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외롭다고 아무나 만나지 않는다 - 사랑이 힘든 사람들을 위한 까칠한 연애 심리학
양창순 지음 / 다산북스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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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복한 가정은 다 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제각각의 이유로 불행하다. 안나 카레니나를 안 읽었더라도 이 문장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킨 이 문장의 주어 자리에 <사랑>을 대입해 보면 어떨까. 행복한 사랑은 다 비슷하지만 불행한 사랑은 제각각의 이유로 불행하다. 사랑의 다양한 양상을 제시하고 분석하는 이 책을 읽는 동안 머릿속을 맴돌던 말이었다. 책에 등장하는 상담 사례들은 제각각의 이유로 불행한 사랑의 실상을 보여준다. 내 사랑은 왜 항상 이 모양일까요. 불행한 사랑을 반복하는 이들의 공통점은 <나름의 이유>가 많다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자기중심적인 성향이 강하다는 것이다. 책에서는 이러한 자기중심적인 요소들이 사랑에 어떻게 작용하는가를 분석적으로 다루는 동시에 불행의 악순환을 끊을 수 있는 구체적인 조언도 곁들이고 있다.

 

- 정말 모르죠, ?

- . 모릅니다. 정말 몰라요. 그냥 매일 조금씩만 보고 그럴 수 있으면 됩니다. 제가 뭘 안다고 생각하고 뭘 하려고 했던 건 다 실패했고 이젠 다 방해가 될 뿐이에요. 생각만 많았지 당신을 안 본 것 같아요. 정작 당신을 놓쳤어요. (...) 남들이 하는 말이나 제 무슨 생각 다 버릴 거예요. 그냥 당신 느끼고 당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거예요. 처음엔 좀 힘들겠지만 꼭 그렇게 할 거예요. (...) 고마워요. 당신이 당신인 게.


    홍상수의 최근작 당신 자신과 당신의 것에서 영수와 민정의 대사는 사랑의 모든 것을 함의하고 있다. 홍상수는 이 영화에서 <방황하는> 영수와 <민정이면서 민정이 아닌> 민정을 통해 사랑에서 중요한 것은 서로 얼마나 아느냐보다 다름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라고 말하고 있다. 영수가 받아들이기에 따라 민정은 <미친년>이기도 했다가 <정말 아름다운 사람>이 되기도 한다. 책에서 말하는 행복한 사랑의 열쇠도 이것이다. 책에서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받아들이는 연습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연인은 물론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한다고. 불행한 사랑의 대부분이 자기 자신을 부정하거나 왜곡하는 데서 빚어진다는 것을 이 책은 잘 보여준다. 병든 마음이 사랑까지도 병들게 하는 것이다. 지난 사랑과 잘 이별하고 오래된 상처를 어루만지는 데서 건강한 사랑이 싹틀 수 있다고 책에서는 강조한다. 그제야 우리는 자기 자신을 잘 알게 되고 잘 모르는 한 사람을 매일 조금씩만 보고 그것만으로 충분히 행복해할 수도 있게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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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을 팝니다 - 미시마 유키오의 마지막 고백
미시마 유키오 지음, 김난주 옮김 / 예문아카이브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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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 이름을 모르고 읽었더라면 이 불가사의한 작품이 미시마 유키오의 것이라고는 짐작조차 못했을 것이다. ... 미시마 유키오? 미심쩍어하는 당신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 미시마 유키오>가 맞다. 가면의 고백』 『금각사같은 무겁고 내향적인 성향의 작품들과 다르게 오락성이 다분한 이 소설은 19685월부터 같은 해 10월에 걸쳐 <플레이보이>지에 연재되었는데, 당시 미시마는 이 작품에 대해 언급하면서 <사이키델릭 모험소설>이라고 소개했다. 미시마 유키오가 약 빨고 쓴 것 같은 가볍고 황당한 이 소설의 분위기에 절묘한 정의라고 생각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소설을 관통하는 주된 정서는 환멸이다.


