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나 미메시스 그래픽노블
바스티앙 비베스 지음, 임순정 옮김 / 미메시스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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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스티앙 비베스의 그림책을 서점에서 발견하고 3초의 망설임도 없이 집어왔다.

폴리나 울리노프. 이 그림책의 주인공인 여섯 살 소녀. 그림책은 보진스키 발레 아카데미에 들어가기 위해 시험을 치르러 가는 소녀의 뚱한 표정과 보진스키 선생의 더 뚱한 표정으로 시작한다.

 

 

 

 

소녀의 성장과 사랑, 예술에 대한 열정이 주된 이야기인 이 그림책은 군더더기 없고 유연한 데생이 압권이다. 그림책을 두고 그림이 좋아요,라고 말하는 것이 좀 우습지만 책장을 넘기는 동안 거짓말을 조금 보태면 수백 번은 그림을 쓰다듬었다. 소녀의 춤이 보진스키 선생의 마음이 심지의 그의 얼굴을 반 이상 덮고 있는 수염이 손끝으로 전달될 것만 같아서였다.

 

 

 

보진스키 선생이 "유연성과 우아함은 배울 수 있는 게 아니라 타고나는 거야"라고 말하는 대목에서 나는 폴리나 보다 더 심술 난 얼굴로 그림책을 노려보았다. 인정은 하지만 뭐랄까 그것을 활자로 대할 때 느껴지는 열패감이란. 신음에 가까운 끙,소리가 절로 났다. 

물론 선생은 폴리나의 재능을 이미 알아보았고, 어쩌면 오래 기억하게 될 소녀라는 것도 감지했던 것 같다. 그렇지만 재능있는 제자를 가르침에 있어 타협은 없었다. 춤꾼의 기질을 타고났더라도 연습을 하지 않고 그것을 관객에게 전달할 수는 없으니까 말이다. 보진스키 선생은 말한다. "더 경쾌하게, 쉽게 하는 것 처럼 보여야 해"  물론 이 말이 갖는 의미와 의도를 알면서도 나는, 이런. 말이 쉽소! 막, 이렇게 대들고 싶었다. 너무 몰입하나 싶었다. 늙었나?

 

여튼 폴리나라는 한 소녀의 성장기가, 좀 노골적으로 말하면 환장하게 우아한 그림들로 변해 200쪽 그림책을 가득 채우고 있다. 극적인 상황도 없고, 뒤숭숭한 암시도 없고, 애타는 관계도 등장하지 않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예술이라는 것에 투신한 소녀의 외로움과 두려움 그리고 희열이 과장 없이 전달될 수 있었던 것 같다.  여인으로 성숙한 폴리나의 춤이 그리고 보진스키 선생과 왈츠를 추는 장면이 그려진 마지막 장면은 꼭 실제하는 장면을 보는 것 처럼 아름다웠다. 쉽게 그려진 것 같은 그래서 어떤 기교도 없는 것 같은 바스티앙 비베스의 천재적인 그림 실력이 끌어낸 감동이었다.

 

뭐든 대가의 그것들은 다르구나. 그것이 그림이건 춤이건 연주건 노래건 전혀 힘을 들이지 않은 것 같은 아무렇게나 슥슥,하는 것 같은 그것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그런 건 정녕 배울 수 있는 게 아니라 타고나야 하는 것, 보진스키의 입을 빌려 작가가 하는 말 "춤은 예술이고, 타고나거나 그렇지 않거나 둘 중 하나"라는 말이 이가 갈리도록 분하지만 할 수 없는 노릇.

여튼 이 아름다운 그림책은 이제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랑하는 소녀, 더 나아가 심정적으로 여전히 소녀로 머물러 있는 그녀들에게 선물할 것이다. 이것으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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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2-01-18 14: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춤은 예술이고, 타고나거나 그렇지 않거나 둘 중 하나 - 글쓰기도 이렇다고 하면 저도 이 갈리도록 분해요. ㅋ

저를 큰엄마라고 부르는 조카 초등생들에게 선물하면 될까요? 저도 읽고 싶은데...ㅋㅋ

좋은 소개, 보고 갑니다.

