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일드 44 - 1 - 차일드 44
톰 롭 스미스 지음, 박산호 옮김 / 노블마인 / 2015년 5월
평점 :
절판


 

 

 

 

 


 

    최근 개봉한 동명 영화 《차일드 44》의 원작이다. 1950년대 스탈린 치하의 구소련을 배경으로 잔혹한 아동 연쇄살인 사건을 추적해 나가는 이 작품은 일단 재미있게 읽힌다불신과 공포로 얼룩진 냉전기의 암울한 분위기와 엽기적인 살인 행각이 자아내는 전율과 긴장감이 잘 살아있다정교한 구성력현실적인 인물 묘사가 단연 돋보인다복잡하고 가변적인 인간 심리를 다루는 솜씨가 탁월하다주인공 레오와 그의 아내 라이사의 감정 흐름레오와 직장동료 바실리와의 대립 구도네스테로브 대장과의 협력 관계 등에서 드러나는 섬세한 심리 묘사는 인간 본성의 대향연이라 할 만하다.

 

    바실리는 아주 천천히 머리를 들어올렸다그의 턱은 떨리고 있었다이 남자다른 사람의 죽음은 그렇게 사소하게 여기는 남자가 자신의 죽음은 두려워하고 있었다레오의 손가락이 방아쇠를 만졌다하지만 도저히 냉혈한처럼 쏠 수가 없었다이자의 사형집행관이 될 필요는 없었다국각에서 벌을 내리도록 하자국가를 믿자레오는 총을 다시 권총집에 집어넣었다. (본문 중에서)


    의문의 연쇄 살인 사건을 추적하는 과정을 기본축으로 하는 이 소설은 레오의 내면 갈등을 또 다른 중요한 축으로 삼아 전개된다반역자로 몰린 무고한 시민의 죽음을 통해 사회주의 체제의 모순을 직시한 전직 비밀경찰 레오가 연쇄 살인범을 쫓는 과정에서 겪는 갈등과 복잡한 심리 변화는 사회주의 체제의 허상을 폭로하는 한편 인간 윤리와 삶의 의미를 진지하게 성찰한다.

 

    대의대의대의대의현재의 정치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면 어떤 것도 정당화될 수 있다이런 가혹 행위가 존재하지 않는 시대모든 것이 풍요로우며 가난은 추억에 지나지 않게 될 황금시대가 도래할 거라는 약속은 모든 것을 정당화했다. (본문 중에서)

 

    "믿는 이들을 조사하라" "가장 가까운 사람을 의심하라"는 강령이 지배하는 시대적 배경은 인간성을 실험하는 장이 된다불온한 서적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의심스러운 눈짓 하나로도 반역자가 되는 시대오늘의 이웃이 내일의 적이 되는 시대가 바로 1950년대 구소련의 냉전 시대였다. 1970년대 말부터 1990년대 구소련에서 실제로 벌어진 연쇄살인 사건을 모티브로 삼고 있는 이 소설의 시대적 배경을 교묘하게 스탈린 독재시대로 설정한 작가의 의도를 간과할 수 없다정의를 추구하는 주인공 레오와 인간성이 결여된 엽기적인 살인마 안드레이를 형제로 설정한 부분도 의미심장하다극단적으로 대립하는 레오와 안드레이는 1950년대 구소련의 냉전 시대를 모태로 하는 샴쌍둥이라는 암시적 장치는 아니었을까. 진실과 정의를 대변하는 레오와, 1950년대 사회주의 체제의 '이상한' 이상과 신념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는 괴물 안드레이의 대결 구도를 중심에 놓고 읽을 수도 있겠다는 말이다.


   "난 한 번도 형이 죽었다고 믿지 않았지항상 형이 살아 있다는 걸 알고 있었어그리고 내겐 오직 하나의 욕망하나의 야망이 있었지형을...... 되찾는 것!" 안드레이의 목소리에서 들리는 건 분노일까아니면 애정일까아니면 둘 모두일까그의 유일한 야망은 레오를 되찾는 것이었을까아니면 레오에게 복수하는 것이었을까안드레이는 싱긋 웃었다따뜻하고 크고 정직한 미소로 마치 방금 카드게임에서 이긴 것 같은 그런 미소였다. (본문 중에서)

 

   여러 측면에서 해석이 가능한 소설이다소설의 재미는 물론 인간성에 대한 성찰묵직한 주제의식까지 잘 녹여냈다. 1979년생인 작가가 스물아홉 살 때 쓴 데뷔작이라는 게 믿기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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