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 쌉싸름한 초콜릿


                         라우라 에스키벨 지음/ 민음사 







만드는 방법




양파는 아주 곱게 다진다. 양파를 다지면서 눈물을 흘리고 싶지 않다면 자그마한 양파 조각을 머리 위에 얹는다. 양파를 다질 때 눈물이 나오면 우는 것 자체가 아니라, 그게 그러니까, 한번 눈물이 나왔다 하면 양파를 다지는 동안 내내 울음을 멈출 수 없다는 게 영 안 좋다. 여러분도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정말 만날 그랬다. 수도 없이 울었다. 엄마는 내가 양파에 민감한 건 티타 이모할머니를 닮은 거라고 했다.




사람들이 말하길 티타는 증조외할머니 배 속에 있을 때부터 양파를 다질 때마다 울고 또 울어서 그렇게 양파에 민감한 거라고 했다. 티타가 어찌나 요란하게 울어댔던지 반 귀머거리였던 우리 집 요리사 나차도 그 울음소리를 들었을 정도였다. 그러던 어느 날 티타는 하도 울어서 달도 채우지 못한 채 일찌감치 세상 밖으로 나왔다. 증조외할머니가 끙 소리 한번 제대로 내기도 전에 서둘러 세상 밖으로 나왔던 것이다. 그것도 백리향 냄새와 월계수 잎사귀 향, 고수* 향, 끓는 우유 향, 마늘 향과 함께 파스타를 넣은 수프 냄새가 진동을 하는 가운데 부엌 식탁 위로 나왔다. 물론 양파 향도 빠지지 않았다. 여러분도 예상했겠지만 아기를 거꾸로 들어올려 엉덩이를 때릴 필요도 없었다. 어쩌면 티타는 자기가 결혼할 수 없는 운명이라는 걸 알았기 때문에 미리부터 그렇게 울면서 태어났는지도 모르겠다. 나차는 티타가 부엌 식탁과 바닥을 흥건하게 적신 엄청난 눈물 급류에 떠밀려 세상 밖으로 나왔다고 했다.




그날 오후, 놀라움도 어느 정도 진정되고 햇볕 덕분에 물기도 대충 말랐을 때 나차는 붉은 부엌 돌바닥 위에 흩어져 있던 눈물의 흔적을 쓸어 담았다. 그때 주워 담은 소금이 오 킬로짜리 자루 하나를 가득 채웠다. 그 소금은 요리하는 데 한참 동안 요긴하게 사용했다. 이런 예사롭지 않은 출생 때문에 티타는 부엌에 크나큰 애착을 느끼게 되었고 살면서 대부분의 시간을 부엌에서 보냈다. 사실 태어나면서부터 거의 부엌에서 살다시피 했다. 티타가 태어난 지 이틀째 되었을 때 티타의 아버지가, 그러니까 나의 증조외할아버지가 심장마비로 돌아가셨다. 그때 증조외할머니인 마마 엘레나는 그 충격으로 젖이 말라버렸다. 그 시절에는 분유나 그 비슷한 것도 없었고, 급히 유모를 구할 수도 없었기 때문에 티타의 배고픔을 달랠 길이 없어서 애를 많이 먹었다. 음식과 관련된 거라면 훤히 꿰뚫고 있을 뿐더러 요즘은 사용되지 않는 다른 많은 것들도 훤히 꿰뚫고 있었던 나차가 티타를 책임지고 먹이겠다며 자청하고 나섰다. 나차는 결혼도 하지 않았고 자식도 없었지만, 그래도 자기가 ‘아무 죄 없는 어린것의 배를 채워주는 데’는 제격이라고 생각했다. 나차는 글은 읽을 줄도, 쓸 줄도 몰랐다. 하지만 음식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보다도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었다. 마마 엘레나는 나차의 제안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그녀는 남편을 잃은 슬픔과 농장을 제대로 운영해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큰 부담을 느끼고 있었다. 게다가 자식들을 제대로 먹이고 교육도 시켜야 했고, 그것도 모자라 갓난아이까지 있어서 어쩔 수 없었다.




