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서주의자의 책/ 표정훈 지음 / 마음산책 

 

 

  

 

 

 

서울, 1969년 겨울


1964년 겨울을 서울에서 지냈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겠지만, 밤이 되면 거리에 나타나는 선술집 ─ 오뎅과 군참새와 세 가지 종류의 술등을 팔고 있고, 얼어붙은 거리를 휩쓸며 부는 차가운 바람이 펄럭거리게 하는 포장을 들치고 안으로 들어서게 되어 있고, 그 안에 들어서면 카바이드 불의 길쭉한 불꽃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고, 염색한 군용軍用 잠바를 입고 있는 중년 사내가 술을 따르고 안주를 구워 주고 있는 그러한 선술집에서, 그날 밤, 우리 세 사람은 우연히 만났다. (김승옥, 「서울, 1964년 겨울」)



새뮤얼 베케트가 〈노벨 문학상〉을 받았고, 박경리는 『토지』를 집필하기 시작했으며, 중학교 1학년이던 송승환이 TV 연속극 〈똘똘이의 모험〉에 출연했고, 미 상원의원 에드워드 케네디의 차가 채퍼퀴딕 다리 밑으로 떨어져 동승했던 28세 여비서가 익사했다. 제3한강교(한남대교)가 준공되었고, 경인고속국도와 경부고속도로가 개통됐으며, 아폴로 11호 착륙선 이글호가 달의 ‘고요의 바다’에 착륙했고, 소련 유인우주선 소유즈 4호와 5호가 최초로 우주 공간에서 도킹했으며, 보잉747 여객기가 첫 상업 비행에 나섰다.


지미 핸드릭스의 공연을 끝으로 ‘우드스탁 69(The Woodstock music and art fair 1969)’가 성황리에 치러졌고, 보성중학 3학년 김의철이 첫 창작곡 〈뭉게구름〉을 작곡했고, 레드 제플린이 첫 앨범을 내놓았으며, 조영남은 〈딜라일라〉로 김추자는 신중현으로부터 받은 〈월남에서 돌아온 김 상사〉로 각각 데뷔했고, 비틀스는 ‘옐로 서브머린’ 앨범을 내놓았으며, 남산 중턱에는 친일 혐의자 김경승이 조각한 백범 김구의 동상이 세워졌고, 문희, 남정임, 윤정희가 스크린을 석권하고 있는 동안 피터 폰다(제작 및 출연), 데니스 호퍼(감독 및 출연), 잭 니콜슨 등이 〈이지 라이더〉에서 오토바이를 탔다.


미국 프로야구 뉴욕 메츠는 창단 7년 만에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했으며, 메이저리그의 마운드 높이가 15인치에서 10인치로 낮아졌고, 뉴욕 경찰이 게이바 ‘스톤월’에 들이닥쳐 동성애자들을 거칠게 연행했으며, 한국 중앙정보부는 위장 간첩 이수근을 체포했다고 발표했고, 리비아의 청년 장교 가다피가 왕정을 무너뜨리고 실권을 장악했으며, 온두라스와 엘살바도르는 월드컵 예선전에서 감정이 극으로 치달은 끝에 5일간 전쟁을 벌였고, 박정희 대통령의 뜻대로 3선 개헌안이 통과됐다.


천주교 서울교구장 김수환 대주교는 추기경이, 야세르 아라파트는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의장이 됐고, 육군사관학교 교관 신영복은 남한산성 육군교도소에 수감됐으며, 미 공군 B-52 폭격기 60여 대가 캄보디아 상공에 처음 모습을 드러냈고, ‘중공’과 소련이 우수리강 국경 지대에서 무력 충돌했다. 우리나라 정기발행복권의 효시인 주택복권이 처음 발행됐으며, 미국 벨 연구소가 유닉스UNIX 운영 체제를 개발했고, 오늘날 인터넷의 효시라고 할 수 있는 아르파넷ARPANET이 시작됐다.


