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호의 고향을 찾아서]

‘참을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밀란 쿤데라

체코 프라하에서

혁명의 광장은 존재 압도하는 物神의 거리로
 
 
“소련군에 대한 증오는 술기운처럼 치밀어 올랐다. 증오감에 도취된 축제였다. ”

밀란 쿤데라는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1968년 프라하의 봄을 그렇게 회상했다. 프라하 바츨라프광장. 1968년 프라하의 봄과 그 좌절을 모두 지켜봤고, 1989년의 ‘벨벳혁명’을 낳은 곳. 소련군이 탱크를 몰고 들어오자 프라하 시민들은 저항했다. 소설의 여주인공 테레사는 침략과 저항의 현장에서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고 사진으로 찍어 외국 기자들에게 필름을 건네줬다.

‘테레사는 소련 침공의 날을 떠올렸다. 미니스커트 차림의 젊은 여자들이 깃대 끝에 국기를 달고 흔들며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그것은 몇 년 동안 금욕을 강요당한 소련군에 대한 성적 테러였다’고 쿤데라는 썼다. 그러나 체코 공산정권이 무너진 것은 그로부터 20년이나 뒤였다.

사메토바 레볼루체(Sametova Revoluce)!

1989년의 ‘벨벳혁명’을 체코에서는 그렇게 부른다. 벨벳혁명의 무대였던 프라하의 중심가 바츨라프광장은 오늘날 외국 기업과 은행, 대형 상점들로 가득찬 물신(物神)의 광장으로 탈바꿈했다. 36번지에 위치한 네오 르네상스 양식의 멋진 건물 발코니를 눈으로 찾았다.

프라하의 봄을 젊은이로 이끌었고, 이후 반체제운동의 지도자였던 바츨라프 하벨이 환호하는 군중을 향해 손을 흔들면서 해방을 선언한 곳은 지금 고급 아파트로 변해 입주자를 기다리고 있다.

▶▶바츨라프광장은 공산사회가 자본주의사회로 이행한 역사의 대표작이다. 테레사와 토마스가 뜨거운 가슴으로 맞부닥뜨렸던 그곳은 광장이라기보다는 차라리 넓은 길이다. 프라하 중앙역 앞 국립박물관에서 무스텍광장에 이르는 길이 800m, 폭 60m의 이 광장은 바츨라프의 기마상과 프라하의 봄 당시 소련군의 침공에 저항하여 분신 자살한 체코 대학생 얀 파라프의 위령비, 대로 양 편의 여행사, 항공사, 레스토랑, 호텔, 은행, 환전소, 백화점 등이 굴곡진 역사를 말 없이 응축하고 있다.

열아홉 살 때 프라하 예술대학에 입학한 쿤데라는 영화를 전공하며 시나리오 작가 수업과 영화감독 수업을 받았다. 그러나 그가 대학생이 되던 1948년 공산당이 체코슬로바키아의 정권을 장악하면서 그는 역사와 충돌하기 시작했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토마스가 느꼈던 경멸 그리고 ‘농담’의 주인공이 겪어야 했던 축출의 경험을 이 도시에 가졌다. 프라하는 쿤데라 문학의 산실이고 고향이다. 그는 영화 아카데미에서 세르반테스, 볼테르, 디드로 등 서유럽 작가들을 강의했고, 그 과정을 통해 자신의 소설세계를 구축했다.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체코 출신의 소설가 쿤데라를 일약 세계적 지성의 작가로 올려놓았다.

그러나 정작 프라하의 서점에서 그 책을 찾을 수 없었다. 희한한 일이다.