그래서 그날부터 티타는 아예 부엌으로 옮겨 와, 아톨레*와 차를 마시며 아주 건강하고 씩씩하게 자랐다. 그러니 티타가 음식에 특별히 뛰어난 감각을 지니게 된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예를 들어 티타가 밥 먹는 시간은 부엌의 일상에 따라 움직였다. 아침나절에 콩 삶는 냄새가 나거나, 정오에 닭 잡을 물이 준비되었거나, 오후에 저녁 식사를 위한 빵이 오븐에서 구워질 때면 티타는 이제 슬슬 자기가 밥 먹을 시간이 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티타는 나차가 양파를 다질 때 때때로 아무 이유 없이 그냥 울었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 이 눈물의 의미를 알았기 때문에 심각하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심지어 둘이 함께 울면서 재미있어하기까지 했다. 티타는 어렸을 때 기뻐서 흘리는 눈물과 슬퍼서 흘리는 눈물을 제대로 구별하지 못했다. 티타에게는 웃음도 울음의 또 다른 표현이었다.


티타는 삶의 즐거움과 먹는 즐거움을 혼동했다. 부엌을 통해 삶을 알게 된 사람에게 바깥세상을 이해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하지만 부엌문에서부터 집 안쪽까지 연결된 거대한 세상은 티타의 손안에 있었다. 부엌 뒷문이나 안뜰, 밭, 과수원 같은 세상은 완벽하게 티타의 것이었다. 언니들과는 정반대였다. 언니들에게 부엌은 미지의 위험으로 가득 찬 두려운 세상이었다. 언니들은 부엌에서 노는 건 어리석고 위험천만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어느 날 티타는 뜨겁게 달궈진 질냄비 위로 현란하게 춤을 추며 떨어지는 물방울이 얼마나 놀라운 장관을 연출하는지를 언니들에게 보여주기로 했다.






티타가 노래 부르면서 젖은 손을 장단에 맞춰 흔들며 질냄비 위로 물방울을 튀겨서 ‘춤추게’ 하는 동안, 로사우라는 자기가 보고 있는 광경에 괜히 움츠러들어서 한쪽 구석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그렇지만 헤르트루디스는 리듬이나 춤, 음악과 관련된 거라면 뭐든지 좋아했기 때문에 그 놀이가 아주 재미있다고 생각했고 신이 나서 함께 놀았다. 그래서 로사우라도 어쩔 수 없이 함께 놀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손도 거의 물에 적시지 않은 데다 겁을 먹어서 잔뜩 움츠러들어 있었기 때문에 별 재미는 느끼지 못했다. 그래서 티타는 로사우라의 양손이 질냄비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도와주려고 했다. 하지만 로사우라가 싫다고 버티는 바람에 둘이 계속 실랑이를 벌이다가 결국에는 티타가 화가 나서 로사우라의 손을 놓고 말았다.






그러자 로사우라의 양손은 뜨겁게 달궈진 질냄비 위로 맥없이 떨어졌다. 티타는 질리도록 매를 맞았고, 그것도 모자라 그녀의 세상인 부엌에서 다시는 언니들하고 놀지 못하는 벌을 받았다. 그때부터는 나차가 티타의 소꿉친구가 되었다. 두 사람은 항상 음식과 관련된 놀이나 게임을 개발했다. 한번은 마을 광장에서 긴 풍선을 꼬아 동물 모양을 만드는 아저씨를 본 적이 있었다. 그때 티타와 나차는 초리소*를 가지고 똑같이 해보았다. 두 사람은 평범한 동물 모양만 만든 것이 아니었다. 예를 들어 백조의 목에 개 다리나 말 꼬리를 붙인 이상한 동물 모양도 만들어냈다.






문제는 초리소를 튀기기 위해 그 매듭을 풀어야 할 때였다. 거의 매번 티타가 안 된다며 고집을 피웠기 때문이다. 티타는 크리스마스 파이를 만들 때만 유일하게 좋다고 허락했다. 티타는 크리스마스 파이를 아주 좋아했다. 그때는 동물 모양의 매듭을 푸는 걸 허락하기만 한 게 아니었다. 초리소가 튀겨지는 모습을 옆에서 즐겁게 바라보기까지 했다.




