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시간에 쫓기는가 - 삶을 변화시킬 새로운 시간의 심리학
필립 짐바르도.존 보이드 지음, 오정아 옮김 / 프런티어 / 2016년 2월
평점 :
절판


 

 

 

 

 

 

 

 

     벤자민 버튼의 시간만 거꾸로 가는 게 아니다. 실제로 어떤 사람들의 시간은 뒷걸음질 한다. 아직 오지 않은 먼 미래로 훌쩍 날아가는가 하면 아예 한자리에 딱 멈춰 서 있기도 한다. 한없이 늘어지는 시간이 있는가 하면 눈 깜짝일 새 없이 휙 지나가 버리는 시간도 있다. 시간 여행은 공상과학영화 속에서나 벌어지는 허무맹랑한 사건이 아니다. 시간이라는 그릇이 담고 있는 삶 자체가 무형의 타임머신이고 우리 모두가 시간 여행자인 셈이다. 삶이라는 시간 여행을 하고 있는 당신은 달력이나 시계의 한계를 넘어서는 심리적 시간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를 둘러싼 그 시간(경험이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의 층은 거의 무한대적이고 변화무쌍하며 우리 자신이 그 시간의 설계자라는 것도 수긍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왜 시간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할까. 왜 그렇게 자주 시간 앞에 무력감을 느끼는 것일까. <스탠퍼드 감옥 실험>으로 유명한 필립 짐바르도와 그의 연구 동료 존 보이드는 이 책에서 개인의 존재 양식과 국가의 운명 더 나아가 전 지구적인 미래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시간>이라는 주제를 심층 해부하면서 그 답을 찾아간다.

     인간은 사건의 순위를 정하고 일관성과 의미를 부여하는 시간의 틀 안으로 끊임없이 경험들을 분류해 넣는다. 이러한 시간의 틀은 계절의 변화나 월간 업무, 자녀의 생일과 같은 주기적이고 반복적인 패턴을 반영하거나, 부모의 죽음, 사고를 당한 날, 전쟁의 발발 등과 같은 독특하고 남다른 경험을 반영하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뭔가를 감지하고 느낄 때뿐만 아니라 존재하고 예상하고 목표를 세우고 우연을 만들고 상황을 가정할 때에도 작용한다. (본문 중에서)

     누가 당신에게 시간을 묻는다면 당신은 쉽게 대답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이 몇 세기인지 올해가 몇 년도인지 오늘이 며칠인지 현재 시각이 몇 시인지 오래 생각하지 않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질문을 조금 바꿔 보면 어떨까. 당신의 시간은 어느 방향으로 흐릅니까. 또는, 당신의 시간은 어떤 성격을 지니고 있습니까. 질문의 의도를 알아챈 사람이라도 곧장 답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현대 사회를 지배하는 연대기적 시간에 길들어 있어서 그렇다. 몇년도에 태어나서 몇년도에 학교에 가고 몇년도에 졸업하고 직장을 얻고 몇 년이 흘러 결혼하고 애를 낳는다. 아침 여섯 시에 일어나서 아홉 시에 출근하고 열 시간쯤 노동하고 일곱 시쯤 퇴근하고... 올해 목표는 내년까지 승진하는 것이고... 십 년쯤 후에는... 저자들에 따르면 시계적인 시간관이 지배하는 오늘날의 사회는 과도하게 미래지향적이다. 말 그래도 시간이 곧 돈이 되는 자본주의 경제 구조는 미래지향성을 더욱 부추기는 효과를 낳았다. 일 분 한 시간 하루는 돈으로 환산되고 돈은 곧 미래를 보장해 주는 가장 확실한 방편이므로 현재의 욕망과 쾌락을 희생하는 것도 달콤한 고통이 된다. 사람들의 마음은 일 년 후 십 년 후 미래에 가 있고 현재는 다만 미래로 가는 정거장쯤으로 치부된다. 결과적으로 현대인은 매순간 시간에 쫓기는 삶을 살게 되었다.

      근처의 과일을 따 먹고 물고기를 잡아먹던 동굴 사람들은 길고 추운 겨울을 견뎌내지 못했다. 살기 위해 초기 인류는 앞일을 내다보는 능력을 기르고 먹을거리를 구할 수 없을 때를 대비해 식량을 저장하는 방법을 고안했다. 인류 역사상의 이 같은 발전은 원시적인 생활양식인 즉흥적 생활에 종지부를 찍었다. 달력이 등장했고 우리는 미래를 걱정하기 시작했다. 오늘날까지 앞서거니 뒤서거니 달려온 우리는 이 계획 본능 때문에 목이 졸릴 지경이다. (본문 중에서)

     현재의 욕망과 쾌락이 제거된 (과도한) 미래지향적인 삶이 과연 건강하고 행복하다고 할 수 있을까. 미래지향적인 삶은 손에 잡히지 않는 끝없는 미래밖에는 없다. 미래에도 더 앞의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할 테니까. 하지만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유한하고 미래는 언제까지나 계속 이어지지 않는다. 이 유한한 시간 속에서 어떻게 하면 보다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을까. 긴 세월 다방면으로 시간을 연구해 온 필립과 존은 삶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킬 만한 시간관을 적극 제안한다.