   떨어진 신문 위에 바퀴벌레가 떡하니 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가 손을 뻗는 동시에 그 매끈매끈한 마호가니색 벌레가 후다다닥 도망쳐 신문 활자 사이로 숨어버렸다. 그런데도 그는 신문을 주워 올렸다. 아까부터 읽던 페이지를 테이블에 내려놓고 주운 페이지를 훑었다. 그러자 읽으려고 하는 글자가 전부 바퀴벌레로 변했다. 읽으려고 하는 글자마다 번들거리는 검붉은 등을 보이며 도망쳐 버린다. ‘아아, 세상이 이렇게 생겼구나.’ 깨달음은 갑작스러웠다. 깨닫고 나니 그저 죽고만 싶어졌다. (12)


   미시마 유키오가 생을 마감하기 이 년 전에 쓰인 이 작품의 저변에는 그의 삶과 작품세계를 대변하는 허무주의가 짙게 깔려 있다. <자살할 이유가 전혀 없어 자살을 시도했다>고 고백하는 주인공 <야마다 하니오>는 그 자체로 허무주의를 구현하는 인물이다. 이방인의 뫼르소를 연상케도 하는 하니오는 비장감이나 절박함과는 거리가 먼 의미 없는 자살에 실패한 후 수동적인 자살 즉, 목숨 파는 일을 궁리해낸다. <자살하기는 귀찮고, 게다가 너무 드라마틱해서 성격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시작된 이 <사이키델릭한 모험>이 소설의 줄거리를 이루고 있다.


   하니오는 무의미에서 시작해, 그 무의미에 하나하나 의미를 부여하는 자유를 누리는 것이 삶이라고 생각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절대, 절대 의미 있는 행동을 시작해서는 안 되었다. 의미 있는 행동을 시작하는 바람에 좌절하거나 절망하고 무의미에 직면한 인간은 일개 감상주의자다. 목숨을 아까워하는 자들이다. 선반을 열었더니 거기에 이미 두텁게 쌓인 먼지와 함께 의미가 자리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을 때, 사람은 굳이 무의미를 탐구하고 무의미를 생활할 필요가 있을까. (208~209)


   목숨을 판다는 광고를 보고 찾아든 인물들 역시 범상치 않다. 하니오는 <줄에 매달려 걷는 인형처럼> <책임 없는 행위의 가뿐함>에 해방감을 느끼며 기구한 사연을 가진 의뢰인들의 삶에 무겁하게 뛰어든다. 뜻하지 않게 연애도 하고 결혼도 하면서 이른바 정상적인 삶이라는 것도 잠시 경험하지만 끝내 안주하지는 못한다. 미시마 유키오는 하니오라는 극단적인 허무주의자를 통해 <신문 활자도 다 바퀴벌레로 변하는 세상>의 획일성과 속물성에 대한 염증과 회의를 드러낸다. 의미의 무의미 속에서 무의미의 의미를 갈망하는 하니오의 고독한 몸부림에서 미시마의 짧은 생애가 겹쳐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혼자였다. 별 돋은 아름다운 하늘 아래, 경찰서 앞 어두운 골목길 안에서 경찰을 상대하는 술집의 빨간 초롱이 두세 개 흔들리고 있을 뿐이었다. 하니오의 가슴에 밤이 들러붙었다. 밤이 그의 얼굴에 납죽 들러붙어 숨통을 조이는 듯했다. 경찰서 현관 앞의 돌계단 두세 개를 내려가지 못하고 주저앉은 하니오는 바지 주머니에서 꺾인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 울고 싶었다. 목구멍이 울먹울먹했다. 하늘을 올려다보자 별이 부옇게 번져 여러 개가 하나로 보였다. (290~291)


   미시마 유키오가 충격적이고 극적인 죽음을 연출하며 세상을 떠난 지 거의 반세기가 흘렀다. 그의 삶을 들여다보면 모순적이고 의외적인 면모를 보여주는 일화들이 심심찮게 발견된다. 일례로 그는 생전에 보디빌딩으로 몸을 단련하는 데 열심이었다고 하는데, 그 이유가 재미있고 한편으론 의미심장하다. 미시마 유키오가 멋진 몸을 만드는 데 골몰한 이유는 연애나 건강 때문이 아니라 <죽은 모습이 아름다워야 한다>는 신조 때문이었다고. 알면 알수록 미시마는 소설 속 인물 하니오와 얼마나 닮아 있나. 건전하고 실용적인 삶과는 거리가 먼, 죽음마저도 아름답게 연출하고자 했던 그의 미문美文<괴작>이라고 불리는 이 소설 곳곳에서도 그 존재감을 드러낸다. 나야 나. 미시마라고. 전작들과는 다른 분위기에 어리둥절해하는 독자를 향해 가만가만 속삭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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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유언
안드레이 마킨 지음, 이재형 옮김 / 무소의뿔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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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스 유언은 러시아 출신 작가가 프랑스어로 쓴 소설이다. 작품 이야기에 앞서 작가의 이력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프랑스 혼혈인 어머니와 러시아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나 러시아에서 성장한 <안드레이 마킨Andreï Makine>1987년 프랑스로 귀화하면서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지금은 문학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인정받는 작가로 입지를 굳혔지만 그를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만은 않던 시절도 있었다. 소설 말미에 잠깐 등장하는 에피소드는 혼혈인으로서 그가 겪어온 고초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프랑스의 출판사는 <프랑스어로 글을 쓰기 시작한 이상한 러시아 사람>이 쓴 소설 초고를 단번에 거절하는데, 이에 마킨은 가공의 번역자를 내세워 그 원고가 러시아어 번역본이라고 속여서 출판에 성공하고 호평까지 받았다는 웃지 못할 일화는 한 개인이 겪은 시련 이상의 의의를 담고 있다.

