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비안 마이어 : 나는 카메라다 비비안 마이어 시리즈
비비안 마이어 지음, 박여진 옮김 / 윌북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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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원히 지속되는 건 없다고 생각해. 우리는 다른 사람을 위한 공간을 만들어야 해. 이건 바퀴야. 일단 타면 끝까지 가야 하는 바퀴. 그러면 다른 누군가도 끝까지 가볼 기회를 갖게 되겠지. 


    -   비비안 마이어 Vivian Maier




 



 

    평생을 미혼의 보모로 살았던 여성 사진가 비비안 마이어의 작품집이다독특한 구도와 기발한 표현 방식이 시선을 끄는230여 점의 사진들을 수록하고 있다마이어의 삶과 작품 세계를 조명한 마빈 하이퍼만의 소개글도 매우 흥미롭다. 40쪽 분량의 짧은 글에서 하이퍼만은 마이어의 고독한 생애와 복잡한 성격을 입체적으로 전달한다마이어가 남긴 물건들(엄청난 분량의 필름들카메라직접 쓴 쪽지들의료기록영수증연하장여행안내 책자옷과 구두머리카락이 담긴 봉투...)과 생전에 마이어를 알고 지낸 지인들의 증언을 통해 그녀의 삶을 객관적으로 재구성한다마이어의 사진들만큼이나 신비하고 내밀한 그녀의 삶은 대중을 매료시키기에 충분해 보인다독특한 억양과 걸음걸이유행을 초월한 실용적인 차림새헝클어진 머리칼화장기 없는 얼굴무표정한 지인은 그런 마이어를 다른 시간에서 온 사람 같았다고 표현하기도 한다인상적인 몇몇 일화와 증언에 등장하는 마이어는 복잡하고 모순적인 면모를 드러낸다지적이고 자유분방한 '코닥걸'의 이면에는 폐쇄적이고 인색하고 냉담한 괴짜 예술가의 얼굴이 숨어 있다부모의 이혼과 오빠와의 이별(여섯 살 위의 오빠 찰스는 입양된다)로 외롭고 불안정했던 유년기가 성격 형성에 많은 영향을 미쳤을 것 같다성인이 되고 생을 마감한 순간까지도 마이어는 가족과의 유대가 거의 없이 가정집을 전전하며(보모로 일하며) 홀로 생활한다제한적이고 고립적인 삶에서 카메라는 마이어를 세상과 이어준 유일한 통로였던 것으로 보인다. 20세기 초중반부터 2009년 생을 마감하기 직전까지 마이어는 엄청난 분량의 사진을 찍었다사진을 너무 찍어대는 통에 스파이라는 의심을 샀을 정도였다마이어는 뷰파인더를 통해 일상의 순간들을 담담하게 응시하고 있다.남성과 여성노인과 아이흑인과 백인상류층과 빈곤층개들에 이르기까지 여러 계층의 사람들이 교차하고 충돌하면서 빚어내는 포즈를 세련된 방식으로 포착해 낸다이 사진집에 실린 사진 대다수는 20세기 뉴욕과 시카고의 거리 풍경을 담고 있다사고 현장을 적나라하게 담아낸 사진이 있는가 하면 손깍지를 낀 연인들처럼 감상적인 사진도 있다발목이나 엉덩이를 쑥 들이미는 장난스러운 사진벌쭉 미소 짓게 만드는 사진들도 있다어떤 사진은 오래도록 시선을 붙들어 두면서 말을 걸어오기도 한다.



 


 

 


