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호의 고향을 찾아서] '변신' 프란츠 카프카

체코 프라하 환각의 都市… 부조리한 상상력 자욱
뒤늦게 세워진 동상 “카프카스럽다” 탄성
전차로 이어진 도시 전체가 ‘건축 박물관’
프라하=박해현 기자 hhpark@chosun.com
입력 : 2005.07.08 17:55 46' / 수정 : 2005.07.09 01:30 41'


▲ 프란츠 카프카/소설가
“프라하는 우리를 풀어주지 않아. 이 작은 엄마는 발톱을 갖고 있어...”

체코 프라하에서 태어난 소설가 프란츠 카프카(1883~1924)는 변신을 꿈꿨다. 그 도시에서 그는 소설 ‘변신’을 쓰면서 언젠가는 고향을 떠나 다른 곳에서 생의 변신이 이뤄지길 갈망했다. 그러나 그는 그곳에서 세번의 약혼과 파혼을 거듭하면서 독신으로 살았고, 베를린에서의 짧은 동거와 죽기 직전의 요양원 생활을 제외하고는 고향을 떠나지 못했다. 마흔 한 살 생일을 한 달 앞두고 폐결핵으로 죽은 그는 프라하에 묻혔다.

형형색색의 건물들이 운집한 프라하의 구시가지는 현실의 도시이면서도 어딘가 비현실적 분위기를 띤다. 프랑스의 초현실주의 시인 브르통이 “유럽의 마술적 수도(首都)”라고 탄복했던 프라하. 카프카의 소설 ‘변신’을 낳기에 적합한 환상의 환각제가 이 도시 어디에선가 안개와 함께 떠도는 것이 아닐까.

프라하는 움직이지 않지만, 카프카의 소설이라는 안경을 쓰고 보면, 프라하는 거울의 뒷면에 붙은 또 하나의 도시를 펼쳐놓는다. 프라하의 옛 시청 광장. 카프카는 이곳 성 니콜라스 교회 옆 유대인 거주 지역에서 태어났다. 카프카의 생가 앞 작은 광장에는 ‘나메스티 프란체 카프키’(프란츠 카프카의 광장)라는 동판이 붙어있다. 생가가 있던 자리에 새로 들어선 건물 벽에 턱이 뾰족한 카프카의 얼굴 부조가 붙어있다. 창백한 시선의 카프카가 낯선 방문객을 노려본다. 카프카의 이름을 딴 레스토랑, 카프카 기념관도 있다.


▲ 카프카 소설에서 영감을 얻은 조각가 야로슬라프 로나가 만든 카프카 동상. 프라하의 새 명물이다/박해현기자
카프카는 이곳에서 낮에는 보험국 관리로 일하고, 밤에는 독일어로 소설을 썼다. 당시 유대인들은 공식적으로 히브리어를 사용할 수 없었기 때문에 독일어와 체코어 중에서 글쓰기를 택일해야 했다. 카프카 집안은 당시 프라하 인구 10% 미만인 상류층이 쓰는 독일어를 선택했다. 엄밀하게 말해서 카프카의 소설은 체코 문학사의 일원이 아니다. 그러나 그는 오늘날 그 누구보다도 프라하의 상징적인 작가로 남아있다.

유대인 거주 지역에서 가까운 두스니 거리(성령의 거리)에 카프카 동상이 서있다. 가톨릭 교회와 유대인 사원이 마주보고 있는 거리다. 카프카가 매일 저녁 산책을 즐겼던 곳이라고 한다. 조각가 야로슬라프 로나의 작품인 카프카 동상은 절로 “카프카스럽다”는 탄성을 짓게 했다. 머리 없이 걷고 있는 인물상의 어깨에 모자를 쓴 카프카가 걸터앉은 형상이다. 한 사내가 잠에서 깨어났더니 한 마리 벌레로 변해있더라는 황당한 소설 ‘변신’의 작가 카프카에 걸맞은 동상이었다. 들고 갔던 전영애(서울대 독문과 교수) 번역의 카프카 소설 ‘변신·시골의사’의 뒤표지를 들여다봤다. “카프카는 몽상가였고, 그의 작품들은 꿈처럼 형상화되어 있다. 그의 작품들은 비논리적이고 답답한 꿈의 바보짓을 정확히 흉내냄으로써 생의 기괴한 그림자 놀이를 비웃고 있다”라는 토마스 만의 글이 평소보다 더 크게 보였다.

동상은 카프카 사후 80주년을 맞은 지난해에 세워졌다. 작가는 너무나 오랜 시간 끝에 고향에서 제 대접을 받았다. 고향은 뒤늦게 작가에게 진 빚을 갚으면서 무수한 관광객들을 유혹하는 효과도 거두고 있다.

프라하는 전차의 도시이기도 하다. 신경 세포처럼 이어진 전차 노선과 함께 도시가 꿈틀거린다. 카프카가 살았던 시대에도 전차는 다녔다. 카프카의 눈으로 보면, 전차마저도 부조리한 상상력을 자극했다. “나는 전차의 입구 쪽에 서있다. 이 세계, 이 도시, 나의 가족 안에서 나의 위치를 헤아려보니 여지없이 불확실하기만 하다. 그 어느 방향에서든 간에 내가 이러이러한 권리를 마땅히 내세울 수도 있을거라고는 나는 지나가는 말로라도 할 수가 없을 것이다.”

왜소하고 순종적인 소시민의 삶을 살았던 카프카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은 한없이 작아지는 실존의 부조리를 벗어날 수 없다. 흔들리며 어디론가로 가는 입석 승객은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종점을 향해, 소멸을 향해 가는 유한한 인간의 소리없는 비명을 불러일으킨다.

카프카가 살았음직한 집의 창문이 눈에 들어왔다. 창문 없는 방이란 출구가 보이지 않는 삶과 같다. 창문은 어둠을 가르는 빛처럼 숨통을 형상화한다. “쓸쓸하게 살고 있으면서도 여기저기 그 어디든 끼어보고 싶어하는 사람, 하루의 시간이나 날씨, 직장 사정의 변화 따위를 생각하다 보면 그만 그 어느 것이든, 매달릴 수 있을 팔이 보고 싶기만 한 이는 골목으로 난 창이 없이는 오랫동안 그렇게 지내지 못할 것이다.”(‘골목길로 난 창’ 부분)


▲ 안개깔린 프라하의 카렐 다리를포착한 사진 작가 지리 수렉의 작품. 사진집‘Prague’에서.
독일 시인 릴케가 “프라하, 풍요롭고 거대한 건축의 서사시”라는 찬사를 던졌을 정도로 프라하는 서양 건축의 화려한 역사를 압축해서 보여주는 거대한 건축 박물관이다. 카프카의 단편 ‘굴’(Der Bau)은 ‘건축’으로 번역되기도 한다. 그는 글을 통해 굴을 파면서 역설적 건축을 시도했다. “굴을 팠는데 잘 된 것 같다. 밖에서 보이는 것이라고는 커다란 구멍 하나뿐이나….”라며 시작하는 이 소설처럼 카프카의 생은 자발적 고독과 소외의 기록이었다. 그렇다고 크게 비명을 지르지도 않은 채 수식이 배제된 건조한 문체로 낯익은 현실을 낯설게 만들었다. 카프카의 소설은 모든 대상을 일그러뜨려서 반사하는 거울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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