파이에 넣을 초리소를 튀길 때는 아주 약한 불에서 튀기되 은근히 잘 익으면서도 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초리소가 준비되면 불을 끄고, 미리 가시를 발라둔 정어리를 붓는다. 물론 정어리의 까만 껍질은 칼로 잘 벗겨내야 한다. 정어리와 함께 양파, 다진 칠레고추, 오레가노* 가루를 섞는다. 파이 속을 채우기 전에 이렇게 미리 준비한 것을 잠깐 재워둔다.




티타는 이 과정을 매우 좋아했다. 파이 소가 양념에 재워지는 동안 거기서 흘러나오는 냄새를 맡는 것은 정말 흐뭇했다. 냄새는 기억 속의 소리와 향을 전하며 과거의 어떤 시간을 떠오르게 하는 특성을 지녔다. 티타는 냄새를 흠뻑 들이마시며 그 각별한 냄새나 향과 함께 자신의 추억 속으로 여행을 떠나는 걸 좋아했다.




 







티타는 맨 처음 이 파이의 냄새를 맡은 게 언제였을까 기억을 더듬어보았지만 아무 소득도 얻지 못했다. 어쩌면 태어나기 전이었을지도 몰랐다. 어쩌면 정어리와 초리소의 묘한 조화가 티타로 하여금 하늘의 평화를 저버리고 마마 엘레나의 배 속으로 들어가게 했는지도 모른다. 마마 엘레나의 딸이 될 수 있도록, 초리소로 아주 특별한 요리를 만드는 데 라 가르사 가문의 일원이 될 수 있도록 말이다.


마마 엘레나의 농장에서 초리소를 만드는 일은 굉장한 의식이었다. 하루 전날 마늘 껍질을 까고, 칠레고추를 깨끗이 씻고, 양념을 빻았다. 집안 여자들 모두가 거들어야 했다. 마마 엘레나와 딸들인 헤르트루디스, 로사우라, 티타, 요리사 나차, 하녀 첸차까지 모두 말이다. 오후 나절에 식탁에 둘러앉아 수다 떨고 농담하다 보면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날이 어둑어둑해지면 마마 엘레나가 말했다.




“오늘은 이만 됐다.”




한마디만 해도 모두 알아들었다. 이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모두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먼저 식탁을 정리하고 나서 일을 분담했다. 한 사람은 암탉들을 우리에 집어넣고, 다른 한 사람은 우물에서 물을 길어 와 아침에 쓸 수 있도록 준비하고, 또 한 사람은 부뚜막에 불을 지필 장작을 책임졌다. 그날은 다리미질도 하지 않고, 수도 놓지 않고, 바느질도 하지 않았다. 그러고 나서 모두 각자 자기 방으로 돌아가 책을 보다가 기도를 드리고 잠을 잤다. 그러던 어느 날 오후, 마마 엘레나가 식탁에서 일어나도 좋다는 말을 내뱉기도 전에 티타가 떨리는 목소리로, 페드로 무스키스가 어머니에게 할 말이 있어 올 거라며 얘기를 꺼냈다. 그때 티타의 나이 열다섯이었다.




“그런데 그 청년이 나에게 무슨 얘기를 하러 온다는 거냐?”




마마 엘레나는 티타의 영혼까지 얼어붙을 정도로 기나긴 침묵을 지킨 후 입을 열었다.




티타가 거의 들릴락말락하게 대답했다.




“저도 잘 모르겠어요.”




마마 엘레나는 티타를 무섭게 한 번 째려본 후 말을 이었다. 티타는 가족 모두를 무겁게 짓누르던 그 따가운 눈총 아래 기나긴 억압의 세월을 보내야 했다.




“너에게 청혼을 하러 오는 거라면 아예 그만두라고 해라. 그 청년이나 나나 괜한 시간만 낭비하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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