    2007
년 심각한 빈곤 상태에 처한 마이어의 재산 일부(개인 소지품과 필름을 보관한 다섯 개의 창고)가 경매에 팔렸다마이어가 보관해 온 사진 상자에는 엄청난 분량의 인화된 사진들과 인화되지 않은 필름들이 담겨 있었다. 30만 장에 달하는 네거티프 필름을 구매한 부동산 중개업자인 존 말루프가 세상에 사진을 공개하기까지 마이어는 묵묵히 사진만 찍으면서 살았다일정한 거처 없이 가정집을 전전했던 마이어는 사진을 인화하고 보관하기가 여의치 않았을 것이다천여 통에 달하는 인화되지 않은 필름들이 곤궁한 그녀의 삶을 대변하는 듯하다한편으로 인화되지 않은 필름들은 사진에 대한 마이어의 철학을 함축하고 있는 것도 같다마이어에게 사진은 인화해서 보거나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었던 셈이다마이어는 휴대용 녹음기에 다른 사람들과의 대화나 자기 독백을 녹음하기를 즐겼다. "이건 바퀴야일단 타면 끝까지 가야 하는 바퀴." 이 문장은 마이어가 녹음한 자기 독백 중 일부이다마이어에게 사진은 "바퀴같은 것 아니었을까. 정확히 어디로 향하는지도 모르는 채 "일단 타면 끝까지 가야 하는(삶과 동급으로서의신성한 의무 같은 것 말이다. 다시 말해, 카메라(사진 찍는 행위)는 마이어가 자기와 자기를 둘러싼 세계를 이해하고 수용하는 방식마이어가 택한 가장 정직한 포즈가 아니었나 싶다다른 장소다른 각도에서 찍은 셀프 포트레이트들은 하나 같이 표정이 없다. 매순간 그녀는 삶의 유한성을 정면으로 응시하면서 (카메라와 녹음기에) 순간을 기록하고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무표정으로 굳어진 저 얼굴은 깊은 공동(空洞) 같이도 보인다. 저 아득한 공동으로부터 울려오는 하나의 목소리가 내 마음을 꽉 붙들고 있다. "영원히 지속되는 건 없다고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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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방사회
알렉스 벤틀리 외 지음, 전제아 옮김 / 교보문고(단행본)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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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먼 멜빌의 소설 필경사 바틀비는 사회적으로 철저하게 고립된 하급 사무원 바틀비의 비극을 다룬다사방이 벽으로 둘러싸인 사무실의 외진 자리에 틀어박힌 바틀비는 보편적 행동 양식에 저항하는 인물로 그려진다그는 마땅히 해야 할 자신의 직무에서도 '선택할 권리'를 주장한다. "안 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 바틀비가 "증기처럼 뿜어내는" 이 한 마디는 바틀비의 존재를 대변한다기존 체제와 보편적 행동 양식에 저항하는 바틀비의 비극(교도소에서 쓸쓸한 죽음을 맞이한다)은 우리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당신은 '선택하고 있습니까?


   우리 자신의 개인적 판단이 아무런 쓸모도 없음을 안다면 우리는 다수의 판단혹은 적어도 평균치 사람들의 판단을 따르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다른 사람을 열심히 따라 하는 개인들이 모여 이루어진 사회의 심리가 '관습적 판단'이라고 일컫는 것을 만들어낸다. (본문에서 재인용)


   기본적인 의식주 해결에 급급했던 과거에 비해 오늘날 우리는 "선택의 시대"에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오죽하면 '선택 장애'라는 신조어까지 생겼을까당장 외식을 한다고 해도 무얼 먹을지 한참을 고민하게 된다짜장면 짬뽕 딜레마는 추억이 되었다음식 문화가 발달하면서 수백 수천 가지의 요리들이 우리의 선택을 기다리고 있다수없이 쏟아지는 상품 광고와 인터넷 정보도 우리를 현혹한다이 어지러운 선택의 시대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무얼까어떤 선택이 우리에게 보다 이롭게 작용할까. 《모방사회》는 이 문제에 대한 답을 구하고 있다.


    심리학자들이 뉴런 하나하나가 아닌 인간의 생각 자체를 연구하듯이이렇게 세계적이고 '집단적인 아이디어'의 사회를 연구할 때는 개인을 다루는 방법과 달라야 한다한 사람이 내리는 결정에 대해서는 단순하게 정의할 수 있어도 인구 집단 전체의 결정들이 모여 집합을 이룰 때 나타나는 효과는 복잡할 수 있다이처럼 세계적이고 커뮤니케이션으로 넘쳐나는 사회에서는 사람들이 사회라는 바다를 한없이 떠돌며 항해한다. (본문 중에서)

  

   《모방사회》는 모방 행위는 인간의 자연스러운 적응 반응이라고 강조하는 한편 우리 삶에서 모방 본능이 어떤 형태로 작용하는가를 밝히고 있다우리가 독립적 선택이라고 자부하는 많은 것들(지난 저녁에 먹은 xx치킨헤어스타일특정 어휘 사용글씨체선호하는 브랜드 등등)이 실은 "편파적인 선입견에 물든 사회학습"의 결과라는 것을 일깨운다인류학 교수와 마케팅 전문가로 구성된 저자들은 사회과학적인 근거와 예시도표 등을 제시하면서 단순히 따라하는 행위에서 나아가 특정 상황에서,누구를어떻게 모방하느냐에 따라 변형되는 사회적 영향력의 방향과 규모를 예측하고 있다.

