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럭저럭 하루하루를 타성에 젖어 살던 어느 해 여름, 그런 내 자신이 견딜 수 없어 통도사에서 여름 휴가를 보낸 적이 있다. 3박 4일 山寺 체험 프로그램이었다. 해인사에서 5박 6일 산사 체험 프로그램에 참가한 적이 있는 남두의 추천으로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을 것 같은 들뜬 기대를 안고 왔던 곳, 그런데...
새벽 4시면 어김없이 일어나 108배를 올리고, 어스름 달빛을 받으며 산책을 가고, 법문을 듣고, 참선을 하고,..
사찰에 가면 성인(부처님)에 대한 예의로 법당 밖에서 부처님께 두손 모아 합장 정도만 하던 나에게 아침, 저녁으로 부처님께 올리는 108배는 참을 수 없을 만큼 힘들었다. 거기다가 저녁에 늦게 자고 아침에 늦게 일어나는 내 생활 습관과 180도 다른 저녁 9시에 취침해서 아침 4시에 일어나는 일과는 더 견디기 힘들었다. 하루가 지나고 견디지 못한 몇 사람은 짐을 쌌다. 나도 갈등이 생겼다. 그런데 오기가 생겼다. 까짓거 참아보지 뭐.
이틀을 지나 3일쯤 되니, 108배도 , 하루종일 말 한마디 하지 않는 것도 할 만했다. 잠이 부족해 힘들기는 했지만 무엇보다 새벽에 달빛을 받으며 산행하는 일도 즐거운 일과중의 하나가 되었다. 그럭저럭 3일을 보내고 저녁이 되었다.저녁 무렵, 일과 중에 사물(법고,범종,목어,운판)을 쳐서 천지만물을 제도하는 의식을 하는 것을 보러 가는 시간이 되었다. 법고 치는 것을 한번도 본 적이 없는 나는 ‘그냥 예불 시간을 알리는 북을 치나 보다’했다. 그런데 그날은 특별한 의식이 있어 그랬는지 알 수 없지만(우리 뿐만 아니라 그 시간을 맞춰 많은 사람들-카메라를 든 외국인들도 제법 눈에 띄었다-이 구경왔던 것을 보면 항상 그 시간에 그런 의식을 해 왔던 것 같기도 하다) 네 분의 스님이 번갈아 가며 법고를 쳤다. 제법 오랜 시간을.
“ 둥 둥~ ”그 힘차고 조화로운 울림은 천지 만물들의 심금을 울려 중생을 제도한다는 의미라던가. 그 소리를 듣고 있으려니 그동안 힘들게 견뎌왔던 3일은 간데 없고 온 몸의 피로가 한꺼번에 날아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머릿속의 잡다한 잡념들도 말끔이 사라지는 듯한 묘한 느낌을 받았다. 이 느낌은 두고두고 내 의식세계를 지배하며 문득문득 떠오르곤 했는데 이번 여행길에 그 법고와 범종, 목어, 운판을 다시 찬찬히 살펴보니 그 때 일들이 주마등처럼 떠오른다.
(법고와 범종)
(목어와 운판)
통도사 경내를 둘러보고 나오는 길 다시 사물들을 둘러본다. 저녁 예불 시간에 맞춰 가족들과 함께 다시 한번 그 감동을 느껴보러 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