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를 치유한다 - 신경증 극복과 인간다운 성장
카렌 호나이 지음, 서상복 옮김 / 연암서가 / 2015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I am the Master of my Fate

I am the Captain of my Soul

 

- W.E Henry의 시

<Invictus> 중에서

 

 

 

  

 

    이 책의 원제는 <신경증과 인간다운 성장 Neurosis and Human Growth, 1950>이다. 독일 태생의 여성 정신 분석가 카렌 호나이(Karen Horney 1885 ~ 1952)는 이 책에서 신경증의 기원과 구체적인 양상을 소개하고 근본 해결책을 제시한다. 신프로이트학파였던 호나이는 프로이트의 본능 이론과 근본적 비관주의를 비판하고 독창적인 정신분석 이론을 구축했는데, 그의 마지막 저술이기도 한 이 책이 그 결정판이라고 할 수 있겠다. 호나이는 본문 곳곳에서 프로이트 이론을 언급하면서 자신의 이론을 보충하거나 강조한다. 신경증 환자의 실례와 구체적인 상담 내용을 제시하거나,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 프란츠 카프카 <심판>, 허먼 멜빌의 <모비딕>, 스탕달의 <적과 흑> 같은 문학 작품 속 주인공들의 내면 갈등을 통해 신경증 구조를 밝히면서 독자의 원만한 이해를 돕고 있다.

 

     스탕달이 <적과 흑>에서 묘사했듯이, 줄리앙은 제어할 수 없는 복수심에 불타는 격분에 휩쓸리기 전까지 도리어 지나치게 제어하고, 조심스럽고,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런 유형의 신경증 환자가 사람들을 상대할 때 부주의하면서 동시에 조심스럽다는 기이한 인상을 받는다. 또 이러한 인상은 오만한 복수 유형의 마음속에서 작동하는 힘들의 역학 관계를 정확히 반영한다. 사실 그는 타인에게 자신의 의로운 노여움과 화righteous anger를 드러내는 행동과 숨기는 행동 사이에 엇비슷한 균형을 유지할 수밖에 없다. (본문 중에서)

 

   오이디푸스 강박과 형제간 경쟁이 인간이 보편적으로 겪는 성장기 갈등이라고 단언한 프로이트 이론에 반박해 호나이는 개인이 처한 사회 문화적 배경과 가족사를 인격 발달의 핵심 요인이라고 주장한다. 특히 성장 과정에서 부모와 맺는 유대 관계를 강조한다. 부모로부터 충분히 사랑받는다는 느낌이 부족한 아이의 마음에는 근본 불안basic anxiety(세상과의 단절감, 막연한 불안감, 무력감)이 싹튼다. 근본 불안이 야기하는 내면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아이는 진실한 감정을 억제하고 이상적인 자아상을 추구하는데, 이 과정에서 빚어지는 이상적인 자아상, '가짜 자기''진실한 나' 사이의 불가피한 충돌이 신경증의 기본 구조를 이룬다.

 

    신경증 환자는 언제나 자신에게 몰두하고 자신 안에 갇혀 자아 본위로 느끼고 생각하고 행동한다. 자아 본위가 표층에 드러나야 할 필요는 없다. 말하자면 신경증 환자는 외로운 늑대처럼 살 수도 있고, 또는 타인을 위해 살거나 타인을 통해서 살 수도 있다. 그렇더라도 어쨌든 신경증 환자는 이상에 맞춘 자아상을 자신만의 비밀 종교private religion로 숭배하며 살고, 스스로 만든 당위를 자신만의 법칙으로 지키며 산다. 그는 자부심으로 가시철조망을 치고 안과 밖에서 닥쳐나오는 위험에 맞서 자신을 보호하는 파수꾼이 된다. 그 결과 감정 측면에서 더욱 고립될 뿐더러, 타인을 고유한 권리가 있는 자신과 다른 개인으로 보기 더욱 힘들어진다. (본문 중에서)

 

    이 책에서는 신경증 환자가 내면 갈등에 대응하는 방식(순응, 공격, 회피)에 따라 자기 말소 유형, 확장 지배 유형, 체념 유형으로 구분하고 각 유형에서 드러나는 특성과 그에 맞는 해결책을 제시한다. 각각의 신경증 유형을 지배하는 핵심 요인은 현실 왜곡actual distortions이다. 호나이가 구체적으로 묘사하는 신경증 환자의 현실 왜곡은 너무나도 극적이어서 경외감마저 든다. 이들은 '환상'이라는 무대 위에서 이상적인 자아를 열연하는 배우들이다. 환상에 사로잡혀 '진실한 나'로부터 소외된 이들, 신경증 환자들의 모습은 마법에 빠진 동화 속 주인공들을 연상시킨다.