 

    '영향력'이라는 어휘는 대학가에 폭포처럼 쏟아지면서 가속도가 붙고 진화하면서 가지를 쳤다그 와중에 차이니즈 위스퍼스 게임1 같은 돌연번이를 만들어냈다한 명또는 여러 명의 개인들이 영향력의 의미에 대해 자기만의 생각을 갖게 된 것이다좀 더 오랜 시간을 두고 관찰하면이것은 마치 공통의 근원을 가진 언어가 여러 가지 언어로 발전하는 현상과 비슷하다로망스어가 수세기에 걸쳐 여러 언어로 갈라진 것처럼 말이다. (본문 중에서)

 

    바틀비의 비극은 《모방사회》의 본질을 꿰뚫고 있다바틀비는 (사회규범적으로선택할 수 없는 것을 선택하면서 사회적으로 고립된다이야기 곳곳에서 바틀비는 유령 같은 존재로 묘사된다바틀비를 특징 짓는 창백한 외모와 고집스러운 침묵은 그가 사회적으로 유령적 존재임을 암시하고 있다(명성과 평판이 좋은) 다수의 사람들을 모방하는 안전한 선택을 거부한 바틀비는 끝내 유령이 되고 만다. 한편으로 바틀비는 무분별한 모방 사회에 경각심을 심어준다개인의 의지와 개성을 죽이면서 맹목적으로 타인을 따라하는 것이야말로 유령의 삶이라는 메시지를 극단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모방사회》에서 역설하는 내용도 같은 맥락이다개인의 선택과 사회 현상의 밑바닥에 뿌리 내린 모방 본능을 인식하고 적절히 이용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입장이다.

 

 




1

   Chiness whispers: 하나의 메시지를 옆 사람에게 전달해, 여러 사람을 거치는 동안 그 메시지가 어떻게 변형되는지를 보는 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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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스트 블랙북 - 여행스토리가 있는 아티스트 컬러링북
손무진 지음 / 글로세움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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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중에 나와 있는 것들과는 또 다른 매력이 있는 컬러링북이다. 페인팅 작가 손무진이 세계 각지에서 작업한 민그림들에 단편적인 감상이나 짧은 문장을 앙구어 담았다. 거친 연필선이 비치는 그림들에는 일상의 잔잔한 이야기가 흐르고 있다. 산이나 강, 등대, 정박해 있는 배, 볕바라기 하는 빨래들, 커피와 도넛, 서 있는 자전거 같은 정적인 그림, 자동차와 사람들로 복작거리는 시가지 풍경, 보트나 코끼리를 탄 사람들 같이 역동적인 그림들까지 고루 실렸다. 사진처럼 정밀하게 묘사한 것, 빠르고 거친 연필선으로 명암을 강조한 그림은 (보기에는 좋지만) 마땅히 색칠할 만한 여백을 찾기 어려울 수 있다. (일반적인) 아기자기한 컬러링북을 기대하는 사람들에게는 구미가 맞지 않을 수도 있다. 


                                                                                                       ▲ 색칠보단 감상 



   단순히 색칠만 하기보다 그림이 담고 있는 이야기와 감성을 즐길 수 있다는 매력이 있다. 손무진이 손끝으로 풀어내는 익숙하지만 색다른 여행의 기록에 자기만의 이야기와 색을 입혀볼 수 있겠다. 색칠에 서툰 사람들을 위한 컬러링tip도 소개하고 있어서 컬러링북 초보자(?)들도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멋지게 색칠할 수 있다. 다양한 색칠 도구를 사용하면 더 좋을 것 이다. 나는 유성색연필과 수성싸인펜을 사용해서 칠했다. 



