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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의 음악
폴 오스터 지음, 황보석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3월
평점 :
품절
며칠 째 이번에 새로 나온 신곡의 한 부분만을 듣게 된다.
버스를 타도, 거리를 걷다가도 유독 시작 부분은 듣지 못하고 중간 어디쯤을 반복해서 듣게 되는 그 묘한 안타까움.
결국 그 노래를 찾아 처음부터 들어보면 너무나 낯설다.
그 낯설음에 귀를 한껏 기울이다 보면 귀에 익은 그 구절이 나온다.
그렇게 나는 그 신곡을 내 머리속에서 옛것으로 만든다.
폴오스터는 만만한 대상이 아니다.
스토리가 그렇고 문체가 그러하며 쓰여진 양이 압도한다.
물론 주제는 더할 것 없이 묘하다.
그러나 내가 그럼에도 폴오스터를 놓지 못하는 이유는 그 근원에 있는 혀를 찌르는 번뜩임과 인생을 단칼에 배반하는 그 맛이 아닐까 싶다.
안타까움과 안쓰러움으로 읽어 내려간 나쉬의 이야기.
나는 나쉬의 삶이 자신의 의지와 결의와 상관없이 흘러가버리는 것이 못내 너무 안타까웠다.
우연의 연속. 그 속에서 그 우연을 극복해 갈 쯤에는 또다른 우연.
그래서 결국 나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리 많지 않은 것은 아니였을까.
어쩌면 그가 모든 것을 다 포기해버린 그 때는. 어느 날의 작은 선택이였지만 말이다.
그리고 그는 철저히 그 선택에 모든 것을 맡겨 버렸고, 그 선택의 결과가 책임을 지고 해결될 쯤에는 또다른 어리석은 선택으로 더 나빠지기만 하는 이야기들.
나는 내내 바랬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쉬가 그 굴레와 우연과 선택에서 당당하게 걸어나오게 되는 것을 말이다.
벽을 쌓고, 힘겨움을 넘겨가면서 튼튼해지고 밝아지고 또렷하게 보여진 자신의 육체처럼 말이다.
나는 이 이야기를 또 옛것으로 돌린다.
그리고 한 순간 이제 그만 폴오스터를 놓아버리자 생각한다.
하지만 누가 알겠는가..어느 날 그랬던 것처럼 읽었던 이야기의 한 부분이 생각나고 불현듯 다른 폴오스터를 찾아내고 싶어질지....