​      현재 지향적으로 행동하는 아이들, 미래와 경력에 초점을 두는 아버지, 가정의례와 과거 가족들이 함께했던 좋은 ​시간들에 대한 향수에 초점을 두는 어머니. 사람들은 서로 상반되는 시간관이 가족 간의 갈등과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할 때가 많다. (...) 미래 지향적인 시간관을 가진 쪽에게는 불 보듯 뻔한 미래의 일이 현재 쾌락적인 시간관이 강해서 미래에 대해서는 거의 생각해본 적 없는 쪽에게는 전혀 이해되지 않는 일이다. (본문 중에서)

    시간관time perspective이란 <개인적 경험을 시간적 범주나 시간대에 할당하는 과정을 가리키는 심리학 용어>이다. 다시 말해 주관적이고 심리적인 시간에 대한 개인적인 평가 또는 태도를 가리킨다. 여러 국가 다양한 성별 인종 연령대의 사람들의 삶을 관찰하고 인터뷰한 결과 필립과 존은 시간을 해석하는 여섯 가지 유형을 발견하게 된다. 그 여섯 가지 시간관은 다음과 같다. 과거 부정적Past-negative 시간관, 과거 긍정적Past-positive 시간관, 현재 숙명론적Present-fatalistic 시간관, 현재 쾌락적Present-hedonistic 시간관, 미래 지향적Future 시간관, 초월적인 미래 지향적Transcendental-future 시간관. 초월적인 미래 지향적 시간관은 <최후의 심판><영생><죽은 사람들과의 재회><사후의 삶><환생> 같은 종교적이고 불가사의한 믿음과 관련이 있다. 그 외의 시간관들은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된다. 현대 사회가 미래 지향적 시간관에 편향되어 있는 것과는 별개로 개인적인 삶의 측면에서 우리는 다양한 시간관의 영향을 받는다. 이를 테면 우울증 환자들은 과거 부정적 시간관에, 알콜 도박 섹스 중독자들은 현재 쾌락적 시간관에 편향되어 있는 것이다. 또한 자살 폭탄 테러를 감행하는 사람들은 초월적인 미래 지향적 시간관이 강하다고 밝혀졌다. 이처럼 극단적인 시간 편향이 아니어도 많은 사람들이 특정 시간관에 편향되는 현상을 보인다고 한다. 책에서는 흥미로운 심리 실험 보고서와 심리학 이론, 다양한 예시 등을 통해 각 시간관의 특성을 소개하고 면밀하게 분석한다. 아울러 시간에 대한 태도가 우리 본성에 미치는 영향을 강조하면서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시간관의 균형과 조화를 꾀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 부정적인 태도를 갖게 되는 까닭은 과거에 실제로 경험한 고통스러운 사건 때문이기도 하지만 평범한 사건을 부정적으로 재구성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과거에 일어난 사건을 변화시킬 수 있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그러한 사건에 대한 태도나 믿음은 누구나 바꿀 수 있다. 마음이나 태도를 바꾸는 일은 쉽지 않지만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본문 중에서)

 

     ​책에는 읽을거리가 풍부하다. 다양한 심리 실험 결과는 물론 신데렐라, 아기돼지 삼형제, 셰익스피어나 베케트의 작품 등을 들어 시간의 속성을 효과적으로 설명하기도 하고 프로이트나 아들러의 시간에 대한 관점과 해석을 활용하는 등 다각적이고 심층적인 논의를 펼친다. 독자가 직접 해볼 수 있는 짐바르도 시간관 검사ZTPI, 특정 시간관 편향을 보완 교정할 수 있게 도와주는 구체적이고 다양한 방법들도 싣고 있다. 책 곳곳에 저자들의 열정과 진심이 묻어 있어서 더욱 신뢰가 간다. 부정적인 시간관에 사로잡혀 불행하고 피곤한 삶을 이어가는 사람들에게 이 책이 재차 당부하는 내용은 사실 단순한 것이다. 과거에서 배우고 현재를 즐기며 미래를 계획하라는 것. 매우 단순한 진리지만 복잡한 시간의 지배를 받는 현대인에게는 쉽지 않은 문제이기도 하다. 현실이 불만족스럽지만 막상 변화를 꾀하기엔 막막하다. 불행의 원인을 바깥에서만 찾으면서 현재 숙명론적 시간관에 사로잡혀 사는 사람들도 많다. 오리무중에 빠져 있는 사람들에게 이 책은 새로운 시간 설계법을 내놓고 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시간 노예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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