  연필선이나 명암을 살려내려면 수채물감이나 수채색연필도 좋을 것 같다. 세부적인 부분까지 일일이 색칠하지 않아도 좋다. 포인트만 정해서 색을 입혀도 멋지다. 선과 여백만 있는 컬러링북을 놓고 오히려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들도 봤다. 여백을 채워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들에게라면 이 책이 적합할 수도 있겠다. 칠하고 싶은 부분만 정해서 약간만 색을 입혀도 근사한 그림이 되니까 말이다. 부담 없이, 힘들이지 않고 채색하고 감상도 하고 여행의 감성까지 맛볼 수 있는 색다른 컬러링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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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렇게 나이 들어간다 - 인지심리학으로 본 노화하는 몸, 뇌, 정신 그리고 마음
게리 크리스토퍼 지음, 오수원 옮김, 김채연 감수 / 이룸북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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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이가 숫자에 불과하다고? 개똥 같은 소리 하지 말라고 해. 어느 토크쇼에서 가수 조영남이 둔해지는 신체 감각을 호소하면서 해맑게 던진 말이다. <내 나이가 어때서>라는 주제에 걸맞게 '나이듦'을 열심히 미화하고 있던 출연진들도 바람 빠진 풍선처럼 웃고 말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이듦'에  대해 부정적이고 저항적이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개똥 같은 긍정으로 자기 나이 같은 건 잊고 싶어한다. 그런 태도를 대하면 애처로운 마음부터 든다. 무한 긍정 이면에 도사린 죽음에 대한 부정이 엿보이기 때문이다. 


     《종말 전문가The End Speccialist》(노화 치료가 가져오는 파국을 그린 드루 매거리의 SF스릴러 소설)에서 예언한 대로, 특정 유전자의 활성화를 막아서 노화를 중단시킨 미래에 대한 비전은 여전히 과학소설 속의 일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미래에서 노화 '치료'는 절대로 늙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자연스럽고 평화롭게 죽을 수 있는 가능성'을 박탈당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본문 중에서)


     인간은 본능적으로 '노화'를 두려워한다. 늙어가는 일이 곧 죽어가는 일이기 때문에 그렇다. 누구든 자신의 죽음을 의식하는 일은 쉽지 않다. 그런 관점에서 조영남의 쿨한 태도는 인상적이다. 하나의 유기체로서 비가역적으로 '죽음'을 향해 나아가는 자기를 직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노화'의 문제는 결국 '어떻게 죽어갈 것인가'의 문제이기도 하다. 고민하지 않아도 우리는 늙어 죽을 것이지만, 눈 가리고 질질 끌려가는 사형수처럼 죽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어떻게 하면 '잘' 죽어갈 수 있을까. 지금 소개하는 책은 이 중요한 난제에 대한 작은 실마리를 제공한다.


      은퇴나 노쇠함으로 노인은 사회생활의 위축을 겪는다. 이를 방치하면 고독과 사회적 고립감이 초래된다. 따라서 비공식적 지원망의 필요성이 커진다. 워커는 사회적 교류를 통해 삶의 질이 향상된다는 것,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교류의 양이 아니라 질이라는 증거를 제시했다. 사회생활은 의사를 방문하는 빈도가 높은 사람일수록 더 위축되며, 일상활동을 유지하는 능력과도 관련이 있다. (본문 중에서)

   

      노화에 따르는 신체적 정신적 기능 변화, 고령화 시대의 문제와 대책까지 노인 문제를 전면적으로 다루는 이 책은 요점 정리가 잘 된 보고서 같다는 인상을 준다. 사변을 지양하고 (노인병의 구체적 증상과 전망, 노인 복지 현실 같은) 순수한 정보 전달에 목적을 두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느니 하는 로망(老妄)이 끼어들 여지는 없다. 책에서 요구하는 것은 (노화 현상과 노인 문제에 대한) 명확한 현실 인식이다. 노인 문제는 사회 문제로만 국한할 일이 아니다. 누구나 나이를 먹고 노인이 된다. 노인 문제는 우리 자신의 문제이기도 한 것이다. 자신에게 닥칠 변화와 다양한 가능성을 제대로 인지하는 것, 이것이 바로 책에서 말하는 지혜로운 노후 대책, '잘' 늙어가는(죽어가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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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5-04-08 08: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준비 없는 이별이 당황스런 슬픔.
천년 만년처럼 죽음을 생각하지 못하니 십원짜리 하나에도 다투고
길바닥에서 삼단봉꺼내 위협하죠.
천박할수록 더 그렇더군요.
 