 

   어떻게 하면 프랑스인이 될 수 있는지를 이해한 것이야말로 내가 그해 여름에 얻은 가장 큰 소득이었다. 파악하기 어려운 이 정체성의 수많은 양상들이 서로 결합해서 하나의 살아있는 전체가 되었다. 물론 중심에서 자꾸 벗어나려고 하긴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매우 질서 정연한 존재 방식이었다. 내게 있어 프랑스는 이제 단순히 골동품을 넣어 두는 방이 아니었다. 이제 그것은 감각적이고 견고한 하나의 실체가 되었고, 그중의 한 작은 부분은 어느 날 내 가슴속에 이식되었다. (136)

 

   자전적 색채가 짙은 이 소설은 프랑스 혼혈 러시아인 주인공이 프랑스어와 러시아어, 두 언어 사이에서 분열과 저항의 시기를 거치면서 자기 본질을 찾아나가는 과정을 정제된 언어로 풀어낸다. 주인공이자 화자인 <>는 외할머니 댁에서 우연히 발견한 사진첩을 넘기면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옛날 사진들을 넘겨보는 도입부는 회상이 주를 이루는 이 소설의 성격과 분위기를 절묘하게 암시하고 있다. 실로 이 소설은 오래된 사진첩을 한 장 한 장 넘겨가면서 느낄 법한 아련한 정서가 이야기 전반을 휘감으면서 소설의 시간 감각을 무의미하게 만들기도 한다. 주인공이 러시아에서 보낸 유소년기부터 프랑스 이민자 신분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따라가는 순행적인 구조 안에서 굵직한 역사적 사건과 맞물리는 개인()의 현재와 과거를 복기하고 추체험하는 여정이 동시에 이루어진다. <눈이 어지러울 정도로 무질서하게 쇄도하는 순간들>로 이루어진 이야기들은 <어딘지 모르는 곳에서 출발하여 또 다른 모르는 곳으로 가는 여행>을 닮았다.

 

   그것은 하나의 추억이 아니라 삶 그 자체였다. 아니, 나는 회상하는 것이 아니라 체험하는 것이었다. 너무나 보잘것없어 보이는 느낌들. 어느 여름날 저녁, 공중에 매달린 발코니의 나무 난간에서 느낀 더위. 쌉쌀하고 매콤한 풀 향기. 멀리서 들려오는 우울한 기관차 기적 소리. 꽃에 둘러싸인 한 여인의 무릎 위에 펼쳐진 책의 책장 넘어가는 소리. 그녀의 백발. 그녀의 목소리. (333~334)


    러시아적 삶과 프랑스적 정신 사이에서 혼돈을 느끼는 <>의 성장담에는 외할머니 샤를로트의 삶이 크게 자리잡고 있다. 이야기 한쪽에 <>의 성장담을, 다른 한쪽에 샤를로테의 삶을 분리해 놓고 읽을 수도 있겠지만, 그런 분열적인 읽기 방식은 이 소설의 본질에 반하는 접근 방식일 것이다. 러시아와 프랑스의 피를 반씩 이어받은 주인공에게 러시아와 프랑스가 그러한 것처럼, 아버지의 삶과 어머니의 삶 외할머니의 삶, 그 모두의 삶이 어우러져 <시간은 소문으로, 실루엣으로, 역사와 문학을 뒤섞는 움직임으로 가득 차 있>는 이 소설은 두 방울의 피와 두 개의 언어라는 <서로 다른 현창舷窓을 통해서> <말을 필요로 하지 않는 모든 것들> 즉 보편적이고 본질적인 중심에 가 닿으려는 아름다운 몸짓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그는 죽음이 한층 더 육체적인 것이 되기를, 목이 잘리고 피가 콸콸 흘러나와 모래를 적시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가 조금 전 긴 옷자락을 활짝 벌려 놓은 채 죽은 듯 꼼짝하지 않고 있는 여자의 몸 위에서 허우적대고 있을 때 그가 찾는 단도는 반대쪽으로 미끄러졌다. (...) 이상하게도 그는 문득 자기가 혼자가 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저녁노을 비치는 사막에는 오직 그와 죽어가는 그 여인뿐인 것이다. 그는 분한 듯 침을 뱉더니 꼼짝하지 않고 있는 여인을 뾰족한 구두로 한번 걷어찬 뒤 스라소니처럼 민첩하게 말 위에 올라탄다. (290~291)