어느 해든 그렇겠지만 1969년에도 세상은 숨가쁘게만 달렸다. 그해 마지막 달 어느날의 《동아일보》 1면을 보니, 미국이 대한對韓 원조를 5천만 달러 삭감했고, 비축미를 확보하기 위해 현물상환 조건으로 일본쌀 50만 톤을 차입했으며, 통일원이 ‘북괴’의 유엔 인정에 대비하는 차원에서 ‘남북한 총선’ 대책 연구에 착수할 계획임을 국정감사에서 밝혔다. 1969년에 시작된 아르파넷을 원조로 하여 발전한 인터넷으로 옛날 신문을 검색할 수 있게 된 세상이니, ‘북괴’ ‘대한 원조’ ‘일본쌀 차입’ 등의 표현은 차라리 수백년 전의 것만 같다.

 

 첫 아이가 태어난 날 모든 신문을 한 부씩 사놓았다는 분이 있다. 아이가 성인成人이 됐을 때 그 신문 뭉치를 건네줄 계획이라고 한다. 그럴듯하다. 만일 내가 아버지로부터 그런 선물을 받았다면, 광고까지 하나도 빼놓지 않고 지면을 샅샅이 훑어 읽었을 것 이다. 모니터에서 PDF 파일로 그 내용을 볼 수 있다 해도, 그날 부모가 직접 산 신문 실물이 주는 각별한 느낌에야 비할 수 없을 것이다.

사실은 위에서 언급한 ‘그해 마지막 달의 어느날’은 나의 생일이다. 날짜만 고려한다면 1679년 토머스 홉스가 세상을 떠난 날이고, 1795년 토머스 칼라일이, 1875년 라이너 마리아 릴케가 태어난 날이며, 1912년 그날에는 전쟁이 일어났다. 독일 함대가 네 척의 미 군함을 침몰시키고 호놀룰루를 포격했던 것이다.



다음날 독일과 미국은 전쟁을 선포했고 사회주의자들은 독일과 미국에서 총파업에 돌입했다. 그런 전쟁은 들어본 적이 없다고? 아마 그럴 것이다. 한 주 만에 끝난 이 전쟁은 역사가 아닌 소설, 노동계급에 대한 자본가의 탄압을 적나라하게 그려 레닌의 극찬을 받기도 한 작품, ‘소설 자본론’이라는 별칭이 무색하지 않은 잭 런던의 『강철군화』(차미례 옮김, 한울)에 나오기 때문이다.



1969년 그날의 《동아일보》에서 가장 흥미로운 것은 1면 하단의 책 광고다. ‘인간의 욕망을 풀어주는 기상천외한 마력의 서書! 천天과 지地를 마법단지에 담아 남과 여 그 쾌락의 모험을 한껏 펼친다. 무삭제원본비장판 전8권.’ 이 문구만으로는 도대체 어떤 책인지 감을 잡기 힘들 것이다. 다만 ‘쾌락의 모험’이라는 표현이 묘한(?) 상상을 하게 만든다. 광고 문구를 좀더 보자.



폭풍처럼 이는 격상激賞


삼국지와 수호전을 압도하는 무진한 감흥!


샘물처럼 넘쳐나는 마약적인 매혹의 보고!


사상 가장 화려한 꿈의 도취, 불멸의 고전!


아름다운 밤의 영상, 놀라운 관능의 추구!



책은 다름아니라 『천야일야千夜一夜』, 즉 ‘아라비안 나이트’ 혹은 ‘천일야화千一夜話’ 번역서다. 위의 광고 문구 뒤로는 이런 내용이 이어진다. ‘이 기나긴 겨울밤 천야일야의 마녀신은 당신을 황홀경으로 안고 날읍니다. 동서문화사 창업 15주년 기념출판 전8권 특가 7,000원 7개월 월부 공급.’