내가 나를 치유한다 - 신경증 극복과 인간다운 성장
카렌 호나이 지음, 서상복 옮김 / 연암서가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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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am the Master of my Fate

I am the Captain of my Soul

 

- W.E Henry의 시

<Invictus> 중에서

 

 

 

  

 

    이 책의 원제는 <신경증과 인간다운 성장 Neurosis and Human Growth, 1950>이다. 독일 태생의 여성 정신 분석가 카렌 호나이(Karen Horney 1885 ~ 1952)는 이 책에서 신경증의 기원과 구체적인 양상을 소개하고 근본 해결책을 제시한다. 신프로이트학파였던 호나이는 프로이트의 본능 이론과 근본적 비관주의를 비판하고 독창적인 정신분석 이론을 구축했는데, 그의 마지막 저술이기도 한 이 책이 그 결정판이라고 할 수 있겠다. 호나이는 본문 곳곳에서 프로이트 이론을 언급하면서 자신의 이론을 보충하거나 강조한다. 신경증 환자의 실례와 구체적인 상담 내용을 제시하거나,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 프란츠 카프카 <심판>, 허먼 멜빌의 <모비딕>, 스탕달의 <적과 흑> 같은 문학 작품 속 주인공들의 내면 갈등을 통해 신경증 구조를 밝히면서 독자의 원만한 이해를 돕고 있다.

 

     스탕달이 <적과 흑>에서 묘사했듯이, 줄리앙은 제어할 수 없는 복수심에 불타는 격분에 휩쓸리기 전까지 도리어 지나치게 제어하고, 조심스럽고,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런 유형의 신경증 환자가 사람들을 상대할 때 부주의하면서 동시에 조심스럽다는 기이한 인상을 받는다. 또 이러한 인상은 오만한 복수 유형의 마음속에서 작동하는 힘들의 역학 관계를 정확히 반영한다. 사실 그는 타인에게 자신의 의로운 노여움과 화righteous anger를 드러내는 행동과 숨기는 행동 사이에 엇비슷한 균형을 유지할 수밖에 없다. (본문 중에서)

 

   오이디푸스 강박과 형제간 경쟁이 인간이 보편적으로 겪는 성장기 갈등이라고 단언한 프로이트 이론에 반박해 호나이는 개인이 처한 사회 문화적 배경과 가족사를 인격 발달의 핵심 요인이라고 주장한다. 특히 성장 과정에서 부모와 맺는 유대 관계를 강조한다. 부모로부터 충분히 사랑받는다는 느낌이 부족한 아이의 마음에는 근본 불안basic anxiety(세상과의 단절감, 막연한 불안감, 무력감)이 싹튼다. 근본 불안이 야기하는 내면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아이는 진실한 감정을 억제하고 이상적인 자아상을 추구하는데, 이 과정에서 빚어지는 이상적인 자아상, '가짜 자기''진실한 나' 사이의 불가피한 충돌이 신경증의 기본 구조를 이룬다.

 

    신경증 환자는 언제나 자신에게 몰두하고 자신 안에 갇혀 자아 본위로 느끼고 생각하고 행동한다. 자아 본위가 표층에 드러나야 할 필요는 없다. 말하자면 신경증 환자는 외로운 늑대처럼 살 수도 있고, 또는 타인을 위해 살거나 타인을 통해서 살 수도 있다. 그렇더라도 어쨌든 신경증 환자는 이상에 맞춘 자아상을 자신만의 비밀 종교private religion로 숭배하며 살고, 스스로 만든 당위를 자신만의 법칙으로 지키며 산다. 그는 자부심으로 가시철조망을 치고 안과 밖에서 닥쳐나오는 위험에 맞서 자신을 보호하는 파수꾼이 된다. 그 결과 감정 측면에서 더욱 고립될 뿐더러, 타인을 고유한 권리가 있는 자신과 다른 개인으로 보기 더욱 힘들어진다. (본문 중에서)

 

    이 책에서는 신경증 환자가 내면 갈등에 대응하는 방식(순응, 공격, 회피)에 따라 자기 말소 유형, 확장 지배 유형, 체념 유형으로 구분하고 각 유형에서 드러나는 특성과 그에 맞는 해결책을 제시한다. 각각의 신경증 유형을 지배하는 핵심 요인은 현실 왜곡actual distortions이다. 호나이가 구체적으로 묘사하는 신경증 환자의 현실 왜곡은 너무나도 극적이어서 경외감마저 든다. 이들은 '환상'이라는 무대 위에서 이상적인 자아를 열연하는 배우들이다. 환상에 사로잡혀 '진실한 나'로부터 소외된 이들, 신경증 환자들의 모습은 마법에 빠진 동화 속 주인공들을 연상시킨다.

