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부산 비엔날레 미술전을 다녀와서(2)
2층과 3층에 대부분의 작품들이 전시 되어 있어서 표에 체크를 하면서 봤다.
처음 본 작품은 노바이라 리우스트라가 만든 이동 카페,
일반인들이 기증한 헌 옷으로 천막을 만들어서 공터만 있으면 그 천막을 치고 대학 강의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책상이 달린 의자 몇 개를 놓고 카페를 열 수 있는 아이디어였다. 일반인들이 기증한 각나라의 차도 찬장에 진열되어 있었는데 그 차에 얽힌 사연을 소개해 놓은 카탈로그도 있었다. 그리고 비어 있는 찬장을 채울 차를 기증받고 있었는데 나도 기증할 차가 없나 생각을 해 보니 하동 모암마을에서 처음으로 내 손으로 만든 녹차가 생각이 났다. 이 작품을 보면서 차와 관련된 수많은 추억들이 떠오르는 것을 보면 이 작품을 만든 작가의 의도를 조금은 알 것 같다.
(전시중인 이동식 카페)
트란루옹의 작품은 ‘우리는 곧 우리가 먹는 것이고,우리가 어떻게 먹는가이며,우리가 어디서 먹는 가이다’라는 알 듯 모를 듯한 긴 이름 때문에 관심이 생긴 작품이다. 노점에서 사람들의 먹는 행위를 찍은 비디오를 사방에 설치된 모니터를 통해 반복적으로 보여주었는데 통일 전의 베트남 사람들의 먹는 모습과 통일 후의 베트남 사람들의 먹는 모습을 대비시켜 보여주고 있다. 경제가 아무리 발전하고 시대는 변해도 먹는 행위는 똑같다. 먹는 행위는 일차적인 욕구이니까. 그리고 머리카락을 뽑아 담아놓은 여러 개의 그릇이 가운데에 전시되어 있는데 관람자들의 머리카락도 모은다. 나도 내 머리카락 한 올을 뽑아 그릇에 담았다
닌디툐 아디푸르노모는 부산 시민이 기증한 양말 500켤레를 이어붙여 미사일 두 대를 만들어 천정에 띄워 놓았다.이 작품을 만들 때 부산시민들도 함께 바느질을 도왔다는데 작가는 왜 ‘나에게 양말을. 베이비’라는 해학적인 제목을 붙여놓았을까? 명분없는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은연중에 비판하는 뜻을 담았다는데. 바이라 리우스트의 작품이나 닌디툐 아디푸르노모의 작품처럼 이번에 전시된 작품에는 작품제작에서부터 시민들이 참여한 작품들이 더러 눈에 띈다.
명분없는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비판하는 작품
내가 보육교사 공부를 할 때 아동미술지도 교수였던 심점환씨 작품도 전시되어 있었다. 세상에 대해 비딱한 시선을 가진 화가 답다. ‘저 바다에 누워’, 얼핏 보면 화려한 꽃 같은데 자세히 보면 횟집에서 회를 뜨고 버려진 고기들의 시체다. 얼마 전까지도 퍼득거리던 고기들인지라 선혈이 꽃처럼 붉다. 사람 또한 지금 살아있다고 해서 죽음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다는 얘긴가. 강도, 강간을 떠올리게 하는, 처참한 죽음을 보는 것 같아 섬뜩하다.
마리 마이야르의 작품은 사방에 벽지 같은 하얀 스크린 위로 크고 작은 동그라미 무늬가 물방울처럼 떠 있기도 하고 기하학적 무늬가 연속적으로 나타나기도 해서 단순했다. 그래서 그냥 대충 보고 지나가려고 했는데 갑자기 장미 꽃 송이들이 떠 다니는 그림으로 화면이 바꿨다. 빈 화면에 장미꽃 몇 송이만 둥둥 떠다닌다. 갑자기 장난기가 발동해서 그 그림을 배경으로 벽 앞에 서서 양 손을 좌우로 올렸다 내렸다 하며 그림자 놀이를 했다. 사진을 찍고 보니 색다른 모습의 작품이 되어있었다. 이 작품은 관람자들의 의도에 따라 수많은 작품이 만들어지겠다
그림자 놀이
피크렛 아타이의 ‘빨리 그리고 최고로’는 고등학교 다닐 때 포크댄스를 배우던 때가 연상되는 작품이다. 아이들이 떼를 지어 댄스 스텝을 배우는 영상작품이었는데 학교 축제 때 포크 댄스를 추기 위해 전체 아이들이 양쪽 친구들의 허리 뒤로 손을 두르고 같은 동작의 스텝을 배우던 그 획일적인 모습이 아련한 추억으로 떠올른다
끝으로 유태교 축일 '푸림‘ 축제가 속된 축제와 다를 바 없다는 것을 비판하고 있는 ’아다가 다가올 때‘라는 얄바르타냐의 작품'을 보고 3층으로 올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