곳에서 미즈바야시의 음악적 감수성을 확인할 수 있다. 개에게 붙여준 이름만 보아도 그의 삶에서 음악이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큰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십대 후반부터 심취한 프랑스어 때문에 모국어인 일본어에 소홀해지면서 자연히 무리에서 소외된 그의 삶에 큰 위안을 준 것이 음악이었다고 한다. 미즈바야시는 이 책에서 모차르트의 아리아와 말러의 교향곡, <장미의 기사> 같은 오페라를 곁들인 음악적인 사유와 감성을 보여준다. 음악에서만 그치는 게 아니다. 문학과 철학, 사회학, 그림, 영화 등 전방위적인 관점에서 개와 인간의 관계를 성찰하고 있다. 예술적 감수성과 철학적 사유, 개인적 추억이 어우러진 특별한 회고록이라고 하면 될까.

 

    율리시즈와 아르고스의 은밀한 재회의 장면을 읽을 때마다 내 마음 깊은 곳을 울리는 점은 인간의 눈으로는 알아볼 수 없었던 늙고 초라한 거지의 모습을 한 율리시즈의 겉모습이 아르고스의 태도와 애정에는 전혀 어떤 영향도 끼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늙은 개가 율리시즈에게서 보았던 것은 그가 왕이건 거지였건 간에 역사적으로 형성되거나 인위적으로 구성된 겉모습을 거둬낸 후에 마지막으로 남는 한 개인의 존재인 것이다. (본문 중에서)

 

    완전한 일본인도 프랑스인도 아닌 <경계인>이라는 자기 인식 속에 살던 미즈바야시는 멜로디와 함께하면서 야생과 문명의 경계를 떠도는 개의 존재에 깊이 공감하고 연민을 느끼게 된다. 개의 애매한 사회적 존재감에 대한 의식은 인간에 대한 성찰로 이어진다. 미즈바야시는 멜로디와의 특별한 교감의 순간들을 회고하면서 동물을 영혼이 없는 기계라고 했던 데카르트의 입장에 반감을 표하기도 한다.

 

    개는 기다린다. 멜로디, 그는 기다리는 존재, 오직 기다리는 일밖에는 할 것이 없는 존재이다. 그의 일생은 기다림으로 이뤄졌을 것이다. 그런데 무엇을 기다리나? 그가 애착을 느끼는 사람이 돌아오길 기다리는 것. (본문 중에서)

 

    채플린의 영화 <개의 삶>, 하치 이야기, 율리시스의 늙은 개 아르고스 같은 다양한 본보기와 멜로디의 추억을 통해 미즈바야시가 개의 미덕으로 꼽는 것은 <비인간적 충실성>이다. 자기 자신보다 주인을 사랑하는 존재. 모든 사회적인 치장을 걷어낸 존재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 존재. 자신의 이익을 위해 거짓말 할 줄 모르는 존재. 모든 순간을 기다림으로 채우는 존재. <멜로디>는 개의 충실성과는 정반대되는 사회성을 우월함의 증거로 뽐내는 인간의 삶을 돌아보게 한다.

 

    멜로디는 가능한 한 자주 내 곁에 있으려 했다. 자주 내 팔이나 다리에 매달려, 우리 사이에 1밀리미터의 간격도 참을 수 없다는 듯 나에게 힘주어 기댔다. 멜로디의 그림자가 내 그림자와 뒤섞이고 녀석의 따스한 배가 항상 차가운 내 발을 따스하게 덥혔다. 녀석의 깊은 숨이 내 귓가에 울렸고 따스한 숨결이 내 폐를 파고들었다. (본문 중에서)

   

    책을 펼치기까지 오래 머뭇거렸다. 반려견과 함께 하고 있으면서도 <동물농장> 같은 프로그램도 잘 못 보는 나로서는 <12년을 함께 한 개><떠나 보낸> 사람의 추억을 침착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나와 같은 입장에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비슷한 심정이지 싶다. 어쨌든 나는 해냈다. 마지막 한 자까지 다 읽어버렸다. 역시나 몇 번의 울음과 심호흡을 거쳐서 왔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작은 생명체와의 첫 만남부터 첫 산책, 임신과 출산, 병을 얻어 죽음에 이르기까지 일상적인 순간들의 기록과 사유들은 지금 내 자리를 돌아보게 했다. 나를 둘러싼 인간적 삶과 그 안팎의 경계에서 변함없이 나를 바라보고 있는 충실한 친구의 우정. 우리에게 주어진 짧지만 기적적인 순간들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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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과 도덕
버트런드 러셀 지음, 이순희 옮김 / 사회평론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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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과 결혼에 관한 파격적인 담론을 펼치는 이 책은 1929년 출간 당시부터 큰 물의를 빚었다. 책이 출간되고 십 년이 흐른 1940년에는 러셀의 임용을 약속한 대학에서 일방적으로 취소 통보를 해 오기도 했다. 이 책에 대한 당시 사회의 냉담한 반응은 경직된 인습과 그로 인한 폐해를 비판한 러셀의 주장에 대한 훌륭한 반증이 된 셈이다. 러셀에 의하면 <서슬이 시퍼런 도덕은 대개 음탕한 감정을 억누르기 위한 반작용>이었으니까.