 

   이 소설은 외할머니 샤를로트 르모니에의 삶과 맞물리는 역사적 비극을 고통스러울 만큼 생생하고 구체적이고 또렷한 영상으로 재현해내는 한편 혼혈인으로 살아가는 애환과 설움에 대해서도 잘 그려냈다. 또한 이 소설은 서로 다른 언어들 사이에서, 분열하고 충돌하는 언어적 혼돈 속에서, <말로 할 수 없는 것을 말하게 될 바로 그 언어>, 그 누구의 언어도 아닌 자기만의 언어를 치열하게 찾아나가는 여정으로 읽을 수도 있겠다. 격렬하면서도 잔잔한 고요함이 배어나오는 문장들이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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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도 함께
존 아이언멍거 지음, 이은선 옮김 / 현대문학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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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작가 존 아이언멍거의 소설 【고래도 함께】는 성서적 상징과 우화적 설정으로 인간 본성에 대한 사색과 성찰을 담아낸 작품이다. 이야기의 막을 여는 인물 <조 학>의 등장부터가 신화적이다희귀 고래와 함께 알몸으로 떠밀려온 조 학의 해괴한 출현과 구출 에피소드는 이스라엘의 예언자 <요나>를 연상시킨다런던 중심가의 투자은행에서 잘나가던 컴퓨터 프로그래머였던 조 학은 자신이 개발한 미래 예측 프로그램의 오보가 몰고 온 폭풍의 희생양으로 지목된다. 이기와 오만이 난무하는 자본주의 정글에 염증을 느낀 그는 타락한 예언자의 옷을 벗고 알몸으로 뛰어든 바다에서 새로 태어난다.
  
    조 학과 함께 고래는 이 소설에서 주요한 상징물로 작용한다조 학의 구원자였다가 인류 멸망의 경고 신호였다가 토마스 홉스가 명명한 리바이어던곧 슬기로운 통치자로 거듭나는 고래의 상징이야말로 이야기를 끌어가는 원동력이며 소설의 주요한 전언이기도 하다여기까지 읽은 사람은 이 소설이 난해하고 까다로울 거라고 지레짐작할 수도 있겠는데오히려 그 반대다첫 시작부터 흥미진진한 전개를 보여주는 이 소설은 시종 안정적인 문장과 적당한 유머로 암담한 상황을 타개해 나간다저마다의 사연을 가진 인물들의 표정도 생동감 있게 그려내고 있어서 몰입도가 높다


    모든 것을 잃고 떠나온 사내와 그를 받아준 마을 사람들이 커다란 재난 앞에서 보여주는 특별한 연대는 많은 생각을 불러일으킨다전 재산을 보태 수백 명의 생명을 지켜내는 조 학이나 자기 몸을 던져 수백 명을 먹여 살린 고래의 희생도 아름답지만, 알몸의 사내를 구조하고 받아주고 믿어주고 그와 함께 고난을 헤쳐나가는 마을 공동체의 협력도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작가가 펼쳐놓는 지구 종말 시나리오가 남 일 같지 않은 것이다예측 불가능한 이 세계에서우리를 무력감에 빠뜨리는 크고 작은 재난 앞에서 우리를 이끌어줄 <리바이어던>은 과연 무얼까이 소설이 보여주듯이 리바이어던은 가장 기본적이고 평범한 이치 안에서 탄생하는 것 아닐까. 반성과 관용, 신뢰와 협력이야말로 리바이어던을 구성하는 구원의 실체이자 지금 우리에게 절실한 자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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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중력가속도
배명훈 지음 / 북하우스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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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명훈의 세 번째 소설집이다.  데뷔작 스마트 D를 포함해 특별히 엄선한 열 편의 소설을 싣고 있는 이번 작품집은 지난 십여 년 간 배명훈이 걸어온 문학적 행보를 한눈에 보여준다소재나 형식 측면에서 다양한 시도를 선보이고 있으며배명훈 작품들에 자주 등장하는 동명 인물들의 변천사를 확인하는 일 또한 잔재미를 준다.