“1975년 이후 파리에서 작품활동을 하고 있는 쿤데라가 그 책의 체코어판 출판을 아직도 원치 않고 있어요. 쿤데라는 그 책을 1985년 프랑스어판으로 먼저 출판했고, 1985년 캐나다에 망명한 체코 문인들이 만든 출판사에서 체코어판을 냈지만 당시 체코 공산정권 아래에서는 금서였지요. ” 쿤데라가 문학과 미학을 공부했던 카렐 대학에서 20세기 체코 문학과 세계 문학을 강의하는 마리에 므라프초바 교수의 설명이다. 1988년 필립 카우프만 감독이 만든 영화는 벨벳혁명 덕분에 체코에서 상영됐다. 이번에는 쿤데라가 문제였다. 쿤데라는 그 영화에 대해 불만이 많았고, 특히 에로틱한 장면을 싫어했다. 그래서 이미 영화를 본 체코인들이 체코어로 그 책을 읽는 데 거부감을 가졌다는 이야기다. “체코인들은 그 소설을 영어로 읽거나 캐나다에서 나온 체코어판을 누가 여행갔다가 선물로 사다주어야 읽을 수 있답니다. ”

▶▶‘토마스는 독일 속담을 되뇌었다. 한 번은 중요치 않다. 한 번뿐인 것은 전혀 없었던 것과 같다. 한 번만 산다는 것은 전혀 살지 않는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

쿤데라는 한 번의 리허설도 없이 무대에 서야 하는 인생의 무의미와 무용한 열정을 괴롭게 곱씹는다. 우연히 세상에 태어난 인간은 스스로 기획하고 준비한 삶을 사는 것이 아니다. 인간은 자신의 실수를 교정할 수 없고, 인간은 전적으로 자신의 삶에 책임질 수 없다. 그래서 인간은 책임의 무거운 짐에서 벗어난, 견딜 수 없이 가벼운 존재가 아닌가라고 쿤데라는 물었다.

존재의 가벼움에 대한 뼈저린 인식은 쿤데라가 청년 시절에 아무런 예행 연습도 없이 공산주의자로서의 삶을 선택했다가 좌절한 채 ‘생은 다른 곳에 있으리라’는 믿음을 갖고 고향을 떠나야 했던 체험의 산물이다.

청년 시절 프라하를 떠난 그는 이제 노년에 이르도록 프랑스 파리를 제2의 고향으로 여기며 살고 있다. 므라프초바 교수는 “쿤데라는 조국으로부터 잊혀진 작가가 됐기 때문에 소설 속에서 망각을 철학적으로 해석해 왔다”고 지적한다. 그가 1990년대 후반 이후 내놓은 ‘느림’ ‘정체성’ ‘향수’ 같은 소설은 끊임없이 프라하와 그 주변, 체코의 이곳저곳을 기억 속에서 재현하지만 정작 그 이야기의 전달은 프랑스어로 이뤄지고 있다. 쿤데라를 잃은 프라하와 고향을 잃은 쿤데라가 만나는 곳은 어디쯤일까.

 

 ‘프라하의 봄’ 배경 일회적 인생 성찰

 
“영원한 회귀의 신화는 부정의 논법을 통해, 한번 사라지면 두번 다시 돌아오지 않는 인생이란 하나의 그림자 같은 것이라고, 그래서 그 인생은 아무런 무게도 없고 처음부터 죽은 것이나 다름없어서, 인간이 아무리 잔혹하고 아무리 아름답게 살아보려고 해도 그 잔혹과 아름다움이란 것조차도 무의미하다고 주장한다. ”

쿤데라의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니체의 영원 회귀 사상을 제시하면서 시작한다. 1968년 프라하의 봄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바탕에 깔면서 일회성의 인생에 대한 철학적 성찰을 보여준다.

의사인 토마스와 화가인 사비나는 존재의 가벼움을 보여주지만, 사진작가인 테레사와 박애주의적 지식인 프란츠는 존재의 무거움에 서 있다. 이 소설은 가벼움/무거움이란 대립 구조가 지닌 기묘한 모순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인간 실존을 때로는 엄숙하게, 때로는 유희적으로 그렸다. 어렸을 때부터 음악에 심취했던 쿤데라는 하나의 모티브가 다양하게 변주되는 음악적 구성 방식을 도입했다. 또한 쿤데라는 소설 속에서 화자로 등장해 등장 인물들의 생을 이야기하다가, 종종 개입해 해설을 달면서 독자들의 사고를 요구한다. 전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됐으며 국내에서는 1980년대 후반 출간돼 지금까지 100만 부나 팔렸다.
 
프라하=박해현기자 (블로그)hhpark.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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