 

    신경증 환자는 마침내 외면화된 자기 모습에 비추어 타인을 바라본다. 그는 스스로 만들어 낸 자기 이상화를 체험하지 못하고, 타인을 이상에 맞춰 그려낸다. 또 자신이 만들어 낸 폭정을 체험하지 못하고, 타인이 폭군이 된다. 여기서 관련이 제일 깊은 외면화는 자기 혐오의 외면화이다. 만약 자기 혐오가 능동 경향으로 우세해지면, 신경증 환자는 타인을 경멸받고 비난받아 마땅한 존재로 격하하기 쉽다. 무엇이든 잘못되면, 그것은 남들이 잘못을 저지른 탓이다. 다른 사람들은 완벽해야 하지만, 다른 사람들을 신뢰해서도 안 된다. 다른 사람들은 변해야 하고 개혁되어야 한다. 다른 사람들은 가난하고 잘못을 저즈르며 죽어야 할 불쌍한 존재들이므로, 신경증 환자는 신 같은 존재가 되어 그들을 책임지지 않을 수 없다. (본문 중에서)

 

     <신데레라><인어공주>, <개구리 왕자>, <잠자는 숲속의 공주> 같은 동화들이 보여주는 유사한 이야기 구조에 주목하면 신경증의 기원과 양상, 해결책까지 발견할 수도 있다. 못된 마녀의 저주로 본모습을 잃어버린 주인공을 백마탄 왕자(또는 공주)가 구해낸다는 익숙한 서사는 신경증에서 비롯된 내면의 정신 과정을 비유적으로 드러낸다. 어려서 부모님을 잃고 계모와 언니들에게 구박을 받은 신데렐라의 근본 불안은 호박 마차와 화려한 드레스라는 자기 이상화(가짜 자기)를 낳았다. 사랑을 얻기 위해 자기 본모습을 거부하고 목소리를 포기한 인어공주는 자기 말소 유형의 전형적인 본보기를 보여준다. 자기 혐오와 자기 비하라는 저주는 왕자를 개구리로 둔갑시킬 만큼 엄청난 위력을 발휘했다. 물레 바늘에 손가락이 찔려 깊은 잠에 빠진 공주는 상처를 두려워하는 체념 유형의 냉담한 태도와 닮아 있다. 초대받지 못했다는 모욕을 무시무시한 저주로 되갚은 <잠자는 숲속의 공주>의 마녀는 오만한 복수 유형의 전형을 보여준다.

 

    이제까지 의식되지 않았거나 반만 의식된 감정이나 충동이 지닌 비합리성의 충격과 영향impact을 충분히 경험해야 비로소 우리는 자신의 내부에서 꿈틀거리는 무의식의 힘이 지닌 강도와 강박에 사로잡히는 특징을 서서히 알 수 있다. (...) 그는 굴욕을 느껴야 하고, 나중에 자부심이 자신을 붙잡고 뒤흔든 지배력을 느껴야 한다. 자신의 분노나 자책이 상황에 맞지 않고 더 컸을 개연성이 높다고 막연하게 아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는 격분이 뿜어내는 충격과 영향을 느껴야 하고, 자책이 일어나는 밑바닥까지 내려가 그 심각성을 느껴야 한다. 그때에만 무의식 과정unconscious process과 무의식을 지배하는 비합리성의 위력이 자신의 면전에 드러난다. (본문 중에서)

 

     마녀의 저주에 걸린 동화 속 주인공들을 구원하는 것은 왕자(또는 공주)의 진실한 사랑(진심)이다. 마녀(마법)와 백마탄 왕자(또는 공주)를 각각 '가짜 자기''진실한 나'에 대입해 보면, 호나이가 책에서 제시하는 신경증 극복 해결책과 일맥상통하는 답을 얻을 수 있다. 신경증 환자가 내면의 자유를 얻으려면 자기 환상이라는 마법에 걸린 '진실한 나'의 존재를 발견하고 마주 보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진실한 나'를 따돌리는 것이 존재 목적이 되어버린 신경증 환자에게 자기 직면의 길은 험난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호나이는 비관하지 않는다. 책 전반에서 호나이가 강조하는 것은 환자 안에 잠재하는 치유력이다. 환자가 꾸준한 의지로 자기 인식 과정을 거치면 긍정적인 방향 전환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호나이의 평생 연구 실적을 응축한 이 책은 본모습을 잃고 방황하는 신경증 환자들에게 자기 인식에 도달하는 길을 열어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