 

   나도나도나도나도나도나도나도나도나도나도나도나도나도나도나도나도나도나도나도나도나도 (...) 근사하지 않아? ‘간지러’ 조개 하나에 나도’ 840상상해봐그 잔잔한 바다에 무슨 일이 일어났을지파도 하나그렇겠지그건 바람의 말일까바다의 말일까.

                                  ― <조개를 읽어요>(87) 중에서


   어릴 적 과외 교사 누나가 주고 간 조개의 메시지를 읽기 위해 조개의 언어를 해독하게 된 주인공의 이야기를 속도감 있는 문장으로 들려주는 조개를 읽어요는 잔잔한 물결처럼 일렁이는 조개의 속삭임이 가슴을 치며 다가온다평생 딱 한 마디 말만을 하다 죽는 조개 하나하나의 말이 모여 이루는 하모니가 이상한 위안을 준다. <나도나도나도...>하고 공감의 말을 해주는 조개라니얼마나 근사한가.

 

   “D.” 언뜻 살펴보니 주변에 있는 다른 모든 것들과 마찬가지로 그의 몸 또한 온통 D로 뒤덮여 있었다원죄의 낙인처럼저격수의 표적이 된 것처럼무수히 많은 표적이 그의 몸에 내려앉아 있었다. (...) 온 세상이 D로 만든 모자이크처럼 보였다하늘에서 내려온 무수히 많은 D가 폭설처럼 온 세상을 덮고 있었다평지에 놓인 D는 곧게 펼쳐져 있었고삐딱한 곳에 놓인 D는 그림자처럼 일그러져 있었다그 모든 D가 똑같이 D였다스마트 D 3원칙 중 두 번째 조항의 구속을 받는 바로 그 D.               ― <스마트 D>(55) 중에서


   데뷔작 스마트 D는 알파벳 D, 한글로는 에 대한 이용료를 부가하는 스마트 D사와 연관된 연인의 죽음을 추적해 나가는 주인공을 통해 IT저작권이라는 개념을 재미있게 형상화하고 있는 작품이다소재도 좋고 특정 문자를 배제한 채 씌어진 문장들도 흥미롭지만 다소 어수선한 느낌을 주는 전개가 아쉽다이밖에도 기계지성과 인간 간의 전쟁을 그리는 예비군 로봇핵전쟁으로 황량해진 지구의 모습을 담은 예언자의 겨울다른 시간의 문을 두드리는 소녀의 이야기 초원의 시간」 등 SF적 상상력이 돋보이는 작품들이 각자의 개성을 뽐낸다.

 

   이제는 떨어지겠지이제는 떨어지겠지은경 씨는 그런 상식의 착각을 세 번이나 저버리고 계속해서 위로 솟구쳐 올라갔다등에 로켓 엔진이라도 단 듯누군가 위에서 끌어당기기라도 하는 듯아니처음부터 하늘에 속해 있던 사람이 온몸에 지워진 중력의 구속을 끊어내고마침내 원래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가기라도 하는 것처럼.     ㅡ<예술과 중력가속도>(196중에서 


   인기 아이돌 그룹의 콘서트에 가기 위해 거의 사투 수준으로 매표 전쟁을 벌이는 핵잠수함 여직원들의 이야기 티켓팅 타겟팅라식 수술을 계기로 재회하는 연인을 그리는 홈스테이처럼 일상적이고 보편적인 이야기들도 있다. SF 하면 으레 떠올리게 되는 차가운 금속성과는 거리가 있는 배명훈의 소설들은 서정적이고 발랄하다장르 뼈가 여문 사람이라면 배명훈의 소설을 시시하다 느낄 수도 있을 것 같다작품 해설에서 정세랑 작가가 잠깐 언급하고 있는 <장르 뼈>라는 말은 장르 소설 또는 장르 영화 등에 대한 풍부한 견문과 애정을 이르는 말이다장르 뼈라는 표현조차 생소한 나 같은 사람에게 이 책은 돌연 무중력 공간에 내던져진 것 같은 망망함을 준다달에서 온 은경 씨의 무중력 공연을 지켜보는 <>의 심정이 그랬을까순수소설의 중력과 장르소설이라는 무중력그 아련한 경계에서 현기증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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