1969년, 일본 최초의 성인용 애니메이션 영화 〈천야일야 이야기 千夜一夜物語〉(감독 데즈카 오사무)가 개봉되어 흥행에 성공했다. 데즈카 오사무는 이듬해에도 성인물 〈클레오파트라〉를 발표했지만 흥행에 실패하여 성인용 애니메이션은 이후 오랜 동안 만들어지지 못했다. 〈천야일야 이야기〉와 〈클레오파트라〉는 성인용답게 누드와 정사 장면이 가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동서문화사〉의 『천야일야』는 영국의 탐험가, 외교관, 동양학자로, 30여 개 언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했다는 전설이 전해 내려오는 리처드 프랜시스 버턴 Richard Francis Burton(1821~1890)의 『아라비안 나이트』를 오정환 씨가 옮긴 것이다. 오정환 번역의 『아라비안 나이트』는 현재는 〈명문당〉에서 전10권으로 나와 있다. 그런데 버턴의 영역본을 옮긴 것인지 일역본을 옮긴 것인지 여부는 불분명하다. 아마도 영역본과 일역본을 모두 저본底本으로 삼지 않았나 싶다. 일역본은 1929년에 오야 소이치大宅壯一(1900~1970) 번역으로 〈주오고론샤中央公論社〉에서 12권으로 출간됐고, 1967년에 〈슈에이샤集英社〉에서 『千夜一夜 : 全譯』이라는 제목으로 다시 나온 적이 있다.


문필가이자 저널리스트 오야 소이치는 1969년에 데즈카 오사무 감독의 〈천야일야 이야기〉 제작 과정에도 참여했으며, 자신이 수집한 방대한 단행본 및 잡지 자료를 오야 소이치 문고로 남긴 장서가이기도 하다. 6, 70년대에 우리나라에서 나온 서양의 고전 작품 번역서들이 정확히 어떤 일역본과 상관 있는지 조사해보고 싶은 마음도 든다. ‘잊혀진 원본들’이라고나 할까?


내가 태어난 해와 태어난 날짜에도 많은 일들이 일어났고 많은 사람들이 태어났으며 많은 사람들이 세상을 떠났다. 물론 내가 태어난 해와 날짜라는 것이, 다른 해와 날짜에 비해 지금의 나 자신에게 더 큰 의미와 중요성을 갖는다고 보기는 힘들다. 고금의 많은 현자賢者들이 충고하듯,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지금 이 순간이 아니던가.



작가 로렌스 G. 더렐의 말이라고 기억한다. “누구에게나 두 곳의 출생지가 있다. 몸이 태어난 출생지가 있고, 삶의 진실과 세상의 실재를 깨달은 곳이 있다.” 시간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몸이 태어난 시간이 있다면 ‘삶의 진실과 세상의 실재를 깨달은 시간’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자꾸만 ‘서울 1969 겨울’이라는 내가 태어난 장소, 연도, 계절에 편파적으로 마음이 끌린다. 아직까지 삶의 진실과 세상의 실재를 깨닫지 못했기 때문일까? 아마도 그런 것 같다.



한 욕망에 관한 기억


나는 태어나 지금까지 두 번 책을 훔친 적이 있다. 첫번째는 중학교 1학년 때 학급 문고에서 에세이집 한 권을 훔친 일이다. 새빨간 천 표지만 기억나고 정확한 제목이나 책 내용은 잊어버렸다. 우리나라 작가들과 이른바 명사들의 에세이를 모아놓은 책이었는데, 그걸 도대체 왜 훔치려 했는지조차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청소 당번이었던 날 몰래 책가방에 넣어가지고 집으로 돌아와 조심스럽게 꺼내본 순간 쿵쾅거리던 가슴! 하지만 정작 끝까지 다 읽지도 않았고, 읽으면서 실망했던 기억만 난다. 그 책에 관해 기억이 잘 나지 않는 까닭이 어쩌면 절도에 대한 죄책감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두번째로 훔친 책은 ‘중국 고전 해제집’이었는데, 인사동의 어느 술집 겸 식당에서 술자리를 파하고 일어설 때 몰래 집어들어 책가방에 넣었었다. 하지만 그 책 역시 몇 번 들춰보지도 못했음은 물론, 이사할 때 잃어버리고 말았다.


… (하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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