 

     교회는 육체를 매력적으로 만드는 것이라면 어떤 것이든 하나같이 죄로 이어지기 쉽다는 이유로 목욕하는 습관을 비난했다. 불결한 것을 칭송했고, 신성한 냄새는 날이 갈수록 지독해졌다. 성 바울라는 육체와 의복이 청결하다는 것은 영혼이 불결하다는 것을 뜻한다고 말했다. 몸에 기생하는 이를 하나님의 진주라고 불렀고, 몸에 이가 들끓는 것을 신성한 사람이 마땅히 지녀야 할 표식으로 여겼다. (본문 중에서)

 

     러셀은 이 책에서 생물학적 본능에 반하는 결혼 제도의 비효율성을 지적하면서 낡은 성윤리와 결혼관의 쇄신이 필요하다는 논지를 전개해 나간다. 러셀은 성욕과 성행위는 본능이 아니라 후천적으로 형성되는 것이라고 강조하면서 개인과 사회에 왜곡된 성윤리를 주입한 초기 기독교와 가톨릭의 교리를 신랄하게 비판한다. 원죄설을 기반으로 하는 초기 기독교와 가톨릭의 영향을 받은 금욕적 인습은 시대적 문화적 변천을 거치면서도 개인과 사회 깊숙이 박힌 죄의식을 뿌리 뽑지는 못했다. 성행위는 물론 성욕을 느끼는 것도 죄악이라는 인습이 지배적인 환경에서 자란 아이가 부모가 되고 그 부모 역시 자식에게 폐쇄적인 성의식을 심어주는 악순환을 반복해 왔기 때문이다.

 

      중세에 고귀한 정신을 가졌던 사람들은 지상의 삶을 혐오했다. 인간의 본능을 원죄와 타락의 산물로 여겼고, 육체와 육체의 욕망을 혐오했으며, 성적인 요소가 전혀 없어 보이는 무아無我의 명상 속에서만 순수한 기쁨을 얻을 수 있다고 보았다. 이런 입장을 가진 사람은 사랑의 영역에서 단테의 작품에서 발견되는 것과 같은 태도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남성은 몹시 사랑하고 흠모하는 여성과 성교라는 관념을 결부시키지 못한다. 모든 성관계는 불결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본문 중에서)

 

     러셀은 거의 모든 문명사회에서 채택하고 있는 일부일처제와 거기서 빚어지는 다양한 문제들에 대해 광범하고 심도 있는 논의를 펼친다. 논의의 중심에 있는 기독교의 금욕적 성윤리의 해악에 대해서는 여러 시대 여러 방향에서 재고하는 한편 일그러지고 불구가 된 성의식이 만연한 개인과 사회의 복지를 위한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한다.

 

     일부일처제 사회의 전통적인 도덕가들은 한 사람을 사랑하면서 동시에 다른 사람을 진정으로 사랑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주장하며 간통의 심리를 곡해한다. 누구나 알 수 있듯이,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질투심 때문에 이 그릇된 이론에 목을 매단 채 허풍을 떠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이따금 볼 수 있는 것처럼 다른 사람을 배우자보다 의도적으로 더 좋아하는 경우를 제외하면, 간통은 합당한 이혼 사유가 아니다. (본문 중에서)

 

     러셀은 결혼의 주요한 의의를 자손의 출산과 양육이라고 보았다. 그의 결혼관에 따르면 부인이 임신하지 않았다는 의사의 증명서만 있으면 아이 없는 부부의 이혼을 허용해야 하며, 간통은 합당한 이혼 사유가 되지 못한다. 미혼 남녀의 유사 결혼을 권장하는 한편 가부장제의 붕괴를 예고하면서 새로운 결혼관과 가족 제도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당대의 인습과 성적 금기를 건드리는 혁신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이 책은 1950년 노벨문학상 수상에 큰 공헌을 하기도 한다. 쉽게 동의할 수 없는 부분도 없지 않지만 거의 한 세기를 지난 현 시점에도 공명할 수 있는 논점들이 분명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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