 

    신경증 환자는 마침내 외면화된 자기 모습에 비추어 타인을 바라본다. 그는 스스로 만들어 낸 자기 이상화를 체험하지 못하고, 타인을 이상에 맞춰 그려낸다. 또 자신이 만들어 낸 폭정을 체험하지 못하고, 타인이 폭군이 된다. 여기서 관련이 제일 깊은 외면화는 자기 혐오의 외면화이다. 만약 자기 혐오가 능동 경향으로 우세해지면, 신경증 환자는 타인을 경멸받고 비난받아 마땅한 존재로 격하하기 쉽다. 무엇이든 잘못되면, 그것은 남들이 잘못을 저지른 탓이다. 다른 사람들은 완벽해야 하지만, 다른 사람들을 신뢰해서도 안 된다. 다른 사람들은 변해야 하고 개혁되어야 한다. 다른 사람들은 가난하고 잘못을 저즈르며 죽어야 할 불쌍한 존재들이므로, 신경증 환자는 신 같은 존재가 되어 그들을 책임지지 않을 수 없다. (본문 중에서)

 

     <신데레라><인어공주>, <개구리 왕자>, <잠자는 숲속의 공주> 같은 동화들이 보여주는 유사한 이야기 구조에 주목하면 신경증의 기원과 양상, 해결책까지 발견할 수도 있다. 못된 마녀의 저주로 본모습을 잃어버린 주인공을 백마탄 왕자(또는 공주)가 구해낸다는 익숙한 서사는 신경증에서 비롯된 내면의 정신 과정을 비유적으로 드러낸다. 어려서 부모님을 잃고 계모와 언니들에게 구박을 받은 신데렐라의 근본 불안은 호박 마차와 화려한 드레스라는 자기 이상화(가짜 자기)를 낳았다. 사랑을 얻기 위해 자기 본모습을 거부하고 목소리를 포기한 인어공주는 자기 말소 유형의 전형적인 본보기를 보여준다. 자기 혐오와 자기 비하라는 저주는 왕자를 개구리로 둔갑시킬 만큼 엄청난 위력을 발휘했다. 물레 바늘에 손가락이 찔려 깊은 잠에 빠진 공주는 상처를 두려워하는 체념 유형의 냉담한 태도와 닮아 있다. 초대받지 못했다는 모욕을 무시무시한 저주로 되갚은 <잠자는 숲속의 공주>의 마녀는 오만한 복수 유형의 전형을 보여준다.

 

    이제까지 의식되지 않았거나 반만 의식된 감정이나 충동이 지닌 비합리성의 충격과 영향impact을 충분히 경험해야 비로소 우리는 자신의 내부에서 꿈틀거리는 무의식의 힘이 지닌 강도와 강박에 사로잡히는 특징을 서서히 알 수 있다. (...) 그는 굴욕을 느껴야 하고, 나중에 자부심이 자신을 붙잡고 뒤흔든 지배력을 느껴야 한다. 자신의 분노나 자책이 상황에 맞지 않고 더 컸을 개연성이 높다고 막연하게 아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는 격분이 뿜어내는 충격과 영향을 느껴야 하고, 자책이 일어나는 밑바닥까지 내려가 그 심각성을 느껴야 한다. 그때에만 무의식 과정unconscious process과 무의식을 지배하는 비합리성의 위력이 자신의 면전에 드러난다. (본문 중에서)

 

     마녀의 저주에 걸린 동화 속 주인공들을 구원하는 것은 왕자(또는 공주)의 진실한 사랑(진심)이다. 마녀(마법)와 백마탄 왕자(또는 공주)를 각각 '가짜 자기''진실한 나'에 대입해 보면, 호나이가 책에서 제시하는 신경증 극복 해결책과 일맥상통하는 답을 얻을 수 있다. 신경증 환자가 내면의 자유를 얻으려면 자기 환상이라는 마법에 걸린 '진실한 나'의 존재를 발견하고 마주 보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진실한 나'를 따돌리는 것이 존재 목적이 되어버린 신경증 환자에게 자기 직면의 길은 험난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호나이는 비관하지 않는다. 책 전반에서 호나이가 강조하는 것은 환자 안에 잠재하는 치유력이다. 환자가 꾸준한 의지로 자기 인식 과정을 거치면 긍정적인 방향 전환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호나이의 평생 연구 실적을 응축한 이 책은 본모습을 잃고 방황하는 신경증 환자들에게 자기 인식에 도달하는 길을 열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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