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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으로 읽는 아이들 마음 - 소아정신과 의사 서천석의
서천석 지음 / 창비 / 2015년 6월
평점 :
주변에 아이 기르는 엄마들을 보면 그야말로 나날이 전쟁이다. 엄마와 아이가 아니라 똑같이 자기 고집만 부리는 아이 대 아이의 기싸움을 보는 것 같을 때도 많다. 부모가 안 돼봐서 그런가. 나는 아이들 편이다. 아이를 심하게 다그치는 상황을 지켜보다 아이 편에서 한마디 거들면 항상 같은 말이 돌아온다. 너도 아이 키워봐. 얼마 전에 동생과 카톡을 주고 받다 조카 얘기가 나왔다. 동생은 아이가 책 안 읽는다고 걱정, 영어공부 안한다고 걱정, 수학 성적이 떨어졌다고 걱정. 걱정을 달고 산다. 누가 들으면 고3 수험생 엄마의 고민인 줄 알겠다. 아이는 고작 열살 꼬마인데 벌써부터 성적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내가 엄마가 아니라서 흥야항야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그래도 너무 극성이다 싶어 한마디했다. 어릴 때 너도 공부 안했잖아.
부모들은 아이의 울음을 견디기 어려워한다. 아이는 그저 자기 감정에 충실하게 행동할 뿐인데 부모는 불편하다. (...) 산타 할아버지는 우는 아이에겐 선물을 안 준다, 자꾸 울면 꼼쥐가 잡아간다고도 한다. 울음을 멈추게 하려는 협박이다. 알고 보면 아이의 감정까지 내 마음대로 하고 싶은 부모의 욕심이다. 감정은 인간의 가장 깊은 곳, 순수하게 자기 것인데 아이의 감정은 편하게 받아들이기 어렵다. 아이가 울면 내 마음의 가장 깊은 곳이 흔들리기 때문이다. (본문 중에서)
아이를 향한 어른의 왜곡된 관심과 애정으로 아이는 물론 부모도 상처 입는 상황들이 많은 것 같다. 모든 역사는 반복된다고 했던가. 성장의 역사도 그런 것 같다. 어른들은 몰라요! 아이들이 항거하면 부모들은 세상 다 산 것 같은 얼굴로 대답한다. 너도 이담에 부모 돼봐라. 유사 이래 변함 없는 에피소드 아닐까. 아이는 아이 나름의 불만이 있고 부모는 또 부모 대로 입장이 있는 것이다. 그때 그 아이들이 부모가 되고 그 부모의 아이들이 또 부모가 되어 독선과 몰이해의 세계는 한없이 이어... 지도록 해서는 안 될 일이다. 예나 지금이나 부모와 아이의 소통이 큰 문제 같다. 아이들은 다양한 표현을 통해 '내 마음을 알아달라' 호소하지만 부모들에게 그 표현 방식은 문제 행동으로 비춰진다. 예전에 비해 육아와 아이들 심리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진 것이 그나마 고무적이다. 부모를 대상으로 하는 육아비법서나 아동심리서적들이 시중에 많이 나와 있다. 지금 소개하는 책도 그런 책들 가운데 하나이다. 이론적 조언만 늘어놓는 책들이 부담스럽고 지루하게 느껴졌다면 조금 다른 방식에서 접근하는 이 책이 좋은 지침서가 되어줄 것이다.
두더지에게 똥은 자기를 더럽히는 존재인 동시에 자기가 누군지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이다. 남의 똥은 남의 똥이다. 남의 똥을 머리에 이고 다닐 수는 없다. 나도 보잘것없지만 내 똥을 쌀 수 있다. 무언가를 만들고 보여줄 수 있다. 이렇게 똥은 자기를, 자기가 만든 것을 상징한다. 내 머리에 똥을 싸고 달아난 사람의 머리에 나도 내 똥을 남기고 싶다. 그래서 나도 똑같은 사람임을 보여주고 싶다. (본문 중에서)
소아정신과 의사 서천석은 이 책에서 그림책에 담긴 아이들 심리를 풀어낸다. 단순한 구성이나 색채, 의성어, 의태어, 그림책에 자주 등장하는 소재들을 통해 아이의 본능과 욕구를 집어낸다. 어른들에게는 유치하고 엉뚱해 보이는 소재나 이야기에 이토록 풍부한 메시지와 심리학적 의의가 숨어 있다는 사실이 경이롭다. 이 경이감은 잃어버린 세계에 대한 향수로 이어진다. 마치 처음부터 어른이었다는 듯이 살아가는 우리의 망각에 새삼 놀라게 된다. 그러니까 이 책은 우리 안에 잠들어 있는 아이를 가만히 일깨운다. 어른의 독선과 몰이해로 상처받고 불안한 (내면)아이를 어루만져준다. 그림책 읽는 행위에 깃든 놀라운 치유력을 확인하게 된다. 아이에게는 세계를 지각하고 탐색하는 놀이 도구가 되어주는 한편 어른에게는 아이의 세계로 입장하는 통로가 되어주기도 하는 그림책의 놀라운 재발견. 그동안 어른의 입장에서 의무적으로 그림책을 읽어주던 부모라면 아차 싶어질 것이다. 괜찮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이 그림책을 덮고 아이와 함께 서로의 눈을 보자. 아이의 눈 속에 비치는 나를 보고, 나를 보는 아이를 보자. 눈은 예로부터 영혼의 창이라고 했다. 영혼을 물끄러미 들여다본다는 것은 현대를 사는 우리에겐 어쩌면 지극히 사치스러운 행위이다. 우리는 그저 상대가 필요한 것을 해주고 내가 필요한 것을 얻는 정도의 관계를 맺고 산다. 서로를 깊게 느끼고 그 영혼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그러나 진짜 필요한 것은 서로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것, 그렇게 서로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본문 중에서)
책을 읽어 보면 아이와 부모의 소통에 걸림돌이 되는 것이 무언지 알 수 있다. 아이의 본능과 정상적인 욕구를 인정하지 않는 부모의 독선이다. 아니, 고쳐 말하고 싶다. 아이의 본능과 정상적인 욕구에 대한 부모의 무지라고. 내 아이를 괴롭히고 상처입히고 싶은 부모는 없을 테니까. 무지 대신 망각이라는 단어를 대입해도 무리 없겠다. 우리 모두 한때는 아이였으니까. 지금 이 순간에도 아이와 씨름하고 있을 수많은 부모들, 어른의 몰이해로 욕구불만에 시달린, 한때 아이였던 모든 어른들에게도 이 책을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