굿바이 2012-01-19 00:28   좋아요 0 | URL
pek0501님의 글을 종종 그것도 열심히 읽는 제 속내를 말씀드리자면 충분히 타고난 게다가 훌륭한 글쓰기라는 생각이 듭니다. 굉장히 비장한 어투로 말씀드리는 것인데...보이지가 않으니 참...아쉽습니다.

너무 어린 초등학생이 아니면 좋은 선물이 될 것 같습니다^^

치니 2012-01-18 14: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가 갈리도록 분하다 - 으흑흑, 동감 동감요.
이런 책을 딱 알고 선물해주는 이모가 있는 조카 님은 얼마나 좋으까요. 그나저나 요새 조카 님 이야기가 뜸해요 ~ 궁금. :)

굿바이 2012-01-19 00:31   좋아요 0 | URL
우리 귀연양이 요즘 쫌 이상합니다요.
뭐랄까 소녀적 심술이 살짝 보이려고 하는 듯!!!!

아~ 우리 귀연이는 대한민국의 모든 이모가 다 저와 비슷하다고 생각할겁니다. 저는 뭐 평균이죠 ㅋㅋㅋ

風流男兒 2012-01-18 2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분나쁜 책이군요. 사야겠어요.

굿바이 2012-01-19 00:32   좋아요 0 | URL
오~! 보이 ^^
집에 오거든 훔쳐가시오!

라로 2012-01-18 2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데 왜 여아들이 웃통을 벗고 춤을 추나요??;;;;
이런 책을 딱 알고 선물해주는 이모가 있는 조카 님가 부러워요,,,우리 딸이 갑자기 막 불쌍해요,,ㅠㅠㅠㅠㅠㅠ

참! 저 겉은 쭈글거려도,,,,심정적으로 여전히 소녀로 머물러 있는 그녀인데요,,( ")ㅎㅎㅎㅎㅎㅎ

굿바이 2012-01-19 00:35   좋아요 0 | URL
음...저도 그게 살짝 궁금했는데, 어린 나이라 그런게.... 딱히 몸에 맞는 발레복이 없나???? 아님 발레스쿨에 입학해야 옷을 사줄까요???? ㅋㅋㅋ

에이~ 나비 님 같은 엄마를 둔 딸이 불쌍하면...에이~ 그건 아니죠~!
아이고...부담스럽지 않으면 비밀글로 주소 남겨주세요^^

cyrus 2012-01-18 2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베스의 신간이네요. 아직 안 읽어봤지만 이 만화가가 그린 <염소의 맛>이 생각났어요.
한 번 읽어보려고 했는데 제가 이용하는 공공 도서관에 없어서 아쉽기도 했어요.
리뷰 덕분에 처음으로 비베스의 일러스트를 보게 되었네요 ^^

굿바이 2012-01-19 00:38   좋아요 0 | URL
역시 바스티앙 비베스의 작품을 알고 계셨군요.
cyrus님 만세!!!ㅋㅋㅋ
<염소의 맛>도 좋았지만 <폴리나>의 데생과 이야기도 참 근사합니다.

비로그인 2012-01-18 2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이 책 제 맘에 쏙 들어요.. 봐야겠어요!!!

굿바이 2012-01-19 00:38   좋아요 0 | URL
후회없으실 겁니다. 만약 실망스럽다면 말씀하세요.
환불 및 교환이 가능하다고....ㅋㅋㅋ

웽스북스 2012-01-19 1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천마법사가 저에게 이 책을 매일 추천해줘서 보관함에 담아놨었는데요. 역시나 사야겠어요! 히힛. 느끼는 바가 매우매우 많을 것 같아요. 너무 좌절하면 어쩌죠? ㅜ_ㅜ (나도 무용은 바라지 않고 요가나 어떻게 좀;;;; ㅋㅋ)

굿바이 2012-01-20 17:30   좋아요 0 | URL
오늘도 요가를 가야하는데, 무섭다 ㅜㅜ

네꼬 2012-01-19 15: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땡스투예요. 몰랐던 세계! 굿바이님 감사해요!

굿바이 2012-01-20 17:30   좋아요 0 | URL
우와~! 감사해요!!! 네꼬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